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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올해는 6.25전쟁 발발 68주년입니다.

우리에게 깊은 아픔을 주었던 전쟁. 오늘은 6.25전쟁의 발발과 정전협정까지 이야기해 드리려고 합니다.


- 6.25전쟁의 배경


광복 후 남한과 북한은 38선을 기준으로 각각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됩니다. 남한과 북한에 단독 정부가 수립되고 냉전이 격화된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무력을 이용하여 한반도에 통일된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야욕을 품습니다. 북한은 소련의 스탈린과 은밀하게 협의하여 남침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남침함에 따라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 북한군의 기습 남침 (출처: 전쟁기념관)


- 6.25전쟁의 전개과정


북한군의 기습 남침에 국군은 사흘 만에 서울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국군은 한강 방어선을 형성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1950년 8월에는 낙동강까지 후퇴했습니다.


▲ 서울을 점령한 T-34 전차 (출처: 전쟁기념관)


국군과 유엔군은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필사의 전투를 치른 끝에 반격의 기회를 얻습니다. 1950년 9월 15일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실행에 옮기고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그리고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는데 성공합니다.


▲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중인 남한군과 북한군 (출처: 전쟁기념관)


▲ 서울 수복 전투의 모습 (출처: 전쟁기념관)


기세를 몰아 국군은 제3사단을 필두로 38선을 넘어 북진을 시작합니다. 10월 19일 평양을 확보하고 청천강에 진출하는데 이어, 11월 말 경 압록강 상류까지 북진하는데 성공합니다. 


통일을 눈앞에 둔 상황. 하지만 곧, 중공군이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을 돕는다는 명분을 앞세워 전쟁에 개입합니다. 중공군의 막대한 공세에 밀린 국군과 유엔군은 결국 1951년 1월 4일, 후퇴하게 됩니다.


▲ 1.4후퇴 당시 피난민의 행렬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까지 후퇴하였으나 이곳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1951년 1월 25일 재반격을 시작합니다. 반격작전을 통해 3월 15일에는 서울을 탈환하고, 3월 말에는 38선을 회복하는데 성공합니다.


- 휴전까지의 여정


막대한 군사적 손실과 인명피해가 발생한 6.25전쟁이 1년간 이어진 끝에, 1951년 6월 유엔군과 북·중 연합군은 협상을 결심하고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을 엽니다.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 전쟁은 고지쟁탈전의 양상을 띠게 됩니다. 38선상을 중심으로 벌어진 소모전 속에서 피의 능선 전투, 펀치볼 전투, 금성 전투 등 수많은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중요한 고지를 두고 하루에도 몇 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이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 손실을 입었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백마고지는 10일간의 공방전 중 24번이나 주인이 바뀔 정도였습니다. 


▲ 포격으로 민둥산이 된 백마고지 (출처: 전쟁기념관)


휴전회담에서 가장 큰 난제는 포로 문제였는데요, 이로 인한 교착상태가 이어지던 끝에 6.25전쟁은 발발한 지 3년 1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며 마무리됩니다. 


▲ 판문점 협정 조인식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 6.25전쟁 68주년 기념행사


국가보훈처는 6월 20일 15시 서울 롯데호텔에서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을 개최합니다. 또한 6.25전쟁 제68주년 행사가 2018년 6월 25일 월요일 10시, 서울의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립니다. 이번 행사에는 6.25참전유공자, 각계인사, 시민 등 5,000여명이 모여 6.25전쟁을 기억하고 기리는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 6.25전쟁 67주년 행


▲ 6.25전쟁 제67주년 행사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참전용사를 위로하고 있다.


6.25전쟁 발발 이후 68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참혹했던 전쟁의 상처는 우리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훈터 독자 여러분. 6.25전쟁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며 참전용사들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그리고 오는 6월 25일(월), 6.25전쟁을 기억하며 국군과 유엔군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전쟁기념관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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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오늘은 가평전투 67주년을 맞이하여 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영연방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 지난 2017년 가평 영연방 참전기념비 앞에서 거행된 가평전투 66주년 기념식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는 이번 영연방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에서는 6.25전쟁 영연방(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참전용사와 가족 등 84명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특히, 이번 초청에서는 캐나다 시무스 토마스 오리간(Seamus Thomas O'Regan) 보훈부장관, 국회의원 등 정부측 방한단 9명이 참전용사들과 함께할 예정입니다.


