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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최후의 유언과 순국


2017년 3월 26일 일요일의 이른 아침,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기념관을 찾았습니다. 꽤 먼 거리였지만 따뜻해진 날씨에 기분 좋게 걷다보니 어느새 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추모식은 아침 10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안 의사 순국 107주기임을 알리는 기념관 외벽의 대형 현수막이었습니다. 현수막에 적혀져 있는,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라는 안중근 의사의 최후의 유언은 당신이 묻힌 곳이 어디인지 아직 모르고 있는 우리 후손들에게 책임감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불타는 애국심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여순 관동법원에서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았던 안중근 의사는 여순 감옥으로 면회 온 두 동생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관동도독부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하여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라.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출처 : 박환 지음, 「민족의 영웅 시대의 빛 안중근」, 안중근 의사기념관, 2013년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께서는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자,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는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안중근 의사는 고등법원에 상고하지 않고 순국하셨습니다.


▲안중근 의사기념관 강당 앞의 추모식 현수막(좌)과 전시실 안 의사 유언장면(우)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7주기 추모식 행사


추모식은 10시부터 시작하였지만 추모식을 시작하기 전, “안중근 의사 알리기 UCC공모전”에서 수상한 UCC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상의 내용 중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의거의 정당성을 조목조목 주장한 부분과 자식의 안위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 깊었으며, 가슴 한 켠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오전 10시, 드디어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고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평화사상을 기리기 위한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이 안중근의사기념관 대강당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추모식에는 국가보훈처 최완근 차장과 안 의사의 유족인 외손녀 황은주 여사, 증손자 안도용(미국명, 토니안), 광복회 박유철 회장을 비롯한 내빈과 학생, 시민 등 약 500여명의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강당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습니다.  


추모식은 국민의례, 안중근 의사 약전봉독 및 최후의 유언 낭독, 행사주관 단체인 안중근 의사숭모회 이사장 및 내빈 추모사, 추모공연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 안내 리플렛


▲안중근 의사기념관을 꽉 메운 참석자


안중근 의사숭모회 안응모 이사장은 추모식사에서,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사형선고를 받아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의연함을 전혀 잃지 않으셨다”고 말하며, “국민 모두는 안 의사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어 국가보훈처 최완근 차장도 추모사에서, “애국혼의 표상이시며 평화론자이셨던 안중근 의사님의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하였고, 광복회 박유철 회장도 “안중근 의사께서 주장하셨던 동양평화론을 토대로 한․중․일 3국이 합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숭모회 안응모 이사장의 추모식사


▲국가보훈처 최완근 차장의 추모사


내빈 추모사가 모두 끝나고 추모공연으로 성악가 2명이 ‘별이 되어’와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으며, 안중근 의사의 숭모사업에 헌신하고 한․일 및 한․중 간 교류․우호증진에 공로가 있는 일본인 2명과 중국인 1명에게 국가보훈처장의 감사패가 수여되었습니다.


▲추모 공연


감사패 수여


다음으로 전국 학생 글짓기 대회 및 앞서 상영되었던 UCC공모전 시상식이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참석 내빈들의 헌화와 참석자 모두가 역사청소년합창단과 같이 ‘안중근 의사 추념가’를 제창하는 것을 끝으로 추모식 행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글짓기 및 UCC 공모전 시상식


역사청소년합창단 추모가 합창


추모식이 끝난 후 의정부에서 온 참석자 A씨는, “안중근 의사가 꿈꿨던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또다른 참석자 B씨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지 107년이 되었으나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들으니 후손된 한 사람으로서 많이 부끄럽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사관계자 L씨는 “많은 국민들은 안중근 의사가 단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안중근 의사는 교육운동, 계몽활동, 국채보상운동, 의병활동, 옥중에서의 동양평화론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 나라의 독립운동을 넘어 동양평화는 물론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지향했던 평화론자였다”고 하면서,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안중근 의사께서 염원하셨던 세상을 국민 모두가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였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안중근 의사는 비교적 친숙한 인물이었지만 이토 히로부미 저격 외의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 취재를 통해, 안중근 의사가 민족의 백년대계를 걱정했던 교육가, 동양평화론을 주장하셨던 사상가이자 평화론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안 의사의 생애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따뜻해진 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다 가신 안중근 의사의 추모식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돌아올 봄에는 여러분도 추모식에 참여하여,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업적을 되새겨보며 그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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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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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케 한 죄

무고한 대한의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죄”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만들어진 뮤지컬 ‘영웅’에 나오는 ‘누가 죄인인가?’ 노래 가사의 일부입니다. 이 노래는 실제 안중근 의사가 재판 과정에서 밝힌,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는 공연으로도 만들어져 그의 애국심과 용맹은 후대에까지 전해집니다. 이렇게 위대한 안중근 의사를 도심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바로 경기도 부천시에는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지하철 7호선 부천시청역 근처에 위치한 안중근공원은 시민들의 도심 속 휴식공간이자, 근대사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안중근공원의 입구


