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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국가보훈처 훈남훈녀 기자단 10기 김도헌입니다.
저는 지난 8월 12일, 부산광복기념관과 충혼탑을 방문하여 뜻 깊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부산광복기념관과 충혼탑은 부산 중구에 위치한 중앙공원 내에 위치해 있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하나씩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부산광복기념관입니다.


▲ 부산광복기념관 전경
               

부산광역시 서구 망양로 193번길에 위치한 부산광복기념관입니다.


부산광복기념관은 2000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는데요.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상과 그에 항거한 부산지역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적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2층에 전시실에는 부산 독립운동의 역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부산지방의 항일 독립운동의 실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도 2층 전시실로 들어가, 부산독립운동유적지에 관한 사진자료를 관람하였습니다.


▲ 2층 전시실 내 독립운동유적지 자료

 

해당 자료에는 부산지역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의 유적이 위치한 곳을 상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 2층 전시실내 부산항일 학생운동 자료

   

▲ 부산항일 학생운동 재현물

 

다음으로 본 자료는 ‘부산항일 학생운동(일명 노다이사건)’에 관한 자료입니다.


이 사건은 1940년 11월 23일 경남학도 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에서 일본학교를 우승시키기 위한 민족 차별적 심판에 대한 불만이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1940년 11월 23일 부산, 마산, 진주, 인근 지역 학생들을 모집하여 제2회 경남 학도 전력 증강 국방 대회가 개최되었는데요. 제1회 대회에서 조선인 학교인 동래중학교(현재 동래고등학교)가 우승하였기 때문에 경남 전역의 일본인 학교 교관들은 2회 대회에서는 일본인 학교를 우승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마지막을 남겨둔 상태에서 동래중학교가 실격하더라도 부산중학교를 0.5점 앞서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래중학교의 우승은 확실해졌는데요. 그런데 마지막 총점을 계산한 결과, 뜻밖에도 부산중학교가 1위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동래중학교의 김영근 교사와 학생들은 조선인 학생에 대한 차별 대우에 단체로 항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심판장 노다이는 “심판의 판정은 신성하고 절대 불가하므로 판정을 따르라”며 교사와 학생들의 항의를 일축하였는데요.


이러한 민족적 차별에 학생들은 울분과 의분을 참지 못하여 학생들은 폐회식 마지막 식순인 일본 국기 하강식 때 일본 국가 대신 우리의 애국가와 아리랑을 불렀고, “노다이 죽여라!”, “왜놈 죽여라!”고 절규하였습니다. 분노한 동래중학교와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은 시위행진을 벌였고, 4·5학년을 중심으로 약 400명의 학생들이 노다이관사를 습격하여 유리 창문을 모조리 깨버렸습니다.

 

엄중한 일제의 보도 통제 속에서도 부산항일 학생운동에서의 우리 학생들의 민족정기는 전국에 널리 메아리쳐 갔다고 합니다. 일제의 잔혹한 통치 속에서도 항일정신을 잃지 않는 학생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다음으로 관람한 것은 ‘일신여학교의 3.1독립운동’ 자료입니다.

 

▲ 2층 전시실내 일신여학교 3.1독립운동 자료와 재현물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1910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우리의 주권을 빼앗긴 역사적 배경 속에서 교육받고 자랐고 부산의 항일운동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3월 2~3일경 독립선언서가 비밀리에 서울로부터 부산의 학생대표단에게 전해지면서 일신여학교는 의거 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는데요. 3월 10일에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혼수감으로 준비한 옥양목으로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들어 11일의 시위를 준비하였습니다.


3월 11일 오후 9시경 고등과 학생 김응수, 송명진, 김반수 등 11명과 주경애, 박시연 교사는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좌천동 거리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일신여학교 어린 소녀들의 항쟁은 부산·경남 지역 3.1독립운동의 효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상 그 의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부산항일 학생운동 재현물

 

▲ 부산 3.1독립운동 의거도 자료

 

마지막으로 부산 3.1독립운동 의거도와 부산독립운동사에 관한 자료들을 관람하였습니다.

