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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하다’라는 뜻을 가진 살신성인이라는 한자성어를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는 오늘 이 한자성어에 어울리는 독립운동가 한 분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윤봉길 의사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모습 (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 거사를 며칠 앞둔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전달했던 유언


▲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안내표지판


아버지를 잃게 될 아이들에게 그저 한잔 술로 자신을 위로해달라고 담담히 유언을 남겼던 윤봉길 의사. 


저는 그분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에 있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아쉽게도 기념관 내부와 외부를 공사 중이라 기념관에 있는 사진을 직접 촬영하진 못했으나, 근처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동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윤봉길 의사 동상


동상에서 윤봉길 의사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느껴지지 않나요. 저는 폭탄을 투척하는 듯 팔을 치켜든, 또는 독립을 향해 갈망하며 손을 뻗은 것 같은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윤봉길 의사의 동상을 보며 많은 감명을 받았고, 의사의 생애를 통해 그에게 있어 독립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아봤습니다.


의사의 유년시절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는 1918년 덕산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하지만 1919년 3월 1일에 있던 3.1만세운동을 계기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의사의 유년시절은 일제의 ‘무단통치’가 이루어졌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민의 목을 조여오던 일제의 통치에 반발한 만세 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본의 교육을 거부하면서 자퇴한 것입니다.


문맹 퇴치와 농촌계몽운동에 힘쓰다

 1926년 윤 의사는 공동묘지에서 선친의 무덤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한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 청년은 의사에게 여러 묘표를 보여주면서 선친의 무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묘표를 마구잡이로 뽑아버렸기 때문에 이것이 어느 자리에 있던 묘표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이것을 계기로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해 나라를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자기 집에서 학생들에게 한글 및 민족의식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점차 늘어나자 야학당을 개설하였습니다. 또 배움을 전파하면서 ‘농민독본’을 저술하고, 이것이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의사는 날이 갈수록 궁핍해지는 농촌의 삶을 보면서 농촌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1929년 ‘월진회’라는 민간단체를 만들었습니다. 


▲ 「농민독본」 중에서


▲ 월진회 취지서 (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아! 가엾어라, 어느 날 갚을는지

 농촌 개혁 운동이 여러 성과를 보였지만, 의사는 이것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단순한 농촌 부흥 운동을 넘어서, 이제는 독립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29년 12월 16일 자 일기를 살펴보면 함흥 수리조합 일본인들이 조선인 3명을 타살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의사는 “아! 가엾어라, 어느 날 갚을는지”라고 일기장에 적으며 원통해했습니다. 이후 의사는 1930년 3월 6일 ‘장부 출가 생불환’(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글을 남기고 중국으로 갑니다.


운명적인 만남

 조국 독립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색하던 중, 의사는 임시정부에 있던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이 상해 홍구공원에서 기념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윤봉길 의사는 찾아온 기회를 잡고 한인애국단원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조국을 위해 투신하게 됩니다.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100만 대군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낸 한 사람

 의거 당일 의사는 도시락 및 물통 모양의 폭탄을 들고 행사장으로 향합니다. 의사가 던진 폭탄은 폭발하여 순식간에 식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알게 된 중국인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 용사 1명이 단행하였다”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계기로 임시정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중국육군중앙군관학교에 한인 특별반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으로 임시정부를 지원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그동안 홀로 외롭게 분투하던 임시정부가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인애국단 선서식 후 기념사진 (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독립이라는 꽃을 피워 세상에 맑은 향기를 퍼트린 매헌 윤봉길 의사

 의사는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었습니다. 그 이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2년 5월 25일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이 철권으로 일본을 즉각 타도하려고 상해에 왔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강직한 태도로 임했습니다. 1932년 12월 19일, 윤 의사는 25세의 나이로 순국하였습니다. 유해는 김구선생의 요청으로 봉환되었으며 1946년 효창공원에 국민장으로 안장되었습니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의사는 일제강점기라는 찬바람을 뚫고 독립이라는 꽃을 피워 세상에 맑은 향기를 가득 퍼뜨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노력하였습니다. 지난 4월 29일, 매헌기념관에서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6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기개를 굽히지 않고 일제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윤봉길의사기념관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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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들 국가보훈처 기자단 주하늘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제99주년을 기념해 열린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별기획전에 다녀왔습니다. 


▲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별기획전 입구


이번 특별기획전은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어 독립을 외쳤던 3.1만세운동을 기념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열렸습니다.

특별기획전은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국회의원회관 로비 2층에서 진행되었고 사진자료 50점, 실물자료 15점이 전시되었습니다. 


▲ 3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개막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고 있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3월 26일, 이 특별기획전 개막식에 참석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축사에서 내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대해, “정부에서는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고자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국가보훈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과 일제강점기 수형기록 전수조사, 국외 사적지 실태조사 등을 조속히 추진하여 3.1운동과 더불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공헌하신 독립운동가의 공훈을 널리 알리는데 힘써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 2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 특별 전시회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익숙하지만 둘의 연관성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1919년 3월 1일 33인의 민족대표는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습니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독립국이고, 우리민족은 자주민임을 선언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3.1만세운동은 수개월 간 이어졌고, 이후 독립운동을 보다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펼치기 위한 기관의 필요성을 느낀 선열들이 중국 상해로 집결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 것입니다.  


