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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공원에 비행기 한 대가 나타났습니다! 시민들의 휴식처인 여의도공원에 비행기라니. 놀라지 않으셨나요? 여의도공원에 놀러온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비행기의 정체가 궁금한데요. 이 비행기는 C-47. 이 C-47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특별한 사연이 있다는 것, 아시나요? 지금부터 C-47과 이에 얽힌 임시정부의 독립 이야기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C-47 비행기 전시관 2018년 개관 특별전에서 만난 우리의 역사


▲ 다시금 여의도공원을 찾은 C-47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공간’인 C-47 비행기 전시관은 여의도 공원 내 광장(문화의 마당)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전시 중인  C-47 수송기는 1945년 8월 18일 여의도 공항에 착륙했었던 것으로 모형이 아닌 실제 비행기입니다. 또한 C-47 비행기 안에 꾸며진 전시관에는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명장면 10편’을 움직이는 그림 이야기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임시정부와 함께했던 C-47 비행기


      ▲ C-47 내부에서 관람객들이 비행기를 둘러보고 있다


▲ C-47 전시관 브로셔와 안내문

                          

여의도 지역의 쉼터이자 휴식공간으로 이용되는 여의도공원이 예전에는 공항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1945년 8월 18일 경성비행장이었던 이곳에 비행기 한 대가 도착했습니다. 바로 C-47 비행기였는데요.


   ▲ 비행기 조종실 모습과 내부에 있는 장비 모습


이 비행기 안에는 한국광복군 정진대원 장준하, 노능서, 김준엽, 이범석이 미국군사사절단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김구 주석은 C-47에 탄 이들에게 광복군으로서  장렬히 전투를 벌여 한국이 참전국이 되도록 지시했습니다. 8월 15일 광복이후 한국인의 봉기를 우려해 일본의 치안권이 한층 강화된 상황이어서 긴장감은 극에 달했었지요.


▲ 전시관 내부에 전시중인 ‘움직이는 100년’ 영상을 둘러보는 관람객의 모습


비록 C-47에 탑승했던 인물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되돌아갔지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왔던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공간을 이곳에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 비행기의 오래된 창문과 히터 스위치의 모습 


한편 1945년 11월 23일 C-47기는 상하이에서 김포비행장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 등 임시정부 요인 15명을 태운 수송기는 광복 석 달 만에 다시 조국에 도착했고, 그들은 다시 한 번 몸 바쳐 조국을 위한 일들을 해나가게 됩니다.


▲ 비행기의 외부에서 바라본 모습


C-47 비행기, 독립운동 역사를 말하다


조국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고 착륙했던 독립운동의 주인공들을 태운 그 비행기가 70여 년이 지난 지금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는데요. 비행기 내부는 조종실과 내부 공간, 화장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공개되었습니다. 내부 공간에는 실제 의자만 관람객을 위한 의자로 개조되어 선보였는데요. 의자 위 공간에는 ‘움직이는 100년’이라는 이름으로 10개의 움직이는 그림이 전시 중이었습니다. 


▲ C-47 비행기 전시관의 모습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때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글인 기미독립선언서, 광복 이전에 미국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3.1운동이 건국정신이라는 것을 천명하고 있는 헌법.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했던 독립군,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이 일왕에게 닿길 기도하며 던진 폭탄,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1940년 9월 17일 창군된 한국광복군,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 김구, 그리고 10번째 C-47 수송기까지.

10개의 움직이는 그림을 통해 역사를 조명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움직이는 그림으로 어렵지 않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접할 수 있어 가족 단위와 학생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이경진 전시해설사가 설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허연정, 이경진 전시해설사가 시간대별로 관람객들에게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전시관을 방문한 어르신들 중에서 직접 이 비행기를 타본 분이 오신 적이 있었어요. 군인이셨을 때에 타보셨다고 하더라고요.”라며 허연정 전시해설사는 인상 깊었던 관람객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전시관에서 만난 천지안(덕원중학교 2학년)군은 “실제 비행기라서 더욱 신기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아서 놀랐는데요, 역사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비행기라니 더 의미 있네요.”라며 소감을 말했습니다.


▲ C-47 비행기의 외관 모습


이번 전시는 8월 16일까지 진행되며 그 이후에는 다른 전시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그러니 서둘러 방문해주세요!

전시관은 6월까지는 아침 9시에 열고 저녁 6시에 닫으며, 하절기인 7월 1일부터는 오전(9:00~12:00)과 저녁(17:00~21:00)시간 하루에 2차례 운영됩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의도공원에 어느 날 나타난 C-47 비행기. 이 비행기는 직접 안에 탑승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의 한 단편을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 체험장입니다. C-47에서 저는 광복군 선열들, 임시정부 요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바랐던 조국 땅으로 가는 길, C-47의 좁고 어두운 내부에서 그분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좁고 어두운 C-47을 나와 환하게 빛나는 여의도 공원의 풍경을 마주하자니, 이렇게 아름답고 자유로운 우리나라를 만들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C-47에 탑승하여 우리나라의 오늘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시는 게 어떨까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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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하다’라는 뜻을 가진 살신성인이라는 한자성어를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는 오늘 이 한자성어에 어울리는 독립운동가 한 분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윤봉길 의사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모습 (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 거사를 며칠 앞둔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전달했던 유언


▲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안내표지판


아버지를 잃게 될 아이들에게 그저 한잔 술로 자신을 위로해달라고 담담히 유언을 남겼던 윤봉길 의사. 


