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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전 오늘, 학생들은 독재라는 차갑고 어두운 길 위에 서있었습니다.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과 학원 민주화 요구로 촉발된 4.19혁명.


당시 정부는 불의에 대한 항거를 폭력적 진압으로 맞섰습니다.


이에 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어나 “쓰러진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며 '민주의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과 민의를 파악하지 못한 정부는 “국민이 원하면 정권을 내려놓겠다”며 무릎을 꿇었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공화국이 출발하였습니다.


4.19혁명은 우리 헌정사에 민주주의 이념을 확고히 뿌리내린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2018년 4월 19일, 제58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거행됩니다.


우리가 함께 가는 길, 국민이 함께 걷는 길. 민주주의의 봄날을 함께 걸어 나갑시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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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주년 ‘4.19혁명’이 기념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4월 19일 오전 10시 국립4·19민주묘지(서울시 강북구)에서 거행되는 ‘제58주년 4.19혁명 기념식’에는 4·19혁명 민주유공자와 유족, 시민 등 이천오백여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의 역사’, 4.19혁명에 대해 함께 알아볼까요?


4·19혁명이란?


1960년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의 불법적인 장기집권에 저항했던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뜻합니다. 


▲ 3.15선거 후보 포스터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1960년 3월 15일, 대한민국의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이승만(당시 3선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 부정 선거 실시 등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해왔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력한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사망함으로 인해 이승만의 재선이 확실시 되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유당의 이기붕 부통령 후보 또한 당선을 시키고자 학생들이 야당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요일 강제 등교 조치’를 실시했고, 3.15선거 당일에는 ‘공개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였습니다. 


3.15부정선거의 결과로 이승만, 이기붕이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민주적인 결과에 대해 시민들은 저항을 시작하게 됩니다.


▲ 부정선거 규탄 마산 시위 모습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4·19혁명,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국민들은 이미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대구 지역의 야당 후보 유세 참가를 막기 위해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가해진 ‘강제 등교 조치’ 등에 반발하며 학생들이 ’2.28민주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선거 당일부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3.15의거’가 전개되었습니다. 시민들은 “협잡선거 물리치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의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당국과 경찰은 발포를 하며 폭력적으로 시민들을 진압했습니다.


그러던 중,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마산 3.15의거에 참가했다 실종되었던 16세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채로 4월 11일에 발견된 것입니다.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모습에 시민들의 분노와 슬픔은 극에 달했고, 전국적인 3.15부정선거 규탄시위, 즉 ‘4.19혁명’이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4·19혁명의 전개 과정은?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 약 4천여 명이 국회의사당 앞까지 행진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정치깡패’에 습격을 당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 ‘자유 정의 진리 드높이자’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시위 (출처: 고려대학교 4.18의거 실록)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4월 19일, 전국적으로 10만 명 규모의 이승만 정권 퇴진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인 경무대 앞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발포로 경찰 4명을 포함한 115명이 사망하고, 727명의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 4.19혁명 초등학생 시위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당국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4월 25일에는 대학 교수 300여명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시위에 나섰으며 수만 명의 국민들이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4·19혁명의 결과는?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마침내 하야를 발표하고 대통령 사임서를 제출하였습니다. 180여명의 사망자 및 6천여 명의 부상자를 낸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끝까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 탱크 위에서 환호하는 시민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반드시 기억해야 할 4·19혁명의 역사


오는 4월 19일(목) 오전 10시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제58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거행됩니다. “민주주의! 우리가 함께 가는 길, 국민이 함께 걷는 길”이라는 주제로 진행될 이번 기념식은 58년 전 사건을 단순히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따뜻하고 찬란한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수많은 시민들의 뜻이 모여 역사에 기록된 ‘4.19혁명’. 민주영령을 함께 추모하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4월 19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참고 자료

- 국립4.19민주묘지 http://419.mpva.go.kr/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4.19혁명' http://contents.history.go.kr

- 고려대학교 4.18의거실록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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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오늘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은 1960년대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중 하나인 ‘3.15의거’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3.15부정선거의 선거 및 개표 모습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린 3.15의거는 ‘부정선거’에 대한 전국민적인 항거였습니다. 1954년, 당시 제1당이었던 자유당은 재선에 의한 1차 중임까지만 허락되어 있었던 기존의 대통령 임기 제한을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없애는 개헌안을 통과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위한 정족수는 의석의 2/3이상인 135.333...명(136명)이었는데, 찬성표가 135표로 나오자 이른바 ‘사사오입’을 통해 임의로 정족수를 135명으로 계산하여 개헌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헌안이 통과된 이후,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불법적인 선거 방법까지 동원된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되어 3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정선거와 소득불평등, 부정부패 만연 등 이승만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꾸준히 커져갔습니다. 이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은 1960년 3월 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도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했습니다.


▲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대의 모습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3~5명이 같이 하는 단체 투표, 40% 이상의 사전 투표

위조 투표지 등 부정 선거 방법 동원…

시민들은 항거하기 시작했습니다.“

 

3.15선거에서 벌어진 공공연한 부정행위에 대해 시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월 15일 오후 3시 30분, 마산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부정선거규탄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동참했고 저녁 7시 30분쯤 개표장 근처에서 또 다시 시위가 전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은 발포를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마산중학교 3학년 김영호 학생이 최초로 희생되었으며, 총 8명이 숨지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 3.15부정선거 규탄대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또한, 4월 11에는 3월 15일 밤에 행방불명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채 마산 중앙 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되게 됩니다. 김주열군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시민들의 슬픔과 분노가 폭발하였으며, 결국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되어 끝내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3월 15일부터 42일간 이어진 3.15의거는 결국 4.19혁명으로 이어져 장기 독재 정권을 끌어내리는 업적을 이루게 되었으며, 3.15부정선거에 관련된 인사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빛나는 시작을 알린 3.15의거를 기념하고, 3.15의거 유공자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는 ‘제58주년 3.15의거 기념식’이 3월 15일(목) 오전 10시에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거행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민주의 횃불로 타오르다’라는 이번 기념식의 주제는 ‘구두닦이, 학생, 신문팔이, 철공소 직원’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큰 변화를 이끌어 내었던 3.15의거의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제58주년 3.15의거일을 맞이하여,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이루어 낸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 참고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https://goo.gl/hcg9Wi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goo.gl/9W7irn

3·15의거기념사업회 http://www.masan315.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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