‘고국으로 돌아온 대한제국의 영웅(안중근공원이 세워지기까지)’


▲안중근 의사의 동상 from 하얼빈


원래 안중근 의사 동상은 지난 2006년 1월 16일, 안중근 의사의 순국 96주기를 맞아 하얼빈시 중심가 ‘중양다제(中央大街) 광장’에 건립되었습니다. 이 동상은 안중근의사숭모회와 재중국 사업가 이진학 회장 등 민간차원에서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리며 세운 동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얼빈에 있어야 할 이 동상이 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일까요? 여기, 안중근 의사 동상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상제막식을 하고 11일 후, 중국중앙정부는 외국인 동상건립을 불허한다는 방침을 내세우며 안중근 의사의 동상 건립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하얼빈시 지방정부와 협의를 한 상태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상은 천으로 가려졌고, 중국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근처 백화점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으로의 송환 역시 부지확보 등의 문제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 10월 26일, 부천시의 ‘중동공원’이 동상의 부지로 정해집니다. 부천시 측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현장인 하얼빈에서 돌아온 안 의사의 동상을 하얼빈의 자매도시인 부천에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동상 유치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후 ‘중동공원’은 ‘안중근공원’으로 개칭되었고, 안 의사의 동상은 이곳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늠름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에서 그분의 애국심과 독립을 향한 투철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중근의사가 들려주는 그분의 인생이야기’


▲이 조형물에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중근공원에 들어서면 큰 조형물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조형물은 안중근 의사의 인생을 그리고 있는데요. 사실적인 철제 부조물과 조형물에 새겨진 설명은 안 의사의 생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사진 속의 소녀들이 바라보고 있는 손 모양의 구조물은 안중근 의사의 상징인 ‘단지혈맹’을 잘 나타냅니다. 그럼 그 내용을 볼까요?


그분은 정말 우리 민족만을 위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꿈이 있다면 조국의 독립이었고, 그것이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안 의사는 국가의 힘을 키우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삼흥학교’, ‘돈의학교’ 등의 학교를 운영하며 교육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또한, 대한의군 참모 중장으로서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의병들을 양성하며 무장독립투쟁에도 힘썼습니다. 


▲이토를 저격하는 안중근의사.


또한, 안중근 의사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Корея ура! Корея ура!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 대한 만세!)”


당시 하얼빈역에는 그분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7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3발, 그외 일본 측 인사 4명은 각각 1발의 총탄을 맞았다고 전해집니다. 저격 시 사용했던 벨기에 FN사의 ‘브라우닝 M1900’ 권총도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함께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중근의사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안중근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작품들을 새겨놓은 비석들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대부분이 1910(경술년) 2월부터 3월 26일 순국 직전까지 쓰여진 것으며, 모두 200여 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 의사는 어려서부터 배운 한학을 토대로 선현들에게 듣고 배운 문장들을 독창적으로 인용하여 촌철살인의 경구로 구성해냈습니다. 이 유묵 작품들에는 모두 낙관 대신 단지혈맹의 상징인 왼쪽 수인이 찍혀있습니다. 그분의 글귀와 시구에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곧은 기개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안중근 의사의 주옥같은 글귀들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황금백만불여일교자(黃金百萬而不如一敎子)

- 황금백만냥도 자식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국가의 독립을 위해 교육을 중요시 여겼던 안중근 의사의 뜻을 알 수 있다.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교육의 으뜸이 독서임을 강조했던 안중근의사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던져라.


▲안중근 의사의 독립에 대한 가치관과 기개를 엿볼 수 있다.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안중근 의사의 뜨거운 애국심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진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여한이 없겠노라.”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에 한 유언


안중근 의사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오직 우리 민족과 독립만을 생각했고, 안타깝게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순국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 덕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고, 현재 우리가 자유로이 생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한 그루의 벚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줄기가 힘차게 서 있을 수 없고, 나무줄기가 없으면 나뭇가지가 하늘 높이 솟아날 수 없고, 나뭇가지가 없으면 봄에 아름다운 벚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과거에 흘렸던 피와 눈물을 딛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며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아름답게 꽃피우는 것이야말로,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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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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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벚꽃엔딩~

    2017.03.29 1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 잘 봤습니다~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 동상이 부천시로 옮겨지게 된 사실도 기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웹툰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안중근. 민족의 공적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여 조국의 독립을 앞당겼던 도마 안중근 의사.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는 그날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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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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