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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케 한 죄

무고한 대한의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죄”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만들어진 뮤지컬 ‘영웅’에 나오는 ‘누가 죄인인가?’ 노래 가사의 일부입니다. 이 노래는 실제 안중근 의사가 재판 과정에서 밝힌,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는 공연으로도 만들어져 그의 애국심과 용맹은 후대에까지 전해집니다. 이렇게 위대한 안중근 의사를 도심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바로 경기도 부천시에는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지하철 7호선 부천시청역 근처에 위치한 안중근공원은 시민들의 도심 속 휴식공간이자, 근대사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안중근공원의 입구


‘고국으로 돌아온 대한제국의 영웅(안중근공원이 세워지기까지)’


▲안중근 의사의 동상 from 하얼빈


원래 안중근 의사 동상은 지난 2006년 1월 16일, 안중근 의사의 순국 96주기를 맞아 하얼빈시 중심가 ‘중양다제(中央大街) 광장’에 건립되었습니다. 이 동상은 안중근의사숭모회와 재중국 사업가 이진학 회장 등 민간차원에서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리며 세운 동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얼빈에 있어야 할 이 동상이 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일까요? 여기, 안중근 의사 동상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상제막식을 하고 11일 후, 중국중앙정부는 외국인 동상건립을 불허한다는 방침을 내세우며 안중근 의사의 동상 건립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하얼빈시 지방정부와 협의를 한 상태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상은 천으로 가려졌고, 중국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근처 백화점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으로의 송환 역시 부지확보 등의 문제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 10월 26일, 부천시의 ‘중동공원’이 동상의 부지로 정해집니다. 부천시 측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현장인 하얼빈에서 돌아온 안 의사의 동상을 하얼빈의 자매도시인 부천에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동상 유치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후 ‘중동공원’은 ‘안중근공원’으로 개칭되었고, 안 의사의 동상은 이곳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늠름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에서 그분의 애국심과 독립을 향한 투철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중근의사가 들려주는 그분의 인생이야기’


▲이 조형물에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중근공원에 들어서면 큰 조형물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조형물은 안중근 의사의 인생을 그리고 있는데요. 사실적인 철제 부조물과 조형물에 새겨진 설명은 안 의사의 생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사진 속의 소녀들이 바라보고 있는 손 모양의 구조물은 안중근 의사의 상징인 ‘단지혈맹’을 잘 나타냅니다. 그럼 그 내용을 볼까요?


그분은 정말 우리 민족만을 위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꿈이 있다면 조국의 독립이었고, 그것이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안 의사는 국가의 힘을 키우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삼흥학교’, ‘돈의학교’ 등의 학교를 운영하며 교육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또한, 대한의군 참모 중장으로서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의병들을 양성하며 무장독립투쟁에도 힘썼습니다. 


▲이토를 저격하는 안중근의사.


또한, 안중근 의사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Корея ура! Корея ура!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 대한 만세!)”


당시 하얼빈역에는 그분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7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3발, 그외 일본 측 인사 4명은 각각 1발의 총탄을 맞았다고 전해집니다. 저격 시 사용했던 벨기에 FN사의 ‘브라우닝 M1900’ 권총도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함께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중근의사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안중근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작품들을 새겨놓은 비석들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대부분이 1910(경술년) 2월부터 3월 26일 순국 직전까지 쓰여진 것으며, 모두 200여 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 의사는 어려서부터 배운 한학을 토대로 선현들에게 듣고 배운 문장들을 독창적으로 인용하여 촌철살인의 경구로 구성해냈습니다. 이 유묵 작품들에는 모두 낙관 대신 단지혈맹의 상징인 왼쪽 수인이 찍혀있습니다. 그분의 글귀와 시구에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곧은 기개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안중근 의사의 주옥같은 글귀들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황금백만불여일교자(黃金百萬而不如一敎子)

- 황금백만냥도 자식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국가의 독립을 위해 교육을 중요시 여겼던 안중근 의사의 뜻을 알 수 있다.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교육의 으뜸이 독서임을 강조했던 안중근의사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던져라.


