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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7일, 부산유엔기념공원에서 진행된 유엔참전용사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유해안장식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국군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당하고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렸으나, 유엔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장장 1,129일동안 치러진 전투에서 유엔군은 ‘이역만리(異域萬里)’ 먼 땅, 대한민국에서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병력을 지원해 주었던 네덜란드 군은 단장의 능선 전투, ‘김화-평강-철원’의 철의 삼각지대 전투, 횡성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여해 대한민국을 수호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참전했던 네덜란드 반호이츠부대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는 지난 지난 2016년 5월, 국가보훈처의 재방한 초청 사업으로 대한민국에 65년 만에 오게 되었습니다.

 

▲ 2016년 5월 12일, 동료 참전용사의 유해 안장식에 참석한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


당시 그는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전우인 니콜라스 프란스 웨셀 씨의 유해 봉환식과 유엔기념공원 안장식에 참여했는데요. 인천공항에서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이 따뜻하게 맞이하는 모습과, 65년 전 목숨 바쳐 지켜낸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 벅찬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동료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는 모습을 보며 유엔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대한민국의 모습에 감동한 그는 고국에 돌아간 이후에도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한국 정부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요. 이후 네덜란드 참전협회에 “나도 동료들이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땅에 묻어 주오.”라는 유언을 남긴 채, 2017년 2월 4일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국가보훈처는 그의 유언을 받들었습니다.

 

이후 국가보훈처는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등과 협의하여 고인의 유해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기로 했습니다. 알데베렐트 씨는 국가보훈처의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 사업 때 대한민국을 찾은 분들 중 사후 안장을 희망한 첫 사례인데요. 저는 9월 27일 새벽에 KTX를 타고 유해안장식이 진행되는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으로 향했습니다.


 

▲ 그의 유족들을 대표해 방한한 네덜란드 참전협회장 및 동료들

 

이 날 유해안장식에는 알데베렐트 씨의 유족을 대표해 네덜란드 참전협회장을 비롯한 동료 참전용사들과 국가보훈처 김광우 제대군인국장, 주한 네덜란드 대사 부부,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조영진 소장 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먼저 알데베렐트 씨의 유골을 유엔기념공원에 묻었습니다. 묵묵히 그의 유골을 땅에 묻고 흙으로 덮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 알데베렐트 씨는 동료들과 편안하게 지낼 것입니다.

 

 

 

▲ 그의 유골을 묻고 흙을 뿌려 고인을 위로했습니다.

 

알데베렐트 씨를 보내는 마지막 인사에서 주한 네덜란드 대사는 “매년 우리는 추모비에서 네덜란드 참전 용사를 기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네덜란드 참전용사 중 123명은 전쟁에서 전사했고, 이중 118명은 이곳 부산유엔공원에 영원하고 편안하게 잠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주한 네덜란드 대사

 

주한 네덜란드 대사는 알데베렐트씨가 재방한 행사 때 편지를 준 내용을 밝히며 “친구와 동료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묻어난다”고 밝혔습니다.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건넨 편지의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산의 능선 전투 이후 미국 병사를 의무대에 옮긴 적이 있습니다. 이후 저는 네덜란드로 돌아갔는데, 1959년 그 미국 병사가 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를 만났고, 그와 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저는 친구를 잃어 매우 슬펐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재방한 행사로 대한민국을 찾았습니다. 전쟁의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의 발전상’을 보며, 제가 기여한 것 같아 좋았습니다. 저는 재방한 프로그램 덕분에 전우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전우들 옆에서 안장돼 평생 전우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편지 내용을 들으며, 가슴 한켠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네덜란드 대사는 끝으로 “당신과 편하게 쉴 수 있는 친구들 옆에서 편안한 삶을 보내길 바란다”며 고인을 위로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의 헌화

 

이후 헌화가 진행됐습니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의 헌화를 대신해서 국가보훈처 김광우 제대군인국장이 알데베렐트 씨의 묘전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했습니다.

