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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2017년, 광복 72주년의 해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가서 ‘대한민국의 태동’이라는 주제의 제1전시실을 관람하였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역사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근대 태극기


▲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동 도표


입구에 들어서자, 다양한 시각자료들이 있어서 쉽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를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3.1운동을 빼놓을 수 없지요.


▲ 국내 독립운동


#3.1운동과 독립의 열망


3.1운동은 한민족 각계각층이 참여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 독립운동입니다.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일제는 군대를 동원하여 평화적으로 진행된 만세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습니다.


3.1운동 이후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이 세운 여러 임시정부가 통합하여 1919년 9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 3.1운동 당시 군대를 동원했던 일본


#대한민국 임시정부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 조직과의 연계 활동과 외교 활동에 주력하였지만, 일제의 탄압과 열강의 외면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1931년 백범 김구 선생은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이후 이봉창 의사의 일왕 폭살 의거,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 공원 의거로 침체되어 있던 국내외 독립운동에 활기를 띄게 되었지요.

그러나 일본의 탄압 또한 심해졌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 난징, 창사를 거쳐 충칭으로 옮겨가는 힘겨운 시기를 겪게 됩니다.


3.1운동 이후 국내 각 분야에서 한국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민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 국내 독립운동 자료와 민족운동 자료


#국내의 민족운동


교육을 확충하기 위한 학교 설립 운동, 문명 퇴치를 위한 문자 보급 운동, 한글 운동, 언론 운동, 일제의 민족 차별을 거부한 청년-학생운동, 어린이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소년 운동, 농민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농민운동, 인력 수탈에 항거한 노동운동, 경제 자립을 추구한 물산장려운동 등이 일어났는데, 이 모든 운동은 자주독립을 위한 목소리였습니다.


▲ 독립신문 자료


#국외 독립운동


독립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중국에서는 이상설 선생을 중심으로 설립된 서전서숙에 이어 명동학교가 민족 교육에 힘썼고,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이 양성되었습니다. 홍범도, 김좌진 장군의 부대는 봉오동과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 부대를 격파하였고, 1940년 임시정부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여 국내 진공을 준비하였습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미외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의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하였고, 김규식 선생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파견되어 일제 식민지 통치의 실상을 폭로하고 독립을 호소하였습니다.


독립에 관한 VCR


▲ 8.15광복


전시실 마지막 부분에서 ‘8.15광복’을 보자, 가슴이 뭉클해져 왔습니다. 특히, ‘일장기를 내리는 장면’ 사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독립을 위해 희생,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일장기를 내리는 장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전시를 관람하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고 의미를 얻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꼭 가보시는 걸 추천 드릴게요.

이상 김태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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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17일은 한국광복군이 창군된 지 7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한민국 한국광복군의 창설 과정과 활동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광복군의 창설 배경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이후, 전국적으로 외교권 박탈에 대해 저항하는 수많은 움직임이 있었는데요. 일본은 이를 강하게 압박하였고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는 국권을 상실하는 치욕의 경술국치일을 맞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1919년,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3월 1일을 기점으로 전국적인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운동 이후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의장 이동녕 선생을 중심으로 안창호, 김규식 선생 등이 모여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기념사진 (출처: 우리역사넷)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독립군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수립 초기부터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 등을 제정하고, 육군 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전쟁을 위한 군대 편성을 계획하였는데요. 그러나 이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의열투쟁(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 등)에 대한 일본의 대대적인 탄압과, 1937년 일본이 일으킨 중일전쟁으로 이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해에서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등 중국 각처로 옮겨 다니며 험난한 대장정을 펼쳤고, 1940년 충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을 딛고 1940년 9월 17일,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의 성립 전례를 가짐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할 국군,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었습니다. 


‘한·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 당시 김구 선생이 발표한 <광복군 선언문> 중


▲ 광복군 제2지대 대원들이 만든 한국광복군 영문약자 KIA(Korea Independence Army)

(출처: 독립기념관) 


# 한국광복군의 활약


광복군 창설 직후 편제된 지대는 병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임시정부는 총사령부 예하에 4개 부대를 편성하여 본격적으로 병력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 직원 

(출처: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블로그)


대원들은 중국 각지에 거주하고 있던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광복군의 활동 취지를 알리며 병력을 모집했고,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광복군은 창설 1년여 만에 12명의 인원에서 3백여 명의 병력으로 원대한 골격을 갖춰나갔습니다.


