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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1일(금) 오전 11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헐버트 박사 서거 68주기 추모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생전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왕실의 웅장한 사원으로, 영국 왕과 위인들이 잠든 곳입니다. 영미권에서는 큰 업적을 세운 위인들이 안장되는 곳으로, 대단히 영예로운 장소로 꼽히는데요.


헐버트 박사는 이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고 했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일찍이 우리나라의 교육자, 선교사, 역사학자로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싸운 분이었습니다.

 

# 헐버트 박사의 업적

헐버트 박사는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우리나라 최초로 정부가 세운 근대식 교육기관)의 교사로 내한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하였는데요. 또한, 헐버트 박사는 띄어쓰기 실시, 아래아(ㆍ) 자 없애기 등 한글 맞춤법 정비를 주장하며 한글 발전에 앞장섰으며 주시경, 서재필 박사를 도와 ‘독립신문’ 창간에 기여하며 영문판 주필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 민요 ‘아리랑’에 최초로 서양음계를 붙여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은 존재다”라며 아리랑에 담긴 서민의 애환을 풀어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광무황제를 보좌하며 외교 자문을 맡고 있었는데요. 1905년 일제의 을사늑약 강제 체결 이후, 광무황제의 밀서를 휴대하고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미국 국무장관을 면담하여 한국의 자주 독립을 주장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헐버트 박사는 광무황제에게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을사늑약의 무효와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릴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선생이 헤이그에 광무황제의 특사로 파견되어 각국의 외교관과 현지 언론에 국권 회복을 호소하자, 먼저 헤이그에 도착해 있던 헐버트 박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은 헐버트 박사를 대한제국에서 추방하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버트 박사는 1945년에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미국에서 강연, 기고, 집회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고, 일본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 헐버트 박사 서거 68주기 추모식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의 주관으로 열렸던 이날 추모식에는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윤종오 서울북부보훈지청장, 박유철 광복회장, 마크 네퍼(Marc Knapper)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를 비롯한 각계 인사와 많은 시민들이 참석했습니다. 국민의례 이후 추모사와 헐버트 박사의 인생을 담은 영상 시청, 역사청소년합창단의 아리랑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 추모사를 하는 마크 네퍼(Marc Knapper)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

 

마크 네퍼(Marc Knapper)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는 추모사에서 “헐버트 박사에 대한 많은 사랑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며 오늘날 한미동맹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업적 덕분”이라고 말하며 헐버트 박사에 대해, “한국에 관한 지식을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이제는 그가 쌓아놓은 인적유대를 바탕으로 화합해야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역사청소년합창단의 모습

 

헐버트 박사는 1896년, ‘아리랑’을 역사상 최초로 오선지에 옮겼습니다. 그렇게 악보에 옮겨진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로 전세계에 알려졌는데요. 이날 추모식에서는 ‘아리랑’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데 기여한 헐버트 박사를 기리며 역사청소년합창단이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이 특별 공연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 ‘헐버트 박사를 기리며’

 

 

▲ 헐버트 박사가 직접 제작한 거북선 모형

 

끝으로 헐버트 박사가 1903년 역사상 최초로 직접 제작한 거북선 모형이 공개되었습니다. 여러 글에서 이순신 장군을 훌륭한 명장으로 칭송했던 헐버트 박사는 이를 미국 사회에 알리기 위해 거북선 모형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거북선 모형을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시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져갔는데요. 그러나 해양전시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당한 헐버트 박사는 이를 평생 동안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헐버트 박사가 미국으로 가져간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던 이 거북선 모형은 해양유물수집가 전우홍 선생에 의해 무려 114년 만에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는데요. 이날 추모식에서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뤼순 감옥에서 일본 경찰에 “한국의 은인 헐버트는 한민족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란 이름의 폭력에 맞선 헐버트 박사의 희생과 헌신을 우리는 앞으로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 참고사이트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www.hulber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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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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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무더운 날씨 속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지난 7월 19일(수) 오후 2시, 서울의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몽양 여운형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 다녀왔습니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강대국들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졌고, 민족은 좌우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 좌우합작 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이가 바로 몽양 여운형 선생이었습니다.


