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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무더운 날씨 속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지난 7월 19일(수) 오후 2시, 서울의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몽양 여운형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 다녀왔습니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강대국들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졌고, 민족은 좌우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 좌우합작 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이가 바로 몽양 여운형 선생이었습니다.


▲ 몽양 여운형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이 열렸던 백범김구기념관


추모식은 황규식 감사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국민의례와 묵념 이후 장영달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약력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 사회 중인 황규식 감사


▲ 국민의례 중인 참석자들


▲ 식사를 낭독중인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이부영 회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박유철 광복회 회장, 그리고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이 추모사를 올렸습니다.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의 경우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이 대독하였습니다.)


▲ 추모사를 대독하는 이경근 청장


▲ 추모사를 낭독중인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


이후 신경림 시인이 작성한 헌시를 강난숙 시인이 대독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여운형 선생을 기리는 노래인 봉도가를 제창하였습니다. 


▲ 봉도가를 제창 중인 참석자들


추모식 중에는 내빈들을 중심으로 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일반 참관객들의 헌화는 이후 1부와 2부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 헌화 중인 이경근 청장


마지막으로 유족인 여인영 ㈜대중기계 회장이 유족인사를 낭독하였습니다. 여인영 회장의 경우 도중에 감정이 복받쳐 낭독이 중단되기도 하였는데요. 이후 추모식은 마무리되었고, 평화의 나무 합창단의 추모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 유족인사를 낭독중인 여인영 회장


여운형 선생은 독립운동에 앞장선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사장을 맡고 있던 조선중앙일보사의 존폐가 달린 위기 속에서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하는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 동안 좌우합작 운동을 추진했던 여운형 선생은 두 달에 한 번꼴로 테러를 당하는 등 극좌와 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당했지만 좌우합작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생이 암살당한 후, 선생이 조직했던 좌우합작위원회는 결국 해산되었고 한반도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습니다. 


통일되는 날 다시 묻어 달라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분단된 지 반세기가 넘도록 하나 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그러나 행진을 계속하라던 여운형 선생의 말처럼, 나라의 광복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올곧은 신념처럼, 우리는 옳은 것을 향해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추모식이 끝나고 식장을 나오며, 몽양 여운형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금 생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참고사이트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www.mongy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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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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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베치

    2017.07.25 1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omn.kr/ntam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통일·문화국가 건설. 백범 김구 선생님의 꿈은 늘 더 나은 조국이었습니다. 자신의 삶보다 조국을 더 사랑하셨고, 그토록 자신이 사랑하던 조국과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셨습니다. 


▲ 효창공원


▲ 효창공원 입구


이처럼 겨레의 큰 스승이자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님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지난 6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의 백범김구기념관에서 68주기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족, 각계인사, 시민 등 약 400명의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 기념관 입구


▲ 기념관 내부


백범 김구 선생 68주기 추모식은 개식 선언에서부터 국민의례, 추모식사, 추모사, 추모가, 헌화 분향, 폐식 선언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식사


▲ 추모식장 전경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의 김형오 회장은 추모식사에서 우리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님의 업적과 정신을 기렸고, 이어서 국가보훈처장(최완근 국가보훈처 차장 代讀)과 광복회장의 추모사가 진행되었습니다. 


▲ 추모가(숙명여대 합창단)


추모사 이후에 숙명여대 합창단에 의해 ‘백범 김구 선생 추도가’가 제창되었고, 이어 주요 인사들과 유가족, 숙명여대 학생대표 등에 의해 진행된 헌화 분향으로 백범 김구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국민들의 마음을 대표하며 백범 김구 선생님을 추모했습니다.



▲ 헌화(주요인사)


 

<백범 김구 선생 약전>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 가난한 집안의 독자로 출생

-1894년 황해도에서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여 동학군의 선봉장 임무수행.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1896년 안악군 치하포에서 변복한 일본인 스치다를 처단하고, 체포되어 7월 인천감리영에 투옥.

-1905년 을사늑약 무효투쟁 등 국권회복운동 전개

-1908년 독립운동가들의 국내 최대 비밀 결사 조직이었던 신민회에 가입하여 맹렬한 구국운동을 전개하다가 1911년 안악사건, 105인 사건 등으로 총 17년형 언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경무국장에 취임하여 임시정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헌신.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일으켜 국내/외 큰 영향을 미침.

-1940년 충칭에 정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 활동 전개.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미·소의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독립국가 건설을 주장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백범 김구 선생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세계무대에서 자주적인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할까요? 백범 김구 선생이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이 고민에서부터 더 나은 대한민국은 시작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셨던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백범 정신을 마음 속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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