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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6.25전쟁에서 정전협정이 조인된 지 64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전협정의 협상이 최종적으로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실제로 체결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되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밤10시를 기점으로 총성이 멎은 이후, 유엔군 측과 북한군 측은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전쟁포로에 관한 조치 등 5개조 63항에 달하는 정전협정 조항을 이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정전협정의 내용에 따라 지금의 휴전선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6.25전쟁 중 열과 성을 다해 우리나라를 도와준 전세계의 유엔 참전용사들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기념일인데요. 2013년 7월 26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7월 27일로 제정하는 “참전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며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지난 7월 27일 오전 10시,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기념식장에는 6.25전쟁  참전용사를 비롯해 유족, 유엔 참전국 외교사절, 시민, 장병 등 3천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참석했는데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 기념식 참석 인원의 모습

 

오전 10시가 되자 장내 아나운서의 기념식을 알리는 안내 멘트를 시작으로 참전국 국기들의 입장이 있었습니다. 호주,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인도,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필리핀, 남아공, 스웨덴, 태국, 터키, 영국 그리고 미국까지 총 21개국의 국기가 무대 한군데에 모여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정말 많은 곳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주었구나, 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 참전국 국기 입장 모습

 

그 다음으로는 국민의례가 거행되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친 후에는 무대에 가수 ‘샤넌’이 등장하여 다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였으며 이후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참석자들


▲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는 모습

 

국민의례가 끝나고는 곧이어 6분 정도 길이의 영상 하나를 시청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영상은 “무엇을 바라고 한국전쟁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는 참전용사의 말로 시작되었고 오산전투의 참전용사였던 윌리엄 코, 대전전투 참전용사였던 윌리엄 보어러 등 실제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증언과 당시 전투 모습이 영상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영상이 나오자 모두 집중하여 끝까지 영상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실제 전투에 참가하셨던 참전용사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영상을 보셨을지 저는 감히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 영상의 시작
 

▲ 영상 속 실제 참전용사의 증언
 

▲ 집중하여 영상을 보고 있는 참석자들의 모습

 

영상이 끝난 후에는 주한 영국 대사인 ‘찰스 헤이’가 대표로 참전국 대표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의 변모라는 놀라운 성공 스토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헌신과 노력의 결실이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최고의 보상이기도 하다는 말로 연설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어서 이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리더이자 경제대국이며 전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수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면서 평창올림픽을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 과거 유엔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룩하는데 기여한 바를 기억하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도 친구, 동반자, 동맹의 미래 평화를 위하여 함께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며 인사말을 끝맺었습니다. 

 

▲ 참전국 대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주한 영국 대사 ‘찰스 헤이'

 

참전국 대표 인사말이 끝나자 훈장 수여식이 진행되었습니다! 태국의 한국전 참전용사 협회회원 ‘분차이 딧타쿤’과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용사 협회회장 ‘피터 시어슨’, 총 두 분이 각각 국민훈장 모란장과 동백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자 ‘분차이 딧타쿤(태국)’이 수상하는 모습

 

▲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자 ‘피터 시어슨(캐나다)’이 수상하는 모습

 

이어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사가 있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참전용사들이 명예롭게 기억되도록 대한민국은 더욱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한동안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였는데요. 또한, 참전용사 여러분의 헌신에 부응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참전용사의 위대한 희생은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며 우리 대한민국은 참전용사의 기대에 맞게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여하는 나라가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말로 기념사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사

 

이후에는 여러 기념공연들이 진행되었는데요, 이 기념 공연은 어린 여자아이의 판소리와 마치 전쟁 당시를 형상화하는 댄서들의 무대로 막이 올랐습니다.


