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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단식을 마치고 찍은 단체사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이역만리(異域萬里)의 땅. 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 자유와 평화를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면, 그 나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곳으로 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은 쉽게 나서지 못하고 주저할 것입니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유엔 참전용사가 있었습니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는데요. 국군과 학도병, 전투지원국 16개국과 의료지원국 5개국, 총 21개국에서 온 유엔 참전용사가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군과 더불어 유엔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유엔 참전용사 후손을 초청해 유엔참전국과의 우호관계를 미래세대로 확대시키고, 유엔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후대에게 알리기 위해 ‘2017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이하 피스캠프)’를 진행했는데요. 참전 22개국(물자지원국 포함) 참전용사 후손 등 대학생 110명을 초청하여 지난 6월 24일(토)부터 30일(금)까지 진행되었던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6박 7일 동안 우리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그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 첫 만남 모습. 위에 있는 사람들은 각 팀의 코디네이터입니다


먼저 떠나보기에 앞서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피스캠프는 2009년부터 6.25전쟁 참전용사의 한국 사랑을 전후세대에게 계승하고, 참전용사 후손 3세대간 교류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는데요. 올해 피스캠프는 유엔참전국 22개국(물자지원국 포함) 참전용사 후손 등 총 110명이 함께하였습니다.


피스캠프의 시작은 ‘어색한 첫 만남’이었습니다. 사는 곳도, 식생활도, 언어도 달라 머뭇거리며 인사 정도만 했습니다. 첫째 날은 시차적응도 있고 해서 주로 휴식을 취했는데요. 이후 저녁시간에는 팀빌딩과 자기소개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 이번 피스캠프에 참가한 한국인에게는 각 한명씩 룸메이트가 있었는데요. 저는 프랑스 낭트 지역에서 온 ‘로빈’이라는 친구와 함께 어디든지 붙어 다니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본격적인 일정은 둘째 날부터 진행됐는데요. 오전에는 발대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모두 “We are Peace Ambassadors!”를 외치면서 발대식이 끝났는데요. 평화라는 뜻을 가진 ‘Peace’와 대사관, 대사를 뜻하는 단어인 ‘Ambassadors’가 만나, 우리는 모두 평화를 꿈꾸는 각국의 대사관으로 변신했습니다.


▲ 6.25전쟁에 대한 강연이 진행되던 모습


이후 둘째 날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67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6.25전쟁에 대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옆에 있는 로빈과 제 팀원, 그리고 많은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본인의 의견을 말하면서 강연을 경청했습니다.


▲ 미니 올림픽 모습


저녁에는 미니 올림픽을 했습니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 때 자주했던 2인 3각 달리기를 변형한 9인 10각 달리기 등 다양한 체육활동을 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몸을 맞대고, 부대껴야 친해진다고 했던가요? 첫째 날보다는 다들 친해졌습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이 워밍업의 개념이었다면, 셋째 날은 숙소를 벗어나 서울과 용인 에버랜드로 가는 날이었습니다. 먼저 서울 용산에 위치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는데요. 제가 나온 고등학교가 동작대교를 넘어가면 바로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매우 익숙한 곳이었지만, 많은 친구들은 신기해하더군요.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복을 입고서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면서 길가에 있는 건축물을 룸메이트인 로빈에게 소개해 줬습니다. 이 건물은 독립문이고, 언제 지어졌는지 등 서울에 있는 중요 문화재와 한국인들의 생활 모습을 알려줬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해서 한복체험과 동시에 팀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팀미션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유물을 찾아 함께 인증사진을 찍고 오는 것이었는데요. 옆 팀을 보니 꽤 어려운 ‘백제금동대향로’였습니다. 내심 어려울까 발을 동동 굴렸지만, 비교적 쉬운 ‘빗살무늬 토기’가 나와 3분 만에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팀미션을 마치고 찰칵!


