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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완연한 봄이 된 4월. 따스한 봄을 맞아 4월의 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신 윤현진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차장으로 취임하여,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 윤현진 선생


윤현진 선생은 1892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습니다. 1909년 선생은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을 탐방한 뒤, 신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일본 유학을 떠났습니다.


선생은 메이지 대학에서 수학하며 재일 한인 유학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조선유학생학우회와 신아동맹당에서 활동하며 반일운동에 앞장섰습니다.


▲ 조선유학생학우회에서 발행한 『학지광』 창간호 속표지 (출처: 독립기념관)


1916년 귀국한 윤현진 선생은 약 3년 동안 대동청년단, 백산무역주식회사, 의춘상행(宜春商行), 기미육영회 등과 관계를 맺고, 우리 민족이 일제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끔 비밀결사운동, 경제적 자립운동, 교육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 백산무역주식회사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919년 3월 21일.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윤현진 선생은 상하이로 망명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위원과 경상도위원을 맡았고, 국내 항일세력과 연락을 위한 의용단을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만드는 등 임시정부의 중심인물로 부상하였습니다. 


▲ 1920년 1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신년축하회 (출처: 독립기념관)


또한, 윤현진 선생은 1921년 2월 임시정부의 중책인 재무차장이 되어 살림을 책임지게 됩니다.

독립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선생은 안타깝게도 같은 해 9월, 과로로 인해 29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원 기념사진(왼쪽 뒷줄 2번째) (출처: 독립기념관)


아마도 위의 사진은 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는 1919년 10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임시정부의 행정부) 성립을 기념하기 위해 촬영된 것인데요, 4월의 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뒤편, 왼쪽 뒷줄 2번째에 있습니다. 


위 사진의 윤현진 선생이 유난히 다른 분들에 비해 앳된 모습인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을 당시, 선생은 27세의 젊은 나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 어리거나 많은 나이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분명한 점은, 젊은 나이에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 상해임시정부 국장으로 치러진 윤현진 선생의 장례식 (출처: 독립기념관)


선생의 장례는 임시정부의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160여명의 내빈들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선생을 추모했습니다.


정부는 1962년 윤현진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선생의 큰형 윤현태가 한글 자필로 비석을 세운 윤현진 선생의 묘 (출처: 독립기념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차장으로서 젊음을 바쳐 독립운동에 투신한 4월의 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을 함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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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2017년도가 약 3주정도 남았네요. 한 해 마무리는 잘하고 계신가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다가오는 2018년의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1월의 독립운동가 소식을 들려드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덧 내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네요.

 

지난 12월 11일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18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18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총 13명으로 의병장, 3.1운동 학생지도자, 북로군정서 부총재, 부부 독립운동가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분들입니다.
과연 어떤 분들이 선정되었을까요? 지금부터 2018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보겠습니다!

 

 

내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분들의 공훈에서 그들의 헌신이 느껴집니다. 그 중 몇 분의 공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 임시정부를 후원한 선교사
1월의 독립운동가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생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생은 미국에 설립된 한인구제회와 상하이에 설립된 한인 학교를 위해 모금활동을 하였습니다.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김구 선생 등에게 은신 장소를 제공하였고, 부인 제랄딘과 함께 미국과 중국에서 우리나라 임시 정부 승인을 위해 노력한 인물입니다.

 

 

# 가족과 함께한 독립운동, 독립운동 명문가를 이루다
5월의 독립운동가 신건식·오건해 선생

 


5월의 독립운동가, 신건식·오건해 선생은 부부 독립운동가입니다. 신건식 선생은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후 임시정부 재무부에서 주로 활동하였고, 오건해 선생은 한국 여성동맹 창립에 이바지했고 해방까지 한국 독립당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가정의 달을 기념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 임시정부를 지키며 독립의 토대를 마련한 여성독립운동가
7월의 독립운동가 연미당 선생

 


2018년 탄신 110주년을 맞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연미당 선생은 부부·부녀 독립운동가입니다. 선생은 김구 선생의 비서인 엄항섭 선생과 결혼했고, 연병환 선생의 딸이자 연병호 선생의 조카입니다.


연미당 선생은 임시정부와 중국 국민당의 협조로 방송을 통해 항일의식 고취와 여성 계몽을 위해 활동하였습니다. 선생은 1930년 상해 한인여자청년동맹의 임시위원을 맡았고,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서 선전 및 홍보 활동을 하였습니다.

 

 

# 북로군정서를 조직, 청산리 대첩 승리를 일궈낸 대종교 지도자
8월의 독립운동가 김교헌 선생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김교헌 선생은 대종교의 2대 교주였습니다. 선생은 1919년 2월 중국, 러시아, 미주 지역 대표가 서명한 대한독립선언에 39인 중 1인이었습니다. 또한, 김교헌 선생은「신단민사」등을 저술하여 단군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체 역사관을 정립하였습니다.