▲ 전쟁을 묘사하는 듯한 댄서들의 공연

 

이어서 참전용사 한 분이 무대위로 올라와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는 전쟁 당시를 회상하며 그날 밤의 개마고원 저수지 장진호는 칠흑 같은 어둠만 가득했고 영하 40도가 넘는 강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쳤다고 담담히 낭독을 시작하였습니다. 너무 추워 잠시라도 멈추면 온 몸이 얼어버릴 것 같은 날씨에도 당시 우리보다 10배나 많은 중공군이 사방에서 에워싸고 공격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행군을 멈출 수 없었다면서 여기저기서 전우들은 죽어가고 있었고 이제는 끝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참전용사들이 장진면 고토리를 지날 때쯤 눈보라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구름 사이로 영롱한 별빛이 비추며 그들을 인도했다고 합니다. 그 별빛은 우리가 용기백배하여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승리로 이끌어 준 기적의 빛이라며 그로 인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3천여 명의 참석자들은 나누어 받은 팔찌의 불빛을 켜고 팔을 위로 들어 잠시나마 참전용사들과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 뜻을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 참전용사의 낭독


▲ 팔찌의 불빛을 켜고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는 참석자들

 

이어서 참전국 깃발을 들고 펼쳐진 무술 공연 후에는 참전국인 영국 출신 가수 ‘샤넌’과 리틀엔젤스예술단이 ‘We Go Together(우정과 화합의 대합장)’을 불렀습니다. 그 때 스크린에는 얼마 전 국가보훈처에서 22개국(물자지원국 포함) 110명의 유엔 참전용사 후손들을 초대해 열었던 ‘2017 Youth Peace Camp’에서 만났던 낯익은 얼굴들이 나와 우리나라에 대해 말한 인터뷰들이 나왔습니다. 노래가 계속 되는 동안 유엔 참전용사들이 무대위로 함께 올라오는 시간을 가지고 포토타임도 가진 이후에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 참전국 깃발을 들고 펼쳐진 무술 공연
 

▲ 입장하는 리틀엔젤스예술단
 

▲ 영국 출신 가수 ‘샤넌’과 리틀엔젤스예술단이 함께 열창하는 모습
 

▲ 2017 Youth Peace Camp 참가자들의 인터뷰1_”힘들 때 돕는 친구가 참된 친구예요.”’


▲ 2017 Youth Peace Camp 참가자들의 인터뷰2_”우리는 언제나 변함없는 진정한 친구죠.”
 

▲ 2017 Youth Peace Camp 참가자들의 인터뷰3_”우정은 기쁨을 두 배로 늘려주고 슬픔은 절반으로 줄여줍니다.” 


▲ 유엔 참전용사들이 무대위로 올라온 모습
 

▲ 리틀엔젤스예술단과 유엔 참전용사들의 포토타임1
 

▲ 리틀엔젤스예술단과 유엔 참전용사들의 포토타임2

 

저는 이렇게 기념식이 마무리 된 후 미국의 6.25전쟁 참전용사이신 ‘Anthony J. Kampeter’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고, Mr. Anthony는 흔쾌히 저의 인터뷰 제안을 수락하여 주셨습니다.


Q. I heard that you've been to Panmunjeom at the first day of this program, what do you feel after visiting there? After facing the tragedy of Korea that you fought for? (이번 참전용사 초청 프로그램의 첫날에 판문점에 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전용사께서 직접 수호하고자 싸웠던 대한민국의 비극을 직접 마주하시고는 어떠셨나요?)


A: It was real tragedy, yeah. I, I mean, we all didn’t expect this separated Korea when we participated in Korea war. We wanted the happy ending. I really hope to see the shape of Korea that is united peacefully, as soon as possible. (네, 정말 비극적이었어요. 저는, 아니 우리 모두는 6.25전쟁에 참전할 때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원했어요. 그러니까 하루 빨리 평화적으로 통일된 대한민국을 보고 싶네요.)