 

저는 부산광복기념관에서의 관람을 모두 마치고 근처의 충혼탑으로 향하였습니다. 충혼탑은 그 규모가 웅장하기 때문에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충혼탑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이후 나라를 위해 싸우시다 장렬하게 산화하신 부산출신 국군장병과 경찰관을 비롯한 애국용사들의 영령들을 모시고 있는 성스러운 위령탑이며, 영령들의 위패는 당초 용두산 공원에 모셔져 있던 것을 1983년 9월 충혼탑 건립 후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 충혼탑 입구

 

충혼탑 입구입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데요. 아마도 제가 지금껏 보았던 충혼탑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것 같습니다. 정문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정문으로 들어가 조금만 올라가면 충혼탑 바로 앞까지 갈수 있는 모노레일이 있습니다. 저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봤습니다. 탑승버튼을 누르고 조금만 기다리시면 탑승하실 수 있습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부산시내의 모습과 바다를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모노레일에서 내려서 충혼탑 바로 앞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 모노레일 입구
 

▲ 모노레일에서 바라본 부산시내와 바다


▲ 충혼탑 전경

 

충혼탑 전경입니다. 보존상태가 아주 좋았습니다. 충혼탑 주변은 공원처럼 아주 관리가 잘되어있습니다. 가까이 가면 애국용사들의 영령들을 모신 위패들이 있습니다. 육군, 해군, 공군, 경찰, 재일학도 의용군, 근로자 동원 등 봉안 위수가 총 9,359개입니다.

 

▲ 애국용사들의 위패를 모셔둔 곳
 

충혼탑을 관람하는 도중,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6.25전쟁에서 희생한 용사들의 호국정신과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글을 읽었습니다. 

 

「파수병처럼 멀리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이 탑신을 쳐다보면서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불의와 무도를 꾸짖듯 우람히 산턱을 딛고 서 있는 이 거인상 밑에서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한번인들 오늘 햇빛같이 밝은 자유 속에서 베개를 돋우고 잘 수 있는 근원이 어디에 있는 것임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으며 눈부신 국제무대에서 선진조국의 위용을 빛내고 있는 실력이 어디서 왔던 것임을 돌이켜본 적이 있었던가. 아아 회상만 하여도 몸서리쳐지는 저 1950년의 6.25 동란!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공산 도백들이 남한 땅을 한입에 다 삼킬 뻔 했던 일보직전에서 만일에 우리의 충용한 장병들이 낙동강을 막아 반격으로써 승리를 거두지 않았더라면 오늘 우리가 이 같은 안정 속에서 삶을 누려갈 수 가 있었겠는가. 건국이후 내 몸의 편안보다 나라운명을 먼저 걱정해 몸소 목숨을 불살라 정의와 순국의 화신이 되어 있는 이 부산출신 육해공군 경찰 전몰용사들을 모신 충혼탑아래서 우리는 모름지기 옷깃을 가다듬고 호국영령들에 대한 보은과 함께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될 동족상잔의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숙원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지금 우리 시민이 수행해야 할 국민적 임무가 무엇인가를 엄숙히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이번 부산지역 현충시설 탐방을 통해 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과 6.25전쟁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국가보훈처 제10기 훈남훈녀 김도헌기자였습니다.

 

*출처
-부산광복기념관 전시실
-충혼탑 시설 내부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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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16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UN 소속 참전용사들이었습니다.

UN의 깃발 아래 모인 전투 부대 파병 16개국, 의료지원국 5개국, 연합군 총 34만 1천 명. 인종도, 나이도, 성별도, 사는 곳도 모두 다른 이들이지만 오직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목숨을 걸고 참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UN군을 기리기 위해 유엔평화기념관이 건립되었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후손에게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국군과 UN군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유엔평화기념관에 가면,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바쳐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해 주신 참전용사들의 고귀하고 빛나는 인류애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유엔평화기념관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나라사랑큰나무GO 어플에서 보너스를 획득할 수 있는 장소인데요. 기념관에 방문하여 나라사랑큰나무도 획득하고, 참전국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요?