 

다음으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 부부,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조영진 소장이 각각 헌화를 했습니다.


 

▲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조영진 소장

 

 

 

▲ 네덜란드 참전용사가 전우의 마지막 길에 함께 했습니다.

 

알데베렐트 씨가 6.25전쟁 중에 국군 병사와 함께 불렀다는 아리랑. ‘아리랑’은 국군과 네덜란드 군을 ‘친구’로 연결시켜준 노래였는데요. 안장식의 추모공연으로 가야금 연주를 곁들인 아리랑 공연이 진행됐습니다.


 

▲ 고인의 마지막 길을 위한 노래. 아리랑

 

끝으로 유족 대표의 마지막 인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밝혔으며 알데베렐트 씨의 연혁을 하나씩 말하면서 진심으로 추모했습니다.

 

유해안장식 당일에는 전국에 ‘비’예보가 있었습니다. 부산에서도 비가 내렸는데요. 유해안장식이 시작될 때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습니다. 하늘도 이번 유해안장식을 기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안장식이 끝나갈 때쯤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요.

 

▲ 이제 대한민국에서 동료들과 편안히 쉬시기 바랍니다.

 

이번 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의 유해안장식은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 사업 때 대한민국을 찾은 분들 중 사후 안장을 희망한 첫 사례였기 때문에 더 뜻깊게 느껴졌는데요. 알데베렐트 씨가 전우들과 함께 유엔기념공원에서 편안히 잠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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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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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가보훈처 훈남훈녀 기자단 10기 이대웅입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9월 18일부터 23일까지 5박 6일 동안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 참전용사와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 등 100여 명을 초청하였는데요. 이 재방한 초청 사업은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 우리 정부의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9월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에서 있었던 헌화행사에 다녀왔습니다.

행사는 입장과 추모식 그리고 전사자 명비를 살펴보며 헌화하는 순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 푸에르토리코는 어떤 나라인가?


푸에르토리코라는 나라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푸에르토리코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제주도의 5배 정도 되는 면적에 약 370만 명의 주민이 살아가고 있는 미국의 자치령입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푸에르토리코 부대는 제65보병연대로, 오로지 푸에르토리코 출신 장병들로만 구성되었고 6.25전쟁에 참전한 6만1천여 명 중 4만3천여 명이 이 부대 소속으로 참전했습니다. 


# 유엔 참전용사 전쟁기념관 헌화행사


오전 9시부터 진행된 전쟁기념관에서의 헌화행사는 미국과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 및 가족들이 도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입구에서부터 정렬된 모습으로 걸어오면서 행사가 시작됐고, 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추모식이 진행된 이후에는 참전용사 분들이 자유롭게 전사자 명비를 살펴보며 헌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헌화를 하며 과거의 순간들을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은 웃음을 짓기도 했으며 감회에 젖어 전사자 명비 앞에 한참을 서 있기도 했습니다. 전사자 명비 앞에서 자신과 함께 한 전우 혹은 가족의 이름을 찾아 기록하는 방법들도 다양했는데요. 이름 앞에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기억하려는 경우도 있었고, 국화나 손가락을 가리키며 마음으로 기억하려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행사 진행 간에 참여한 분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했는데요. 사진을 보내드리거나 인화해드릴 수는 없었지만 사진촬영을 하고 사진을 보여드리고 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사진에 담긴 Mr. Domingo PELLICIER BATISTA씨께서는 “초대해줘서 감사하고, 사진도 찍어주니 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행사는 추모식과 헌화행사를 끝으로 전쟁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며 마무리가 됐습니다. 모두가 들어가고 텅 빈 전사자 명비 앞으로 걸어가는 두 분의 모습을 담게 되었는데요.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전사자 명비 앞으로 걸어가는 두 분은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67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과 유엔군의 희생을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며 우리나라의 평화를 찾아준 참전 용사들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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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단식을 마치고 찍은 단체사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이역만리(異域萬里)의 땅. 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 자유와 평화를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면, 그 나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곳으로 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은 쉽게 나서지 못하고 주저할 것입니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유엔 참전용사가 있었습니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는데요. 국군과 학도병, 전투지원국 16개국과 의료지원국 5개국, 총 21개국에서 온 유엔 참전용사가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군과 더불어 유엔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유엔 참전용사 후손을 초청해 유엔참전국과의 우호관계를 미래세대로 확대시키고, 유엔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후대에게 알리기 위해 ‘2017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이하 피스캠프)’를 진행했는데요. 참전 22개국(물자지원국 포함) 참전용사 후손 등 대학생 110명을 초청하여 지난 6월 24일(토)부터 30일(금)까지 진행되었던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6박 7일 동안 우리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그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 첫 만남 모습. 위에 있는 사람들은 각 팀의 코디네이터입니다


