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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27일. 어떤 날인지 다들 알고 계시죠? 바로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인데요. 국가보훈처는 이 날을 맞이하여 7월 24일(월)부터 29일(토)까지 5박 6일 동안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 참전 15개국 참전용사와 스위스 중립국감시위원회(NNSC) 근무자, 정부훈장 서훈자 등 127명을 초청합니다.


▲ 지난해(2016년) 유엔 참전용사 방한 행사 당시 모습 (출처: 국가보훈처)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초청 행사는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참전용사에게 정부 차원의 예우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그 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낸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해 추진되는데요.


1975년 민간단체 주관으로 시작되어 2010년 6·25전쟁 60주년 사업을 계기로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3만여 명의 유엔참전용사와 가족이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 지난해(2016년) 유엔 참전용사 방한 행사 당시 모습 (출처: 국가보훈처)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시는 유엔참전용사와 유가족은 120여명인데요. 미국의 레이몬드 브이 밀러 씨는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생존자로, 인천상륙작전과 흥남철수작전 등 다수의 작전에 참가했습니다. 


국민훈장은 참전용사의 명예선양과 교류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태국의 분차이 딧티쿤(91) 장군(국민훈장 모란장)과 캐나다의 피터 시어슨(87) 회장(국민훈장 동백장)이 받게 됩니다. 


태국의 분차이 딧디쿤 장군은 6·25전쟁 당시 육군 중위로 금화지구 전투에 참전했으며, 태국 21연대 내 한국전기념관 건립을 지원하고 매년 한국전 전몰장병 추모행사를 개최를 주도해왔습니다.


피터 시어슨 회장은 한국의 가평 지역 중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설립 및 전달 활동을 펼쳐왔으며 현재 캐나다 6·25전쟁 참전용사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방한 주요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25일(화) 오전에는 한국의 정신과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함께 한복 체험을 할 예정입니다. 또 이날 오후에는 남북 분단의 현장 판문점을 방문합니다. 26(수) 오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한 후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여 전우들을 기리는 헌화행사에 참여합니다. 이날 오후에는 인사동 투어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27일(목)에는 서울 올림픽 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후 저녁에 감사만찬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 짓습니다. 출국 전날인 28일(금) 오전에는 창덕궁을 탐방하고, 오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여 한국의 문화를 체험할 예정인데요. 이렇게 모든 일정을 마친 뒤 29일(토)에 출국하게 됩니다.

 


▲ (출처: 국가보훈처)


6.25전쟁 당시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유엔 참전국과 유엔군. 이번 재방한 행사는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유엔참전용사와 가족들의 은혜에 보답하고, 그분들을 위로해 줄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역만리 낯선 땅에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주었던 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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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불법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국가가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영국 정부는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인 56,000여 명의 병력을 대한민국에 파병하여 국군과 함께 피흘려 싸웠습니다.


6.25전쟁 당시 영국군은 임진강 전투, 낙동강 방어선 전투, 정주·박천 전투, 신둔리 전투, 가평 전투 등 다양한 전투에서 기습작전과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6.25전쟁 중 전사자, 부상자, 실종, 포로 등의 피해를 입은 영국군은 무려 4,900여 명에 달합니다.


꿈많던 청춘, 대한민국을 지켜준 영국 참전 용사들.

우리나라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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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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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67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무려 1129일 간 계속된 6.25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아픔과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6·25전쟁의 깊은 상처는 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데요, 저는 지난 6월 호국 보훈의 달에 전쟁기념관과 6·25전쟁관련 특별전시회가 열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6·25전쟁관련 특별전시회는 존 리치(John Rich, 6.25전쟁 당시 미국 종군기자)의 사진전 <전쟁과 일상, 그리고 희망> (War, the Everyday, and Hope)과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특별전 <67년만의 귀향> 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평화로운 새벽을 깨운 북한군의 기습남침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기습남침을 감행한 북한군의 집중공격으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는데요, 도발 당사자인 북한은 6.25전쟁발발 67주년을 맞은 오늘날까지도 남침전쟁의 사실을 은폐하고 우리 국군이 먼저 북침하였다는 거짓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북한군 남침 전투명령 1호」는 이러한 북한의 주장이 허위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자료였습니다. 「북한군 남침 전투명령 1호」는 1950년 6월 22일 북한군 총참모부가 각 사단에 남한을 침략할 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한 북한군의 전면적인 남침계획서라고 하는데요, 이 자료에는 “6월 22일 24시까지 공격준비를 완료하고 별도 명령에 따라 진출하는 기동 계획”이 있어서 북한군의 남침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 북한군 남침 전투명령 1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25전쟁 발발당시 한국군은 북한군에 비해 군사력에서 열세에 놓여 있었는데요. 전차의 경우, 북한군이 242대를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한국군은 한 대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군의 대규모 폭격으로 마을은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파괴되었으며, 주민들은 정든 집을 떠나 고된 피난길을 떠나야만 했는데요.