Q. And this question maybe little rude, sorry for that, however I want to hear some stories about the war that you participated. Anything about the war is okay. About your feeling, about your fellow soldiers, anything! (이 질문은 전쟁에 대해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라 죄송합니다만, 참전용사께서 참전하셨던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은데요. 당시의 느낌, 전우들에 관한 이야기, 그 전투에 관한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A: 63 years ago, I was there and the search light unit, I don’t know if you ever heard of it. We used our search lights for our forward observers to see anything was coming across the line. We were small units, 5-6 of us and we had 3 different places to go to. At nights, we go to some places they wanted us to go and shine the lights. And captain one time said that, somebody had a flash light, see how to set it up and how much the light go forward. One of the guy said, Wait about a half an hour, we have 60 inch light with shines. They said they read it on newspaper in ten miles, I don’t know if it’s true or not. but it was real bright. But we were always safe. Ha-ha-ha I mean pretty safe. (64년 전 6.25전쟁 당시에, 들어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탐조등 부대에 있었어요. 우리는 혹시 누가 분계선을 넘어오는지 전방관측장교가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탐조등을 켜는 역할을 하곤 했어요. 우리는 대여섯명으로 구성된 작은 부대였는데 세 곳 정도 가는 데가 정해져 있었어요. 밤이 되면, 전방관측장교들은 그 세 곳 중 한 군데로 가라고 지시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불빛을 켰죠. 하루는, 대령이 누군가 탐조등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고,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며 어느 정도로 기능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어요. 우리 중 한 명은 그것을 정비한 후에 30분 후 켜서 보여주었고 1.5m 정도의 앞 까지만 비출 수 있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그 대령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신문에서는 16km까지 빛이 나간다고 써 있었다고 하며 허탈해하기도 했어요. 하하. 그래도 지금 떠올려봐도 저에게 그 빛은 정말 밝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희는 그래도 안전한 부대였어요. 하하. 제 말은 상대적으로요.)


Q. What do you think about remarkably changed Korea, contrasted by the War time Korea when you were here before? (6.25전쟁 당시의 대한민국을 떠올려 보았을 때, 이렇게나 변한 대한민국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A: Oh my god. 100% changed. I felt so sorry for the people lived that time. Civilians, yeah. Well I can see that. They didn’t have any decent places to live. They lived with cardboard shapes like, you know? It was so terrible. We always raised with plenties, had good places to stay, to sleep. I don’t see how they did it in such a short time, it’s only 60 years! (아, 세상에. 정말 100% 바뀌었어요. 그 당시에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가여웠어요. 네, 민간인이요. 그 때 그들은 어떤 괜찮은 공간도 가지고 있지 못했어요. 판지 모양의 그런 것을 가지고 그 안에서 살아갔어요. 정말 비극적이었죠. 우리는 풍요로운 것들 속에서 자랐고, 머물고 잠잘 수 있는 꽤 괜찮은 집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이런 발전을 이루었는지 눈으로 보고도 정말 믿기지 않아요. 고작 60년 인걸요!)


Q. Are you satisfying with this mpva's program and the respectful treatment from Korea? (이번 국가보훈처의 프로그램과 대한민국에서 제공하고 있는 예우에 대하여 만족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Oh yes, very good. Very good. I am really pleased to it. Unbelievable. (아, 그럼요. 정말 좋습니다. 정말 좋아요! 저는 정말 만족하고 있습니다. 굉장해요.) 

 

▲ 인터뷰 후 Mr.Anthony와의 기념촬영

 

이번 기념식에 다녀오며서, 우리는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들이 지켜내기 위해 분투했던 자유와 평화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봐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 희생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기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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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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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67년 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유엔 참전용사들이 한반도 땅을 밟았습니다. 3년여의 길고 긴 전쟁이 끝난 이후 그리웠던 고국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전쟁 중 실종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장병들도 있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2015년부터 6.25참전을 기반으로 하는 인연을 유엔참전용사 후손들과도 유지하기 위해, 유엔참전용사 중심의 재방한 초청사업을 실종ㆍ전사ㆍ포로 장병 유가족으로 확대하였습니다. 지난 5월 22일부터 27일까지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군 전사ㆍ실종 장병 27명의 자녀, 형제 등 유가족 53명을 초청하여 방한 행사를 진행한 바 있는데요.


국가보훈처는 8월 10일(목) 오후 6시, 미국 워싱턴 D.C. 르네상스 알링턴 뷰 호텔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군 실종ㆍ포로 장병 214명의 배우자, 자녀, 형제 등 유가족 418명을 초청하여 감사 위로연을 개최합니다.

 

▲ 지난 5월 26일 진행된 6.25참전 미국군 전사ㆍ실종장병 유가족 위로연 당시 모습
(출처 : 국가보훈처)

 

#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하는 미국군 실종ㆍ포로 장병 유가족 초청 위로연

 

국가보훈처는 이번 위로연에서 65여 년 동안 유가족들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실종ㆍ포로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할 계획입니다.

