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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수많은 나라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는데요. 네덜란드 보병대대급 부대원 5,322명이 참전하였고 768명이 부상당하고 전사했습니다. 치열했던 6.25전쟁에 참전했다 고국으로 돌아갔던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Johan Theodoor Aldewereld) 씨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고인의 유언을 받들어 9월 27일 부산유엔공원에 안장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는 23세 때 네덜란드 반호이츠부대의 일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전쟁 중 그는 단장의 능선 전투와 평강 별고지 전투, 철의 삼각지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였고 1952년 7월 12일 전역하였습니다.  



작년 5월 횡성전투 65주년을 기념하여 국가보훈처 재방한 사업 초청대상에 포함된 알데베렐트 씨가 한국을 방한하였습니다. 60여년 만에 한국 땅을 밞은 그는 발전된 대한민국의 모습과 극진한 예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한국 정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우들이 잠들어있는 대한민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올해 초 8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가족들은 아직 남북으로 분단된 채 전쟁의 위기가 있는 한국 땅에 묻히는 것을 반대했지만 그의 간절한 바람을 따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의 부산 유엔기념공원 안장식에는 국가보훈처 및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관계자, 유엔사령부 대표 등 30여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참전용사협회 회장이자 유가족 대표인 폴 고머스 덜란드 씨는 "이렇게 아름다운 날 알데베렐트씨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의 간절한 소원, 먼저 떠난 전우들 옆에 함께 안장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알데베렐트 전우의 유골함이 안치되었는데요. 죽어서도 한국 땅에 묻히고 싶어하셨던 이 땅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식이 거행되는 내내 눈물을 훔치며 지켜보신 네덜란드 보병대대 소속 참전용사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덜란드대대에서 같이 전쟁을 참가한 사병 곽경찬이라고 합니다. 저는 6.25전쟁이 한창일 때 길에서 붙들려서 가족도 못 만나고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특공대로 뽑혀 네덜란드 대대에 들어가게 됐죠. 지금은 대한민국 카투사 연합회 고문으로 있고 네덜란드 훈장도 받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는?

횡성전투! 그 추운 겨울에 적들이 꽹과리와 나팔을 불고 달려오고 수류탄이 막 날아오고 아수라장이었어요. 이 전투에서 우리 대대장님이 돌아가셨어요. 적들이 계속 밀려오지만 어떻게 그냥 지나칩니까, 그래서 제가 총으로 교회 문턱을 떼서 대대장님을 교회안쪽에 안치시킨 다음 후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쟁 이후 발전된 대한민국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제가 한창 젊었을 때 열심히 나라를 지키고 사회 나가서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렇게 지킨 나라를 보며 기쁘게 생각합니다. 매년 재한군인들이 와서 저를 보면 항상 감사하다고 인사해요, 그 못사는 나라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토록 잘사니깐 너무 감사하다고요.


-생전의 故 알데베렐트씨는 어떤 분이었나요? 또, 6.25전쟁에 참전했던 네덜란드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 만 17살 때 이 분을 만났어요. 그 부대에서 제가 가장 나이가 어려서 친동생처럼 잘 돌봐주고 도와줬어요. 이 분과 네덜란드 군인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정말 젊은 나이에 애쓴거 보면,,, 전쟁터에서 하루 굶는 건 보통이고 그렇게 목이 마르단 말입니다. 옆에 목이 말라도 내가 물 있어도 못줘요, 그게 6.25전쟁이에요, 한국 사람이나 외국 사람이나 목숨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남의 나라에서 자기나라처럼 싸워주셔서 정말 고맙죠.



유엔참전용사의 유해가 한국에 묻힌 유엔군 참전용사는 故 알데베렐트씨까지 총 6명입니다. 유엔참전용사에게 전하는 감사의 마음이  그분들과 후손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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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님들! 지난 9월 27일(수)은 <제67주년 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기념식>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재일학도의용군’, 조금 생소하신가요? 재일학도의용군은 1950년 9월 8일 일본 사이타마현 아사카 주둔 미 제8군 보충대대에 자원입대하여 9월 12일에 동 대대를 출발한 제 1진을 선발대로, 총 642명이 6.25전쟁에서 국제 연합군의 일원으로 맥아더 장군과 인천상륙 작전을 함께 하기도 했고, 이 외 백마고지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주한 미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 병사를 일컫는 카투사의 시조격이기도 한 재일학도의용군. 여기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점은 6.25전쟁에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전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자원한 총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 중 62명이 전사하였고 83명은 전투 도중 행방불명되어 총 135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재외국민의 신분으로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제 67주년 기념식 현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념식은 재일 학도 의용군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인천의 수봉공원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수봉공원에서 본 풍경


수봉산에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만큼 인천의 전경이 한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 행사장에 세워져 있던 액자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는 6.25전쟁에대한 설명을 돕는 액자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참전 기념비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가 세워진 곳에 다다르자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이 담긴 석상이 모습을드러냈습니다. 

11시가 되자 본격적으로 기념식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식장을 가득 채운 귀빈과 참석자들의 모습


먼저 국민 의례 후에 재일학도의용군에 대한 동영상 시청이 있었습니다.


 식을 진행하는 진행자님의 모습


기념식은 전반적으로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미8군 사령관 기념사


이어서 많은 귀빈 분들의 축사 및 격려, 기념사가 이어졌습니다.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던 미 8군 사령관은 기념사를 통해 ‘제 1회 카투사인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은 본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아니며 다른 이들이 기피하는 일들을 하며 동료 병사를 지원했다. 642명의 용감했던 그들은 미 군대에 입대하여 맥아더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실시하였고 이 자리에서 싸웠다. 경의를 표한다” 며 당시 대한민국을 위해 힘써주신 재일학도의용군께 감사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함께 전우가를 합창하는 모습


기념식의 마지막 순서는 전우가를 전원 합창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전우야 잘 자라” 라는 전우가를 불렀는데요, 죽은 전우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가사였습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전쟁으로 고통 받는 조국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은 역사의 자랑이며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토대입니다. 