독립운동의 힘을 하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19년 4월, 최초의 민주공화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였고 이는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외에 근거지를 둘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외 독립운동 소식을 알리기 위해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독립공채를 발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 1919년 8월 21일 창간된「독립신문」상해판 창간호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임시정부가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발행한 독립공채 실물자료


임시정부의 위기와 한인애국단


 1920년대에 임시정부는 침체기에 접어들었으며, 1931년에는 일제의 술책으로 한인 농민과 중국 농민이 충돌한 사건인 만보산 사건 등으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임시정부는 특무공작대인 한인애국단을 결성하여 직면한 위기를 극복해 나갔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실 이봉창, 윤봉길 의사는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의거를 실행했습니다. 


 ▲ 이봉창 의사의 모습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동경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겨냥하여 수류탄을 던지는 의거를 행하였습니다. 이는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선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일본이 일으킨 이른바 ‘만보산 사건’으로 야기된 한중 양국민의 감정 대립도 씻겨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윤봉길 의사의 모습 (출처: 문화콘텐츠닷컴)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천장절(일왕의 생일)과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이 합동으로 열린 홍구 공원에서 투탄의거를 일으켜 일본군 사령관 등을 처단하였습니다. 이 의거는 곧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중국이 임시정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계기가 되었고, 중국육군중앙군관학교에 한인 특별반을 설치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성원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인애국단원들은 일제의 수탈기관을 파괴하거나 침략에 앞장선 사람들을 처단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려 노력했습니다.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 광복을 기뻐하는 사람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오랜 세월, 독립을 열망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일제에 항거했던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2018년,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9주년을 맞았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우리민족이 세운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였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위대한 역사입니다.



* 자료 출처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별기획전

독립기념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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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윤봉길 의사가 조국 독립에 몸 바칠 뜻을 세우고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남긴 글입니다.

 

지난 12월 19일은 윤봉길 의사 순국 85주기였습니다. 저는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알리고, 그를 추모하고자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매헌)역 근처에 위치한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을 찾았습니다.


▲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은 상설전시관 리모델링으로 인해 2월 15일(목)부터 5월 31일(목)까지 휴관된다고 하니, 관람 시에 참고 바랍니다.


▲ 한인애국단에 입단하고 태극기 앞에서 폭탄과 권총을 들고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윤봉길 의사의 ‘유년기_윤봉길의사의 출생과 성장’, ‘계몽운동기’, ‘역사 무대로 진출_상해의거’, ‘순국’, ‘상해의거 그 이후’ 순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윤봉길 의사의 신문조서


‘계몽운동기’ 전시관에서는 농촌계몽 및 부흥운동을 위하여 조직하였던 부흥원, 월진회 등과 관련된 유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당시 저술하였던 ‘농민독본’, ‘기사년일기’, 서한과 한시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청년 제군들에게', 윤봉길


‘역사 무대로 진출_상해의거’ 전시관에서는 의거 당시 사용했던 폭탄을 비롯하여 소지하고 있었던 여러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이향시', 윤봉길


‘상해의거 그 이후’에는 상해의거를 다룬 보도자료, 1962년 추서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1932년 4월 29일 상해의거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는 곧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윤 의사의 의거가 미친 영향을 살펴볼까요?



1. 1920년대 이후 침체기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능을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내부 결속력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해외 동포들도 다시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 또한 1930년대 식어가는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독립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져 변절자가 많아지던 시기에 다시 한 번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고 광복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를 고취시켰다.

 

3. 상해의거 이후 이와 관련된 수많은 외신 기자들은 세계에 조선의 존재를 알렸고, 조선과 일본의 관계 속에서 한민족이 여전히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려 전례 없는 외교적 효과를 달성하였습니다.

 

4. 더불어 만보산 사건 등으로 갈등을 겪었던 한국과 중국 양국이 오해를 풀고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함께 싸우는 동반자로 서로를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중국과 공동으로 항일전선을 구축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 당시 국민당 정부 장제스 총통은 ‘중국의 백만 대군과 4억 국민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라고 극찬하며 조선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1932년 5월 김구선생과 회담을 갖고 군사교육 지원 협약 등 임시정부 지원책을 논의하였습니다.

 

- 이후 뤄양 군관학교에 한인장교 훈련반을 설립하여 독립군을 길러냈으며, 한국광복군 창설도 지원하였습니다. 장제스 국민당 정부는 일제 패망까지 임시정부 활동을 크게 후원하였습니다.

 

-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 총통이 연합국 수뇌들은 설득하여 카이로 선언문 특별조항에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조항을 넣어 독립의 단초를 마련하였고, 이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12월 19일, 효창공원 의사 묘전에서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5주기 추모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저도 이번 취재를 통해 추모의 마음 한 송이를 남기고 왔는데요. 윤봉길 의사의 일생을 더 자세하고 깊게 알고 싶은 독자분들은 한 번쯤 꼭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가슴에 한 점 번민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준비해주십시오.”

 

「백범일지」에 수록된,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결심하고 김구 선생에게 한 말입니다.

나라를 위해 큰 용기를 낸 분들이 있어, 지금 제가 독립된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 훈남훈녀기자단 김태의 기자였습니다.


* 참고사이트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http://www.yunbonggil.or.kr/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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