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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일 장군 앞에 놓인 다양한 화환들


일평생 조국만을 위해 살아간 독립운동가이자 전쟁영웅이 있습니다.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이 사람은 오산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귀주 강무학교에서 군사학과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이후 중국군에 있으면서 상해 임시정부를 도왔습니다.


특히 1931년에는 상해 병공창의 병기창 주임으로 있으면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사용될 폭탄을 직접 제조하기도 했는데요. 이 분이 만든 폭탄으로, 두 사람의 의거가 실행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중국군에서 복무하면서도 한국광복군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 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서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한국광복군행동 9개 준승’의 고리를 풀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이후 김구 주석의 권유로 중국군에서 나와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취임한 이 분은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하여 진행되던 독수리 작전에도 힘을 쏟으며 국내진공작전에서도 관여했는데요.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이후, 국군이 갖춰진 다음에는 ‘장군’으로서 대한민국 국군을 지휘했습니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에서는 ‘시흥지구전투사령관’이라는 직책을 맡으며, 한강방어선 전투를 지휘했기도 했는데요. 이 사람은 바로, 우리 마음속 영원한 장군, 일서 김홍일(逸曙 金弘壹) 장군입니다.


▲ 한강방어선 전투 기념비 모습


김홍일 장군의 이러한 뜻 깊은 애국정신을 본받고, 숭고한 뜻을 기르고자 지난 9월 22일(금) 오전 11시, 전쟁기념관 뮤지엄웨딩홀에서 ‘일서 김홍일 장군 37주기 추도식(이하 추도식)’이 평안북도 성우회의 주관으로 열렸습니다. 이 날 진행된 추도식에는 각계인사와 시민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김홍일 장군은 육군사관학교와 육군참모학교의 교장, 또 육군종합학교의 총장을 맡으며 후배 장교들을 길러냈었는데요. 그 때 김홍일 장군을 기억하기 위해 많은 예비역 장성들이 찾아왔습니다. 또한 김홍일 장군이 졸업한 서울 오산고등학교(오산학교의 후신)의 임직원 등 뜻을 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김홍일 장군을 기리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이날 추도식은 장군을 기리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는데요. 먼저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 그리고 김홍일 장군에 대한 묵념이 이뤄졌습니다.


다음으로 現 평안북도 도지사이자 김영철 예비역 장성은 “먼 길 마다 않고 왕림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김홍일 장군의 추도식을 찾은 모든 내빈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어 김 예비역 장성은 “김홍일 장군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독립운동가 이자 장군이지만, 지난 35주년을 맞아 진행한 학술회의에서도 보듯이 평가절하 되어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 김영철 평안북도 도지사의 기념사


또한 그는 “김홍일 장군의 탄생일에 맞춰 이번 추도식을 열었다”며,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폭탄을 김홍일 장군이 제작하지 않고, 이 폭탄이 없었다면 한인애국단의 의거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끝으로 그는 6.25 전쟁 당시 한강방어선 전투를 지휘한 김홍일 장군의 업적을 소개하며 인사말을 마쳤습니다.


인사말에 이허 장정렬 예비역 장성의 추념사가 진행됐습니다. 장 예비역 장성은 “오산고등학교 후배와 임직원, 평안북도 동향 후배, 6.25 전우들이 함께 했고, 국가보훈처 피우진 처장의 화환까지 더해져 참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말했습니다.


▲ 추념사를 읊기 전, 김홍일 장군에게 예를 갖추는 장정렬 예비역 장성


이어 그는 “현재 북한은 IBCM 발사와 6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며 “마치 6.25 전야의 무관심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우리는 오늘 김홍일 장군의 발자취를 살펴보며, 우리가 각성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반성하겠다.”고 김홍일 장군의 사진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추념사에 이어 국가보훈처를 대표해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이 추도사를 낭독했습니다. 이 청장은 “중국군과 독립군을 넘나들고, 국내 진공 작전 등 장군의 업적은 셀 수 없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청장은 “1948년 정부 수립 뒤에는 장성으로서 국가의 큰 공헌을 했다”며 “따라서 국가에서는 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고자 ‘오성장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의 추도사 낭독

 

이 청장은 김홍일 장군의 파란만장한 삶을 언급하며 지난날의 재력과 뜨거운 애국충정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말했는데요. 이 청장은 하늘에 있는 김홍일 장군의 안녕을 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후 헌화분향을 끝으로 이번 추도식이 마무리됐습니다.


▲ 헌화를 하고 있는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김홍일 장군의 추도식에 참석하여 장군의 업적을 하나하나 들으니, 과연 혼자서 이룬 업적인가 의문이 들을 정도로 정말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원한 장군, 일서 김홍일 장군의 애국정신을 저도 본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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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많은 순국선열, 애국지사 분들이 조국의 독립을 외쳤는데요.

 

▲ 중국 서안 인근에 있는 한국광복군 기념비

 

기나긴 36년의 일제강점기 끝에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이하였습니다. 독립운동가 심훈 선생의 시, '그날이 오면'의 내용처럼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 광복의 날에 모두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이하 현충원)에서는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광복절의 역사적인 의미와 순국선열의 충의 및 위훈을 기리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겨례얼마당 도로변에서는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담은 사진, 만남의 집 1층 전시실에서는 현충원의 초창기 모습 및 추모행사 등의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국립 서울 현충원 전경

 

먼저 저는 호국보훈의 성지, 현충원의 옛 모습을 보기 위해 만남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만남의 집은 현충원 정문에서 약간 왼쪽에 위치해 있는데요. 식당과 매점, 꽃집이 있어 만남의 집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1층에 들어서자, ‘국립 서울 현충원 옛 사진 전시’라는 팻말과 함께 현충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1967년 진행된 제12회 현충일 추념식 관련 사진들이 있었는데요. 당시 추념식 광경과 더불어 50여 년 전의 현충원의 사진도 볼 수 있었습니다.