 

* 나라사랑큰나무GO 어플

안드로이드 다운받기 http://goo.gl/WenYGa

IOS 다운받기 http://goo.gl/8ncGvT

 

출처 - 나라사랑배움터 edu.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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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2일 금요일 오후 2시, 부산 어린이대공원 수변공원 내에 위치한 박재혁 의사 동상 앞에서 ‘박재혁 의사 순국 96주기 추모제’가 거행되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6·25참전유공자분들과 부산개성중학교(인근에 위치한 개성고등학교가 박재혁 의사가 졸업한 옛 부산공립상업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박재혁 의사를 추모하기 위한 이 행사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부산 어린이대공원 앞 박재혁 의사 순국 추모 기념식 플랜카드

 

저도 이날 행사를 참여하기 위해 부산 어린이대공원을 찾았습니다. 부산 어린이대공원은 부산종합버스터미널(노포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양정역에서 하차하여, 백조아파트 정류장에서 54, 63, 81번 버스에 승차하여 부산어린이대공원에서 하차하시면 됩니다. 실제로 지하철1호선과 63번 버스를 이용하였고, 실질적으로 사용된 요금은 왕복 5,50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인 부산어린이대공원 입구에서 내리는 것보다 부산어린이대공원에서 내리는 것이 더 가까웠습니다.

 

▲박재혁 의사 동상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먼저 박재혁 의사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95년 5월 17일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3대 독자로 출생한 박재혁 의사는 부산진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와 부산공립상업학교(현 부산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박재혁 의사는 동창인 최천택 선생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의하고 기회를 노리던 중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이동하였는데요. 1920년 8월경 상해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맹하였습니다.


박재혁 의사는 동지들과 함께 부산경찰서를 폭파하여 서장을 사살하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9월 13일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부산경찰서 서장이 중국 고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던 박재혁 의사는 다음날인 14일 중국인 고서상(古書商)으로 가장한 뒤 하시모토 경찰서장을 찾아가 고서를 꺼내는 척 하면서 폭탄을 꺼내들고, 서장을 유창한 일본말로 꾸짖고 폭탄을 던졌습니다. 폭탄이 터지자 경찰서장은 큰 타격을 입었고, 미처 피하지 못했던 박재혁 의사 또한 오른쪽 무릎 뼈에 중상을 입고 현장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1921년 3월 31일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대구형무소에 투옥된 박재혁 의사는 “왜놈의 손에 욕보지 않고 내 손으로 죽자.”는 결심을 하고 단식을 하다가 5월 10일,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매년 박재혁 의사의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면 항상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시는 박재혁 의사의 유가족을 만나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대상: 박재혁 의사의 이손, 유가족 대표 김경은)

 

Q. 안녕하세요, 저는 제10기 훈남훈녀 온라인 기자단 김혜림 기자입니다. 오늘 박재혁 의사 순국 96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주셨는데, 성함과 박재혁 의사와의 관계에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저는 김경은입니다. 저의 할머니는 박재혁 의사의 여동생입니다. 박재혁 의사님은 총각 때 돌아가셔서 혈육은 여동생뿐이었습니다. 박재혁 의사님은 부산진초등학교를 나오시고, 부산상고를 졸업하셨으며, 중국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셨습니다. 옛날 부산경찰서는 용두산공원에 있었습니다. 부산경찰서를 폭파를 위해, 당시 경찰서장이 중국 고서를 참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재혁 의사님은 친구인 최천택 선생과 함께 중국 고서 상인으로 가장해서 책 안에 폭탄을 넣고 던지셨는데, 이후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가게 되었던 분이십니다.

Q. 이번 행사를 통해 알리고 싶으신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 우리나라 선조들이 이렇게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셨습니다. 옛날 일제강점기라든지 6·25전쟁이라든지 (우리 선조들이) 목숨 걸고 우리나라를 지켜내셨는데, 우리 후손들도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가지고, 박재혁 의사의 추모제도 많이 참석해주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박재혁의사 순국 96주기 추모제 행사

 

추모제는 부산지방보훈청장, 부산시 사회복지과장, 부산진초등학교, 개성중·개성고 교장, 개성고 총동창회장, 개성중학교 학생, 시민이 참석하였고, 국민의례, 약력소개, 추모사, 숭모문 낭독, 분향·헌화, 일동 배례,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
“왜놈의 손에 욕보지 않고 내 손으로 죽자.”


옥중에서 박재혁 의사가 한 말씀입니다. 그의 굳은 절개와 의지가 돋보였던 하루, 나라를 위한 일에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박재혁 의사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는 추모제가 되었기를 소망했습니다. 또한, 유가족 분의 말씀처럼 많은 분들이 박재혁 의사를 기억하고 추모제에 참석하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여름, 비 내리는 부산에서 따스한 소식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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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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