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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오늘은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5월, 이 계절에 ‘꽃다운 청춘’을 나라를 위해 바치고 순국하신 ‘박재혁’ 의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박재혁 의사 (출처: 독립기념관)


박재혁 선생은 1895년 부산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성장하였습니다. 부친 별세 이후 어려웠던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산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부산상업학교(구 부산상고 전신)에 입학하면서 최천택, 오택 선생 등을 만나 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최천택 선생이 남긴 글에 따르면 “암암리에 동지 규합에 힘을 기울여 박재혁, 오택 등 친구들과 매일 만나 독립운동에 대한 전도를 모의하였다”고 합니다.


1913년 선생은 ‘구세단’이라는 비밀 독립운동 조직을 만들어 독립운동 동지를 모으는 잡지를 발간했습니다. 구세단은 6개월만에 그 활동이 발각되었고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1주일간 모진 고문을 당한 후에 해체되었으나, 경남 지역 학생들에게 강렬한 항일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후 선생은 경북 왜관의 무역상에서 일하면서 700원이라는 거금을 조달하여 1917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습니다. 1918년 6월 부산으로 귀국했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상해로 간 선생은 중국과 싱가포르 등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편 여러 독립투사들과 교류하였고, 1920년 중국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참여하게 됩니다. 


선생은 상해에서 김원봉의 거사 지시를 받고 부산으로 귀국하여 최천택 등과 거사를 모의하였습니다.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인 조선총독부를 폭파할 생각이었던 선생은 일제 경찰들의 감시와 탐문이 강화되자, 하루빨리 의거를 실행하기 위해 목표를 조선총독부에서 부산경찰서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 부산경찰서 (출처: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


1920년 9월 14일 거사 당일, 선생은 중국인 고서상(古書商)으로 가장하여 폭탄을 짐 속에 숨기고 경찰서장 하시모토에게 진기한 고서가 있다고 하면서 면회를 신청하였습니다. 당시 하시모토는 경상도 경무부 관내 수석 서장으로서 가장 높은 고위직이자,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선생은 하시모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고, 하시모토는 이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절명하였습니다.


▲ 부산일보의 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 폭탄 투하 보도(1920. 9. 14) (출처: 독립기념관)


의거로 인해 체포된 선생은 부산지방법원에서 1920년 11월 2일 사형 언도를 받고 대구복심법원을 거쳐 경성고등법원에서 1921년 3월 31일 사형이 확정되었고,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선생은 의거 당시에 입은 부상과, 옥중에서 자행된 모진 고문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동지 최천택에게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는 자신의 뜻을 알렸고, ‘왜놈 손에 사형당하기 싫다’는 이유로 단식을 하다가 결국 1921년 5월 11일, 26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하였습니다.



▲ 부산시 어린이공원 내에 위치한 박재혁 의사상 (출처: 현충시설 정보 사이트)


5월 12일 토요일, 부산어린이대공원 박재혁 의사 동상 앞에서 ‘박재혁 의사 순국 97주기 추모제’가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및 3.1동지회 주관으로 거행됩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동지들과 함께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끝내는 자신의 고향에서 역사적인 의거를 성공시킨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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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며 했던 선서 -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며 했던 선서- 


"아직은 우리가 힘이 약하여 외세의 지배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세계 대세에 의하여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어 떠나가오."


- 12월 19일, 순국 직전 남긴 유언 -


2018년 4월 29일은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 86주년입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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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전 4월, 전 세계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킨 한 조선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바로 윤봉길 의사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위기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입증한 의열 투쟁이었습니다. 또한, 침체기에 빠져있었던 임시정부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온 사건이기도 합니다.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 86주년을 맞아 윤 의사의 이야기를 훈터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 드립니다.


▲ 윤봉길 의사 (출처: 독립기념관)


윤봉길 의사가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깨닫고 민족운동에 뛰어든 것은 열아홉 살의 나이였습니다. 윤 의사는 우연히 공동묘지 앞에서 글을 읽을 줄 몰라 부모의 묘지를 찾을 수 없었던 한 청년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 청년을 보며 윤 의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농민들의 무지를 극복하며 나라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윤 의사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실시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하는 등 활발한 농촌계몽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인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일제로부터 독립할 구체적인 행동을 실행하기로 결심했고, 1930년 중국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을 만난 윤 의사는 본격적으로 의열투쟁 방안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일왕의 생일을 기념해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축하식’을 홍구공원(홍커우공원)에서 거행한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드디어 기회를 맞은 윤 의사와 김구 선생은 치밀한 준비를 진행했고, 임시정부 한인애국단 가입 선서식을 통해 이 의거가 개인적 차원이 아닌 민족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 윤봉길 의사 (출처: 독립기념관)


▲ 한인애국단 입단 선언문 (출처: 독립기념관)


의거 당일인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 윤 의사는 행사에 모인 수많은 인파를 제치고 일제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를 처단했고 노무라, 우에다 중장, 주중공사 시케미스 등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침략 원흉들에 대한 역사적인 의열 투쟁이 성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에 대해 당시 중국 정부는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감격했고,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던 임시정부는 윤 의사의 의거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구공원 의거 (출처: 독립기념관)


의거 직후 현장에서 체포된 윤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아 1932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광복 이후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국내로 봉환되어 현재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으며, 정부는 윤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습니다.


오는 4월 28일,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6주년 기념식이 열립니다. 4월 28일 토요일에는 의거지인 중국 상하이 소재 루쉰공원(구 홍구공원)에 설립된 매헌기념관 광장에서, 29일 일요일에는 서울 서초구 소재 매헌기념관에서 각각 진행됩니다. 또한,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지역인 충남 예산에서도 29일 일요일 추모다례가 개최됩니다. 


▲ 지난 4월 13일 제99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기념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주요내빈이

삼의사 묘역에 헌화 및 분향을 하는 모습


“우리 청년 세대는 부모의 사랑보다도,

형제의 사랑보다도, 처자의 사랑보다도

일층 더 강의(强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 윤봉길 의사의 서신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4월 말, 윤봉길 의사의 민족애(愛)를 함께 기억해 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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