이후 우리가 향한 곳은 용인의 에버랜드였는데요. 그 곳에서 물총싸움을 하면서 재밌게 놀았습니다. 놀기에 앞서 여기서도 팀미션을 하나 수행했는데요. 각 팀들이 생각하는 Peace, 평화를 생각하며 몸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의 에버랜드에는 유명한 놀이기구 T-Express가 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롤러코스터를 탔는데요. 비와 함께 진행된 워터 페스티벌로 물을 흠뻑 맞았습니다. 제 팀원들은 제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고 물을 뿌리고 물총을 쏴댔습니다. 에버랜드 일정으로 더욱 더 친해졌습니다. 


▲ 에버랜드 일정


피곤할 법도 하지만, 다들 씩씩한 모습으로 넷째 날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오전에는 DMZ에서 자전거를 탔는데요.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임진각에서, 민통선을 향해 자전거를 탔습니다. 저는 로빈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통일대교를 보며 저 다리를 건너면 민간인 통제구역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 자전거를 타기 전, 임진각에서의 모습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리본을 달았습니다. 민족 분단의 아픈 역사. 우리들은 리본을 달면서 진정한 평화가 뭔지 생각했습니다.


이후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를 살폈습니다. 제3땅굴을 가려면 통일대교를 건너야 하는데요. 비무장지대, 민통선에 깔려있는 철책과 민통선을 통과하면서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검사하는 모습에 좀 많이 놀라워하는 눈치였습니다. 또 도라전망대에서는 저기 보이는 땅이 북한이 맞는지 확인하면서, 우리가 북한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 리본을 달며, 평화통일을 꿈꿨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국립서울현충원과 전쟁기념관을 참배했는데요. 저는 국립서울현충원이 집 근처에 있어 자주 가기도 하고, 제 친구가 현충원 선양팀에서 사회복무 중이라 친숙합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국립서울현충원이 처음인지 이것저것 물어 왔습니다. 


▲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찍은 단체사진


이후 엄숙한 분위기에서 참배를 한 뒤, 전쟁기념관에서 참전용사를 기리는 벽에 국화 한 송이를 헌화했는데요. 모두 두 손을 모아 참전용사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전쟁기념관 관람이 끝나고, 서울탐방을 하며 세 번째 팀 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돌아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이기도 한데요. 계천, 명동, 코엑스, 잠실, 강남, 시청 등 서울에서 유명한 곳을 뽑은 뒤, 그곳에서 ‘코리아 수도 서울’ 한글을 찾는 미션이었습니다. 저희 팀은 코엑스를 골라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 점심은 삼겹살!


코엑스로 향하는 버스에서는 제가 마치 관광가이드가 된 것 같았습니다. 서울의 이곳저곳을 궁금해 하면서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기 있는 건물은 한국은행이고 그 옆 V자 모양은 서울중앙우체국이라고 말하면서, 서울의 많은 곳을 알려줬습니다.


여섯째 날은 인사동 탐방과 캠프파이어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DJ파티를 하면서 헤어짐이라는 아쉬움은 잠시 뒤로 한 채, 파티를 즐겼습니다.


▲ 경복궁에서 찍은 단체 사진


6월 30일(금). 6박 7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피스캠프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아침 일찍 고국으로 돌아간 친구도 있고, 서울과 부산 등 대한민국을 여행한다는 친구도 있었는데요. 제 룸메이트 로빈은 이번 캠프를 마치고 2주 동안 서울과 부산, 제주도를 돌며 대한민국 구경을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번 2017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사실 저는 작년에도 훈남훈녀 온라인 기자단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기회가 있었지만, 영어울렁증으로 인해 신청하지 못했는데요. 이번에는  후회하기 싫어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잊지 못할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피스캠프에 참가해서 느낀 점은, 언어와 국적이 달라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 앞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피스캠프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We are Peace Ambassadors”라는 말인데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 대사관이라는 생각을 간직하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다시 한 번 전하고 싶네요.