▲안중근 의사의 독립에 대한 가치관과 기개를 엿볼 수 있다.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안중근 의사의 뜨거운 애국심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진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여한이 없겠노라.”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에 한 유언


안중근 의사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오직 우리 민족과 독립만을 생각했고, 안타깝게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순국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 덕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고, 현재 우리가 자유로이 생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한 그루의 벚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줄기가 힘차게 서 있을 수 없고, 나무줄기가 없으면 나뭇가지가 하늘 높이 솟아날 수 없고, 나뭇가지가 없으면 봄에 아름다운 벚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과거에 흘렸던 피와 눈물을 딛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며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아름답게 꽃피우는 것이야말로,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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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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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벚꽃엔딩~

    2017.03.29 1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 잘 봤습니다~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 동상이 부천시로 옮겨지게 된 사실도 기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웹툰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안중근. 민족의 공적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여 조국의 독립을 앞당겼던 도마 안중근 의사.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는 그날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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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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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터 여러분은 1909년 10월 26일에 하얼빈역에 울려 퍼진 총성의 주인공을 아시나요? 네. 바로 안중근 의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의사는 대한민국 국권을 강탈한 원흉이자 동양의 평화를 위협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조국 독립의 염원을 담아 외쳤던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이 간절한 외침은 당시 하얼빈역을 가득 채웠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의 의거 장면


의사의 세 발의 총탄에 치명상을 입은 이토 히로부미는 기차로 돌아가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사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토 히로부미는 역사의 뒤안길로 비참한 퇴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사용한 총과 이토 히로부미의 총상을 그린 인체 도해도(출처: 독립기념관)


안중근 의사는 의거 후에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 송치되어 일본인 판사, 일본인 검사, 일본인 변호사, 일본은 통역관, 일본인 방청인 등 오로지 일본인들로만 구성된 법정에서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에 이르기까지 총 6회에 걸쳐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의거 직후 찍은 의사의 전신 사진(출처: 독립기념관)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이에 동요하지 않고 재판장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했다고 밝히며, 이토의 15가지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재판정을 충격에 빠뜨리게 되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6.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8.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의사의 당당하고 논리 정연한 발언은 재판장의 분위기를 바꾸었고,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꾸게 되었으며, 세계 여론이 일본에 등을 돌리게 했습니다. 그러자 일제는 졸렬하게도 서둘러 이후의 재판을 비공개로 바꾸고, 결국 그들이 원하던 대로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에게 한 통의 편지와 함께 수의 한 벌이 도착합니다. 바로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보낸 것인데요. 그녀는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쓴 편지 -


이러한 어머니의 말씀에 의사는 이후 항소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감옥에서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의 저술에 온 힘을 쏟게 됩니다.


▲의사가 옥중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


‘안응칠역사’는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이고, ‘동양평화론’은 그가 거사를 하게 된 이유를 밝힌 책인데요. 재판이 비공개로 이루어지자 일본인들에게 거사의 이유를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구구절절 그 이유를 밝혀서 목숨을 구걸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싫었던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후세에 거사의 이유를 남기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는 이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 저술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사형 집행 연기를 요구했지만 결국 예정대로 사형이 집행되었고, 하얼빈의 영웅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게 됩니다.


▲순국 5분전에 어머니가 지어 보낸 옷을 입고 있는 안중근 의사(출처: 독립기념관)


올해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차가운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지 10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일제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안중근 의사. 일본인만으로 이루어진, 너무나 불리했던 재판정에서도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늘 당당했던 안중근 의사. 우리가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말과 글을 쓰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 수 있게 해 준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을 반드시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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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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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사는 윤회한다

    2017.04.11 1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6일은 또다른 한명의 반민족 친일 부역자가 총탄에 간 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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