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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한지 벌써 67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6.25전쟁이란 예전의 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들의 아픔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인데요.

저희 2조는 지난 6월 23일, 6.25전쟁을 바꾼 위대한 작전, 인천상륙작전을 찾아 떠났습니다.


전세를 역전시킨 전투는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회자(膾炙)됩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미드웨이 해전’이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많은 전투와 작전이 펼쳐졌는데요. 영천지구 전투와 다부동 계곡 전차전, 낙동강방어선 전투 등 많은 전투들이 있었습니다.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 인천상륙작전은 우리 근대 역사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지는 작전입니다. 


▲ 맥아더 동상 앞에 있는 훈남훈녀 온라인 기자단 기자들


 - 인천상륙작전, 왜 인천을 선택했을까?


6.25전쟁이 발발한 후 서울은 3일 만에 함락되었습니다. 북한군은 빠른 속도로 남진해왔고, 대한민국은 낙동강을 최후의 보루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에 유엔군은 북한군의 허리를 쳐서 적을 섬멸한다는 계획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전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북한군의 정예 군단들이 남부전선에 모두 집중되어 있었고, 국군과 유엔군에게는 전세를 전환시킬 전환점이 필요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유엔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는 여러 전선들을 시찰하며 인천상륙작전 즉,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를 구상해냈습니다. 하지만 이 작전의 허가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성공확률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국제연합군 지휘부에서는 인천 앞바다는 조수 간만의 차가 매우 심하기 때문에 상륙작전을 할 수 있는 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이 작전에 반대했습니다. 이때를 놓치면 다음 한 달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인천앞바다 전경

(인천앞바다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크기로 유명합니다.)


또한 상륙 가능 날짜에도 밀물이 꽉 들어차는 아침과 저녁 두 차례 각각 3시간 정도의 제한된 시간 내에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또, 인천항은 대규모 상륙함대가 자리 잡기에 협소할 뿐만 아니라 항구에 이르는 해상 접근로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아군뿐만 아니라 적도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의표를 찔러서 공격하면 전략적 기습효과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군의 허를 찔러 보급로를 차단한다는 목표를 갖고 작전은 1950년 9월 15일에 시행됩니다!


마침 인천을 수비하는 북한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고, 전폭기와 포병대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게 됩니다. 방심한 적의 뒤를 쳐서 전세를 역전시키겠다는 맥아더 장군의 혜안이 딱 맞아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 인천 수복 후 깃발을 꽂는 국군과 연합군의 모습을 나타낸 동상

 

 -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에서 숨 쉬는 역사를 마주하다.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은 이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입구로 들어서 가장 먼저 야외전시장을 맞닥뜨릴 수 있었는데요, F-86F 전투기와 3/4톤 카고트럭을 비롯해 당시 사용되었던 대형 장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상륙작전에 임했던 미 해병대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조형물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전시관 앞에 있는 해병대 상륙정 모형


전시관 내부로 들어서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면 자유수호의 탑이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탑 앞쪽에는 세 명의 군인이 소총을 들고 앞으로 돌격하는 모습이 동상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호기로 가득 찬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참전용사의 정신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 웅장하게 뻗어있는 자유수호의 탑


기념관 실내에 마련된 전시관에서는 보다 자세한 인천상륙작전의 과정과 참전용사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전시품들은 실제 사용되었던 기증품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인천상륙작전에 임한 용사들의 복장 및 장비도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가지런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전시되어있지만, 전쟁 중 참전용사들이 겪었던 치열했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전쟁에서 사용했던 무기와 각종 기록물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글과 영상으로 접했던 인천상륙작전을 기념관 곳곳을 둘러보며 더 가깝게, 그리고 생동감 있게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 인천상륙작전 이후 받은 훈장들


 - 자유공원에서 만난 더글러스 맥아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인천 자유공원에 들어서면 근엄하게 서 있는 맥아더 장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많은 명언으로, 또 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 장군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자유공원은 인천 차이나타운 뒤편 응봉산 일대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입니다. 구한말 개항의 물결 속에 당시 인천의 제물포항은 외국 열강의 자본과 사람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되었고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만국공원이 고종 25년(1888년)에 세워졌습니다. 서울 최초의 근대공원인 탑골공원보다 9년 앞서 세워진 근대공원이었죠.


6.25전쟁 중에 자유공원의 자리가 바로 인천상륙작전 중의 첫 상륙지였습니다. 이곳은 1957년 역사 사적지로써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공원에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도 볼 수 있었는데요.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을 기획하고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동상


여러분, 7월 27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시나요? 작년 7월 27일에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했었는데요.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바로 7월 27일은 유엔 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희생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유엔군 참전의 날’입니다.

67년 전 한국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엔의 여러 국가들의 지원과 함께 용감한 우리의 국군 용사들이 함께 싸워낸 끝에 대한민국을 지켜냈습니다.


