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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오늘은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전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한 해 앞으로 다가온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전 국민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 반영하기 위해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를 개최합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대표적인 상징물로서, 국민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충실히 담아내어 건립될 예정입니다.


2018년 1월 29일(월)부터 3월 12일(월)까지 진행되는 이번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에는 초등부/중,고등부/대학,일반인 등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대국민 공모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 공모 기간 : 2018. 1. 29.(월) ~ 3. 12.(월)

※ 온라인 접수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대국민 공모 홈페이지

http://www.memorial-contest.kr

※초등부 / 중,고등부 / 대학,일반인 등 누구나 참여 가능


(출처: 서대문구 의회 제공)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부지 위치(현 서대문구 의회 청사 부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은 현재 서대문구 의회 청사 부지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79-22(현저동 산 5-5)’에 건립될 예정입니다.


이번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미래세대에게 체험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추진되는 만큼 아래 2가지 분야에 대해 자유롭게 제안하면 됩니다.


① 건축물 디자인 분야
내가 생각하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모습은?
국민들이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기념관의 모습을 제안하는 아이디어
실제 건축물의 모습이 아닌 디자인 컨셉, 공간 구성 요소 등 아이디어 형태의 국민들이 기대· 생각하는 기념관의 모습

② 전시 콘텐츠 기획 분야
내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싶은 것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전시 콘텐츠를 자유롭게 표현
임시정부 기간의 국민의 삶과 역사적인 사건 흐름들을 표현
표현 방법에 대한 내용은 아래 표 예시 참조



국민제안 공모로 제시된 아이디어는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창의성, 활용가능성, 시설 적절성 등을 기준으로 심사하며 분야별로 최우수상 1팀(상금 200만원), 우수상 2팀(상금 각 100만원), 입선 9팀(초등부 3팀, 중・고등부 3팀, 대학・일반인 3팀, 상금 각 20만원)을 선정하여 국가보훈처장 명의의 상장이 수여됩니다. 


이번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에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공식 홈페이지(http://www.memorial-contest.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위 이미지 클릭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아이디어 공모 공식 홈페이지로 넘어갑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국민들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국민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스토리 있는 기념관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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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가보훈처 업무보고>


"더 평화롭고 행복한 삶, 따뜻한 보훈"


2018년 새해, 국가보훈처가 추진합니다!


'현장과 사람 중심의 따뜻한 보훈 정책'

* 촘촘하고 두터운 보훈복지 강화

취약 계층 대상 「보훈나눔+」 사업 도입
독립유공자 ()자녀 「생활지원금」 신설
보훈가족을 위한 심리재활 및 심리상담서비스 제공
보훈요양원(현 전국 6개소 운영) 강원권과 전북권에 건립

보훈병원 내 재활센터 확충

* 유공자 심사기준 개선
독립유공자 포상 기준 개선
군 의무복무자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
상이 판정 기본원칙 마련

* 안보현장에서 헌신한 분들에 대한 지원 확대
1社 1제대군인 채용」 등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 취업지원 강화
의무복무자 중 취업 취약계층 취업 지원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사업 규모 확대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미래지향적 보훈 정책'

* 미래대비 중장기 계획 수립

- ‘국가보훈 5개년 발전계획’, ‘국립묘지 관리계획’, 현충시설 보존계획’ 수립


* 보훈 선양을 통해 국민통합의 계기 마련

- 독립-호국-민주' 기념행사 균형 추진 

- 해외사적지 적극 보존, 「e-현충시설국민지킴이」 도입


* 보훈단체 혁신

- 단체혁신 TF 구성, 혁신안 마련(법제화)

- 보훈단체 사회 공헌활동 확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 독립정신 계승사업

- 1,000만명 릴레이 3·1만세운동 재연행사, 100주년 기념음악 「위대한 유산」 제작 

등 다양한 사업 추진


*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 기념관 건립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 실시 및 건립위원회 운영



국가보훈처는 따뜻한 보훈 정책을 통해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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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8.01.26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년 독립기념관 주최 3.1운동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등 피식민지 국가와 un 기구, 평화단체 등을 초청하여 '평화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비록 1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기념사업추진위 산하에 박람회분과위원회를 설치하여 최소한 99강원국제관광엑스포 규모로 독립기념관 서곡 부지, 또는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 주위 부지에서 세계평화엑스포를 개최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86년 전 1월 8일,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청년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봉창 의사(1901. 8. 10.~1932. 10. 10.)입니다. 그가 어떻게 의거를 실행하게 되었는지, 그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볼까요?