먼저 떠나보기에 앞서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피스캠프는 2009년부터 6.25전쟁 참전용사의 한국 사랑을 전후세대에게 계승하고, 참전용사 후손 3세대간 교류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는데요. 올해 피스캠프는 유엔참전국 22개국(물자지원국 포함) 참전용사 후손 등 총 110명이 함께하였습니다.


피스캠프의 시작은 ‘어색한 첫 만남’이었습니다. 사는 곳도, 식생활도, 언어도 달라 머뭇거리며 인사 정도만 했습니다. 첫째 날은 시차적응도 있고 해서 주로 휴식을 취했는데요. 이후 저녁시간에는 팀빌딩과 자기소개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 이번 피스캠프에 참가한 한국인에게는 각 한명씩 룸메이트가 있었는데요. 저는 프랑스 낭트 지역에서 온 ‘로빈’이라는 친구와 함께 어디든지 붙어 다니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본격적인 일정은 둘째 날부터 진행됐는데요. 오전에는 발대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모두 “We are Peace Ambassadors!”를 외치면서 발대식이 끝났는데요. 평화라는 뜻을 가진 ‘Peace’와 대사관, 대사를 뜻하는 단어인 ‘Ambassadors’가 만나, 우리는 모두 평화를 꿈꾸는 각국의 대사관으로 변신했습니다.


▲ 6.25전쟁에 대한 강연이 진행되던 모습


이후 둘째 날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67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6.25전쟁에 대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옆에 있는 로빈과 제 팀원, 그리고 많은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본인의 의견을 말하면서 강연을 경청했습니다.


▲ 미니 올림픽 모습


저녁에는 미니 올림픽을 했습니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 때 자주했던 2인 3각 달리기를 변형한 9인 10각 달리기 등 다양한 체육활동을 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몸을 맞대고, 부대껴야 친해진다고 했던가요? 첫째 날보다는 다들 친해졌습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이 워밍업의 개념이었다면, 셋째 날은 숙소를 벗어나 서울과 용인 에버랜드로 가는 날이었습니다. 먼저 서울 용산에 위치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는데요. 제가 나온 고등학교가 동작대교를 넘어가면 바로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매우 익숙한 곳이었지만, 많은 친구들은 신기해하더군요.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복을 입고서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면서 길가에 있는 건축물을 룸메이트인 로빈에게 소개해 줬습니다. 이 건물은 독립문이고, 언제 지어졌는지 등 서울에 있는 중요 문화재와 한국인들의 생활 모습을 알려줬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해서 한복체험과 동시에 팀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팀미션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유물을 찾아 함께 인증사진을 찍고 오는 것이었는데요. 옆 팀을 보니 꽤 어려운 ‘백제금동대향로’였습니다. 내심 어려울까 발을 동동 굴렸지만, 비교적 쉬운 ‘빗살무늬 토기’가 나와 3분 만에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팀미션을 마치고 찰칵!