오늘 하루는 그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참고자료

재일학도의용군 나라사랑기념관 http://www.koreansvjm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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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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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7일, 부산유엔기념공원에서 진행된 유엔참전용사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유해안장식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국군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당하고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렸으나, 유엔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장장 1,129일동안 치러진 전투에서 유엔군은 ‘이역만리(異域萬里)’ 먼 땅, 대한민국에서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병력을 지원해 주었던 네덜란드 군은 단장의 능선 전투, ‘김화-평강-철원’의 철의 삼각지대 전투, 횡성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여해 대한민국을 수호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참전했던 네덜란드 반호이츠부대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는 지난 지난 2016년 5월, 국가보훈처의 재방한 초청 사업으로 대한민국에 65년 만에 오게 되었습니다.

 

▲ 2016년 5월 12일, 동료 참전용사의 유해 안장식에 참석한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


당시 그는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전우인 니콜라스 프란스 웨셀 씨의 유해 봉환식과 유엔기념공원 안장식에 참여했는데요. 인천공항에서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이 따뜻하게 맞이하는 모습과, 65년 전 목숨 바쳐 지켜낸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 벅찬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동료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는 모습을 보며 유엔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대한민국의 모습에 감동한 그는 고국에 돌아간 이후에도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한국 정부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요. 이후 네덜란드 참전협회에 “나도 동료들이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땅에 묻어 주오.”라는 유언을 남긴 채, 2017년 2월 4일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국가보훈처는 그의 유언을 받들었습니다.

 

이후 국가보훈처는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등과 협의하여 고인의 유해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기로 했습니다. 알데베렐트 씨는 국가보훈처의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 사업 때 대한민국을 찾은 분들 중 사후 안장을 희망한 첫 사례인데요. 저는 9월 27일 새벽에 KTX를 타고 유해안장식이 진행되는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으로 향했습니다.


 

▲ 그의 유족들을 대표해 방한한 네덜란드 참전협회장 및 동료들

 

이 날 유해안장식에는 알데베렐트 씨의 유족을 대표해 네덜란드 참전협회장을 비롯한 동료 참전용사들과 국가보훈처 김광우 제대군인국장, 주한 네덜란드 대사 부부,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조영진 소장 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먼저 알데베렐트 씨의 유골을 유엔기념공원에 묻었습니다. 묵묵히 그의 유골을 땅에 묻고 흙으로 덮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 알데베렐트 씨는 동료들과 편안하게 지낼 것입니다.

 

 

 

▲ 그의 유골을 묻고 흙을 뿌려 고인을 위로했습니다.

 

알데베렐트 씨를 보내는 마지막 인사에서 주한 네덜란드 대사는 “매년 우리는 추모비에서 네덜란드 참전 용사를 기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네덜란드 참전용사 중 123명은 전쟁에서 전사했고, 이중 118명은 이곳 부산유엔공원에 영원하고 편안하게 잠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주한 네덜란드 대사

 

주한 네덜란드 대사는 알데베렐트씨가 재방한 행사 때 편지를 준 내용을 밝히며 “친구와 동료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묻어난다”고 밝혔습니다.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건넨 편지의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산의 능선 전투 이후 미국 병사를 의무대에 옮긴 적이 있습니다. 이후 저는 네덜란드로 돌아갔는데, 1959년 그 미국 병사가 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를 만났고, 그와 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저는 친구를 잃어 매우 슬펐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재방한 행사로 대한민국을 찾았습니다. 전쟁의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의 발전상’을 보며, 제가 기여한 것 같아 좋았습니다. 저는 재방한 프로그램 덕분에 전우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전우들 옆에서 안장돼 평생 전우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편지 내용을 들으며, 가슴 한켠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네덜란드 대사는 끝으로 “당신과 편하게 쉴 수 있는 친구들 옆에서 편안한 삶을 보내길 바란다”며 고인을 위로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의 헌화

 

이후 헌화가 진행됐습니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의 헌화를 대신해서 국가보훈처 김광우 제대군인국장이 알데베렐트 씨의 묘전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했습니다.

 

다음으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 부부,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조영진 소장이 각각 헌화를 했습니다.


 

▲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조영진 소장

 

 

 

▲ 네덜란드 참전용사가 전우의 마지막 길에 함께 했습니다.

 

알데베렐트 씨가 6.25전쟁 중에 국군 병사와 함께 불렀다는 아리랑. ‘아리랑’은 국군과 네덜란드 군을 ‘친구’로 연결시켜준 노래였는데요. 안장식의 추모공연으로 가야금 연주를 곁들인 아리랑 공연이 진행됐습니다.


 

▲ 고인의 마지막 길을 위한 노래. 아리랑

 

끝으로 유족 대표의 마지막 인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밝혔으며 알데베렐트 씨의 연혁을 하나씩 말하면서 진심으로 추모했습니다.

 

유해안장식 당일에는 전국에 ‘비’예보가 있었습니다. 부산에서도 비가 내렸는데요. 유해안장식이 시작될 때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습니다. 하늘도 이번 유해안장식을 기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안장식이 끝나갈 때쯤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요.

 

▲ 이제 대한민국에서 동료들과 편안히 쉬시기 바랍니다.

 

이번 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 씨의 유해안장식은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 사업 때 대한민국을 찾은 분들 중 사후 안장을 희망한 첫 사례였기 때문에 더 뜻깊게 느껴졌는데요. 알데베렐트 씨가 전우들과 함께 유엔기념공원에서 편안히 잠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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