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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 서해의 작은 섬, 연평도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어부들은 꽃게잡이에, 주민들은 생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인근 부대에서는 해상 사격 훈련이 한창이었죠.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던 오후 2시 30분경, 이 평화로운 연평도에 굉음이 들리며 삽시간에 섬 일대에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7년 전의 일이지만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한, 바로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입니다.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의 7주기를 앞둔 오늘, 그 날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 훈련 종료 10분만에 연평도에서 터진 굉음
 

▲ 한미합동훈련 중인 모습 (출처: 해군작전사령부)

 

2010년 11월 23일, 당시 연평부대에서는 해상 사격 훈련이 한창이었습니다. 오전부터 시작된 훈련은 오후 2시 24분에 끝이 났습니다.
오후 2시 34분, 훈련이 종료된 지 10분 만에 ‘펑’하는 굉음과 함께 북한의 무차별적인 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순식간에 가옥 십여 채가 파손되고 연평도 일대는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 민가에 떨어진 북한군의 포탄

 

마을에까지 포격이 진행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 군은 13분간 대피한 후, 2시 47분부터 곧장 대응 포격을 개시하여 1차 50발을 사격했습니다. 그러나 3시 11분부터 북한은 2차 포격을 실시했고, 연평부대는 3시 25분부터 30여 발을 추가로 사격하며 치열한 교전이 이어졌습니다.


▲ 해병대 연평도 대응 사격 모습 (출처: 대한민국 국군)

 

3시 41분, 북한의 포격 중지로 치열했던 교전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불과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포탄이 무려 170여 발이 떨어졌죠. 이 교전에서 우리 해병대원 고(故) 서정우 하사와 고(故)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마을 주민 2명도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 북한의 포격으로 폐허가 된 민가

 

# 연평도를 지켜낸 두 명의 호국영웅

 

포탄이 빗발치고, 주변이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국군 장병들은 침착하게 대응사격을 하여 적에 대항하였습니다.
평소 해병대에 애착을 가지고 있던 고(故) 서정우 하사는 포격 당일, 제대 전 마지막 휴가를 떠나기 위해 여객선에 탑승하던 중 연평도에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려 복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북한의 2차 포격이 있었고, 복귀 중이던 서정우 하사는 그 자리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 국립대전현충원의 고(故) 서정우 하사와 고(故) 문광욱 일병의 묘역

 

고(故) 문광욱 일병은 2010년 8월에 자원 입대한 신병이었습니다. 평상시 그는 친구에게 조국의 평화는 자신이 지킨다며 군대에 올 필요가 없다는 농담을 하는 등 해병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죠.
입대한 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문 일병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일, 포탄이 쏟아지는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작전을 수행하다가 포탄의 파편에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 2017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7주기>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우리의 영토를 직접 타격하고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입니다. 같은 해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8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러, 현재 연평도는 그 때의 아픔을 간직한 채 평범한 일상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 그리고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세 차례에 걸친 북한의 도발과, 목숨 바쳐 우리의 영토를 수호한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23일(목), <연평도 포격 도발 7주기>를 맞아, 고(故) 서정우 하사와 고(故) 문광욱 일병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참고사이트
연평도 http://www.yeonpyeongdo.com/
네이버 지식백과 https://goo.gl/Suo7F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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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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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도를 표합니다

    2017.11.23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깝습니다. 조국수호에 몸 바친 영령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개전 3일 만에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으나 북한군은 포항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조금 더 후퇴하면 부산이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 속, 국군과 북한군은 포항의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됩니다.


밀려오는 적의 공격, 국군은 포항을 탈환하기 위해 형산강을 두고 역전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를 펼쳤는데요. 이것이 바로, 형산강 도하 작전입니다.