▲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 당시 연설을 하는 백범 김구 선생 (출처: 독립기념관)


또한, 한국광복군은 1941년 2월부터 기관지 <광복(光復)>을 발간하여, 선전과 홍보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한국어본과 중국어본 두 종류로 발간하여 한국어본은 중국 내 교포들을 대상으로, 중국어본은 각급 행정기관과 학교, 군사기관, 언론기관 등에 배부하였습니다. 이를 전·후방에 확산하여 국내외 동포들의 지원을 촉구하는 한편, 일본군에 징병되어 온 한국 청년을 유치하는 데에도 힘썼습니다.


▲ 한국광복군과 미군 (출처: 준형, 시현이네 퀴즈사랑)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미·일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2월 10일, 즉각적으로 대일 선전 포고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전세계에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의지를 알림과 동시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 선전 성명서(1941)


우리들은 3천만 한국인 및 정부를 대표하여 중ㆍ영ㆍ미ㆍ하ㆍ가ㆍ호(中ㆍ英ㆍ美ㆍ荷ㆍ加ㆍ濠) 및 기타 제국의 대일선전을 삼가 축하한다. 그것이 일본을 격파하고 동아(東亞)를 재조(再造)하는 데 가장 유효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특히 아래와 같은 점을 성명(聲明)한다.


1. 한국 전체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전선에 참가하여 1개 전투 단위가 되어있으며 축심국(軸心國)에 대하여 선전(宣戰)한다.

2. 거듭 1910년의 합병조약 및 일체(一切) 불평등조약의 무효와 동시에 반침략국가들의 한국에서의 합법적인 기득권익을 존중함을 선포한다.

3. 왜구를 한국과 중국 및 서태평양에서 완전 구축(驅逐)하기 위하여 최후 승리까지 혈전(血戰)한다.

4. 맹세코 일본의 난익(卵翼) 하에서 조성된 장춘(長春) 및 남경(南京) 정권(正權)을 승인하지 않는다.

5. 루즈벨트ㆍ처칠 선언의 각 항(各項)이 한국의 독립을 실현하는 데에 적용되기를 견결(堅決)히 주장하며 특히 민주 진영의 최후 승리를 예축(豫祝)한다.


대한민국 23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외무부장 조소앙


※ 원문은 한자로 되어 있음.


이후 한국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1943년부터 1945년에 걸쳐 중국에서는 중국군과 연합하여 항일전을 전개했고, 이후 영국군과도 연합하여 인도·미얀마 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한편, 일본과 연합했던 이탈리아와 독일이 항복하며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일본이 패망의 길로 접어든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군과 손잡고 국내진공작전을 펼치기로 했는데요. 


일명 ‘독수리 작전’으로 불렸던 한미연합작전이었습니다. 이때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미국 전략 사무국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에 보내 정예요원으로 훈련시켰습니다. 


▲ OSS 훈련을 마친 광복군 대원들


국내진공 침투작전의 실시 일자는 1945년 8월 29일이었습니다. 우리 힘으로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던 8월 15일, 아쉽게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일본의 패망으로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한국광복군의 국내진입작전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면서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찾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자아냈는데요. 


▲ 조선의 독립에 환호하는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오는 9월 14일(목) 오전 11시,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사)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이영수) 주관으로 <한국광복군 창군 제77주년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이날 행사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각계인사, 광복군동지회원, 시민, 학생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될 예정입니다. 


비록 이들이 계획했던 국내진공작전은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무장독립운동의 중심이 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안위를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헌신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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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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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9.21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황청묵

    2017.09.23 0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오늘 고엽제전우회 국가보훈정책 ?(양승조,이완영,홍철호)토론회에 참석하여 10시부터 13시30분간 자리를 지켜 발제자의 주제발표에 점심도 시간경과로 먹지못헸다, 국가보훈의 정책 방향에 우선되여야 한다고 공감하였다,월남전에도 파병의 임무수행도 무사히 끝마치고 지금은 건강상태도 고엽제의 질병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한국 광복군 창군77주년 창설과 활약상에 의미심장해하며, 공감했다, 동참하였다, 국가안보를 휴전선언이후 남북관계는 북한의 핵무기화를 선어하여 국민의 정치적 국가안보를 위협한다, 뉴스보도및 문재인 대통령 유엔연설에서도 평화를 외쳤다, 구한말의 선비 매천 황현 선생을 귀감으로 생각한다, 경제적 발전은 국가경제에 지속가능하다고 본다,
    국위선양과 민주국가의 세계화에 동참하는 월남전참전에 희생하였던 국가유공자의 참전전투수당지급을 긴급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3. 황청묵

    2017.09.23 0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년 9월22일 국회의원회관 토론회 참석하다, (양승조국회의원 제안법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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