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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개전 3일 만에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으나 북한군은 포항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조금 더 후퇴하면 부산이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 속, 국군과 북한군은 포항의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됩니다.


밀려오는 적의 공격, 국군은 포항을 탈환하기 위해 형산강을 두고 역전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를 펼쳤는데요. 이것이 바로, 형산강 도하 작전입니다.


# 형산강 도하 작전이 일어나기까지


▲ 적군을 향해 총탄을 겨누고 있는 국군 (출처: 타임트리 블로그)


1950년 8월 초, 동부전선의 청송지역으로 진출했던 북한군 12사단이 경주 방어의 요충지였던 기계 지역을 점령하게 됩니다. 낙동강 방어선이 흔들리자 적군은 8월 11일에 포항일대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국군 3사단은 고립되고, 경주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북한군은 포항 일대를 점령한 뒤, 쉬지 않고 경주 일대로 진출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였던 형산강 도하 작전을 서두르게 되는데요. 이에 북한군 5사단, 12사단, 그리고 유격부대인 766부대를 작전에 투입시킵니다. 북한군 제766부대는 영덕에서 기계-안강 일대를 향해 서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동해안에서는 제5사단이 영덕에서 해안지대를 따라 계속 남진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의 움직임에 국군 제3사단은 적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영덕 지역에서 남쪽 10km 지점인 장사동 일대로 전진하여 북한군 제5사단과 맞서게 됩니다. 


국군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8월 11일 새벽 4시경, 북한병력의 일부가 침입함에 따라 포항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은 포항 탈환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3개 독립부대를 투입하여 북한군이 더 이상 진출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작전을 모색하게 됩니다.


# 포항을 되찾기 위한 형산강 도하 작전


▲ 전투에 투입중인 국군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이슈 블로그)


형산강 도하 작전은 포항을 탈환하기 위해 1950년 8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지속된 형산강 방어 전투에서 시행되었던 작전입니다. 당시 형산강 남쪽으로 영일군과 구룡반도가 위치해 있었고, 만약 북한군이 인근의 영일 비행장을 차지하게 된다면 우리 공군의 출격이 저지당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형산강 북쪽으로는 강을 건너 공격하는 국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군의 김일성 직속 충견전대, 그리고 5사단 10연대 11연대의 기관총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남쪽으로는 북한군을 막기 위한 국군의 방어선이 형성되어 있었는데요. 그야말로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치상황이 이어졌습니다. 

 

▲ 6.25전쟁 당시 적진으로 향하는 모습 

(출처: 칼칼의 밀리터리와 모형 그리고 풍경 블로그)


▲ 연제근 이등상사 (출처: 예.아-YEAH-그 환한 빛 블로그)


국군 제3사단 22연대 1대대의 분대장이었던 연제근 이등상사는 특공대를 결성하여 1950년 9월 17일, 12명의 돌격대원을 이끌고 포항을 탈환하기 위한 형산강 도하 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연제근 이등상사와 특공대원들은 수류탄을 몸에 매달고 물이 불어서 가슴 높이까지 오는 물살을 헤치며 형산강의 도하 작전을 실시했습니다. 북한군의 무차별적인 사격이 이어졌지만, 연제근 이등상사와 대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수중포복까지 감행하며 한발 한발 전진하였습니다. 도하 도중, 연제근 이등상사는 북한군의 사격으로 어깨가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게 되는데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전진하여 수류탄 3발로 적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한 뒤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 형산강 도하작전의 영웅 연제근 상사 특공대상 (출처: 현충시설정보 서비스)


북한군은 막아냈지만, 안타깝게도 연제근 이등상사를 포함한 9명의 특공대원들은 적탄에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했던 형산강 도하 작전은 국군 22연대가 형산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했으며, 나아가 포항을 수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요. 이후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뛰어든 국군 장병들의 나라를 위한 헌신으로, 현재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9월의 초입에서, 포항의 형산강을 건너 우리나라를 지켜낸 호국영령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들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 참고자료

형산강 도하작전의 영웅들, 불꽃처럼 타오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Ynfp4KK9Q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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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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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수

    2017.09.15 0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해 된 간수의 유족은 보복하지 않나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불법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국가가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영국 정부는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인 56,000여 명의 병력을 대한민국에 파병하여 국군과 함께 피흘려 싸웠습니다.


6.25전쟁 당시 영국군은 임진강 전투, 낙동강 방어선 전투, 정주·박천 전투, 신둔리 전투, 가평 전투 등 다양한 전투에서 기습작전과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6.25전쟁 중 전사자, 부상자, 실종, 포로 등의 피해를 입은 영국군은 무려 4,900여 명에 달합니다.


꿈많던 청춘, 대한민국을 지켜준 영국 참전 용사들.

우리나라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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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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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근처의 강원도 양구, 해발 1148m의 도솔산. 

지금으로부터 66년 전, 이곳엔 총성이 가득했습니다. 1951년 6월 4일, 도솔산에서 북한과의 전투가 벌어졌고, 우리는 지금 이 전투를 도솔산 전투라고 부릅니다. 1951년 6월, 도솔산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1951년 6월 4일부터 19일까지 벌어졌던 도솔산 전투는 원래 미 해병대 1사단의 5연대가 맡았던 전투였습니다. 도솔산은 강원도 양구에 위치해 있는데요.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지역이며 높이는 1,148m에 이릅니다. 높은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전투를 하기엔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 미 해병대는 많은 손실을 입고 도솔산을 탈환하지 못했는데요. 결국 이 전투는 한국 해병대가 맡게 되었습니다. 



▲ (출처: 픽사베이)


북한군에 맞서는 우리 해병대

 (출처: 국가보훈처 나라사랑신문)


북한군은 수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수류탄을 퍼부었습니다. 그들은 빼곡히 매설된 지뢰로 우리 해병대의 앞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우리 해병대는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해 방어진지를 구축했습니다. 불리해 보이는 지형을 지혜롭게 이용하여 용감하게 적에 맞선 것이지요. 또한 야간 기습공격을 과감하게 실행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며 서서히 전진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과 전우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 해병대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더 이상 전우를 희생시킬 수 없다는 생각과 부대의 승리를 이끌기 위해, 24개 고지를 하나씩  점령해 나갔습니다. 결국 불가능해 보이던 24개 목표 고지를 6월 19일, 완전 탈환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우뢰소리 땅 위에 아우성

불바다 피투성이 새우기 몇밤

이 나라 해병들이 명예 걸메고

목숨내건 싸움터 도솔산일세

오오 도솔산 높은 봉

해병대 쌓아올린 승리의 산

오늘도 절은 피, 불길을 뿜는다.

-도솔산의 노래-


도솔산 전투는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꼽히며, 해병대에서는 <도솔산의 노래>라는 군가를 제정하여 이날의 정신을 후배 해병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2,000여 명의 북한군을 사살하고 우리군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산악전 사상 유례없는 대공방전이었습니다.


우리 해병이 목숨 걸고 며칠 밤을 새워 지킨 도솔산. 무적해병, 귀신잡는 해병이란 말이 용감한 우리 해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도솔산지구의 용감했던 우리 해병대의 용맹한 정신을 기억합시다.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국가보훈처 나라사랑신문

-6.25 60대 전투(온창일, 김광수 외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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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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