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077,316
  • Today | 1,608
  • Yesterday | 3,199

 

 

  

웹툰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방정환. 우리나라 어린이의 자주독립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타계 직전까지도 동화 집필과 구연 동화에 힘써 노력했습니다.

돌아오는 5월 5일 어린이날, 방정환 선생의 진정한 나라 사랑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대한민국의 어린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는 날 , 바로 5월 5일 어린이날 !!!

어린이날이 처음 생겼을 때는 지금처럼 마냥 놀기만 하는 날 아니었답니다.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의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주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주기 위해서 만든 날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대였으나, 겨레의 희망을 품고 탄생했던 모든 어린이를 위한 날이었죠.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요즘 어린이들처럼 ‘공부하고 노는 것’ 대신에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날을 만들어 살기 어렵다고 어린이들을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분은 생의 마지막 순간 “어린이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셨는데요. 5월, 그의 숨결이 서린 달을 맞아 어린이날이 쉬는 날로만 생각하기 보다는 쇼파 방정환 선생님의 그 뜻을 새겨 보는 게 어떨까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방정환과 어린이날을 맞아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찾아가봤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요?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서울역사박물관



방정환과 어린이날을 만나는 특별전시회

2016년 5월 3일 - 5월 29일 서울역사박물관과 (재)한국방정환 재단 공동 주관






1920년-2000년대의 어린이날 행사 사진, 어린이날 표어, 포스터, 기념우표 등 관련 자료를 통해 방정환의 어린이운동과 어린이날의 유래와 의미 짚어보는 자리



Q: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요?

A: 잔물결을 큰물결로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님입니다.

(1899.11.09. ~ 1931.07.23.)


방정환 선생은 한국이 낳은 문화 위인 중 한사람입니다. 그는 작가로서, 시인으로서, 아동 문학의 동요·동화·동극 등 각 분야에서 글을 남겼고, 편집인으로, 연사로, 동화 구연가로,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로 많은 공적을 남겼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해, 어린이를 위해 생을 바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어린이날이면 더욱 생각나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천대받고 학대받던 아동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라는 존칭어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어린이 인권선언을 하는 등 어린이 운동을 주도하신 분으로 우리가 자랑할 만한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위인입니다.


특히 시대적 상황이 일제 강점시대인데도 그 억압에 굴하지 않고 어린이 운동을 하였고,  33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세상을 떠나기 마지막 순간까지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오직 어린이를 잘 키우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며 어린이를 위해 일생을 바친 그는 애국지사이며, 위대한 교육자인 동시에 이 나라 어린이 문화운동의 선구자입니다.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의 호의 의미는  작을 소( 小 )물결 파( 波 )즉, 잔물결을 말합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록을 살펴보면  “나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에 10년을 투자하라”

“어린이 여러분! 씩씩하고 정직한 어린이가 됩시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를 떠받칠 기둥입니다.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로 바르게 자랍시다!”



Q :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A-1 : 어려운 환경에서도 내일을 꿈꾸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서울 아주개(현 당주동)에서 부친 경수와 모친 손씨 사이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가정에 풍파가 일어나 대궐 같은 집에서 허름한 초가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었습니다. 모든 경제적인 어려움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일시적인 장애물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0세에는 친구들과 소년입지회를 조직하여 ‘소년이 바로서야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A-2 : 어린이운동을 민족운동으로 승화하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 셋째 딸 용화와 결혼하였습니다. 중매자는 아버지와 의형제 같은 권병덕 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습니다.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아내 손용화 여사와 함께

- 소파 방정환선생님은 숨을 거두기 전 부인에게 “ 부인 내 호가 왜 ‘소파(小波)’인지 아시오. 나는 여태 어린이들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했소. 이 물결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오, 뒷날에 큰 물결 대파가 되어 출렁일 터이니 부인은 오래 오래 살아서 그 물결을 꼭 지켜봐주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결혼식사진-1917년 5월 28일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사위가 됨

친지와 찍은 기념사진(왼쪽 아래에서 두 번째)


당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지상과제는 오직 “민족, 민족 운동” 이었습니다. 그래서 1917년  “청년들의 힘을 길러 나라를 되찾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언론인 유광렬과 함께 청년구락부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울어진 조국을 다시 일으키기에는 청년과 기성세대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파 방정환 선생은 내일의 주인공인 아동에게 그 희망을 걸고, 1921년 어린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시작

-1917년 천도교청년회원들과 가운데 방정환, 오른쪽 아래 동요작가 정순철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조선독립신문>1919년 3.1운동 직후 보성학교 교장 윤익선이 내던 <조선독립신문>2호를 집에서 등사판으로 박아 배부하다 일경에게 검거, 일주일만에 풀려남


소파 방정환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아동이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며, 아동의 권익을 신장시켜야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당시 어른들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고 천시의 대상이었던 아동들에게 경어인 ‘어린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어린이”란 호칭의 사용은 인권신장의 중요성과 인식의 전환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어린이 문화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색동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월간지 「어린이」를 우리글로 발간하고 동화, 동요, 동극, 훈화 등 다양한 공연을 하였습니다. 이어 5월 1일 ‘어린이날’로 결의 선포했는데, 이번 5월 5일은 제94회를 맞았습니다.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세계어린이운동발상지비 

-1923년 5월 1일 어린이와 어른 1천명이 모여 흰색바탕에 붉은 글씨로 ‘어린이날’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있었음. 