 

이번 행사는 국가보훈처가 미국 국방부 산하 DPAA(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국방부 산하 실종자 및 포로자 확인국)에서 주관하는 한국전 실종, 포로장병 유가족 연례 총회(8.10~8.11)와 연계하여 처음으로 추진하게 된 행사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뜻깊은데요. (* 미국 DPAA(실종자 및 포로자 확인국) :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6.25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 각종 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되었거나, 전사했지만 신원을 알 수 없는 장병들의 유해를 찾아내 신원을 확인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 국가보훈처가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

 

위로연에서는 국가보훈처 제대군인국장(국장 김광우)이 정부대표로 참석하여 우리 정부의 감사와 위로를 전하고 미국군 실종ㆍ포로 장병을 대신하여 유족 대표들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Ambassador for Peace Medal)을 수여합니다.

 

(출처 : 국가보훈처)

 

또한, 유족 대표는 위로연에서 한국전과 이로 인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미 DPAA(실종자 및 포로자 확인국) 관계자는 한국전 전사자 유해 발굴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 후대까지 길이 이어질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사업

 

이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유가족들은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라고 말하며, 우리 정부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곤 했습니다.

▲ 6.25참전 미국군 실종장병 유가족 재방한 초청 인원

 

▲ 6.25전쟁 참전국 참전현황 및 피해현황
(출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출처 : 국가보훈처)

 

이번 실종ㆍ포로장병 현지 감사위로연을 계기로, 국가보훈처는 참전국 정부와 협업하여 실종ㆍ포로장병 유족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보훈 사업을 더욱 확대하여 참전국 정부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공공외교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할 계획입니다.

국가보훈처의 뜻 깊은 국제보훈 행사가 오래토록 이어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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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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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광

    2017.08.17 1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 /MBC 보도내용)
    https://youtu.be/yLJXF_BRzKw 12,600여명의 절규를 들어보세요~
    KBS 시청자 칼럼 보도내용 2017.4.24

    https://youtu.be/V9U_WEbtU_8
    MBC 시사매거진2580 2017.6.25

    2017.08.15. 16:30

  2. 청광

    2017.08.17 1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유공자는 3대까지 우대하고 6.25전쟁 희생유공자들에게는 몇대까지 우대 할 것인지 대통령님은 분명히 답변하여야 할것입니다.
    6.25전쟁 희생 유공자들은 11만8천원으로 기초생활유지 할 수 있겠습니까? 보훈처장 피우진님도 면담 거절하고 뭐하는 사람들인지 우리 6.25전몰 군경미수당 비상대책위원회에 명쾌한 답변을 촉구합니다.


무더운 폭염이 지속되는 8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국군과 유엔군은 8월의 무더위 속 조국 수호의 의지로 북한군과 격렬한 사투를 벌였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1950년 6.25전쟁 당시 ‘구국의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경북 칠곡군 다부동 일대에서 벌어졌던 전투인 ‘다부동 전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낙동강 방어작전 중 북한군 진지에 포격을 가하는 미군 전차
(출처: 경기문화재단 ‘한국전쟁 60주년 사진집’)

 

# 낙동강 전선으로 집결한 북한군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전쟁을 예상하지 못했던 국군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열세였던 탓에 끝없이 남쪽으로 후퇴했습니다. 유엔군 역시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요. 7월 말, 낙동강이 있는 곳까지 밀려 내려온 국군과 유엔 연합군은 마지막 보루로써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였습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1일 진주-김천-점촌-안동-영덕(240Km)을 연결하는 전선까지 진출했습니다.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수안보에, 제1군단과 제2군단은 김천과 안동에 각각 사령부를 두고 있었습니다. 서울을 점령해서 의기양양했던 것도 잠시, 북한군은 7월 5일 오산의 죽미령 전투를 치르며 미 지상군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를 만난 이후 남진 속도가 둔화됩니다. 전차를 앞세워 경부국도를 통해 부산을 점령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경부국도에는 미군이 진출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자 김일성이 수안보까지 내려와 ‘8월 15일까지는 반드시 부산을 점령하라’고 독촉하게 되는데요. 이에 북한군 사령부는 빠른 남하를 위해 낙동강 방어선을 공격해 부산까지 한번에 내려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격파하기 위해 북한군은 1950년 8월 초, 동시 공격을 위해 가용부대의 절반에 달하는 5개 사단을 대구 북방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항할 대구 북방 지역의 국군 방어병력은 총 3개 사단(국군 제1, 제6사단, 미 제1기병사단) 뿐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인접 사단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적의 주접근로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낙동리 부근에서 낙동강을 도하하려는 적을 몇 차례 격퇴하였으나,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던 상태였습니다. 제6사단은 북한군과 공방전을 반복하다가 위천지역으로 물러났고 왜관일대의 미군은 적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 다부동전투에서 미군에 의해 파괴된 북한군 전차
(출처: 경기문화재단 ‘한국전쟁 60주년 사진집’)

