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077,333
  • Today | 1,625
  • Yesterday | 3,199


▲ 독립운동가 권기옥


지난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던 이상정 선생을 기억하시나요? 이상정 선생 옆에 있던 여자분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이상정 선생의 아내였던 독립운동가 권기옥 선생(1901~1988)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녀가 비행사의 꿈을 갖게 된 것은 16세 되던 1917년 서울 여의도의 비행장에서, 미국의 곡예 비행사인 스미스(A.Smith)가 선보인 곡예 비행을 보고 난 뒤부터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권기옥 선생은 독립을 향한 열망이 대단했는데요. 1919년 3.1운동 당시 19살의 권기옥 선생은 학교 주변에 형사들이 깔렸음에도 불구하고 학우들과 함께 거리로 뛰어나가 만세운동을 펼쳤고, 이 일로 유치창에 감금당했습니다. 유치장에서 풀려난 뒤에도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락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고 그 자금을 임시정부로 송금하는 등의 일을 맡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일제의 감시가 점점 심해지자 권기옥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권기옥 선생은 독립전쟁을 위한 군관 양성을 추진하고 있던 임시정부의 추천을 받아 중국의 변방인 운남육군항공학교에 제1기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비행기 타는 공부를 하여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리라” 

항공학교에 입학한 이후, 권기옥 선생은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겠다는 포부를 가집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망명한 한국의 여학생이 조종사가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선생은 일본으로부터 암살 시도에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권기옥 선생은 중국 공군에서 복무하며 대령의 위치까지 오르며 무려 7,000여 시간의 비행 시간을 기록했는데요. 


권기옥 선생은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편성과 작전’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비행기를 지원받아 일본 천황궁에 폭탄 투하 작전을 수립했지만, 그 사이 일본이 패망하여 선생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광복 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이 되어 공군 창설에 이바지합니다.


▲ 공군 창군 60주년 기념탑


그리고 1949년 10월 1일, 그녀가 비행사의 꿈을 갖게 된 여의도 비행장에서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됩니다.


▲ 여의도 비행장이었던 여의도 공원


과거 여의도 비행장이었던 그곳은 현재 여의도 공원입니다. 여의도 공원에서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넘어가는 곳에는 ‘여의도 비행장 역사 터널’이 있습니다. 여의도 공원에는 공군 창설 60주년 기념탑과 광복 후 임시정부 요원들을 태웠던 수송기가 있습니다.


▲ 광복 후 임시정부 인사들이 탔던 수송기


▲ C-47 수송기 측면 모습


C-47 수송기는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름의 한낮, 여의도 공원에는 많은 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전시된 수송기와 기념탑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은 누군가의 꿈이자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름보다 뜨거웠던 순국선열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 사실을 잊지 않고 매 순간, 장소마다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권기옥 선생은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는 타이틀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꿈을 이루고 독립운동을 했을 뿐입니다. 독립운동가, 비행사라 앞에 ‘여성’이 붙는 것, 또 누군가의 ‘아내’로 불리는 것은 권기옥 선생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던 그녀의 용기는 남녀노소 불문,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번 기사를 작성하면서 제 스스로가 얼마나 핑계를 많이 대고 있는지를 느꼈습니다. 권기옥 선생은 열여섯 살에 꿈을 가져 꿈을 향해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학교 방학 기간에 취재를 진행해서 그런지 느낀 것이 더 많았습니다. 이제 크고 작은 개인적 어려움에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딛고 일어나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또한 현실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나 자신과 꿈과의 거리를 좁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운 여름날, 많이 지치지만 끊임없이 힘내길 바라며 이번 기사를 마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녕하세요, 훈터 여러분. 저는 이번에 청남 이상정 선생의 고택을 찾았습니다. 이상정 선생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의 형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비행사 권기옥선생의 남편입니다.
이상정 선생은 1864년 대구에서 태어나 1920년 초반 평안도에서 교사로서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항일운동을 하던 중,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하북성 등지에서 풍옥상군 참모부의 막료로 근무하였습니다. 또한, 1940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외교연구위원과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서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며, 1945년 해방 이후 중국지역의 한인의 권익보호와 귀환에 힘쓴 분입니다.
그리고 올해, 국가보훈처는 청남 이상정 선생을 2017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습니다. 제가 4월의 독립운동가 이상정 선생을 기리고자 떠난 곳은 그의 고향 대구에 있는 ‘근대문화골목’이었습니다.
대구의 근대문화골목(대구 중구 골목투어 제2코스 中)은 동대구터미널에서 설화명곡역 방향으로 행하는 지하철 1호선(동대구역)을 타고 반월당역에서 하차하신 후 현대백화점을 지나 뒤편 골목으로 가시면 쉽게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 대구 근대문화골목(골목투어 제2코스) 입구 안내

 

근대문화골목 입구에는 위와 같은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등 약도를 통해 근대문화골목을 즐길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습니다. 이상정 선생의 고택은 안내판에서 찾을 수 없지만, 안내판 바로 맞은편에 있는 음식점이 바로 이상정 선생의 고택입니다.

