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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ent To Be One,

Turn Toward Busan

 

19세의 나이에 6.25전쟁에 자원하여 참전해 처음 밟아본 땅, 대한민국.

프랑스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때 그 곳을 한시도 잊어본 적 없었습니다.

다시 열아홉 청춘으로 돌아가 6.25전쟁 참전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 때와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 대한민국은 전우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나라,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선 나라, 나와 전우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스무 살의 나와 전우들이 피 흘리며 치열하게 전투했던 전적지에 나의 유해를 뿌려주시오."

 

1951년, 19살의 프랑스 청년 쟝 르우(Jean Le Houx)씨는 프랑스 참전대대 병장으로 참전하였습니다. 이듬해 T-Bone 전투에서 두 차례나 부상을 입었으나 그는 전쟁의 고통에 신음하는 한국인들을 외면할 수 없어, 이후 화살머리 전투에도 참전하여 동료 전우들과 함께 끝까지 싸웠습니다.

고인은 2007년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사업으로 방한하여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적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우들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전적지에 자신의 유해를 뿌려 달라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국가보훈처와 주한프랑스대사관이 유해봉환 전반을 논의하였고 주한프랑스대사관과 국방부가 협의하여 비무장지대(DMZ) 내 프랑스 참전 기념비에 안장하기로 하였습니다.

 

Moment To Be One, Turn Toward Busan

11월 11일 11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유엔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 세계가 부산을 향해 고개를 숙입니다. 유엔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1분간 묵념에 동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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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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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1일(금) 오전 11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헐버트 박사 서거 68주기 추모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생전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왕실의 웅장한 사원으로, 영국 왕과 위인들이 잠든 곳입니다. 영미권에서는 큰 업적을 세운 위인들이 안장되는 곳으로, 대단히 영예로운 장소로 꼽히는데요.


헐버트 박사는 이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고 했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일찍이 우리나라의 교육자, 선교사, 역사학자로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싸운 분이었습니다.

 

# 헐버트 박사의 업적

헐버트 박사는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우리나라 최초로 정부가 세운 근대식 교육기관)의 교사로 내한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하였는데요. 또한, 헐버트 박사는 띄어쓰기 실시, 아래아(ㆍ) 자 없애기 등 한글 맞춤법 정비를 주장하며 한글 발전에 앞장섰으며 주시경, 서재필 박사를 도와 ‘독립신문’ 창간에 기여하며 영문판 주필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 민요 ‘아리랑’에 최초로 서양음계를 붙여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은 존재다”라며 아리랑에 담긴 서민의 애환을 풀어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광무황제를 보좌하며 외교 자문을 맡고 있었는데요. 1905년 일제의 을사늑약 강제 체결 이후, 광무황제의 밀서를 휴대하고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미국 국무장관을 면담하여 한국의 자주 독립을 주장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헐버트 박사는 광무황제에게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을사늑약의 무효와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릴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선생이 헤이그에 광무황제의 특사로 파견되어 각국의 외교관과 현지 언론에 국권 회복을 호소하자, 먼저 헤이그에 도착해 있던 헐버트 박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은 헐버트 박사를 대한제국에서 추방하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버트 박사는 1945년에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미국에서 강연, 기고, 집회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고, 일본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 헐버트 박사 서거 68주기 추모식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의 주관으로 열렸던 이날 추모식에는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윤종오 서울북부보훈지청장, 박유철 광복회장, 마크 네퍼(Marc Knapper)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를 비롯한 각계 인사와 많은 시민들이 참석했습니다. 국민의례 이후 추모사와 헐버트 박사의 인생을 담은 영상 시청, 역사청소년합창단의 아리랑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 추모사를 하는 마크 네퍼(Marc Knapper)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

 

마크 네퍼(Marc Knapper)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는 추모사에서 “헐버트 박사에 대한 많은 사랑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며 오늘날 한미동맹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업적 덕분”이라고 말하며 헐버트 박사에 대해, “한국에 관한 지식을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이제는 그가 쌓아놓은 인적유대를 바탕으로 화합해야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역사청소년합창단의 모습

 

헐버트 박사는 1896년, ‘아리랑’을 역사상 최초로 오선지에 옮겼습니다. 그렇게 악보에 옮겨진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로 전세계에 알려졌는데요. 이날 추모식에서는 ‘아리랑’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데 기여한 헐버트 박사를 기리며 역사청소년합창단이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이 특별 공연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 ‘헐버트 박사를 기리며’

 

 

▲ 헐버트 박사가 직접 제작한 거북선 모형

 

끝으로 헐버트 박사가 1903년 역사상 최초로 직접 제작한 거북선 모형이 공개되었습니다. 여러 글에서 이순신 장군을 훌륭한 명장으로 칭송했던 헐버트 박사는 이를 미국 사회에 알리기 위해 거북선 모형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거북선 모형을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시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져갔는데요. 그러나 해양전시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당한 헐버트 박사는 이를 평생 동안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헐버트 박사가 미국으로 가져간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던 이 거북선 모형은 해양유물수집가 전우홍 선생에 의해 무려 114년 만에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는데요. 이날 추모식에서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뤼순 감옥에서 일본 경찰에 “한국의 은인 헐버트는 한민족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란 이름의 폭력에 맞선 헐버트 박사의 희생과 헌신을 우리는 앞으로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 참고사이트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www.hulber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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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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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무더운 날씨 속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지난 7월 19일(수) 오후 2시, 서울의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몽양 여운형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 다녀왔습니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강대국들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졌고, 민족은 좌우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 좌우합작 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이가 바로 몽양 여운형 선생이었습니다.


▲ 몽양 여운형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이 열렸던 백범김구기념관


추모식은 황규식 감사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국민의례와 묵념 이후 장영달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약력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 사회 중인 황규식 감사


▲ 국민의례 중인 참석자들


▲ 식사를 낭독중인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이부영 회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박유철 광복회 회장, 그리고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이 추모사를 올렸습니다.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의 경우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이 대독하였습니다.)


▲ 추모사를 대독하는 이경근 청장


▲ 추모사를 낭독중인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


이후 신경림 시인이 작성한 헌시를 강난숙 시인이 대독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여운형 선생을 기리는 노래인 봉도가를 제창하였습니다. 


▲ 봉도가를 제창 중인 참석자들


추모식 중에는 내빈들을 중심으로 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일반 참관객들의 헌화는 이후 1부와 2부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 헌화 중인 이경근 청장


마지막으로 유족인 여인영 ㈜대중기계 회장이 유족인사를 낭독하였습니다. 여인영 회장의 경우 도중에 감정이 복받쳐 낭독이 중단되기도 하였는데요. 이후 추모식은 마무리되었고, 평화의 나무 합창단의 추모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 유족인사를 낭독중인 여인영 회장


여운형 선생은 독립운동에 앞장선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사장을 맡고 있던 조선중앙일보사의 존폐가 달린 위기 속에서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하는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 동안 좌우합작 운동을 추진했던 여운형 선생은 두 달에 한 번꼴로 테러를 당하는 등 극좌와 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당했지만 좌우합작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생이 암살당한 후, 선생이 조직했던 좌우합작위원회는 결국 해산되었고 한반도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습니다. 


통일되는 날 다시 묻어 달라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분단된 지 반세기가 넘도록 하나 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그러나 행진을 계속하라던 여운형 선생의 말처럼, 나라의 광복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올곧은 신념처럼, 우리는 옳은 것을 향해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추모식이 끝나고 식장을 나오며, 몽양 여운형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금 생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참고사이트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www.mongy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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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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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베치

    2017.07.25 1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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