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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창원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올해는 창원방문의 해이기도 한데요, 많은 분들이 진해 군항제와 국화축제를 떠올리고 해당 축제들을 구경하고자 오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에게 창원을 좀 더 특별하게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창원이 민주화의 성지인 구 마산과 해병대의 발상지인 진해를 품고 있는 도시라는 점에 착안해, 호국보훈 여행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국립 3.15민주묘지와 기념관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당선을 자신할 수 없었던 자유당 정부는 대대적인 부정과 개표조작을 일삼았습니다. 이에 국민들은 선거결과에 승복할 수 없었고, 부정선거를 규탄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던 중 3월 15일 마산 시위에 참여하였던 김주열 학생이 약 한달 후 최루탄에 맞아 숨진 채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르자 분노한 시민들은 다시금 크게 일어나 의거를 일으킵니다. 그렇게 마산에서 일어난 의거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3.15의거는 민주·정의·자유의 정신으로 일어나,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창원에는 이를 기념하는 3.15민주묘지가 있습니다. 3.15민주묘지에는 민주의 문, 참배단, 3.15묘역 그리고 기념관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 민주의 문


민주의 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문을 연 3.15의거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의 문은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자유와 민주를 쟁취한 정의의 상징이며, 나날이 발전하는 우리민족의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민주의 문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산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민주의 문을 중심으로 위에는 유영봉안소와 3.15의거·4.19혁명 참여자가 안장된 묘역, 좌우로는 3.15기념관과 기념시비가 있습니다.


▲ 3.15기념관


기념관 안에서는 3.15의거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또 재미있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15의거의 발발과 확산과정, 우리나라의 다른 민주화운동으로 계승되었던 의의, 부정선거에 대한 설명, 시위현장의 모습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3.15 그 날이 피부에 와 닿게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특히 어린아이도 쉽게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3.15의거의 함성을 느낄 수 있는 소음측정기였는데요. 있는 힘껏 함성을 질러보고 그 소리를 3.15의거 때의 함성소리와 비교할 수 있어 당시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 전시관의 내부모습


▲ 3.15의거 희생자가 새겨진 조형물(좌), 그날 발사되었던 최루탄과 칼빈총알(우)


<3.15 기념관>

위치: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성역로 75

개관시간: 09:00 ~ 18:00 (입장은 폐관 30분전까지 가능)

휴관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 없음

문의: 055)253-9315


경상남도 통일관과 상남 기념탑


▲ 창원 도심에 위치한 용지호수


창원의 도심 속에는 커다란 용지호수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용지호수를 둘러싼 산책로에서는 경남자유회관과 상남 기념탑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자유회관


▲ 탱크와 전쟁무기들


경상남도자유회관의 통일관은 관람을 통해 북한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남북통일에 대한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먼저 회관 밖에서는 6.25전쟁과 월남전에 관련된 탱크와 전쟁 무기들을 직접 볼 수 있어 치열했던 전쟁과 그 위험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전시관 내부모습


회관 안에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북한에 대해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는 전시자료들이 마련되어있습니다. 북한의 간행물, 통일정책 설명자료 등 무려 3,400여점이나 되는 북한에 관한 물품을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통일사례와 베를린 장벽에 대한 설명도 있어 북한과의 통일 문제를 심층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또한 영상실에서는 북한영화를 관람할 수 있어 신기하였습니다. 


<경상남도 통일관>

위치: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용지로 179 한국자유총연맹 경상남도지회

관람시간: 09:00 ~ 17:00 (연중무휴)

북한영화상영: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입장료 없음

문의: 055)282-2332


▲ 상남 기념탑


이곳은 해병대 상남 훈련대가 있던 곳을 알리는 상남 기념탑이며 용지공원 산책로 내에 위치해있습니다. 1957년 1월 23일 해병대교육단의 상남 야외훈련대를 창설한 이후 해병대가 훈련했던 곳인 상남 훈련대. 대한민국의 정의와 자유 수호를 위해 하늘과 바다와 땅에서 각종 작전 수행을 위해 훈련한 곳입니다. 푸르게 빛나는 호수를 보며 해병대원들은 꼭 이 아름다운 도시와 나라를 지키겠노라 다짐했을 것 같습니다. 


