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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 당시 벨기에 상원의원이자 국방부 장관으로서 한국 파병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앙리 모로 드 믈랑’ 벨기에 육군 소령이 ‘11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1950년 6월 27일 6.25전쟁 참전을 결의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는 1950년 6.25전쟁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국무회의에서 장비만 지원하자는 다수의 의견을 일축하고 파병을 주도했는데요. 뿐만 아니라 그는 1951년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통신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당시 벨기에 법에 따르면, 상원의원은 해외 참전을 할 수 없었는데요. 앙리 모로 드 믈랑의 6.25전쟁 참전을 위해 벨기에 법률이 개정되기까지 했습니다.

국방부장관직을 내려놓고 참전을 결정한 그의 계급은 놀랍게도 소령에 불과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유엔참전군 통신병의 모습

(출처: 데일리안)


앙리 모로 드 믈랑 소령은 1951년 2월, 임진강 북쪽의 금굴산 진지를 방어하여 중공군의 진출을 저지하였고 이를 통해 영국 제29여단의 철수를 지원했습니다. 


▲ 영연방 제29여단(얼스터 대대) 부대원들

(출처: 육군 공식블로그 동고동락)


"벨기에도 한국처럼 열강에 둘러싸인 소국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한국을 도와야 했다. 전쟁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전쟁 한가운데서 전우를 위해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물이다." 1988년 펴낸 회고록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6.25전쟁에 참전한 벨기에 대대(출처:Gadget Story 블로그)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은 채 더 큰 가치인 인류애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진정한 노블레스를 실천한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세계인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앙리 모로 드 믈랑 벨기에 육군 소령의 모습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11월, 이달의 전쟁영웅인 앙리 모로 드 믈랑 소령을 떠올리며 그의 헌신을 기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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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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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도안돼

    2017.11.08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간은 전쟁을 하는 잘못된 창조물이란건 모르나?


지난 주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민족최대의 명절 추석에 그리웠던 가족, 친척들과 오랜만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셨을 거예요. 여기 무려 67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 형제가 있습니다, 바로 6.25전쟁 당시 강진경찰서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故 구창신 경사입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22일, 인천에 위치한 故 구창신 경사의 친손자 자택을 방문하였는데요. 이 날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 시 관을 덮은 태극기, 함께 발굴된 유품 등을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가 열렸습니다.


▲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 故 구창신 경사를 기억하며


故 구창신 경사는 1910년 전남 장흥군 장흥읍 기양리에서 4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유가족들은 그를 정직하고 주변 사람들이 믿고 따랐던, 책임감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故 구 경사는 1932년 결혼하여 3남 1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였는데요. 그는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42세의 나이에 전남 완도해상 유격전에 참전합니다. 


▲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


故 구 경사는 강진경찰서 소속으로 1950년 7월 27일에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과 함께 완도로 철수하여 해상유격전을 전개합니다. 강진경찰서 부대원 150여 명은 지금의 마량리에 진출한 적군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고금도에 상륙합니다. 이와 같은 경찰의 도서작전으로 북한군 1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북한군의 완도 상륙 계획을 파악한 경찰은 총본부를 청산도에서 완도로 이동하고, 무안 경찰서 부대원 80명을 여수관내 남면도에서 철수시켜 완도에 증원배치하게 됩니다. 또한 강진 경찰서 부대원들을 고금도에 배치하여 북한군의 완도 상륙을 막았는데. 故 구 경사는 이때 전의 총탄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가족의 품으로 가기까지


2017년 3월 14일, 故 구 경사의 유해는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에서 버클 등 유품과 함께 발굴됩니다. 故 구 경사의 유해는 전사자를 매장한 위치를 기억하고 있던 마을 주민의 제보와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확인으로 찾을 수 있었는데요. 故 구 경사의 손자인 구봉호(61세)씨는 6.25전쟁 당시 경찰이었던 조부가 전쟁 중 전사하여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에 매장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고금도에 수차례 직접 방문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수소문 끝에 국유단에 관련 정황을 제보하였습니다.


▲ 유가족과 인사 중인 국방부 유해발굴단


이후 99.9%의 확률로 따님인 구정자(81세)씨가 부녀관계로 확인됩니다. 故 구 경사의 딸 구정자씨는 “전쟁 이후 생계가 바빠서 아버지가 묻혀 계신 곳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행히 조카(구봉호)가 제보를 해서 아버지를 찾았는데 너무나 죄송하고 감격스럽다.”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 6.25전쟁 전사자 찾기, 우리 모두의 의무


故 구창신 경사의 유해는 2000년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시작 이후 123번째인데요. 이처럼 호국영웅을 찾기까지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시료채취와 6.25전쟁 당시의 목격자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요. 아쉽게도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약 3만 9천여 명으로 6.25전쟁 이후 미수습된 유해 13만 3천여 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또한 6.25전쟁 세대와 유가족의 고령화 및 국토개발에 따른 지형변화 등도 유해발굴사업을 진행하는데 큰 난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지켜낸 호국의 영웅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호국영령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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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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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 북한군과 중공군은 치열한 혈투를 거듭했습니다. 정전 협정 체결까지 양측은 38선상에서 피의 능선 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고지 전투, 펀치볼 전투, 고양대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 수많은 고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그 중 백마고지 전투는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뀔 정도로 세계 전쟁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진일퇴의 혈전이었는데요. 10월의 전쟁영웅은 바로 이 저항과 역습의 최전방에서 백마고지 탈환을 이끌어낸 10월의 전쟁영웅, 김경진 육군 중령입니다.


당시 백마고지는 철원평야 서북단에 위치한 독립고지로서 하루 평균 5만발의 포탄이 허공을 가로질러 서로의 적진에 투하되는 곳으로, 작전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이 당시 백마고지는 포격으로 인해 산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 그 모양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될 정도로 그 전투는 치열했습니다. 


▲ 북한군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국군 (출처: 군포시민신문)


1952년 10월 11일 국군 제9사단 제29연대 제2대대장인 김경진 소령(당시)은 사단장으로부터 불과 1시간 전 제1대대가 물러났던 정상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역습을 감행하였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에서 적진을 향해 달리는 국군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그는 고지 정상의 중공군이 진지보강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 파편을 뚫고 포복으로 전진하여 최전방으로 나아가 부하들을 독려하며 진두지휘했습니다.




▲ 적진을 향해 쏘는 박격포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이 상황에서 김경진 중령은 ‘사병과 더불어’라는 지휘철학으로 병사들과 함께 생사의 고비를 헤쳐 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백마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있던 제6중대를 제5중대의 좌측으로 진출시켰습니다. 이후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 파편을 뚫고 포복으로 전진하여 자신도 직접 최전방으로 나아갔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에 소비된 수 만개의 탄피 (출처: 경북일보)


정상을 20여 미터 앞둔 지점까지 진출했던 김경진 소령은 최후의 돌격사격을 감행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적의 박격포가 근처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포탄의 파편이 중령을 향해 날아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김경진 소령은 적의 박격포탄에 의해 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 격전지로 진격하는 국군의 모습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김경진 소령이 전사한 이후 대대원들은 그가 생전 보여준 용맹한 솔선수범에 전투의지를 불태웠고, 과감히 돌격하여 백마고지를 탈환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백마고지 전적 기념관


정부는 김경진 소령에게 1계급 특진과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우리는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 김경진 중령의 ‘사병과 더불어’라는 지휘철학과 부하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음, 그리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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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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