6.25전쟁 당시의 이러한 처참했던 모습들은 당시 미국 종군기자 존 리치(John Rich)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 생필품만 챙겨 떠나는 피난민 가족(왼쪽)과 

폭격으로 폐허가 된 마을(오른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실)



▲ 시가전 흔적이 남아있는 남대문(왼쪽)과 

파괴된 수원화성 장안문(오른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실)


북한군의 기습남침 소식을 들은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청하였고, 이에 유엔은  6월 28일 유엔군의 파병을 결정, 미국 등 16개 국가에서 유엔군을 파병하였고 인도 등 5개 국가에서는 의료지원을 해줬습니다.

유엔의 신속한 유엔군 참전결정에 따라, 가장 먼저 미국의 해군과 공군이 참전했고, 뒤이어 스미스 부대를 선두로 미국 지상군이 참전하면서 국군은 전력을 재정비 할 수 있었으며,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까지 철수하면서 충분한 전투력이 갖추어질 때까지 지연전을 계속 펼쳐 나갔습니다.


낙동강까지 후퇴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하고 “방어가 아니면 죽음이다” 라는 각오로 죽을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이때 국군과 유엔군은 물론 수많은 어린 학생들과 해외동포들까지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가하였는데요.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출정할 당시에 조국 수호를 맹세하며 서명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실의 무운장구(武運長久) 태극기와 당시 학도병의 모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운장구 태극기(대한민국역사박물관)


▲ 학도병모자와 호국학도창간호(대한민국역사박물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렸던 국군과 유엔군은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장군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여 서울로 진격하자, 총 반격전을 개시하여 9월 28일 드디어 서울을 수복했는데요.

다시 찾은 서울시청 앞에 서 있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존 리치(John Rich)의 사진에서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다시 찾은 서울시청 앞 어린이들(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을 다시 찾은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19일 평양을 탈환하였고, 10월 26일 오후 2시 15분 압록강에 진입한 한국군 제6사단 7연대는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을 수 있었으며, 미군 제7사단도 11월 21일 한·중 국경지역인 혜산진에 도달하였는데요. 이때는 당장이라도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중공군의 개입과 험난한 휴전협상,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통일을 곧 이룰 것이라고 감격에 겨워있었던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10월 뜻하지 않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하게 되면서 통일의 꿈을 접게 되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격으로 남쪽으로 후퇴해야 했으며, 결국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다시 내주고 서울시민들을 피난 시켜야 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얼어붙은 한강을 걸어서 또다시 남쪽으로 고달픈 피난을 떠나야 했는데요. 1.4후퇴당시 서울에 남아있던 시민은 불과 20여만 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이후에 재 반격을 시도하여 1951년 3월에 수도 서울을 재탈환하고 38도선도 회복하였으나,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휴전회담과 함께 38도선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갔고, 결국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어 현재까지 남북한은 휴전상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3년 1개월 동안 지속된 6·25전쟁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6·25전쟁으로 전사하거나 실종된 우리 국군은 16만여 명에 이르고 민간인 피해도 100만여 명에 이르렀으며, 1,000만여 명의 이산가족과 수많은 전쟁미망인, 전쟁고아가 발생하였고 전 국토는 초토화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유엔군도 4만여 명이 전사하는 등 15만 여명이 부상을 입거나, 실종되고 적의 포로가 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한 국군과 민간인 피해현황

국군 피해

 유엔군 피해

 민간인 피해

 계(명) 

 전사 

 부상 

 실종

 포로 

 계(명) 

 전사 

 부상 

 실종

 포로 

 계(명) 

 사망 /학살 

 부상 

 실종

 납치 /행불

 621,479

 137,899

 450,742

 24,495

 8,343

 151,129

 37,902

 103,460

 3,950

 3,950

 5,817

 990,968

 373,599

 229,625

 387,744

 * 출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 벽면에 새겨진 전사자명부(전쟁기념관)


6.25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지만, 약 2만 9천여 명의 유해만 수습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13만 3천여 명의 유해는 이름 모를 산하에 남겨졌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2007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되어 전국에 묻혀 있는 유해를 발굴하고 있으나, 금년 4월까지 찾은 유해는 9,500여위 뿐이고 그중에서 신원을 확인한 전사자는 121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전사자의 유해와 함께 발굴된 무기류, 군장류, 전사자의 개인물품 등 2,000여점의 각종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전시되어 있는 유품을 보면서 당시 처참했던 전쟁을 상상해 보며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 전사자의 유해발굴 시 발굴된 전사자 유품(1)(2)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실)


아직 끝나지 않은 6·25전쟁


아직도 북한은 크고 작은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요. 특히 2000년대를 전후하여 일어난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 그리고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 피격사건, 같은 해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도발 등은 6.25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 북한의 주요 도발연표 - 전쟁기념관 6․25전쟁실


6월 호국보훈의 달은 지나갔지만, 우리는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대한민국을 위해 피땀 흘린 세계 각국의 유엔군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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