 

# 구국의 전투,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라

그 무렵인 8월 11일 육군본부는 국군의 방어선을 303고지(작오산, 왜관 북쪽)-다부동-군위-보현산을 잇는 선으로 축소 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은 다부동-군위 선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는데요. 8월 중순, 미군이 낙동강변 일대에 폭격을 시작했고, 그 무렵 미군 정면의 적이 도하작전 중 많은 손실을 입는 일이 벌어집니다. 또 국군 제6사단 지역에서도 유엔 전폭기의 지원으로 인한 북한군 격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이 공격해 오는 적을 향해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
(출처: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이에 따라 북한군의 공격은 자연히 국군 제1사단 방어지역인 대구 북쪽에 위치한 다부동(현재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군은 2만여 명의 3개 사단 병력과 T-34전차 약 20대(이후 14대가 추가 증원) 및 각종 화기로 공격해 왔습니다. 국군 제1사단은 유학산-다부동-가산선에서 이러한 북한군의 공격에 맞서, 학도병 500여 명과 7,600여 명의 국군 병력을 투입해 필사적으로 방어했습니다. 수적으로 병력이 열세였지만, 조국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치열한 공방전을 치렀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미군과의 협동으로 고지와 수암산, 유학산 일대에서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거듭하게 됩니다.

 

마침내 8월 20일,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격퇴하게 되는데요. 결국 북한군은 영천 방향으로 전환하며, 한여름 무더위 속 전개되었던 다부동 전투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 다부동~대구를 잇는 간선로에서 방어선을 구축했던 미 27연대 장병들과 미군 전차
(출처: 송풍수월 松風水月 블로그)

 

 # 다부동 전투를 기리는 다부동 전승비, 다부동 전적 기념관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고 미 보병 제27연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경상북도와 제2군사령부가 1971년 12월 15일, 경북 칠곡군 가산면 금화리에 다부동 전승비를 세웠습니다. 이 전승비에 적혀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전승비는 미 보병 제27연대(존 에취 마이캘리스 대령 지휘) 용사들이 수행한 찬연한 무훈과 공훈을 길이 남기기 위한 기념비이다.
1950년 8월 이곳에서 미 27연대는 한국군 제1사단 장병과 더불어 공산침략자들을 한국전쟁에서 최초로 무찔렀으며 대한민국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이 남긴 탁월한 지휘력과 결단성과 돌격정신을 이 겨레와 함께 영구히 간직될 것이다.

 

 

▲ 다부동 전승비 (출처: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또한, ‘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486’에는 다부동 전투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구국의 정신과 평화의 소중함을 널리 깨닫게 하기 위해 왜관지구 전투와 다부동전투에서 사용한 전쟁 유물은 물론, 다양한 6.25전쟁 유품과 무기를 살펴볼 수도 있으며 구국용사충혼비, 구국경찰충혼비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다부동 전적기념관 (출처: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비록 적군에 비해 전력은 열세였지만, ‘기필코 대한민국을 지켜내야겠다’는 굳은 의지 아래 수많은 국군과 유엔군이 힘을 합쳐 치러낸 다부동 전투. 이 전투의 과정에서 숨져간 수많은 무명용사들과 학도병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반도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 그 속에서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를 기억해 주세요.

 

* 참고사이트
다부동전적기념관 : http://www.dabu.or.kr/dabu/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4210&cid=46628&categoryId=46628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79121&cid=40942&categoryId=3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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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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