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256,759
  • Today | 2,192
  • Yesterday | 3,076


안녕하세요, 훈터 여러분! 10월 초, 10월의 전쟁영웅 김경진 육군 중령에 대해서 소개해 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http://mpva.tistory.com/4774 참고) 김경진 중령은 백마고지 전투 당시, 고지 탈환을 위해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최전방으로 나아가 돌격 사격을 감행하던 중 적의 포탄에 의해 전사한 인물이었죠.


이번 포스팅에서는 10일이라는 기간 동안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며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65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 당시 믿기 힘든 전공을 세웠던 3인방 강승우 육군 중위, 안영권 육군 하사, 오규봉 육군 하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의 시작


딱 이맘 때 쯤이었습니다.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되었던 휴전회담이 난항을 거듭하며 1952년 10월 초 판문점에서 포로 송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중공군은 이후 협상에서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전략적인 무력행위를 시작합니다. 당시 철원 북방 백마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제9사단을 향해 중공군 제38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10월 6일 아침, 사단의 전 지역에 집중적인 공격준비 사격이 가해졌습니다. 이후 아군의 북쪽 5Km 전방 봉래호의 수문을 폭파함으로써 아군의 후방을 관통하는 역곡천을 범람시켜 아군의 증원과 군수지원을 막았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 당시 모습(출처: 한민족문화대백과 사전)


국군 제9사단은 이날 밤 적과 3차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진지를 사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며칠 동안 5차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 되면서 아군 역시 막대한 병력 손실을 감당해야 했죠. 결국 10월 11일 밤, 고지는 중공군의 수중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국군 제9사단은 이날 밤 적과 3차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진지를 사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며칠 동안 5차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 되면서 아군 역시 막대한 병력 손실을 감당해야 했죠. 결국 10월 11일 밤, 고지는 중공군의 수중으로 넘어갔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 현장

(출처: 블루투데이 신문)


9사단은 다음날 아침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고, 다시 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적의 반격에 피탈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중공군과 제9사단이 반복해서 탈취, 탈환하는 점령전 양상으로 굳어졌습니다. 결국 10월 15일, 제28연대가 밀고 밀리는 육탄전 끝에 고지를 점령하고, 이어 제29연대가 기세를 몰아 395고지 북쪽 낙타능선상의 전초진지를 탈환함으로써 적을 완전히 괴멸시켰습니다.


한 개 사단이 1만 3천여 명에 달하는 중공군을 격멸하는 전공을 세움으로써 국군 제9사단은 ‘상승백마’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으며 한국군의 전투능력과 지휘관의 부대지휘능력을 다시 한 번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의미 있는 전투로 기록되었습니다.


▲ 백마고지 탈환 후 환호하고 있는 제9사단 용사들의 모습

(출처: 전쟁기념관)


 # 백마고지 전투의 1등 공신, 백마 3군신(백마고지 육탄 3용사)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속,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분들이 있는데요. 백마고지 3용사라고 불리는 강승우 육군 중위, 안영권 육군 하사, 오규봉 육군 하사입니다. 

(당시 강승우 소위는 1930년 남제주군 성산읍 출생으로 일본 오사카 흥국 산업학교를 졸업한 후 1951년 8월 갑종7기로 소위로 임관하였고, 안영권 일병은 1925년 전북 김제시 금산면 출생으로 1952년 2월 27일에 입대하였으며, 오규봉 일병은 1928년 충남 천안군 성환읍 출생으로 성환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2년 4월 11일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소총병으로 참전했는데요.)



중공군의 대공세가 시작되자 제9사단은 대규모의 공격을 예상하고 진지를 보강하는 등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갖추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의 압도적인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요충지 395고지를 피탈당하게 됩니다. 이제 제9사단 제30연대는 즉각 역습을 실시했지만 중공군의 수류탄과 기관총 사격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말았죠.


▲ 백마고지의 모습

(출처: 국방부 6.25전쟁 제60주년 사업단 블로그)


역습부대인 제30연대 제1중대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가자 오규봉 일등병은 아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 준 목표 60m 측방의 기관총 사격을 멈추기 위해 진지로 돌격했고 제1중대 제1소대장인 강승우 소위는 안영권 일등병과 함께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실시하며 오규봉 일등병의 돌격을 엄호했습니다.


이후 강승우 소위는 소대장 자신이 TNT와 박격포탄으로 적의 특화점을 공격하기로 결심한 후 기관총진지 7m 전방까지 낮은 포복으로 전진했습니다. 이어 폭발물을 투척하려던 순간. 적의 총탄이 강승우 소위의 팔에 명중했고 그 바람에 들고 있던 폭발물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죠. 아찔했던 순간 안영권 일등병은 이 폭박물을 신속히 주워 적군에게 투척했습니다. 그 와중에 적진지에 근접하는데 성공한 오규봉 일등병도 적진에 수류탄을 투척하여 기관총 진지를 폭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오규봉 일등병은 진지가 폭발하는 위력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산화하고 말았죠.


▲ 백마고지 3용사의 상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소재)


이후, 중대는 진지를 점령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기관총 진지를 무시하고 돌격해, 목표를 탈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육탄돌격을 결행했던 3용사는 이후 백마 3군신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정부는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 애국심을 기려 1953년 7월 1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고, 강승우 소위는 중위로. 오규봉, 안영권 일병은 하사로 추서하였습니다.


