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406,166
  • Today | 1,401
  • Yesterday | 2,817


위정척사, 을사늑약, 항일의병


오늘은 이 세 가지 키워드에 관련된 인물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조선 말기의 을사늑약을 반대하며 의병을 일으켰던 면암 최익현 선생입니다. 일본의 국권 침탈에 맞서 고령의 나이로 의병을 봉기한 최익현 선생에게는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세 가지 키워드로 면암 최익현 선생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최익현 선생의 초상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위정척사


최익현 선생은 흥선대원군에 정면으로 맞선 인물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려는 목적에서 경복궁 중건을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최익현 선생은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며, 흥선대원군이 고종 대신 정치를 이끌어 가는 것에 대해 퇴출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게 됩니다. 이 일로 최익현 선생은 제주도로 2년 동안 귀양을 가게 되었지요.

 

이후 선생은 일본의 수교 요청에 대해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1875년 9월 20일, 강화도에서 ‘운요호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이 조선 해안을 연구하기 위해 왔다고 핑계를 대고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으로 침투하여, 조선 수군에 의해 방어적 공격을 받자 보복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조선에 물은 일을 가리킵니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책임에 대한 결과로 강제 수교인 강화도 조약을 맺게 하였습니다.



▲ 일본 헌병에 체포된 최익현 선생

(출처 : 한국근현대사사전)


당시 최익현 선생은 이를 두고 고민하던 왕과 내각들에게 수교에 응하게 되면 발생할 폐단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결국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을사늑약


최익현 선생은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주장하며 의병 활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최익현 선생은 1895년 8월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11월에 단발령이 내려지자 단발령을 적극 반대하였습니다.



▲ 최익현 선생의 대마도 일기

(출처: 독립기념관)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최익현 선생은 늑약의 무효화와 을사오적(박제순,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 처단을 주장한 청토오적소를 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어지러운 정세 속에 상소는 힘이 없었고, 결국 1906년 2월 선생은 직접 국권 회복을 위해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합니다. 


#항일의병


“지금 왜적들이 국권을 농락하고 역신들은 죄악을 빚어내

오백 년 종묘사직과 삼천리 강토가 이미 멸망지경에 이르렀다.

나라를 위해 사생(死生)을 초월하면 성공 못할 염려는 없다.

나와 함께 사생을 같이 하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최익현 선생의 의병진에 참여했고, 선생은 전라북도 태인에서부터 의병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원으로 입성하려 할 때, 우리나라의 장병들로 구성된 진위대와 대치하게 되었고, 같은 민족과 싸우는 것을 원치 않았던 최익현 선생은 의병진을 해산하였습니다. 선생과 의병 일행은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고, 대마도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최익현 선생은 “일본인이 주는 밥을 먹을 수 없다”고 단식하며 항거했다고 합니다. 의병을 일으켰을 때에도 고령의 나이였던 면암 선생은 1906년 11월 17일, 유배지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최익현 선생 동상 (출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최익현 선생은 강직한 성정으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았으며, 관직에 몸을 담았을 때에도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라가 흥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 우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 데 있으며 국권 없이는 모든 것을 잃는다.’고 말하며 평생 국권 회복을 위해 활동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 참고사이트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0565&cid=59011&categoryId=590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9328&cid=46623&categoryId=46623

한국근현대사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19700&cid=42958&categoryId=42958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강화’하면 전등사를 꼽는 이유는 단지 볼거리가 많은 문화재이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전등사는 강화에서 가장 큰 절이기도 하지만,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강화의 역사와 함께 숨가쁘게 달려온 곳이기 때문입니다.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되어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이곳은 1907년부터 1908년까지 강화의병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 전등사 정문


▲ 삼랑성


# 전등사

전등사 정문은 삼랑성문의 동문과 남문이 있습니다. 삼랑성,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합니다. 삼랑성문 오른쪽에는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지켜냈습니다.  강화 전등사가 걸어온 기념비적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물 제684호인 윤장대는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윤장대


가을공기를 마시며 바스락거리는 단풍을 보며 걷다 보면 대조루에 도착하게 됩니다. 대조루는 전등사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에 세운 누각식 건물입니다. 



▲대조루의 전경


대웅전은 조선 광해군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과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을 안정감이 있고 국화꽃으로 장식되어 더욱 우아하게 느껴집니다. 


▲전등사 대웅전


전등사 범종은 중국 송나라때 회주 숭명사에서 무쇠로 만든 중국종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기를 만들려고 부평 병기창에 가져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이곳으로 옮겨놓았는데요. 종의 정상부에는 두 마리 용으로 이루어진 종고리가 있습니다. 몸통 위 부분에는 8괘가 있으며,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8개의 정사각형을 돌렸습니다.