 

 

# 광복을 눈앞에 두고 옥사 순국한 한국애국단원
12월의 독립운동가 유상근 선생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유상근 선생은 상해 한국교민단 의경대에 복무하고 한인애국단 설립에 참여하였습니다. 이후 대련에서 일제 고관의 폭살을 계획하던 중 체포된 선생은 안타깝게도 광복을 하루 앞둔 1945년 8월 14일, 여순 감옥에서 옥사 순국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무장투쟁을 전개한 김규면 선생, 서울에서 3.1만세운동을 이끌었던 김원벽 선생, 임시정부의 재무차장을 지낸 윤현진 선생, 애국정신과 교육을 강조한 미주 한인사회 지도자 이대위 선생,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장을 지낸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역인 최용덕 선생, 북로군정서 부총재 현천묵 선생, 호남창의대 의병장을 지낸 조경환 선생이 2018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분들의 희생과 공훈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다음 등의 대형포털 사이트에 매월 선정된 독립운동가의 열전을 게시하고, 학교·지자체 등에 찾아가는 학술강연회와, 독립기념관과 서대문 형문소역사관에서 기획 사진전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또한, 전국의 학교·도서관·지자체 등에 포스터를 게시할 계획입니다.


특히, 청소년 등 미래 세대들이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저희 국가보훈처의 SNS 채널에서도 매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2018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다가오는 2018년도 저희 국가보훈처와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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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준식

    2017.12.13 2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국가보훈처 '이달의 보훈인물' 카페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충남 아산에 거주하는 역사·문화·나라사랑 분야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네스카페, 김준식입니다.

    훈남훈녀 님의 말씀처럼 정말 올해 1월의 인물 소개 포스팅을 접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벌써 내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자 명단을 마주하게 되었네요. 제가 그동안 월말이면 다음 달 선정인물 관련 자료를 기다리며 긴장감과 함께 초조함까지 느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시 1년이 지났다는 뜻이 되네요. 이럴 때 보면 시간이 너무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내년에도 13명의 독립운동가 분들의 업적을 배워가며 나라사랑의 정신을 더욱 꽃 피울 수 있게 되어 저로서는 굉장히 영광인 가운데, 이 13명의 독립운동가 중 3명(6월 이대위 선생, 9월 최용덕 장군, 11월 조경환 의병장)이 실제 저의 추천으로 선정되셔서 저의 관심이 빛을 보는 것 같아 너무나도 좋습니다.

    앞으로도 훈터 블로그를 통해서 내년에 선정되신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자 분들을 소개하며 네티즌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 함양의 가교 역할을 해 주실 것을 진심으로 부탁드리며, 한편으로는 내년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선정자 명단이 발표된 내년 '이달의 6·25전쟁영웅' 선정자 소개 포스팅은 언제 쯤 올라오게 되는지 여쭤보고자 합니다.

    그럼 항상 하시는 모든 일마다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저의 글을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7. 12. 13. 수요일 밤 10시 50분. 충남 아산에서 '역사·문화·나라사랑' 분야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네스카페, 김준식 드림.

    • 대한민국 훈남훈녀 2017.12.14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김준식 님.^^ 늘 저희 블로그 게시물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년도 이달의 6·25전쟁영웅 게시물은 오늘 오전에 업로드해 두었고,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날이 많이 춥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018년도 이달의 6·25전쟁영웅
      - http://mpva.tistory.com/4902

  2. 2017.12.17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가 시작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고 계실 겁니다. 흔히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전담하던 기관이라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하지만 임시정부는 독립 운동 외에도 많은 일을 담당했던 기관이었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미와 역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 (출처: 독립기념관)

앞줄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우선, 임시정부가 설립된 배경을 알아볼까요? 그 시작은 1919년 일어난 3·1독립만세 운동입니다. 이 만세 운동은 일제 치하, 독립을 염원하던 국내외 2,000만 한민족이 참여한 거국적인 민족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3·1운동 이후 독립을 위한 한민족의 의지는 자연스럽게 조직적인 국가차원의 독립투쟁에 대한 갈망으로 변모했고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을 자극시키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진행함으로써, 국권회복과 항일투쟁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정부규모의 임시정부 수립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독립만세 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계기로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부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의 목적은, 한민족을 위한 공화정 체제의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여 독립운동을 위한 구심점을 조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독립정신을 전파하여 우리 민족이 주권국민임을 인지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 대한민국 임시약헌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위기 속에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틀을 잡아라!