 “We are Peace Ambassad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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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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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이 발발한 지 67주년을 맞았습니다. 또한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된 지 64주년이기도 합니다. 6.25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요. 7월 27일‘6.25전쟁 정전 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입니다.  


6·25전쟁 발발 이후 1950년 7월 5일 최초로 한반도에 도착한 스미스 특수부대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유엔군을 파견하여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1951년 7월 10일 처음으로 시작된 휴전 회담과 그로부터 2년 후 체결된 정전 협정.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의 시간으로 잠시 되돌아가볼까 합니다.


# 정전 협정 체결, 그 길었던 과정

6.25전쟁 초기 북한군은 압도적인 기세로 우리 군을 몰아붙였고, 병력과 장비 면에서 열세였던 국군은 후퇴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패전의 위기 속,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안에 따라 유엔군 참전이 결정되었고,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써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강력한 전력을 앞세워 평양을 점령한 후 압록강까지 진격합니다. 그러나 1950년 10월, 갑작스런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통일의 목전에서 아쉽게 후퇴하게 됩니다. 1951년 5월 이후 전투는 지금의 38선 근처에서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며 교착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 6.25전쟁 휴전협정 문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이루어진 고지전. 남북 양측의 피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유엔군과 중공군의 인적, 물적 손해 역시 불어났습니다. 유엔군과 북·중 연합군은 1951년 6월 한반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협상에 의해 해결하고자 했는데요. 


양측은 1951년 7월 10일부터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최소 6주 정도면 타결될 것으로 기대했던 회담은 매 의제마다 장기간의 설전이 벌어지는 등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하게 됩니다. 휴전 회담에서 가장 큰 난제는 포로 문제였습니다. 유엔군은 포로의 자유 송환을, 북·중 연합군은 강제 송환을 주장함에 따라 협상은 오랫동안 교착 상태에 접어들게 됩니다.


▲ 수많은 병사들이 숨져간 고지 ‘단장의 능선’


양측은 38선 근처에서 피의 능선 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고지 전투, 펀치볼 전투, 고양대 전투, 백마고지 전투, 저격 능선 전투, 금성 전투 등 수많은 고지 쟁탈전을 벌이며 그 혈전 속에서 엄청난 비용과 인명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대체로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에는 전선이 소강 상태를 유지했으며, 회담이 결렬 또는 지연될 경우에는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는데요. 전선의 병력들은 회담장과 전방을 주시하며 전투를 전개하는 특이한 양상을 되풀이했습니다. 그야말로 회담 장막과 전장 사이를 오가는 지루한 상황이 2년여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6.25전쟁 정전협정 서명식


그러던 중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제159차 본회의에서 유엔군과 중공군, 북한군 대표가 휴전조인문에 서명함으로써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햇수로 3년, 전쟁 발발 1,129일에 걸친 길고 길었던 전쟁에 드디어 마침표가 찍힌 것입니다.


# 기억되어야 할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



6.25전쟁 발발 이후 미국의 참전에 이어 32개국이 유엔의 결의를 지지했으며, 7월 중순에는 지지국가가 52개국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중 우리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보낸 유엔 참전국은 총 21개국으로, 16개국이 전투부대의 파병을, 5개국이 의료 또는 시설을 지원하였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과 중공군의 공격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고, 약 3년의 전쟁 기간 동안 우리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국군과 유엔군의 인적, 물적 피해 역시 상당했는데요. 당시 국군의 전사자는 약 14만 명, 부상을 당하거나 실종, 포로가 된 사람도 약 49만 명에 달합니다. 유엔군 또한 4만여 명이 전사하고, 1만여 명이 실종되거나 적의 포로가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6.25전쟁 참전국 참전현황 및 피해현황 (출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유엔 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희생과 위훈을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정부는 정전 60주년을 맞은 지난 2013년,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제정하였습니다. 또한 2013년 정전 60주년을 계기로, 참전 21개국 정부대표단을 초청하여 감사를 표하는 첫 국제행사 거행 이후 매년 정부기념행사가 개최되고 있는데요. 다양한 대상의 참여 속에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참전국과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 2016년 거행되었던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또한 관련된 행사로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및 후손 초청, 감사만찬, 참전국 현지 기념식 등 국내외 계기행사가 개최됩니다.