▲ 몽양 여운형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이 열렸던 백범김구기념관


추모식은 황규식 감사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국민의례와 묵념 이후 장영달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약력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 사회 중인 황규식 감사


▲ 국민의례 중인 참석자들


▲ 식사를 낭독중인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이부영 회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박유철 광복회 회장, 그리고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이 추모사를 올렸습니다.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의 경우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이 대독하였습니다.)


▲ 추모사를 대독하는 이경근 청장


▲ 추모사를 낭독중인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


이후 신경림 시인이 작성한 헌시를 강난숙 시인이 대독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여운형 선생을 기리는 노래인 봉도가를 제창하였습니다. 


▲ 봉도가를 제창 중인 참석자들


추모식 중에는 내빈들을 중심으로 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일반 참관객들의 헌화는 이후 1부와 2부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 헌화 중인 이경근 청장


마지막으로 유족인 여인영 ㈜대중기계 회장이 유족인사를 낭독하였습니다. 여인영 회장의 경우 도중에 감정이 복받쳐 낭독이 중단되기도 하였는데요. 이후 추모식은 마무리되었고, 평화의 나무 합창단의 추모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 유족인사를 낭독중인 여인영 회장


여운형 선생은 독립운동에 앞장선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사장을 맡고 있던 조선중앙일보사의 존폐가 달린 위기 속에서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하는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 동안 좌우합작 운동을 추진했던 여운형 선생은 두 달에 한 번꼴로 테러를 당하는 등 극좌와 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당했지만 좌우합작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생이 암살당한 후, 선생이 조직했던 좌우합작위원회는 결국 해산되었고 한반도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습니다. 


통일되는 날 다시 묻어 달라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분단된 지 반세기가 넘도록 하나 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그러나 행진을 계속하라던 여운형 선생의 말처럼, 나라의 광복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올곧은 신념처럼, 우리는 옳은 것을 향해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추모식이 끝나고 식장을 나오며, 몽양 여운형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금 생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참고사이트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 www.mongy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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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베치

    2017.07.25 1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omn.kr/ntam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통일·문화국가 건설. 백범 김구 선생님의 꿈은 늘 더 나은 조국이었습니다. 자신의 삶보다 조국을 더 사랑하셨고, 그토록 자신이 사랑하던 조국과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셨습니다. 


▲ 효창공원


▲ 효창공원 입구


이처럼 겨레의 큰 스승이자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님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지난 6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의 백범김구기념관에서 68주기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족, 각계인사, 시민 등 약 400명의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 기념관 입구


▲ 기념관 내부


백범 김구 선생 68주기 추모식은 개식 선언에서부터 국민의례, 추모식사, 추모사, 추모가, 헌화 분향, 폐식 선언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식사


▲ 추모식장 전경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의 김형오 회장은 추모식사에서 우리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님의 업적과 정신을 기렸고, 이어서 국가보훈처장(최완근 국가보훈처 차장 代讀)과 광복회장의 추모사가 진행되었습니다. 


▲ 추모가(숙명여대 합창단)


추모사 이후에 숙명여대 합창단에 의해 ‘백범 김구 선생 추도가’가 제창되었고, 이어 주요 인사들과 유가족, 숙명여대 학생대표 등에 의해 진행된 헌화 분향으로 백범 김구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국민들의 마음을 대표하며 백범 김구 선생님을 추모했습니다.



▲ 헌화(주요인사)


 

<백범 김구 선생 약전>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 가난한 집안의 독자로 출생

-1894년 황해도에서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여 동학군의 선봉장 임무수행.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1896년 안악군 치하포에서 변복한 일본인 스치다를 처단하고, 체포되어 7월 인천감리영에 투옥.

-1905년 을사늑약 무효투쟁 등 국권회복운동 전개

-1908년 독립운동가들의 국내 최대 비밀 결사 조직이었던 신민회에 가입하여 맹렬한 구국운동을 전개하다가 1911년 안악사건, 105인 사건 등으로 총 17년형 언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경무국장에 취임하여 임시정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헌신.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일으켜 국내/외 큰 영향을 미침.

-1940년 충칭에 정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 활동 전개.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미·소의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독립국가 건설을 주장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백범 김구 선생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세계무대에서 자주적인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할까요? 백범 김구 선생이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이 고민에서부터 더 나은 대한민국은 시작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셨던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백범 정신을 마음 속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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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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