# 형산강 도하 작전이 일어나기까지


▲ 적군을 향해 총탄을 겨누고 있는 국군 (출처: 타임트리 블로그)


1950년 8월 초, 동부전선의 청송지역으로 진출했던 북한군 12사단이 경주 방어의 요충지였던 기계 지역을 점령하게 됩니다. 낙동강 방어선이 흔들리자 적군은 8월 11일에 포항일대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국군 3사단은 고립되고, 경주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북한군은 포항 일대를 점령한 뒤, 쉬지 않고 경주 일대로 진출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였던 형산강 도하 작전을 서두르게 되는데요. 이에 북한군 5사단, 12사단, 그리고 유격부대인 766부대를 작전에 투입시킵니다. 북한군 제766부대는 영덕에서 기계-안강 일대를 향해 서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동해안에서는 제5사단이 영덕에서 해안지대를 따라 계속 남진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의 움직임에 국군 제3사단은 적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영덕 지역에서 남쪽 10km 지점인 장사동 일대로 전진하여 북한군 제5사단과 맞서게 됩니다. 


국군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8월 11일 새벽 4시경, 북한병력의 일부가 침입함에 따라 포항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은 포항 탈환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3개 독립부대를 투입하여 북한군이 더 이상 진출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작전을 모색하게 됩니다.


# 포항을 되찾기 위한 형산강 도하 작전


▲ 전투에 투입중인 국군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이슈 블로그)


형산강 도하 작전은 포항을 탈환하기 위해 1950년 8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지속된 형산강 방어 전투에서 시행되었던 작전입니다. 당시 형산강 남쪽으로 영일군과 구룡반도가 위치해 있었고, 만약 북한군이 인근의 영일 비행장을 차지하게 된다면 우리 공군의 출격이 저지당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형산강 북쪽으로는 강을 건너 공격하는 국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군의 김일성 직속 충견전대, 그리고 5사단 10연대 11연대의 기관총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남쪽으로는 북한군을 막기 위한 국군의 방어선이 형성되어 있었는데요. 그야말로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치상황이 이어졌습니다. 

 

▲ 6.25전쟁 당시 적진으로 향하는 모습 

(출처: 칼칼의 밀리터리와 모형 그리고 풍경 블로그)


▲ 연제근 이등상사 (출처: 예.아-YEAH-그 환한 빛 블로그)


국군 제3사단 22연대 1대대의 분대장이었던 연제근 이등상사는 특공대를 결성하여 1950년 9월 17일, 12명의 돌격대원을 이끌고 포항을 탈환하기 위한 형산강 도하 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연제근 이등상사와 특공대원들은 수류탄을 몸에 매달고 물이 불어서 가슴 높이까지 오는 물살을 헤치며 형산강의 도하 작전을 실시했습니다. 북한군의 무차별적인 사격이 이어졌지만, 연제근 이등상사와 대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수중포복까지 감행하며 한발 한발 전진하였습니다. 도하 도중, 연제근 이등상사는 북한군의 사격으로 어깨가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게 되는데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전진하여 수류탄 3발로 적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한 뒤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 형산강 도하작전의 영웅 연제근 상사 특공대상 (출처: 현충시설정보 서비스)


북한군은 막아냈지만, 안타깝게도 연제근 이등상사를 포함한 9명의 특공대원들은 적탄에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했던 형산강 도하 작전은 국군 22연대가 형산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했으며, 나아가 포항을 수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요. 이후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뛰어든 국군 장병들의 나라를 위한 헌신으로, 현재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9월의 초입에서, 포항의 형산강을 건너 우리나라를 지켜낸 호국영령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들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 참고자료

형산강 도하작전의 영웅들, 불꽃처럼 타오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Ynfp4KK9Q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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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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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수

    2017.09.15 0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해 된 간수의 유족은 보복하지 않나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불법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국가가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영국 정부는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인 56,000여 명의 병력을 대한민국에 파병하여 국군과 함께 피흘려 싸웠습니다.


6.25전쟁 당시 영국군은 임진강 전투, 낙동강 방어선 전투, 정주·박천 전투, 신둔리 전투, 가평 전투 등 다양한 전투에서 기습작전과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6.25전쟁 중 전사자, 부상자, 실종, 포로 등의 피해를 입은 영국군은 무려 4,900여 명에 달합니다.


꿈많던 청춘, 대한민국을 지켜준 영국 참전 용사들.

우리나라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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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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