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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

6월 26일, 오늘은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8주기입니다.

김구 선생은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출되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신민회에 가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고, 한인애국단을 결성하여 특무공작으로 임시정부의 위기를 헤쳐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 이후에도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힘쓰다가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습니다. 정부는 김구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김구 선생의 진정한 나라 사랑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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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신한청년단과 한인애국단 등을 조직하여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의 의거를 지휘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김구 선생은 1940년에는 광복군을 조직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도 큰 활약을 하였는데요. 1948년에는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시도하며 평생을 민족의 화합과 번영을 위해 힘쓰셨습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에는 김구 선생의 일대기와 구한말에서 6.25전쟁에 이르는 시기의 독립운동을 하신 순국선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의 2층 전시실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평생을 독립을 위해 애쓴 김구 선생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또한 백범 김구 기념관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나라사랑큰나무GO 어플에서 보너스를 획득할 수 있는 장소인데요. 기념관에 방문하여 나라사랑큰나무도획득하고, 겨레의 큰 스승인 김구 선생의 일대기도 살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나라사랑큰나무GO 어플

안드로이드 다운받기 http://goo.gl/WenYGa

IOS 다운받기 http://goo.gl/8ncGvT

 

출처 - 나라사랑배움터 edu.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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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김구기념관에 들어가면서

 

 

6월 26일 부산에 살고 있는 저는 백범 김구 선생 제65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평소에 서울에서 거행되는 행사에 많이 참석하지 못했는데요. 백범 김구 선생의 추모식에 참석하게 되어 기분이 벅찼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 제65주기 추모식」은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 백범김구기념관 주차장

 

 

백범김구기념관에 들어서니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었는데요. 이를 보고 정말 많은 분이 백범 김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추모식에 참석하셨구나고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 백범김구선생 제65주기 추모식 현장

 

 

안에 들어서니 조금 놀랐습니다. 빈자리를 거의 찾기가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메우고 있었고,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이 서서 식을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추모식은 개식, 국민의례, 묵념, 식사(式辭), 추모사, 추모가, 헌화,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김구 선생 영전에 목례를 하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

 

 

정의화 국회의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박유철 광복회장의 추모사가 있었는데요. 정의화 국회의장은 물질주의와 생명경시 풍조, 인성이 메마르고 인의의 정신이 희미해지는 세태를 말하면서 김구 선생이 말씀하신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역설했습니다. 또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라는 말과 함께 이제는 한민족 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서로를 적대시하는 뼈아픈 분단의 장벽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 숙명여대 합창단의 추모가와 참석자 및 유족들의 헌화

 

 

이어 숙명여대 합창단의 추모가가 이어졌고 김구 선생의 초상화 앞에 많은 분들의 헌화를 하였습니다.


백범김구기념관 - 1층

 

 

 

▲ 백범김구기념관 중앙홀 김구선생의 좌상

 

 

식을 마치고, 전시관으로가 기념관을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전시관은 1층과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사진 촬영이 불가하여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 김구선생의 좌상밖에 촬영할 수가 없었습니다.

 

1층에서는 중앙홀 백범좌상을 시작으로 상징홀에서는 연보를 보여주면서 백범의 일대기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었고 영상실에서는 백범의 삶과 사상에 대한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구선생의 유년기 모습과 동학‧의병활동, 치하포의거, 구국운동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었습니다.
상징홀에서는 통일활동, 군사활동, 독립운동, 의열투쟁, 교육활동을 순으로 보여주었는데요. 각 파트에서 김구선생의 성명서와 같은 글들을 보여주었습니다.

 

 

 

▲ 김구선생의 <나의 소원> 중에서

 

 


사실 김구 선생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유년기의 김구선생의 일화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어린 시절 김구선생은 아버지의 멀쩡한 숟가락을 부러뜨려 엿을 바꿔 먹거나, 집에서 몰래 돈을 갖고 와 떡을 사먹으러 가는 등 유난스런 개구쟁이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모습이지 않나요?

 

 

 

백범김구기념관 - 2층

 

2층에서는 백범선생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백범일지, 한인애국단 의거, 충칭에서의 새로운 도약, 한국광복군, 자주‧통일 국가 수립, 서거와 추모에 대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촬영을 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전시관의 끝에 있던 백범선생이 서거 당시 입고 계시던 혈의와 데스마스크를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놀랐다는 표현이 제가 느낀 바를 표현할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으나 적절하게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머리에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김구선생의 업적이 많은 만큼 전시할 부분도 무척이나 많았지만 대부분이 글자로 적혀져있었기 때문에 읽고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서거 당시의 혈의라며 전시된 옷을 보는데,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림도, 사진도 아니라 마치 그 현장에 있기라도 한 마냥 떨리기도 했습니다. 하얀 저고리에 지금은 오랜 시간이 지나 갈색 빛으로 변한 핏자국을 눈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김구 선생의 데스마스크도 마치 제가 김구 선생의 모습을 눈앞에서 뵌 듯 한 느낌을 주었지요.


김구선생은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분단정부가 수립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통일 민족국가의 수립과 자주적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8월 15일 광복을 맞아 환국하여 반탁운동, 남북연석회의 참가 등 통일된 완전 자주독립국가 건설에 진력하다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서울 종로구 소재)에서 육군소위 안두희가 쏜 흉탄을 맞고 서거하셨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사실 이날 제가 참석한 「백범 김구 선생 제65주기 추모식」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는 백범 선생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는데요. 인천대공원 백범광장에서는 광복회 인천광역시부 주관으로 박노진 인천보훈지청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광복회원, 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진행되었고 대전, 충정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백범선생 추모제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곡사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 제65주기 다례재와 사진․휘호 전시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처럼 전국의 많은 분들이 백범 김구 선생을 기리며 선생의 뜻을 기억하고자 하였습니다.

 

 

마치면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아… 아, 보인다, 한국이!”라는 외마디 외침이 들리고,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기체 안에서 애국가가 합창되었다.
나는 마치 한 소년처럼 여울지는 가슴을 느끼며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뒤에 기대고 있을 뿐, 눈물을 닦으려 하시지도 아니했고, 입을 비죽거리지도 않았으며,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하나의 거대한 돌부처처럼, 우는 돌부처처럼, 그런 모습으로 주먹을 쥐어 무릎 위에 얹은 채 새로운 앞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돌베개(장준하)> 중에서-

 

 

그토록 광복을 위해 뛰어온 김구선생이 눈물을 흘리며 고국으로 돌아올 때 품었던 꿈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한듯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남과 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요. 언젠가 김구선생의 통일된 ‘아름다운 나라’를 이룰 수 있길 희망해 봅니다.

 

자료참고: 백범김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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