다가오는 7월 27일(목) 오전 10시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이 “함께 지켜온 대한민국, 함께 나아갈 통일한국”이라는 주제로 열립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이면에는 많은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정전협정의 과정과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현재는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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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7.26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지난 6월 25일(일) 오전 10시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6.25전쟁 67주년 행사가 열렸습니다. ‘강한 안보로 평화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행사에는 6.25참전유공자 및 유엔참전용사,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종 인사, 군 장병과 학생 등 5천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어느 때


보다 더 특별했는데요.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 외에도 국군귀환용사, 교포참전용사, 여성의용군, 소년병과 학도의용군, 민간인수송단 등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숨은 참전용사 분들을 새롭게 초청하여 진행되었습니다.



멋진 의장대의 시범과 합창단의 식전공연에 이어서 무대 중앙에 태극기와 유엔기를 중심으로 전투지원국 16개국과 의료지원국 5개국, 총 21개 참전국 국기가 입장했습니다. 참전국기 입장에 이어 국민의례와 묵념, 기념사, 기념 공연과 6.25의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6.25전쟁의 역사적 의의와 교훈을 되새기고, 참전유공자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하며 안보에 대한 의지를 더욱 튼튼히 하겠다는 취지를 밝혔습니다.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중략)

67년 전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3년간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성치 않은 몸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천만 명이 이산가족이 되었고 삶의 터전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60여 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당당한 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섰습니다. 6.25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지만 우리는 이 비극을 기적으로 바꾸어냈습니다. 이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기념 공연에는 6.25 전사자 유석오, 석환 형제의 사연을 담은 뮤지컬 공연에 이어 육군 제1야전군 사령부 태권도 시범단의 태권도 시범과 군군 군악 대대와 주한 미 8군 군악 대대의 행사 음악의 협연이 있었습니다. 뮤지컬 공연에는 육군 8사단 3대대의 전우애와 고귀한 희생을 담은 뮤지컬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불꽃쇼와 형형색색의 불빛과 함께 어우러져 마치 당시 그 전쟁터에 와있는 것처럼 실감이 났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참전용사 분과 학생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먼저 행사장 맨 앞자리에 앉아 계셨던 참전용사 분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8연대 백골부대 1기생이자 현 민주평화통일자문 위원인 김구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18연대 백골부대 1기생, 말하자면 백골부대 38선 보병이었습니다. 우리 백골부대원 모두는 소수였지만 정신력이 강하고 교육을 잘 받은 정예부대원들이었습니다.


1950년 북한이 남침하였는데 우리는 서울 삼각지에 주둔해 있었습니다. 탱크를 끌고 밀려들어오는 북한군을 보고 우리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서울까지 침공해온 적들과 싸웠습니다. 적들이 너무 많아 영등포까지 철수하였는데 우리 중대만은 남아서 7일 동안 영등포를 사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때 1200여 명이 시체를 보면서 전투에 임했었는데 참 참혹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철수는 없다‘라는 생각만 갖고 싸웠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항상 안보에 대해서 철저한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북한은 원자탄을 보유하고 있고 일사천리의 단결력을 갖고 있으니 북한을 절대 허술한 상대로 보면 안 됩니다. 우리국민 모두 힘을 모아 안보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음은 인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최진수 학생과도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는데요. 최 군은 이번 행사에 참가한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인분의 소개로 인천에서 친구랑 6.25전쟁 행사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6.25전쟁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전쟁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행사에 참석하여 참전용사 분들이 눈물을 훔치시는 것을 보고 전쟁의 참혹함과 비참함을 느낄 수 있었고 참전용사 분들과 6.25전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북이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싸우지 않고 화합과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올해로 6.25전쟁 행사를 두 번 참석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 희생하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느끼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쓰신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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