▲ 백마고지 전적기념관(강원도 철원군 소재)


적군에 맞서 치열했던 공방전 끝에 고지를 사수하는데 성공한 제9사단 호국영령과 백마고지 3군신. 우리는 적의 공격을 온몸으로 맞서며 적진으로 돌격한 그들의 용기와 애국심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들던 65년 전 10월, 벌어졌던 백마고지 전투의 이야기였습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 북한군과 중공군은 치열한 혈투를 거듭했습니다. 정전 협정 체결까지 양측은 38선상에서 피의 능선 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고지 전투, 펀치볼 전투, 고양대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 수많은 고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그 중 백마고지 전투는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뀔 정도로 세계 전쟁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진일퇴의 혈전이었는데요. 10월의 전쟁영웅은 바로 이 저항과 역습의 최전방에서 백마고지 탈환을 이끌어낸 10월의 전쟁영웅, 김경진 육군 중령입니다.


당시 백마고지는 철원평야 서북단에 위치한 독립고지로서 하루 평균 5만발의 포탄이 허공을 가로질러 서로의 적진에 투하되는 곳으로, 작전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이 당시 백마고지는 포격으로 인해 산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 그 모양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될 정도로 그 전투는 치열했습니다. 


▲ 북한군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국군 (출처: 군포시민신문)


1952년 10월 11일 국군 제9사단 제29연대 제2대대장인 김경진 소령(당시)은 사단장으로부터 불과 1시간 전 제1대대가 물러났던 정상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역습을 감행하였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에서 적진을 향해 달리는 국군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그는 고지 정상의 중공군이 진지보강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 파편을 뚫고 포복으로 전진하여 최전방으로 나아가 부하들을 독려하며 진두지휘했습니다.




▲ 적진을 향해 쏘는 박격포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이 상황에서 김경진 중령은 ‘사병과 더불어’라는 지휘철학으로 병사들과 함께 생사의 고비를 헤쳐 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백마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있던 제6중대를 제5중대의 좌측으로 진출시켰습니다. 이후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 파편을 뚫고 포복으로 전진하여 자신도 직접 최전방으로 나아갔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에 소비된 수 만개의 탄피 (출처: 경북일보)


정상을 20여 미터 앞둔 지점까지 진출했던 김경진 소령은 최후의 돌격사격을 감행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적의 박격포가 근처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포탄의 파편이 중령을 향해 날아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김경진 소령은 적의 박격포탄에 의해 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 격전지로 진격하는 국군의 모습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김경진 소령이 전사한 이후 대대원들은 그가 생전 보여준 용맹한 솔선수범에 전투의지를 불태웠고, 과감히 돌격하여 백마고지를 탈환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백마고지 전적 기념관


정부는 김경진 소령에게 1계급 특진과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우리는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 김경진 중령의 ‘사병과 더불어’라는 지휘철학과 부하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음, 그리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51년 7월 10일, 6.25전쟁이 시작된 지 꼭 1년 남짓한 시점에 휴전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나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고, 특히 최전방에서 적을 마주하던 국군 장병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951년 12월 27일 이후 발표된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한 의제의 합의안 ‘정전협정이 조인되는 순간에 양쪽이 대치하고 있는 선을 중심으로 새롭게 군사분계선을 그리기로 한다.’ 그리고 ‘포로문제와 송환’에 대한 협상이 18개월 11일간 지속되면서 국군장병들은 언제 조인될지 모르는 정전협정을 기다리며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한 전투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나긴 협상이 낳은 또 다른 비극, 고지전투의 서막이었는데요.

고지전투의 한 예로,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이뤄졌던 ‘백마고지’ 전투는 길이 3km, 폭 2km에 불과했던 작은 야산에서 벌어졌고 중공군 1만여 명, 국군 3,5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 고지전 전투 때 북한국 전사자를 바라보는 미군


또, 강원도 화천의 ‘425 고지전’은 남한 전체 전력의 30%를 차지했던 화천 수력발전소를 확보하고 휴전선을 38선 북쪽으로 35km 밀어올렸지만 160명의 국군전사자를 내는 안타까운 결과도 수반하였습니다.


정전협상이 있던 7월 27일 당일에도 오후 10시까지 한 평의 땅을 얻기 위해 사라진 꽃 같은 젊음들.

이외에도 군사전략상 중요한 고지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공방 속에서 많은 젊은 목숨이 사라져 갔습니다. 불모고지,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등 고지전투는 한이 맺힌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도 다양했습니다.


▲ 실제 고지전 때 쓴 탄피들


우리는 이들의 희생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요?

제10기 훈남훈녀 기자단 1조 ‘썸남썸녀’의 팀미션 영상을 통해 6.25전쟁과 고지전투에 대해 더 잘 알게되는 기회가 되었길 바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9사단 '상승백마'의 기원, 뺏고 빼앗긴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이봉창 의사 서거 85주기] 적의 심장에 폭탄을 던진 한인 청년
[훈터와 함께 떠나는 보훈 여행] 유관순열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천안 역사 여행
[제67주년 재일학도의용군 6.25 참전 기념] 재일동포의 이름으로 조국을 위해 싸우다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