 


▲ 이상정 선생 고택 입구

 

이상정 선생의 고택임을 알리는 안내가 벽면에 걸려 있습니다. 이상정 선생의 일대기가 설명되어 있는데요.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상정 선생을 ‘베일에 싸인 남자’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이 남자의 인생이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독립운동을 할 때 이연호(李然皓)라는 가명을 썼기 때문이다.’

 

이상정 선생은 중국에서 ‘이연호’ 혹은 ‘이직(李直)’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광복군 창설 지원, 무장투쟁 지휘, 중화민국 육군 소장 등의 위치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했습니다.


▲ 이상정 선생 고택

 

현재 이상정 선생의 고택은 음식점으로 운영 중이며, 선생이 겸손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만큼이나 고택 또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어느 누구 하나 가림 없이 맞이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상정 선생의 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동생 이상화 시인의 고택이 있습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아래와 같은 고택의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 이상화 시인 고택 입구

 

이상화 시인이 그의 말년을 보내며, 마지막 작품 ‘서러운 해조’를 탄생시킨 이 고택은 이상화 시인의 일대를 전시하는 것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이상화 시인 고택

 

이상화 시인의 고택은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을 맞이하던 사랑방, 감나무가 있는 마당, 잘 정돈되어 있는 안방 등 이상화 시인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상화 시인의 고택은 한때 지역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대구지역의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들의 ‘상화고택보존운동’을 전개함으로써 40만 명의 시민이 서명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보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여 고택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유족과 문인들이 이상화 시인에 대한 유물과 자료를 기증하여 지금의 이상화 고택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정 선생과 이상화 시인의 고택처럼 잘 보존되어 있는 고택은 드물다고 합니다. 이상화 시인의 고택이 지역개발로 인해 겪은 위기를 극복한 사례처럼 우리 고장 독립운동가 혹은 호국영령의 터전을 지켜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족이 모두 독립운동을 했던 이상정 선생과 권기옥 선생, 그리고 이상화 시인. 한 마음 한 뜻으로 이루어낸 독립이 더욱이 소중한 4월. 우리가 오늘날 이상화 시인의 아름다운 시 한 소절을 읊을 수 있기까지에는 이상정 선생과 같은 독립운동가의 구국활동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4월의 독립운동가 이상정 선생, 그가 품었던 애국심만큼 그를 기리는 마음이 모여지는 한 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들녘에 봄 햇살 내려앉은 대구에서 따스한 소식 올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청남 이상정 선생은 1896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의 집안은 가족 모두가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던, 이른바 독립운동가문이었습니다. 또한 이상정 선생은 일제 강점기 3대 저항시인 중 한 분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남긴 이상화 시인의 형이기도 합니다.


▲ 청남 이상정 선생


이상정 선생은 1920년대 초반에 평안도 등에서 교사로 재임했습니다. 그러던 중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하게 되는데요. 이후에는 중국 하북성 등지에서 풍옥상군 참모부의 막료로 근무하면서 육영사업을 하며 독립 운동에 가담, 활동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권기옥 선생을 만나 결혼을 합니다. 권기옥 선생은 학생시절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며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한국 공군 창설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공군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 이상정 선생 가족사진 (가운데가 권기옥 선생)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되고 당시 국민정부의 초청으로 충칭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을 지내고 있던 이상정 선생은 1938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발을 담구면서 본격적으로 광복군 창설 활동에 기여함과 동시에 대중(對中) 외교통으로 활약합니다. 1년 뒤 임시정부 외무부 외교연구위원과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동하게 되죠.


▲ 광복군 창설식 당시 사진


당시 중국은 광복군이 중국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한국광복군 행동준승 9개 조항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상정 선생은 한중 간 평등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중연대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한국광복군 행동준승 9개 조항 취소 등을 담은 ‘광복군에 관한 건’의 대표제안자로 나섰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임시정부는 중국 측이 요구한 9개 조항 중 일부만을 받아들이는 선에서 경제적 지원을 약속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말기의 주요 업적이기도 했습니다.


1945년, 한민족 모두가 그토록 고대하던 독립을 맞이하면서 평소 염원하던 ‘일본군 타도’ 목적을 달성한 선생은, 중국 지역에서 중국인들의 박해로부터 한국 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광복을 맞이한 지 2년 째, 모친상을 당한 이상정 선생은 급히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상심이 너무 컸던 탓일까, 선생은 돌연 뇌일혈로 쓰러져 별세하였습니다. 향년 52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건국훈장 독립장(출처: 대한민국 상훈)


‘만리장천 떠나는 기선소리 잠든 나를 깨워 고향가자네’

이상정 선생이 중국 망명 시절 부모와 고향, 나라를 그리워하며 썼던 <망향가>의 구절입니다.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먼 타지에서 보내며, 항상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평안을 위해 애쓴 청남 이상정 선생. 그의 이름은 조금 생소할지라도, 지금부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일 것입니다.


▲ 이상정 선생이 망명 초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 <망향가>

(출처: 소남이일우기념사업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제72주년 광복절 기념 '태극기 완성하기' 이벤트
제73회 보훈퀴즈의신
아직 전하지 못한 5,469개의 훈장,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습니다!
[보비스 10주년] 재가복지서비스와의 만남, 내 인생 가장 행복한 해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