저는 그분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에 있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아쉽게도 기념관 내부와 외부를 공사 중이라 기념관에 있는 사진을 직접 촬영하진 못했으나, 근처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동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윤봉길 의사 동상


동상에서 윤봉길 의사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느껴지지 않나요. 저는 폭탄을 투척하는 듯 팔을 치켜든, 또는 독립을 향해 갈망하며 손을 뻗은 것 같은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윤봉길 의사의 동상을 보며 많은 감명을 받았고, 의사의 생애를 통해 그에게 있어 독립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아봤습니다.


의사의 유년시절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는 1918년 덕산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하지만 1919년 3월 1일에 있던 3.1만세운동을 계기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의사의 유년시절은 일제의 ‘무단통치’가 이루어졌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민의 목을 조여오던 일제의 통치에 반발한 만세 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본의 교육을 거부하면서 자퇴한 것입니다.


문맹 퇴치와 농촌계몽운동에 힘쓰다

 1926년 윤 의사는 공동묘지에서 선친의 무덤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한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 청년은 의사에게 여러 묘표를 보여주면서 선친의 무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묘표를 마구잡이로 뽑아버렸기 때문에 이것이 어느 자리에 있던 묘표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이것을 계기로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해 나라를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자기 집에서 학생들에게 한글 및 민족의식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점차 늘어나자 야학당을 개설하였습니다. 또 배움을 전파하면서 ‘농민독본’을 저술하고, 이것이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의사는 날이 갈수록 궁핍해지는 농촌의 삶을 보면서 농촌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1929년 ‘월진회’라는 민간단체를 만들었습니다. 


▲ 「농민독본」 중에서


▲ 월진회 취지서 (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아! 가엾어라, 어느 날 갚을는지

 농촌 개혁 운동이 여러 성과를 보였지만, 의사는 이것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단순한 농촌 부흥 운동을 넘어서, 이제는 독립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29년 12월 16일 자 일기를 살펴보면 함흥 수리조합 일본인들이 조선인 3명을 타살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의사는 “아! 가엾어라, 어느 날 갚을는지”라고 일기장에 적으며 원통해했습니다. 이후 의사는 1930년 3월 6일 ‘장부 출가 생불환’(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글을 남기고 중국으로 갑니다.


운명적인 만남

 조국 독립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색하던 중, 의사는 임시정부에 있던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이 상해 홍구공원에서 기념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윤봉길 의사는 찾아온 기회를 잡고 한인애국단원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조국을 위해 투신하게 됩니다.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100만 대군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낸 한 사람

 의거 당일 의사는 도시락 및 물통 모양의 폭탄을 들고 행사장으로 향합니다. 의사가 던진 폭탄은 폭발하여 순식간에 식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알게 된 중국인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 용사 1명이 단행하였다”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계기로 임시정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중국육군중앙군관학교에 한인 특별반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으로 임시정부를 지원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그동안 홀로 외롭게 분투하던 임시정부가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인애국단 선서식 후 기념사진 (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독립이라는 꽃을 피워 세상에 맑은 향기를 퍼트린 매헌 윤봉길 의사

 의사는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었습니다. 그 이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2년 5월 25일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이 철권으로 일본을 즉각 타도하려고 상해에 왔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강직한 태도로 임했습니다. 1932년 12월 19일, 윤 의사는 25세의 나이로 순국하였습니다. 유해는 김구선생의 요청으로 봉환되었으며 1946년 효창공원에 국민장으로 안장되었습니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의사는 일제강점기라는 찬바람을 뚫고 독립이라는 꽃을 피워 세상에 맑은 향기를 가득 퍼뜨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노력하였습니다. 지난 4월 29일, 매헌기념관에서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6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기개를 굽히지 않고 일제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윤봉길의사기념관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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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지난 4월 29일은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지 86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날 오전 11시, 매헌기념관에서 거행된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6주년 기념식>에 다녀왔습니다.


▲ 윤봉길 의사 사진 (출처: 독립기념관)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에서 전통교육을 받으며 민족운동의 방향을 정립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 사랑방에서 학동들을 가르치며 문맹퇴치에 심혈을 기울였고,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 이듬해에는 ‘월진회’를 조직하여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독서회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윤 의사는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촌 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다가 일제의 압박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경축식을 홍구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하여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켰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의 항일연대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된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습니다.

이후 11월 18일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가나자와 미고우시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국민장으로 안장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습니다.


▲ 매헌기념관


▲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거행된 이번 기념식에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박유철 광복회장, 기념사업회원,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습니다.

기념식은 약력봉독, 기념식사, 참석 내빈의 기념사, 헌시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기념사를 하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은 “일찍이 국권 회복의 뜻을 두고 계몽운동을 전개하던 의사님은 일제의 가혹한 악재로부터 꺼져가던 독립운동의 불길을 다시 타오르게 하리라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집을 나섰다”고 하며, “86년 전 오늘, 놀라운 의거로 독립 운동 일대 전기를 마련한 의사님께 다시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한다” 고 말했습니다.


▲ ‘강보에 쌓은 두 병정에게’를 봉독하는 아이들


이후 ‘강보에 쌓은 두 병정에게’ 유시봉독이 이어졌습니다.

서울 매헌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두 아이들이 봉독을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 윤봉길 의사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이어서 기념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매헌윤봉길의사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도 함께 노래를 부르며 윤봉길 의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  공연단 및 태극기를 흔들며 부르는 역사어린이 합창단


이어서는 기념 공연과 기념 합창이 이어졌습니다.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음색과, 역사어린이 합창단이 태극기를 흔들며 당차게 노래하는 모습은 많은 이로부터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 만세삼창을 하는 모습


만세삼창을 하며 기념식은 끝이 났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만세를 외치며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6주년의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 윤봉길 의사의 동상


저는 매헌기념관 뒤편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의 동상을 보며 그의 용기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훈터 독자 여러분들도 이번 기회에 윤봉길 의사에 대해 생각해 보며, 의사님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해 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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