시무스 보훈부장관은 이번 재방한 초청 프로그램의 모든 일정을 유엔참전용사와 함께 체험하길 희망한다고 말하며, 한국 정부의 유엔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확인하고, 그들이 느끼는 감동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유엔군 영연방 참전용사의 주요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28일(월)에는 주한 영연방대사관 주관으로 가평에 위치한 영연방 참전기념비에서 개최되는 가평전투 6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전우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가평전투 : 1951년 4월 23일에서 25일까지 감행된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영연방 제27여단이 3개 대대병력으로 3일 동안의 방어전을 전개, 자신들보다 무려 5배가 넘는 중공군을 막아 국군과 유엔군이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한 전투


▲ 평북로로 진군하는 호주군 제3대대(출처: 국가기록원)


29일(화)에는 주한 캐나다대사관이 주관하는 부산 유엔기념공원 추모식에 참석하여 그리운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에 헌화·참배하며 이들의 넋을 기릴 예정입니다. 


30일(수)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방문하여 참배한 후 전쟁기념관으로 이동하여 전우들을 위해 헌화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 (위) 유엔기념공원 / (아래)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2017년 턴투워드부산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


31일(목) 오전에는 주한 영국대사관 주관으로 파주에 위치한 설마리전투추모공원에서 개최되는 글로스터(Glouceter)대대의 설마리/임진강전투 추모식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국가보훈처장이 주관하는 감사만찬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설마리 전투 : 1951년 4월 22일에서 25일까지 파주 적성 일대에서 영국군 29여단(5,700여 명)이 중공군 3만여 명의 남하를 저지한 전투


 

국가보훈처는 2010년 6.25전쟁 60주년 사업을 계기로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을 주관하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3만 2천여 명의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와본 적도 없었던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기꺼이 참전했던 유엔군.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대한민국"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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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은 진정한 헌신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6.25전쟁 참전 용사들입니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한반도가 위기에 빠진 순간, 16개국으로 이루어진 유엔군이 참전함으로써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에티오피아 등 전투병을 파병한 16개국부터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5개국, 기타 물자 지원 39개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먼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참전국 중에서 가장 많은 179만 여명의 육·해·공군 병력을 파병하였습니다. 이 중 3만3천여 명이 전사하였고 9만2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3천7백여 명이 실종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출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6.25전쟁 발발 68년이 흐른 지금, 미국군 전사·실종장병의 유가족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국가보훈처의 초청을 받아 방문한 미군 전사자 8명과 실종자 16명의 유가족 51명으로, 지난 4월 23일부터 28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와 추모식 참석, 창덕궁 관광 등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저는 4월 25일에 거행된 전사·실종장병 추모식에 동행하여 유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추모식장으로 향하던 버스 안. 호위중인 교통경찰의 모습이 눈에 띈다.


4월 25일 오전 9시. 저는 유가족들과 함께 서울 앰버서더 호텔 앞 버스에 올라 추모식 장소가 있는 가평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할 때까지 교통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했는데 이러한 의전 하나하나가 뜻깊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전쟁 미군참전 기념비


한 시간 남짓을 달려 가평의 미국참전 기념비에 도착했습니다.

이 기념비는 2016년에 건립된 것으로, 6.25전쟁 참전 미국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가평은 미군이 중공군에 맞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곳입니다. 프랭크 데일리 중령이 이끄는 미 40사단 213 포병대대는 이곳에서 단 한 명의 피해도 없이 4000여명의 중공군을 물리친 ‘가평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유가족들의 만남


추모식에 앞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유가족들의 만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유가족들 한명 한명의 손을 잡으며 감사 인사를 표하고 불편한 것은 없었는지 묻는 피우진 처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침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도 현장에 도착했고 한미 양국의 사람들이 격의 없는 덕담을 나누었으며 언어 간의 장벽을 뛰어넘은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68년 전의 뜨거운 전우애가 지금까지 이어져 한국과 미국을 하나로 잇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 전사·실종장병 유가족에게 예를 표하는 의장대의 모습


▲ 국민의례 중인 유가족들의 모습


이윽고 국방부 의장대의 도열 속에 유가족들이 입장하며 추모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미국대사관 관계자와 가평고 학생들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애국가와 미국 국가가 연주되었고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조총 발사가 있었습니다. 