▲전등사 범종, 해설사 모습


▲전등사 범종


전등사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전국 6개군의 34사찰을 관리하는 본산(불교의 한 종파가 있어서 본부가 되는 큰 절)이었습니다. 


# 전등사 - 강화의병전투지

이동휘 선생은 1907년 7월 이전까지 참령으로서 강화진위대를 이끌어 강화도민의 신망이 높았습니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이 체결되어 한국군이 강제로 해산되자 분노한 선생은 전등사에서 해산군인 등 400여 명을 모아 ‘합성친목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반일집회를 열어 일반 군중을 고무시켰습니다. 


▲이동휘 선생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후 이동휘 선생은 군대 동지인 연기우, 김동수 등과 더불어 전등사에서 의병을 조직할 계획을 세우다 잡혀 옥고를 치렀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이후, 선생은 중국 상해로 넘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에 취임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체포된 이능권 선생 (출처: 독립기념관)


이능권 선생은 강화군 부내면 국정리 출신으로, 구한말 대한제국 군대의 육군대장이었습니다. 1905년, 선생은 고종 황제의 밀서를 가지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는 이준 열사 일행을 국외로 호송하는 임무를 완수였습니다.


1907년 정미7조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이능권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대동창의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친일파 밀정을 처단하고 강화 전역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습니다.


한편, 일본군은 의병의 항전이 이어지자 1908년 10월에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정규 병력을 강화로 투입하였습니다. 이능권 선생이 이끄는 부대는 전등사에서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죠. 거센 공세가 이어졌지만 이능권 선생의 부대는 화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격퇴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이후 이능권 선생은 강화도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군과 여러 차례에 걸쳐 전투를 벌이며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던 중 체포당한 선생은 1909년 11월에 순국하였습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전등사의 보호수인 은행나무


▲전등사에서 바라본 단풍


전등사를 돌아보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등사에 방문하여 과거 의병의 항일정신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자료> 

전등사 홈페이지 www.jeondeungsa.org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서비스

국가보훈처 사적지 찾아보기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43480&cid=42840&categoryId=42842

국가보훈처·독립운동사자료집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겨울이 벌써 이렇게 가까이 왔나 싶은 요즘입니다. 따스하게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이제까지 훈터 블로그에 많은 기념관이 소개되었는데요. 저는 지난번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이어 이번에는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전경 (출처: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우선 왕산 허위 선생은 1908년 전국의 의병들이 서울에 주둔한 일본군을 물리치려 계획했던 <서울 진공작전>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허위 선생은 그 이전인 1896년에도 의병을 규합하여 활동하였는데요. 해당 시기에는 고종의 명을 받아 의병을 자진 해산한 이후에 학문에 전념하였습니다. 이후 1907년, 선생은 해산 당한 관군까지 포함한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서울 진공작전을 위해 왕산 선생이 이끄는 선발대가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이르렀으나, 안타깝게도 미리 대비하고 있던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서울 진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도 허위 선생은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에서 의병부대를 이끌고 항일전을 재개하였습니다. 1908년 5월, 선생은 연천에서 일본헌병부대의 기습을 받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같은 해 9월 27일, 교수형을 당해 55세를 일기로 순국하였습니다.


이러한 왕산의 공훈을 기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고, 서울시에서는 1966년 왕산이 진격한 길을 따라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의 약 3km 구간을 ‘왕산로’로 명명하였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순국 의병장 (왼쪽에서 두 번째가 왕산 허위 선생)

(출처: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은 ‘경북 구미시 왕산로 28-33’에 위치해 있는데요. 왕산의 순국 101주년이 되는 2009년 개관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허위 선생의 우국충정을 기리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나라사랑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데요.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변의 왕산허위기념공원에는 생가 터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출처: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생가 터와 함께 유허비와 왕산의 묘소 역시 자리하고 있습니다. 

 


 

 

(출처: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왕산 허위 선생은 순국 직전 왜승(倭僧)이 명복을 빌기 위해 독경하려고 하자, “충의의 귀신은 스스로 마땅히 하늘로 올라 갈 것이요, 혹 지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어찌 너희들의 도움을 받아서 복을 얻으랴” 라고 하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고 합니다. 선생의 올곧은 의기와 품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평생 국권 회복을 위해 힘썼던 그의 우국충정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 참고사이트

왕산허위선생기념관 www.wangsanhuhwi.or.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웹툰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_ 강우규 의사
12월의 독립운동가 - 김치보 선생
12월의 전쟁영웅 - 감봉룡 경찰 경감
[제10기 훈남훈녀 기자단 팀미션 - 2조] 11월 11일, 유엔참전용사를 기억합시다
국가보훈처 동영상
문재인 대통령과 식사하고 올림픽도 직접 보고! 아이디어 올림픽에 지금 도전하세요!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