-이를 기념해 2000년에 기념비 세움

-현재, 경운동 천도교 수운회관앞



Q:소파 방정환선생님의 나라사랑의 길은 ?

A:어린이 사랑이 바로 나라사랑이다.


누구나 어린이날 하면 5월 5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어린이날은 5월 5일이 아니었습니다. 1923년 있었던 첫 행사는 5월 1일에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어린이날을 위해 만든 포스터

-“잘 살려면 어린이를 위하라”,“희망을 살리자”,“내일을 살리자”!!

-어린이날 오월 첫 공일 즉 5월 1일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어린이날 포스터

-색동회 마크가 새겨진 어린이날 포스터


사실 우리의 어린이날은 가장 어두운 시대, 겨레의 희망을 품고 탄생했습니다. 어린이날 첫 행사가 열렸던 1923년은 우리나라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온 민족이 굶주리고 짓눌리며 신음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이런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희망은 조국의 독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득히 멀어만 보이던 당시, 방정환 선생은 앞날의 주인공인 어린이에게서 희망의 불씨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린이들을 잘 기르는 일은, 바로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되찾게 하려는 저항운동의 한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일제의 탄압에 의해 어른을 상대로 한 독립운동은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일본인들의 경계를 피해 겉으로는 소년문제를 연구하는 단체처럼 보이게 하고 실제로는 우리어린이들에게 민족의 자주독립정신을 배양해주자는 것을 목표로 <색동회>만들었습니다.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1923년 5월 1일 우리나라의 최초의 어린이 운동단체 색동회 창립 

- 어린이문화연구단체 색동회 조직

- 색동인란? 민족의 혼이 담긴 색동옷에서 유래

-<색동회>활동은 가장 적극적인 항일운동의 하나로 진행

-어린이를 위한 동요,동화의 창작, 

-나라와 우리말, 우리글을 빼앗고 민족의 얼을 송두리째 짓밟으려 한 일본 식민지정책에 맞서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는 길은 오직 어린이를 잘 키우는데 있다고 생각


방정환 선생이 만든 잡지<어린이>는 독립의 내용을 담은 글들을 연재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일제는 <어린이>지에 대한 사전 검열은 철저히 했고, 그럴 때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총독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어린이>창간호 (1923년 3월 20일) : 짓밟히고 학대받고 쓸쓸스럽게 자라는 어린 혼을 구원하자는 뜻에서 소년운동 전개, 소년회 조직, 색동회 조직, 잡지<어린이>발간


그 후 어린이날은 일제의 강압과 방해로 어떤 해는 아예 행사도 못 치룬 경우도 있었지만 33세라는 짧은 생으로 세상을 떠나기 마지막 순간까지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어린이 사랑, 나라 사랑을 하셨습니다.



1926년 개벽사 동료들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1926년 8월 잡지<개벽> 폐간 항의 사진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개벽사 발행 잡지들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개벽사에서 발행한 잡지와 단행본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그 후 어린이날은 소파 선생의 숭고한 정신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어 오다가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이 제정 선포되면서 지금의 5일 5일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장례식 : 1931년 7월 25일 천도교대강강 앞마당 앞에서 지낸 장례식 장면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방정환 선생 묘비 : 망우리 공원,‘어린이의 마음은 시선(천사)과 같다’는 뜻의 “동심여선”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1946년 해방후 첫 어린이날 행사 (출처-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독립기념관)


5월 5일은 어린이날! 아이들 가슴 속에 우리 어른들이 심어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분명 과거의 어린이들과 현재의 어린이들은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이번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전시회 주제 “오늘의 어린이와 과거 어린이의 만남, 이야기와 그림으로 소통을 꿈꾸다”처럼 과거와 현재는 다르지만 소통을 통해서 미래를 향하는 마음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 된 마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마냥 놀기보다는 어린이날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아이들 가슴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어, 오늘의 이 나라가 있기까지 희생하신 분들의 뜻도 함께 기리는 시간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어린이날 관련해서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과 함께 그 소통의 역할을 어른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

   1.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어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2.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부드럽게 하여주시오.

   3.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주시오.

   4.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5.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을 것을 지어주시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제72주년 광복절 기념 '태극기 완성하기' 이벤트
제73회 보훈퀴즈의신
아직 전하지 못한 5,469개의 훈장,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습니다!
[보비스 10주년] 재가복지서비스와의 만남, 내 인생 가장 행복한 해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