▲ 꽃 한 송이가 놓일 때마다 슬픔도 놓인 헌화 순서 


이어진 헌화 순서에서 유가족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습니다. 이제 갓 미군에 입대한 청년부터 백발의 할아버지와 미망인까지 다양한 세대의 참전용사 가족들은 머나먼 한국 땅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숨을 거둔 이들을 기렸습니다. 참전용사 가족들은 반백년이라는 세월의 흐름 앞에서도 그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 피우진 처장의 추모사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이 날 추모사에서 “유가족 여러분의 남편, 아버지와 형제의 희생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소중한 유산”이라며 “대한민국 국민은 그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만 해도 낯설고 머나먼 나라였던 한국으로 떠나며 느꼈을 불안감과 전장에서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젊음을 모두 바친 수많은 참전용사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편지를 낭독하는 스테파니 심스씨


6.25 전쟁 당시 포로로 잡혀가 아직도 생사를 알지 못하는 존 헨리 맥콜 육군 중사의 맏손녀 스테파니 심스(Stephanie Y. Sims, 48세)씨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스테파니씨는 ‘할아버지의 햇살 스테파니’라고 운을 띄우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할아버지는 육군에서 '맥콜 중사'로 불리셨지만, 우리가 당신을 아버지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지요. 


할아버지가 6.25 전쟁 중에 한국에서 보낸 사진과 편지를 보고 할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할아버지는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만난 적 없는 나라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응한 것처럼 매우 명예롭고 의로우신 분이죠.


할아버지의 인생은 헛되지 않았어요. 왜냐면 당신이 도운, 바로 그 사람들이 그들의 조국과 자유를 위해 몸 바친 할아버지의 궁극적인 희생을 존경하고 기념하고 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당신의 삶에서 기억할 것을 물려주었고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준 사랑에 감사하고, 나의 엄마와 나의 형제들, 그리고 지금은 나의 아이들과 조카들, 또한 미국에 대한 사랑과 한국인에게 보여준 사랑을 존경해요.


당신의 햇빛이 축복 속에 당신을 비추고 우리가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때, 저는 지금까지 받아본 적 없는 가장 길고 큰 할아버지의 포옹을 기대할게요.


▲ 참전 용사들의 유화 사진


편지 낭독 후 팝페라 그룹 제네다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추모공연에 이어 전사·실종장병 롤콜과 액자 증정식이 있었습니다. 유가족들에게 전달되는 액자는 당시 참전 용사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디지털로 보정한 유화 사진으로, 이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낯선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다 전사한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입니다.


▲ 유족들에게 전달된 유화 사진


유가족들이 액자를 품에 안고 눈물을 감추지 못할 때마다 저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하시고 얼마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조국을 지키고자 싸우다 돌아가신 분의 죽음도 이렇게 슬픈데, 하물며 먼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눈을 감은 미군 참전 용사의 가족들은 긴 세월동안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감동적이었던 추모식을 모두 마치고, 스테파니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3년 전에 한 번 방문했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네요. 한국은 정말 아름다운 곳인 것 같아요.


아까의 연설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오늘 추모식은 어떠하셨나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받을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한국에서의 사역은 잊지 못할 겁니다. 얼른 미국에 돌아가서 모두에게 이 멋진 경험을 전하고 싶어요. 미군 장병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이곳에서의 추모식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했는지를 말예요.


저 또한 6.25 전쟁 참전용사이신 할아버지의 후손이어서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청년들과 미래 세대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한국 청년들이 제 할아버지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거예요. 그들은 정말 잘 자라주었어요. 할아버지도 한국이 이렇게 달라질 것이라곤 알지 못하셨을 겁니다. 할아버지께서 한 일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아요. 왜냐면 기자님이 바로 살아있는 증인(living proof)이잖아요. 한국이 이렇게 번영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한국전쟁 미군참전 기념비에는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가 없는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자유와 번영이 있기까지 수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고,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자유로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6.25 전쟁 참전국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했고 3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전사했습니다. 오로지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머나먼 땅 한국에서 목숨을 바친 미군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추모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롤콜에서 불린 미군 참전 용사들의 이름이 귓가를 맴돌고 유화사진을 통해 바라본 그들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이름과 기억하지 못했을 얼굴입니다. 훈터 독자 여러분도 기회가 되신다면 보훈행사에 참석하여 우리가 감사해야 할 분들에 대해 알고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은 가장 중요한 보훈입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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