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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5.16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민주ㆍ정의ㆍ인권을 향한 열망


 

5월 18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날이죠. 광주의 시민과 학생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독재 인사들의 퇴진, 구금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석방 등을 요구한 대규모 시위입니다. 올해로 37주년을 맞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집중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 전남도청 앞 광장 분수대 주변 2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배경
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간 군사독재 체제(유신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민주회복’을 목표로 한 김영삼이 신민당 총재로 당선되자, 1979년 10월 4일, 박 대통령은 김영삼 의원직 제명 안을 변칙적인 방법을 통해 국회를 통과시킵니다. 이로 인해 야당과 국민들은 유신체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합니다. 이 사건은 10월 15일부터 20일까지 부산, 마산 등지에서 부마항쟁의 계기로 작용하게 되는데요. 부산대학에서는 민주선언문을 배포하고 5천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대는 ‘유신체제 타도’와 ‘정치탄압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파출소, 경찰서, 도청, 방송국 등을 공격하는데 이 시위가 점차 마산, 창원 지역으로 확대됩니다. 

 

이 부마항쟁의 수습책을 상의하던 중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격렬한 언쟁을 벌이고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가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였습니다. 이 10·26사태의 사후 수습과정에서 전국에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이 틈을 타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부상하였으며 이들은 12·12사태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1980년 2월 29일 김대중 등이 복권되었으나 그 해 봄 신군부는 최규하 과도정부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국민이 요구하는 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아버립니다. 겨우 끝날 듯 보였던 군부의 재집권 상황을 눈앞에 두고 국민의 저항은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납니다. 5월 13일부터 5월 14일에 걸쳐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37개 대학에서 계엄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게 되죠.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서 시위가 발생한 학생시위는 서울시가지를 마비시켰고 사태가 절정으로 치닫게 됩니다. 

 

5월 17일 신군부 세력은 비상계엄을 전국에 확대합니다. 계엄포고 10호(각 대학교 휴교령 포함)를 밤 9시 40분에 의결하고 밤 11시 40분에 발표하면서 즉각적으로 김대중, 김종필을 연행하고 권력형 부정축재자, 소요조종 혐의자, 학생 시위 주동자를 체포합니다.

 

▲대형태극기를 들고 교문을 벗어나 금남로로 향하고 있는 전남대학교 교수들과 학생들

(출처:5·18기념재단)

 

#5·18민주화 운동의 전개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확대조치로 광주 지역에 공수특전단을 투입합니다. 교내 출입이 차단된 전남대생들은 18일 오전, 교문 앞에서 7공수부대와 충돌을 벌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합니다.

 

광주의 중심 대로인 금남로로 이 시위가 확산되었고, 시민들이 합세하여 ‘계엄 철폐’, ‘휴교령 철폐’를 외치며 함께 시위를 벌이자, 곤봉과 대검으로 무장한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워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였습니다.

 

▲ 학생을 곤봉으로 내려치고 있는 군인
(출처:5·18기념재단)

 

▲ 금남로를 지나다 공수부대가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 부부
(출처:5·18기념재단)

 

신군부의 초강경 유혈진압 소식을 들은 시민과 학생들은 금남로를 중심으로 경찰과 대치했으나 또다시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유혈진압당합니다. 광주 시내 곳곳에서 잔혹하게 벌어지는 살상에 격분한 시민들은 20일 시내버스와 택시 운전사들의 차량시위, 시청 접수, 방송국 방화를 통해 불만을 표현하고 나아가 공수부대에 맞서 각종 무기들로 자체 무장합니다.

시위는 삽시간에 시가전 양상으로 변했습니다. 무장한 시민군은 계엄군을 압박하여 이들을 몰아내고 광주시내를 장악했습니다. 21일 오후 6시경 도청을 접수한 시민군은 22일, 더 이상의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종교인, 교수 등을 주축으로 ‘5·18사태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이들은 치안을 담당할 조직을 편성하는 한편, 사건의 진행추이를 담은 정보지 <투사회보>를 발행하여 계엄군이 모든 시외 전화를 두절시켜 고립된 광주 시민들의 눈과 귀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매일 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하고 시민들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수렴하는 등 뛰어난 자치능력을 보였습니다.

 

▲ 시내를 다시 장악하기 위해 출발한 전차부대
(출처:5·18기념재단)

 

그러나 1980년 5월 27일,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은 시민의 저항을 신속히 진압하기 위해 극비리에 작전을 개시하여 대대적인 무력진압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청을 사수하던 결사대원 다수가 사망하였고, 결국 계엄군은 시내를 탈환하고 시위대를 진압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5·18민주화운동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의의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촉진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5·18민주화운동은 3·15의거와 4·19혁명에 이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하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깨어 있는 민중들이 민주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나아가 불의의 독재를 거부하는 민주화운동이 합법성과 정당성을 갖고 있음을 확인시켰습니다. 유신체제를 계승한 ‘제5공화국’ 정권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여 끝내 그 체제를 붕괴시키고 문민정부를 탄생시켰으며 50년만의 여ㆍ야간 정권교체를 이룩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은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광주(光州)와 전남(全南) 일원에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개한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7년 5월,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2002년 1월 26일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 ‘5·18민중항쟁’으로 불렸습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봄입니다. 우리는 현재 성숙한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된 이유인 37년 전 광주의 봄, 그때 그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는 5월 18일 목요일 오전 10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5·18정신 계승,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거행됩니다. 이번 주 목요일, 5월 18일에는 당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넋을 위로하고 그들이 이룩해낸 위대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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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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