 

▲ 국립 서울 현충원 옛 사진 전시를 알리는 안내판

 

▲ 흑백 사진 속 제12회 현충일 추념식 모습

 

다음으로 저는 현충문에서 약간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겨례얼마당 우측 도로변을 걸었습니다. 그곳에서부터 현충원 정문인 종합민원실까지 총 45점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이 사진들은 독립운동가의 모습과 그들이 남긴 문서 등으로 매우 다양했습니다.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 의거 전 함께 찍은 사진과, 안중근 의사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 철기 이범석 장군의 훈시 장면이 사진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철기 이범석 장군의 훈시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요. 제가 작년 이맘때, 국가보훈처 주최 국외사적지 탐방으로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군이 활약한 곳들을 다녀왔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았습니다. 전시된 사진 중에는 조선의용군의 전신인 조선의용대 창설 기념사진도 있었습니다.

 

또 '독립신문'의 사진도 흥미로웠습니다. 순한글판과 영문판으로 제작되어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 독립신문.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조직했던 서재필 선생은 여기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를 알리는 당시의 신문

 

위 사진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던 김상옥 의사의 의거를 보도한 신문기사입니다.

 

▲ 현재 중국에 있는 조선의용군 석정 윤세주 열사의 묘

 

지난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지 72주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 날, 순국선열 분들의 기쁜 눈물인 듯 전국에 비가 내려 대한민국 전역을 적셨습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늘 존경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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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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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義士) :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의로운 사람.

윤봉길 의사는 안중근 의사, 이봉창 의사와 함께 우리 국민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의사(義士)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에게 수통 폭탄과 상해 홍구 공원 의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상해 홍구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와 상해사변 승전 축하 기념식에서 준비해온 수통 폭탄을 단상 위로 던져 일본군 수뇌부를 응징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군법 재판에서 사형을 인도받고 1932년 12월 19일에 일본 땅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침체되어있던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중국의 장제스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라고 말하며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중국 상해에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 이었던 홍구공원이 지금은 현대적인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공원 안에는 ‘윤봉길 의사 생애사적 전시관’이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서울시 강남구 양재동에도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상해에서, 그리고 올해 서울에서 윤봉길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습니다.  


# 윤봉길 의사의 혼이 살아 숨쉬는 곳, 상해 홍구 공원과 윤봉길의사 생애사적전시관


▲ 홍구 공원 입장권.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이었던 홍구 공원(홍구 공원)은

루쉰 공원이라고도 불립니다.


저는 작년 여름 중국 상해를 방문했고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이었던 홍구 공원과, 홍구 공원 내에 있는 윤봉길 의사 생애사적 전시관도 방문했습니다. 홍구 공원에는 한글이 쓰여 있는 입장권이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이 많이 찾는 관광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장권을 사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상해 시민들이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윤봉길 의사 의거가 일어났던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 홍구 공원 전경


▲ 홍구 공원 내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윤봉길 의사의 비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정신과 그의 의거를 기리기 위한 비석입니다. 한글로 쓰여 있어 저도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연못을 따라 공원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윤봉길 의사 생애사적 전시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기념관은 윤봉길 의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와 상하이시 훙커우구 인민정부가 공동으로 건립했습니다. 기존에 세워진 윤봉길 의사 기념 정자인 매정을 한 차원 승격시켜 2003년 12월 4일 개관하였습니다.


▲ 윤봉길 의사의 흉상


▲ 윤봉길 의사가 의거에 사용한 수통폭탄과 소지하고 있던 도장.

그리고 의거 당일 날 아침 김구 선생과 맞바꾼 윤봉길 의사의 시계 


▲ 윤봉길 의사 의거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해주는 전시물


기념관은 2층 규모이며 1층에는 윤 의사의 흉상, 그의 생전 사진, 그가 의거 때 사용했던 폭탄 복제품, 유품 등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저는 윤봉길 의사가 의거 당일 아침 김구 선생과 맞바꿨다는 시계를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윤 의사는 김구 선생에게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저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 수가 없으니까요."라는 말을 남기고 시계를 맞바꿨다고 합니다. 1층에 있는 윤봉길 의사 관련해 여러 전시물을 관람하며 그의 위대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기념관 2층에 위치한 영상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2층에는 영상실이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역사적 의의, 그의 생애에 대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영상을 통해 윤봉길 의사님의 업적과 위대한 정신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을 나오는 순간까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상해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이었습니다. 상해 여행을 가신다면 상해 임시정부 청사와 홍구 공원,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꼭 가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서울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 윤봉길 의사 기념관


국내에도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서울시 양재 시민의 숲내에 위치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입니다. 작년 상해에서 윤봉길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갔던 저는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윤봉길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습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기념관은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가 주관하여 1988년 12월 1일에 국민들의 성금으로 서울 양재시민의 숲 안에 준공되었습니다. 기념관 안에는 윤 의사의 유품 및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전시시실과 윤 의사의 생애를 사진으로 만나 볼 수 있는 생애도실이 위치해 있습니다.


▲ 유물전시실 앞에 위치한 포토존.

윤봉길 의사 의거 당시 현장이 재현되어있다.


유물전시실에는 윤봉길 의사 관련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시물을 통해 출생부터 젊은 시절, 중국으로 망명, 의거, 순국까지 그의 생애를 상세한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생애도실에서는 사진을 통해 윤 의사의 생애와 윤봉길 의사 의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상해 홍구 공원과 사적 전시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에 있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도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윤 의사의 숭고한 희생, 의로운 정신,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위대한 희생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훈터 독자분들도 윤봉길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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