긴박한 상황에서 서둘러 설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계가 드러났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임시정부가 통치해야 하는 국토와 국민은 모두 일제 치하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국토와 국민이 없는 정부였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군주제 이후로 처음 시작하는 민주 공화정부 체제는 기술적으로나 체제 기반으로나 미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많은 나라가 제국주의를 표방하여, 타국의 식민지에 대한 권리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국제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 임시정부가 외교적 성과를 이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겠죠. 이후 한인애국단 이봉창의 의거로 중화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등 새로운 독립운동 방향을 개척하였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 임시 정부는 상해에서 충칭으로 이전하는 대이동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 역시 녹록치만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해에 수립, 선포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 까지 27년간 그 역사를 이어 가는데요. 사실 설립 초기에만 하더라도 임시정부는 단일화된 조직이 아닌, 지역별로 각기 다른 역할들을 수행하는 일종의 본부 성격을 띄었다고 합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내외의 6개 이상의 지역에서 임시정부가 설립되었다고 하는데요.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선민국임시정부, 신한민국정부, 대한민간정부, 고려공화정부, 간도임시정부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상해, 한성, 러시아의 연해주령 3개 지역에서 설립된 임시정부만이 헌법, 의회, 서고문(誓告文), 정강, 강령 등을 갖추고 있었고 나머지 정부는 전단적(傳單的)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3개의 실질적인 정부는 1919년 9월 11일 상해에 집결해 통합임시정부를 구성하게 되는데요. 이 임시정부가 추후 1945년까지 각종 광복정책을 이어가며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를 이어가게 됩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오른쪽 첫 번째 엄향섭, 두 번째 이동녕 

(출처: 독립기념관)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립 초기부터 1948년 한반도 내에 재건되기 직전까지 의원내각제를 기반에 둔 정부 형태를 고수했습니다. 이는 대통령제를 채택했던 1919년부터 1925년 사이에도 유효하였는데요. 이후 1925년부터 2년간 순수 의원내각제를 실행하다 1927년부터는 국무위원을 주축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를, 1940년부터는 의정원에서 선출한 주석이 대한민국을 이끄는 주석제를 채택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독립 국가의 기틀을 갖춘 정부는 나라의 독립을 지키고 경제 발전을 추진하며 민주 복지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당시 일제 치하라는 예외적인 상황에 발맞춰 독립국가의 조건을 되찾기 위한 활동이 먼저 이루어져야 했죠. 따라서 지금의 정부와는 기능상에서 조금 다른 면모를 보입니다.


대표적인 차이를 몇 가지 살펴보면, 통합된 임시정부는 임시 의정원과 국무원으로 구성된 한국 최초의 민주 공화정치의 정부 조직을 갖추게 되는데요. 대통령 아래 각 부처의 장관과 행정관들로 구성된 현재의 정부 모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임시정부 수립과 더불어 민주적 방식에 의해 제정된 임시 헌장은 근대적 정치의식의 확대와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민족 지도자들의 사상적인 대립과 독립 운동 방법론의 차이로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부 포스팅에서 상세하게 소개해드릴게요!) 임시정부의 마지막 특징으로는 국내외 독립 운동을 보다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중추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의 역할(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발휘해 중요한 정책 및 사안을 결정하고 실행하는데 중점을 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활동


대한민국의 임시 정부의 주요 활동은 크게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이 각각의 내용을 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행정 조직

연통제 조직: 국내외 업무를 연락하기 위한 비밀 행정 조직으로 각 도·군․·면에 정부 연락 책임자를 둠

교통국 조직: 정보 수집, 분석과 통신 담당

외교 활동

파리 위원회 설치

구미 위원회 설치, 한국 친우회 결성(미국, 영국, 프랑스)

인터내셔날 제네바 회의 활동(한국 민족 독립 결정서 통과)

군사 활동

군무부(군사 업무)·참모부(군사 지휘) 설치, 군사 관련 법령 제정

육군 무관 학교 설립, 한국 광복군 창설

독립운동 자금 마련

애국 공채 발행, 국민 의연금 모집

이륭 양행(만주)과 백산 상화(부산) 협초

교육·문화

독립신문 발행(기관지)

사료 편찬소 설치(한·일 관계 사료집 간행)

민족 교육 실시(안성학교와 삼일중학교 설립)


또한, 임시정부의 활동을 연도 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자

활동 

 1919. 4. 11

 임시의정원에서 대한민국 국호 결정

 1919. 4. 13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외에 선포

 1919. 7

 연통제 교통국 제도 실시

 1919. 9. 11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법 공포(7장 58조)

 1921. 10

 중국 호법정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

 1931. 4. 18

 삼균주의를 건국원칙으로 천명

 1932

 이봉창, 윤봉길 의거

 1940. 9. 17

 한국광복군 창설


일제의 식민지라는 위기 속에서도 임시정부의 다양한 활동은 국민들의 독립에 대한 염원에 응답해 주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우리의 자주권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그들의 마음 속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 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임시정부! 


다음 포스팅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시기별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갔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끝없는 위기 속 기회, 굳센 대한민국 임시정부 2부 포스트를 기대해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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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탠탠

    2017.04.06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있어요~♡임시정부가 계승되서 건국되었더라면좋겠었네요~♡ 역사의 시곗바늘을 돌려보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2. 장정욱

    2017.04.20 1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사합니다

  3. 2017.04.20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2017.04.20 2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2017.04.21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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