현재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 바로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지켜준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 또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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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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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100년이 넘는 근대사를 겪어온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천의 창영초등학교는 긴 시간 동안 선배들과 후배들의 강한 정신력으로 3.1독립만세운동을 통하여 애국정신을 온몸으로 나타내주었고, 그들의 귀한 노고를 보존해왔습니다. 그리고 1965년, 위급한 상황에서 희생정신을 발휘한 호국영웅이 흉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故 강재구 육군 소령의 이야기를 훈터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인천 창영초등학교 입구 및 현관 모습


1907년 5월 6일 개교한 창영초등학교는 현관의 모습 또한 한국의 초기의 근대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주고 있었음은 물론, 건물의 보존 상태도 양호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앞에 큰 운동장이 있었고, 왼쪽 언덕을 올라가면 현관과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 기념비가 있었는데요.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으로 시작된 독립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가는 과정에서, 인천에서는 그 당시 유일한 공립보통학교(현 인천 창영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항일 동맹휴학을 일으키고 일부 주동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야간에 교무실과 경찰서 간의 전화선을 절단한 이유로 주동 학생들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광복 후에도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지내게 되는 등 그저 그들의 희생이 잊혀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애국심 발휘의 전통을 살리고자 당시의 고증자료 수집과 재판 기록문을 압수, 그리고 선배님들의 뜻깊은 애국정신을 길이 빛내고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나라를 사랑하자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서 1995년 3월 6일 총동창회에서 세운 기념비라고 합니다.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 모습


그리고 기념비의 옆에는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강재구 육군 소령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강재구 육군 소령 흉상 모습 및 비석


故 강재구 육군 소령은 1937년 인천에서 출생하여 인천 창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전 참전을 목전에 둔 1965년 10월 4일 순직하였습니다. 강재구 육군 소령은 1965년, 베트남 전쟁 파병이 결정되자 자원하여 맹호부대 제1연대 제3대대 제10중대장이 되었는데요. 출발 직전, 부하들의 수류탄 투척훈련 중 한 사병이 앞으로 던져야 할 수류탄을 뒤로 추켜들다가 놓침으로써, 그 수류탄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사병들 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강재구 육군 소령은 터지는 수류탄을 온몸으로 끌어안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짧은 순간, 강재구 소령은 수류탄을 끌어안아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고 산화했습니다. 그의 나이 28살에 불과했던 때였습니다. 만약 그 수류탄이 폭발했더라면 수많은 사병들이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서 부하들의 생명을 구해낸 영웅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이 우리가 존경하고 기억해야 할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강재구 육군 소령을 흉상으로 만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알리는 학교의 모습도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기사를 마치며, 우리가 추모하고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기억에서 잊혀지는 일은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나라를 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는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국민과 자라나는 아이들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을 위한 시작은, 과거 3.1운동 당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목놓아 외쳤던 순국선열과, 강재구 소령처럼 남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호국영웅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에서부터일 것입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기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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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인천상륙작전>으로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월미도!


6•25전쟁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그날을 기리고자 매년 9월 월미도에서는 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조국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던 저도 이번 행사에 직접 참여해 보았는데요. 낯설게만 느껴졌던 월미도를 가보니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 속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지시합니다. 이후 상륙작전 구상은 비밀리에 추진되었고 최적의 날짜와 지역을 검토합니다. 인천해안에서 상륙작전이 가능한 만조일은 9월 15일, 10월 11일, 11월 3일과 이날을 포함한 전후 2~3일뿐이었습니다. 10월과 11월은 기후관계상 상륙하기에 늦은 시기로서 가장 적절한 시기는 9월 15일이었던 거죠.


인천상륙작전은 총 2단계로 진행되었는데, 제1단계는 월미도 점령이었고 제 2단계는 인천 해안이 교두보 확보였습니다. 작전에 앞서 상륙부대는 양동작전을 전개합니다. 즉, 북한군의 주의를 분산시키고자 9월 5일부터 평양부터 군산까지 폭격을 실시하였고 9월 12일부터 관문인 월미도를 고립시키기 위한 폭격을 시작합니다. 월미도 산 정상부의 높이가 낮아질 만큼 강력한 폭격이 삼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모든 생명이 사라진듯한 척박한 땅 위에는 기적적으로 7그루의 나무가 꿋꿋이 서있습니다. 그 나무들은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 '영원한 친구나무', '평화의 어머니 나무' 등 각자의 이름표를 가진 채 지금도 월미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후 맥아더 사령부는 제7합동기동부대와 미 제7함대를 주축으로 한 유엔군 261척의 함정과 미 제 10군단 예하 한국군 2개 연대를 포함한 미군 2개 사단 등 총 7만 여명의 병력이 9월 15일 인천으로의 상륙에 성공합니다. 월미도는 이렇듯 전쟁의 아픔과 승리의 기쁨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 섬입니다.


매년 월미도에서 열리는 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는 3일 동안 진행되는데요. 이번에 66주년을 맞이하는 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는 팔미도 등대 점등행사를 시작으로 하여 수 천명이 월미도에서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 참석합니다. 




기념식이 끝난 뒤 드넓게 펼쳐진 월미도 바다 위에서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가 펼쳐졌습니다. 단연 이 행사의 꽃은 바로 그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담아낸 재연행사일 것입니다. 해군 대잠헬기인 링스헬기가 하늘을 누비며 적 잠수함을 탐색하고 해병대 요원들의 물결을 가르며 월미도 육지로 올라가 적들을 소탕하고, 서울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등 30여분의 재연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는 안보그림 그리기 대회, 해병대 체험, 각종 사진전이 밤 9시까지 열렸습니다.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니 인천시민 외에도 국민 모두가 한번쯤은 다채로운 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에 참여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월미도를 가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월미도 공원입니다. 쥬라기 공원을 연상시키는 울창한 숲과 크기를 자랑하는 월미공원에는 월미전망대가 있습니다. 이곳에 오르면 인천항과 인천대교는 물론 서해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산책로를 걷다 보면 6•25전쟁 당시 살아남은 7그루의 나무를 만날 수 있으며 각종 전승비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월미도는 간척사업으로 육지로 변모해 인천 아무 곳이든 버스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온몸을 바쳐 희생하신 6•25 영웅 분들을 기리고 도시와 떨어진 자연 속에서 힐링도 할 수 있는 월미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한번쯤은 가봐야 할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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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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