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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신한청년단과 한인애국단 등을 조직하여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의 의거를 지휘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김구 선생은 1940년에는 광복군을 조직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도 큰 활약을 하였는데요. 1948년에는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시도하며 평생을 민족의 화합과 번영을 위해 힘쓰셨습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에는 김구 선생의 일대기와 구한말에서 6.25전쟁에 이르는 시기의 독립운동을 하신 순국선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의 2층 전시실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평생을 독립을 위해 애쓴 김구 선생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또한 백범 김구 기념관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나라사랑큰나무GO 어플에서 보너스를 획득할 수 있는 장소인데요. 기념관에 방문하여 나라사랑큰나무도획득하고, 겨레의 큰 스승인 김구 선생의 일대기도 살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나라사랑큰나무GO 어플

안드로이드 다운받기 http://goo.gl/WenYGa

IOS 다운받기 http://goo.gl/8ncGvT

 

출처 - 나라사랑배움터 edu.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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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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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독립운동가’ 하면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이봉창 의사를 꼽을 겁니다. 하지만 이 세 분의 독립운동가 외에도 조국 해방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한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분들도 많은데요. 오늘은 그 분들 중 한 분인 조명하 의사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 조명하 의사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조명하 의사는 1905년 4월 8일 황해도 송화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6세 때부터 한학을 배웠고 보통학교에 입학해 신학문을 배웠습니다. 그가 보통학교에 다니던 때에 우리 민족이 총궐기한 3·1운동이 일어났죠. 그리고 일제는 만세 운동을 하던 우리 민족들을 처참하게 짓밟았습니다. 이를 지켜본 어린 조명하 의사는 조국이 처한 암울한 현실을 인식하고,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조금씩 키워나갑니다.


그러던 중 조명하 의사는 1926년 3월 황해도 신천 군청의 서기로 근무하게 됩니다. 당시 신천 군청은 일제의 산하기관이나 다름없었는데요. 그럼에도 그가 군청에 근무하게 된 이유는 일본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군청에 취직한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1926년에 순종의 인산일을 맞아 우리 민족이 또다시 대규모로 궐기하는 6·10만세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를 지켜본 조명하 의사는 조국독립에 강한 열망을 느끼게 되었고 본격적인 독립 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나이 22살, 한 집안의 가장이었으나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국내 생활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조명하 의사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면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요.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의 뜻을 실현시킬 만한 마땅한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가기 위해 중국과 가까운 대만으로 이동합니다.


1927년 11월, 대만에 도착한 조명하 의사는 대만인으로부터 보검도를 구해 기회가 찾아오면 바로 처단할 수 있도록 칼날에 독극물을 발라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 조명하 의사 의거지 (출처: 독립기념관)


1928년 5월, 조명하 의사가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옵니다. 대만에 주둔 중인 일본 군대를 검열하기 위해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며, 군사참의관까지 역임한 왕족 구니노미야 구니히코 대장이 육군특별검열사로 파견돼 온다는 사실이 대만 신문에 보도된 것이었습니다. 이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한 조명하 의사는 일본 정계의 거물이자 민족의 원흉인 구니노미야를 처단하기로 결심하고, 구니노미야가 일본군 검열을 마치고 기차편으로 대중역을 출발하기로 한 날을 의거 날짜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5월 14일 아침, 그는 보검도를 가슴에 품고 집을 나섭니다.


많은 인파 속에 숨어든 조명하의 눈앞에 여러 대의 차량에 수행원을 태우고 선두 무개차에 탄 구니노미야가 포착됩니다.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구이궁이 탄 차 뒤에 올라 그를 찔렀습니다. 하지만 차에 걸쳐진 휘장 때문에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위험을 감지한 무개차가 속도를 높였지만 조명하는 다시한번 힘껏 독검을 던졌습니다. 구니노미야가 깜짝 놀라 몸을 웅크려 검을 피하는 바람에 조명하 의사의 검은 구니노미야의 어깨를 스치고 운전수 등에 박혔습니다.


의거 후 조명하는 당당하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후 일본 군경들에게 피체되었습니다. 그는 그해 7월 18일 대만 고등법원 특별공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10일, 24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습니다. 정부는 조명하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한편, 조명하의 독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구니노미야 구니히코는 현장에서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단검의 독이 온몸에 퍼져 6개월 뒤에 죽었습니다. 


▲ 조명하 의사 동상 (경기 과천시 막계동 위치)


젊은 나이에 독립 의지를 품고 우리 민족의 원흉을 처단하는데 성공했던 조명하 의사. 그는 순국 직전, “나는 삼한의 원수를 갚았노라. 아무 할 말은 없다.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 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도 이렇게 의연할 수 있었던 건,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사랑할 줄 아는 참된 애국자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는 5월 14일 일요일은, 조명하 의사가 의거를 치른 지 89주년이 된 날입니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일, 꼭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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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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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건우

    2017.05.13 14: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죄송한데 이거 참고해서 동영상좀 만들어도 될까요???

  2. 김건우

    2017.05.13 14: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죄송한데 이거 참고해서 동영상좀 만들어도 될까요???


지난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임시정부를 운영하였던 백범 김구 선생을 포함한 요인들은 현재 효창공원에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분들이 여기에 모셔진 것일까요? 그 이전에는 어떻게 활용되던 곳이었을까요?