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


▲ 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


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는 6.25전쟁에서 용감하게 나라를 수호한 용사들과 월남전에서 세계에 용맹을 떨친 용사들을 기리는 전공비입니다. 용지공원과 창원 의창도서관 주위에 있어 바람도 쐴 겸 방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창원에서는 3.15의거 발원지, 3.15의거 기념탑, 김주열 열사 흉상, 3.15의거 당시 경찰이 군중을 향해 발포했던 흔적이 남은 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 해병대 진동리 지구 전첩비, 해병대가 유격훈련을 받았던 봉암벽암지 등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취재를 계기로 창원을 돌아보면서, 여행이 보훈을 실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 여행을 하다 보니 3.15의거 유공자들과 해병대원들, 6.25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보다 진실하고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신다면 즐겁게 진심어린 보훈을 실천할 수 있는 보훈여행을 떠나보세요!


부산과 1시간여 거리에 있는 민주와 호국의 도시, 창원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현대사를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도시입니다. 창원방문의 해를 맞아 우리나라를 지킨 분들의 희생정신과 민주, 호국의 의미를 알아보는 창원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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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오늘은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5월, 이 계절에 ‘꽃다운 청춘’을 나라를 위해 바치고 순국하신 ‘박재혁’ 의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박재혁 의사 (출처: 독립기념관)


박재혁 선생은 1895년 부산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성장하였습니다. 부친 별세 이후 어려웠던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산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고 전신)에 입학하면서 최천택, 오택 선생 등을 만나 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최천택 선생이 남긴 글에 따르면 “암암리에 동지 규합에 힘을 기울여 박재혁, 오택 등 친구들과 매일 만나 독립운동에 대한 전도를 모의하였다”고 합니다.


1913년 선생은 ‘구세단’이라는 비밀 독립운동 조직을 만들어 독립운동 동지를 모으는 잡지를 발간했습니다. 구세단은 6개월만에 그 활동이 발각되었고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1주일간 모진 고문을 당한 후에 해체되었으나, 경남 지역 학생들에게 강렬한 항일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후 선생은 경북 왜관의 무역상에서 일하면서 700원이라는 거금을 조달하여 1917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습니다. 1918년 6월 부산으로 귀국했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상해로 간 선생은 중국과 싱가포르 등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편 여러 독립투사들과 교류하였고, 1920년 중국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참여하게 됩니다. 


선생은 상해에서 김원봉의 거사 지시를 받고 부산으로 귀국하여 최천택 등과 거사를 모의하였습니다.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인 조선총독부를 폭파할 생각이었던 선생은 일제 경찰들의 감시와 탐문이 강화되자, 하루빨리 의거를 실행하기 위해 목표를 조선총독부에서 부산경찰서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 부산경찰서 (출처: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1920년 9월 14일 거사 당일, 선생은 중국인 고서상(古書商)으로 가장하여 폭탄을 짐 속에 숨기고 경찰서장 하시모토에게 진기한 고서가 있다고 하면서 면회를 신청하였습니다. 당시 하시모토는 경상도 경무부 관내 수석 서장으로서 가장 높은 고위직이자,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선생은 하시모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고, 하시모토는 이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절명하였습니다.


▲ 부산일보의 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 폭탄 투하 보도(1920. 9. 14) (출처: 독립기념관)


의거로 인해 체포된 선생은 부산지방법원에서 1920년 11월 2일 사형 언도를 받고 대구복심법원을 거쳐 경성고등법원에서 1921년 3월 31일 사형이 확정되었고,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선생은 의거 당시에 입은 부상과, 옥중에서 자행된 모진 고문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동지 최천택에게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는 자신의 뜻을 알렸고, ‘왜놈 손에 사형당하기 싫다’는 이유로 단식을 하다가 결국 1921년 5월 11일, 26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하였습니다.



▲ 부산시 어린이공원 내에 위치한 박재혁 의사상 (출처: 현충시설 정보 사이트)


5월 12일 토요일, 부산어린이대공원 박재혁 의사 동상 앞에서 ‘박재혁 의사 순국 97주기 추모제’가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및 3.1동지회 주관으로 거행됩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동지들과 함께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끝내는 자신의 고향에서 역사적인 의거를 성공시킨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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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부산 영도에 위치한 태종대를 아시겠지요. 탁 트인 바다가 우리를 반겨주는 태종대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기분 좋은 여행지 중 하나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에게는 부산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태종대에 나라를 위해 희생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부산 영도 태종대 한켠에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어느 군인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그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 보실까요?


영도 유격부대 전적지비의 위치를 알려주는 비석


영도 등대가 있는 쪽을 따라 천천히 걸어 가다보면 샛길과 함께 영도 유격부대 전적지비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비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석과 팻말이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비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이곳이 바로 영도 유격부대의 이야기를 추모비로 전하고 있는 곳입니다.