이후 우리가 향한 곳은 용인의 에버랜드였는데요. 그 곳에서 물총싸움을 하면서 재밌게 놀았습니다. 놀기에 앞서 여기서도 팀미션을 하나 수행했는데요. 각 팀들이 생각하는 Peace, 평화를 생각하며 몸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의 에버랜드에는 유명한 놀이기구 T-Express가 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롤러코스터를 탔는데요. 비와 함께 진행된 워터 페스티벌로 물을 흠뻑 맞았습니다. 제 팀원들은 제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고 물을 뿌리고 물총을 쏴댔습니다. 에버랜드 일정으로 더욱 더 친해졌습니다. 


▲ 에버랜드 일정


피곤할 법도 하지만, 다들 씩씩한 모습으로 넷째 날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오전에는 DMZ에서 자전거를 탔는데요.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임진각에서, 민통선을 향해 자전거를 탔습니다. 저는 로빈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통일대교를 보며 저 다리를 건너면 민간인 통제구역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 자전거를 타기 전, 임진각에서의 모습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리본을 달았습니다. 민족 분단의 아픈 역사. 우리들은 리본을 달면서 진정한 평화가 뭔지 생각했습니다.


이후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를 살폈습니다. 제3땅굴을 가려면 통일대교를 건너야 하는데요. 비무장지대, 민통선에 깔려있는 철책과 민통선을 통과하면서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검사하는 모습에 좀 많이 놀라워하는 눈치였습니다. 또 도라전망대에서는 저기 보이는 땅이 북한이 맞는지 확인하면서, 우리가 북한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 리본을 달며, 평화통일을 꿈꿨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국립서울현충원과 전쟁기념관을 참배했는데요. 저는 국립서울현충원이 집 근처에 있어 자주 가기도 하고, 제 친구가 현충원 선양팀에서 사회복무 중이라 친숙합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국립서울현충원이 처음인지 이것저것 물어 왔습니다. 


▲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찍은 단체사진


이후 엄숙한 분위기에서 참배를 한 뒤, 전쟁기념관에서 참전용사를 기리는 벽에 국화 한 송이를 헌화했는데요. 모두 두 손을 모아 참전용사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전쟁기념관 관람이 끝나고, 서울탐방을 하며 세 번째 팀 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돌아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이기도 한데요. 계천, 명동, 코엑스, 잠실, 강남, 시청 등 서울에서 유명한 곳을 뽑은 뒤, 그곳에서 ‘코리아 수도 서울’ 한글을 찾는 미션이었습니다. 저희 팀은 코엑스를 골라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 점심은 삼겹살!


코엑스로 향하는 버스에서는 제가 마치 관광가이드가 된 것 같았습니다. 서울의 이곳저곳을 궁금해 하면서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기 있는 건물은 한국은행이고 그 옆 V자 모양은 서울중앙우체국이라고 말하면서, 서울의 많은 곳을 알려줬습니다.


여섯째 날은 인사동 탐방과 캠프파이어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DJ파티를 하면서 헤어짐이라는 아쉬움은 잠시 뒤로 한 채, 파티를 즐겼습니다.


▲ 경복궁에서 찍은 단체 사진


6월 30일(금). 6박 7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피스캠프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아침 일찍 고국으로 돌아간 친구도 있고, 서울과 부산 등 대한민국을 여행한다는 친구도 있었는데요. 제 룸메이트 로빈은 이번 캠프를 마치고 2주 동안 서울과 부산, 제주도를 돌며 대한민국 구경을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번 2017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 사실 저는 작년에도 훈남훈녀 온라인 기자단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기회가 있었지만, 영어울렁증으로 인해 신청하지 못했는데요. 이번에는  후회하기 싫어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잊지 못할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피스캠프에 참가해서 느낀 점은, 언어와 국적이 달라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 앞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피스캠프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We are Peace Ambassadors”라는 말인데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 대사관이라는 생각을 간직하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다시 한 번 전하고 싶네요.


 “We are Peace Ambassad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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