1. 정조, 총애하던 세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현재 효창공원자리에 효창묘를 조성하다


해당 지역은 조선 정조가 총애하던 세자의 이른 죽음을 슬퍼하며 조성한 묘역인 효창묘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후궁인 의빈 성씨의 첫아들이었던 문효세자는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병으로 죽고 말았으며, 이후 의빈 성씨 역시 병에 걸려 사망하였습니다.


문효세자를 효창묘에다 장사지냈다. 이날 새벽에 발인을 하였는데, 임금이 홍화문 밖에 나와서 곡하고 전별하였다. 다시 홍화문 안의 악차로 돌아와서 영여가 도성 밖에서 떠나기를 기다렸다. 임금이 흑립과 백포첩리를 다시 입고 묘소에 나가 최복으로 바꾸어 입고서 일을 지켜보았다. 장사가 끝나자, 임금이 친히 신주를 쓰고 초우제를 지내고 그대로 하룻밤을 지냈다. 『정조실록』 권 22, 정조 10년 7월 지살


정조가 친히 정자각의 상량문을 지었던 효창묘에 장사를 지내며 슬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섯 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정조는 이 이후에도 자주 묘를 다녀갔으며, 정조실록 전체적으로 20번에 걸쳐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실록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를 보이는데요. 순조와 헌종의 경우 각각 9번, 3번에 걸쳐 언급되고 있음이 확인됩니다. 세자의 생모 역시 이곳에 묻혔는데, 정조는 이곳에 많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이후에 순조의 후궁도 같이 묻히게 되었습니다.


2. 고종, 효창묘를 효창원으로 승격시키다


고종 7년인 1870년에 효창묘는 효창원으로 승격되었습니다.


효창묘 외에 원으로 승격시킨 각 묘소와 의소묘 이름을 빈청에서 당일에 회의하여 고쳐서 모두 단망으로 써서 들이라 『고종실록』 권 7, 고종 7년 12월 신미


이는 고종 2년에 이전까지 반란 세력의 대표자로 여겨졌던 정도전의 공로를 회복시켜주고 시호를 추증한 것처럼, 다양한 방면으로 선조(先祖)들의 행적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정책들을 가졌습니다. 효창원은 계속 묘소로서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3. 효창원, 공원 용지로 책정되다


청일전쟁 당시 일제가 이곳 근처에서 야영하면서부터 효창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효창원은 다른 운명을 맞게 됩니다. 1924년, 효창원은 공원 용지로 책정되었고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왕조의 유적들이 훼손되었습니다. 도시 계획상의 공원이 된 것은 1940년의 일이며, 1944년 효창원은 고양시의 서삼릉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 서삼릉의 경우 효창묘가 효창원으로 승격되던 해인 1870년에 같이 소현묘에서 소경원으로 개호된 곳이었습니다.


4. 광복 직후, 다시 묘소로 사용되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김구 선생은 일본에 있던 박열에게 부탁하여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골을 환국시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도착한 유골을 태고사에 봉안하고 장지를 구하였습니다.* 장지는 백범이 직접 찾아놓은 효창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백범은 장례식을 한성이 생긴 이래 처음 보는 장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산(因山) 때보다도 더 큰 대성황을 이루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골을 위한 가묘를 만들고, 그 아래에 차례로 3의사를 모셨고, 이후 1949년 국민장으로 치러진 백범의 유해도 이곳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때의 태고사는 삼각산의 태고사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한 지금의 조계사를 칭합니다.) 


<3의사의 묘 : 북쪽 높은 동산 위에 있다>


<백범의 묘소>


이후 1960년에 효창운동장, 1969년에 원효대사의 동상, 같은 해 10월 반공투사위령탑이 건립되었습니다. 효창공원은 1989년 사적 제330호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고, 2002년에는 백범김구기념관이 문을 열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공원 안의 원효대사 동상>


<반공투사위령탑>


<웅장한 백범 기념관의 모습, 안에는 백범의 유물들이 여럿 남아있다>


다시 4월, 효창공원을 걸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였던 분들의 뜻을 생각해봅니다. 이봉창 의사 동상, 백범 기념관, 임정 요인의 묘와 같이 임시정부를 떠올릴 수 있는 효창공원은 일상 속에서 그분들을 뵐 수 있는 귀중한 장소입니다. 또한 효창공원 내에는 시민을 위한 공간인 효창운동장도 있는데요. 화창한 봄날에 가족들과 함께 산책하며 우리나라의 역사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요.


<광복 70주년 기념광장 : 효창공원은 이렇게 시민들의 참여가 돋보이는 곳이다>


<이봉창 의사 동상>


<안의사의 가묘 : 아직 돌아오지 못한 독립의 영혼>


5. 참고문헌


『正祖實錄』, 『高宗實錄』

문화재청 조선왕릉 누리집

http://royaltombs.cha.go.kr/tombs/selectTombInfoList.do?tombseq=155&mn=RT_01_11_0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은경, 『정조, 나무를 심다』, 북촌, 2016


도진순 주해, 『백범일지』, 돌베개, 1997.


배경식 주해,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 너머북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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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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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봄 그리고. . .

    2017.04.21 1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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