│  독립운동의 시작, ‘차별과 수모’


이봉창 의사는 1901년 8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그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제과점의 종업원, 철도회사의 운전견습원 등으로 일했습니다. 일본인 직원들은 이봉창 의사를 ‘조센징’으로 부르며 차별하였고, 이로 인해 그는 참을 수 없는 수모와 굴욕을 느끼며 살아갔습니다. 


이 의사는 부모와 이웃, 그리고 자신이 겪은 수모는 결국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데에서 비롯된 민족적인 아픔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독립운동의 여정, 도쿄에서 상하이까지


‘적을 이기기 위해선 적을 알아야 한다.’는 결심을 한 이봉창 의사는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나고야, 도쿄, 요코하마 등을 전전하며 약 6년간 상점 점원, 철공소 직공 등으로 일하며 일본인의 생활 모습과 일본어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독립운동의 본거지인 상하이로 옮겨갔습니다.


▲ 이봉창 의사 (태극기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출처: 독립기념관)


│  운명적인 만남, 백범 김구


이봉창 의사는 상하이에서도 ‘기노시타’라는 일본인식 이름을 사용하며 일제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상해교민단에 출입하며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김구 선생은 이봉창 의사의 투철한 애국심과 확고한 독립사상에 큰 감명을 받았고, 일왕 폭살이라는 거사를 준비하게 됩니다.



“선생님, 제 나이 이제 서른 하나입니다. 

앞으로 서른 한 해를 더 산다 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동안 쾌락이란 것을 모두 맛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한 쾌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상해로 온 것입니다. 

저로 하여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성업을 완수하게 해주십시오.


- 김구 선생과의 면담에서 이봉창 의사가 밝힌 각오



▲ 한인애국단 가입 선서식 당시 이봉창 의사 (출처: 독립기념관)


▲ 1931년 12월 이봉창 의사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면서 작성한 선서문 (출처: 독립기념관)


│  적의 심장부로 향하다


자금과 수류탄을 준비하는 거사준비에만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 가입 선서식을 마친 이봉창 의사는 중국을 출국하여 12월 말 일본 도쿄에 도착합니다. 


그는 1932년 1월 8일, 일왕 히로히토가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열리는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백범 김구 선생에게 이날 거사를 치르겠다는 전보를 보냈습니다.


▲이봉창 의사가 폭탄을 투척했던 곳(일본 경시청과 皇居 사이의 도로) (출처: 독립기념관)


마침내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는 사쿠라다문(櫻田門) 앞에서 히로히토의 행렬이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때를 놓치지 않고 군중 속에서 몸을 일으켜 수류탄을 투척하였습니다.

이 의사가 던진 폭탄에 궁내대신이 탄 마차가 뒤집어지고 말이 다쳤으나 히로히토는 다치지 않아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 이봉창 의사 의거 보도 기사 (1932. 01. 08. 출처 : 독립기념관)


의거 현장에서 체포된 이봉창 의사는 같은 해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받아 순국하였습니다.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지만, 그의 의거는 1930년대 한국 독립운동사의 대표적인 의열 투쟁이라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봉창 의사가 터뜨린 수류탄은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공원 의거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보산 사건 이래 한·중 간 감정 대립도 씻는 계기가 되었죠.

 

(* 만보산 사건 : 1931년 7월 2일 중국 지린성 창춘현 만보산지역에서

일제의 술책으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이 벌인 유혈사태)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서울 효창공원 내의 이봉창 의사 동상 (출처: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


1월 8일 이봉창 의사 의거일인 오늘 오전 11시,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86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시민, 학생 등이 참석하여 이봉창 의사의 업적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2017년 제85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 (출처: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독립을 위해 의열 투쟁을 결심, 도쿄, 상하이를 거쳐 다시 도쿄까지 긴 시간 치열하게 의거를 준비했고, 마침내 일제를 향한 폭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 


이봉창 의사의 의거일인 오늘, 그의 다짐과 의지, 그리고 고귀한 희생을 함께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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