비석으로 볼 수 있는 영도 유격부대의 이야기


영도 유격부대는 6.25전쟁 당시 부산 영도 태종대를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영도 유격부대는 함경도, 강원도 출신 반공 청년 1,200여 명으로 이루어진 부대였습니다. 6.25 당시 주한연합고문사령부의 지휘 아래 북한에 침투하여 적의 군사 시설을 파괴하고,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유격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반공 유격전을 전개하다 491명의 용사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생존 대원 33명은 떠나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1984912일 부대가 위치했던 태종대에 그들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였습니다.


부대원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이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로 부대원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입니다. 이 비석에는 유격부대원들의 존함 한 글자 한 글자와 국가를 위해 자원입대해 특수훈련을 받고 작전에 투입된 유격부대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새겨져있습니다.

 

군번도 계급도 없었던 대한의 젊은 영도 유격 부대원들은 한 푼의 보수나 대가 또한 바람 없이 다시 못 올 결의로 떠나던 날 태종대 이 소나무 저 바위 밑에 머리카락 손톱 잘라 묻어놓고 하늘과 바다로 적 후방에 침투하여 숨은 공 세우다 못다 핀 젊음 적중에서 산화하니, 아아! 그 죽음 헛되지 않아 호국의 넋이 되어 국립묘지 합동 위령비에 모셨도다. 가신 동지들의 요람지 태종대 반공의 정기 어린 이곳을 못 잊어 작은 돌 하나 깎아 영도 유격 부대 유적지의 거룩한 자취를 남기노라.”

- 영도 유격대대 비문

 

이 소나무, 저 바위 밑에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묻어놓고 적들에게 침투하는 길로 나섰던 영도 유격대원들. 저는 조국을 위해 투신한 그분들의 굳은 결심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비문 앞에 서서 부대원들의 이름 한 글자 한 글자를 천천히, 가만가만 되새겨보았습니다


무명용사비


그 옆에는 무명용사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명용사비에는 이름도 남지 않고 떠나간 용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입안으로 되새겨볼 수조차 없는 부대원분들의 존재에 저는 마음이 쓸쓸해져왔습니다. 그리고 감히 온전히 기억할 수도 없음에 죄송했습니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에 더욱 기억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무명용사비가 영도 유격부대 전적지비의 가장 중앙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숭고한 이름은 남지않았지만 무명용사 분들의 조국을 향한 충정과 희생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 뒤에는 수색부대원들이 수행한 작전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북한 각지에 침투해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의 공로를 우리는 다 알 수는 없지만 반드시 전해져 내려가게 해야 할 것입니다.


머릿돌


이 곳 영도 유격부대 전적지비의 머릿돌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만방에 떨치고 있으나 여기 태종대를 요람으로 하여 일당백의 기개를 키우고 적 후방에 침투한 동지들과 합세한 많은 무명용사들 영령을 추모하는 우리들의 발길은 오늘에 이르러 겨우 이 빗물을 세우니 살아남은 우리들의 무심함을 스스로 탓하면서

 

이 머릿돌에 적힌 말처럼 우리는 그동안 어쩌면 너무나도 무심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라를 위해 자원입대하여 오직 조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싸웠고 또 희생을 했던 그들을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잊고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언제까지 기억해도 모자란 희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함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방문했을 때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영도 유격부대 전적지비가 있다는 팻말을 보고도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무관심 속에서 잊혀 가고 있는 현실이 무명용사들을 포함한 유격대원들의 존재를 더욱 쓸쓸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영도 유격부대 전적지비를 바라보면서 저는 기억은 후손들의 보답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도 유격부대 전적지비를 스쳐지나가던 혹자는 어쩌면 수많은 호국인물 중 하나의 유적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많은 보훈 유적지들에 대한 익숙함은 그만큼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다는 증거이며 자부심입니다. 빈번하게 들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편안한 일상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아마 봄이 오면 더 많은 분들이 이 곳 태종대를 방문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멋진 자연경치를 즐기시면서 태종대의 한켠, 태종사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영도 유격부대의 이야기에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관심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가족, 연인과 보내는 시간 중 딱 5분만 시간을 내어 영도 유격부대 전적지비에 들러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어떨지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 부산 영도 태종대에서 즐거운 여행의 경험과 호국보훈의 마음을 함께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참고자료

부산역사문화대전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16949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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