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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을 알리는 플랜카드가 걸린 현충관

 

여러분들은 철기 이범석 장군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계신가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범석 장군의 성함보다는 김좌진 장군과 청산리 전투에 대해서 더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철기 이범석 장군님은 일제 치하에서, 특히 청산리에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혁혁한 공을 세우신 분입니다. 지난 2017년 5월 11일 목요일에는 이러한 업적을 세우신 이범석 장군님을 기리는 추모제가 국립 현충원(동작구 소재) 현충관에서 열렸는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그 현장과 함께 이 장군님은 어떠한 분이시며, 어떠한 업적을 세우신 분인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약력보고를 하는 이강수 기념사업회이사

 

▲추모식사를 읽는 박남수 기념사업회장

 

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개최된 추모식은 현충원 현충관에서 오전 11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홍우진 기념사업회이사의 개식선언이 있었고, 간단한 국민의례 후 이강수 기념사업회이사의 약력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이강수 이사가 낭독한 약력보고에서는 이범석 장군의 출생부터 망명 이후의 활약상을 알 수 있었는데요. 이 내용은 기사의 뒷부분에서 조금 자세히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약력보고 이후에는 박남수 기념사업회장이 추모식사(式事)를 전했습니다. 박남수 회장은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빛나는 찬란히 빛나는 애국, 호국, 멸사의 정신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며, 이범석 장군을 ‘겨레의 영원한 우등불’로 표현하고 “하늘에서도 부디 이 나라를 길이 지켜주시기를 바란다.”고 염원했습니다.

 

▲추모사를 읽는 이의성 장군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처장

 

▲나중화 부회장

 

이 날 행사에서는 각계 인사들의 추모사도 소개되었습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이의성 장군 대독)과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처장, 박유철 광복회장(나중화 부회장 대독)이 이 장군의 넋과 뜻을 기리기 위한 추모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헌화를 하는 참가자들

 

▲이범석 해군 잠수함의 선원들

 

추모사의 낭독이 끝나고 참석자들은 헌화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박남수 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하여 이 날 행사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참여를 했는데요. 그 중 이범석 장군님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해군 잠수함의 선장과 선원들이 헌화를 하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조총발사식을 거행한 의장대

 

▲묵념하는 해군

 

추모식은 의장대의 조총발사식과 군악대의 주악(奏樂)에 맞춰 묵념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럼 이제 이범석 장군의 삶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범석 장군의 영정

 

이범석 장군님은 1900년 10월 20일 서울 용동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서기관으로 일하시는 아버지와 개화 지식인이었던 가정교사이자 외삼촌인 이태승 밑에서 근대적 사고와 신학문을 공부하면서 자라셨습니다. 그러던 중 16세가 되던 1915년 여름, 한강에서 여운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중국으로의 망명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망명 후 장군님은 상해에서 신규식, 신채호, 조성환 선생을 만나게 되셨고 군관학교에서 무예를 배우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만주로 떠나 북로군정서의 장교로써 고도의 군사교육을 실시하고 체코 군에게 첨단 무기를 구매하여 최첨단 군대로의 발전을 거듭해나가셨습니다.

 

이렇게 북로군정서를 정비한 이범석 장군의 활약은 청산리 전투에서 크게 빛을 발하게 됩니다. 1920년 10월 21일 오전 9시, 고요한 청산리 계곡에 이 장군이 이끌던 부대는 매복하며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야스가와 추격대(야스가와 소좌가 이끌던 독립군을 추격하던 부대)의 첨병(공격에 선두로 나서는 부대)이 계곡에 들어서자 일제히 사격을 가하여 격멸하였고, 뒤이어 따라오던 본대에게도 격렬한 공격을 가하셨습니다. 일본군은 매복한 독립군을 파악하지 못하고 불특정표적에 대한 난사만을 거듭하였고 이 장군의 부대는 지형지물을 이용한 정확한 조준사격으로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어 백운평, 천수평, 어랑촌, 고동하곡, 천보산 등지에서도 연이어 승리를 거듭하며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이범석 장군 45주기 추모제 사진

 

전투 후에도 이범석 장군은 한국광복군의 참모장을 지내셨으며, 독립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이 자리를 내어놓으시고 광복군 제2대장을 역임하기도 하셨습니다. 무장투쟁의 길을 걸으며 정말 많은 역할을 해내셨는데요. 오늘 기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청산리의 영웅’, 혹은 ‘광복군의 지휘자’로 대표되는 ‘이범석 장군’ 그리고 조국독립을 위해 광복의 순간까지도 독립군 양성에 힘쓰신 ‘이범석 장군’의 성함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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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터 여러분은 혹시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제에 참석해본 적 있나요?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기념사업회 등이 주관하는 추모식은 독립운동가의 순국일이나 의거일을 맞아 진행되곤 하는데요.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있는 보훈행사 메뉴에 들어가면 매달 진행되는 보훈행사에 대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훈터지기는 117, 경북 문경 박열의사기념관에서 진행된 박열 의사 43주기 추모제에 함께했습니다. 추모식의 모습을 간단하게 소개해드릴게요!



박열 의사 43주기 추모제가 열린 경북 문경 박열의사기념관


 

헌화 및 분향을 하는 참석자의 모습


이날 행사에는 관계자 및 시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해 박열 의사의 정신을 함께 나누고 그를 추모했습니다. 추모식에서는 선생의 약력과 함께 추모사가 낭독되었으며 참석자들은 헌화와 분향을 하며 그의 넋을 기렸습니다.


 

박열 의사 기념관 전경


추모제가 열린 박열의사기념관은 201210월에 개관한 곳인데요!

문경지역의 뜻 있는 박씨 문중 어른들이 박열 의사를 기리고자 모임을 갖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박열 의사의 애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 후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박열 의사 기념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럼, 박열 의사의 43주기를 추모하며 의사의 업적에 대해 한번 살펴볼까요?


그가 독립운동에 발을 내딛게 된 계기는 어느 조선인 교사의 고백이었습니다. 그 조선인 교사는 자신이 일제의 강압을 이기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거짓 교육을 했다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사과를 하며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는데, 이 일을 계기로 박열 의사는 반일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났고, 박열 의사는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되는데요. 가담 후 박열 의사는 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일본에서 그는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계속해서 노동을 하며 일본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과 접촉하고 학생 동우회를 조직해 활동을 벌이는 등 독립을 위한 행보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박열의 동반자 가네코 후미코


그러던 중 일본의 여성 아나키스트인 가네코 후미코와 만나게 되어 둘은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부인인 가네코 여사와 박열 의사의 인연은 특이하게 시작됐는데요.




바로 부인인 가네코 여사가 박열 의사가 지은 시를 보고

그의 시 속에서 오랫동안 찾고 있던 것을 찾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박열 의사 부부가 사형선도를 받은 날의 조선일보


그렇게 둘은 부부가 되었지만, 부부의 연을 맺은 지 1개월 만에 일왕 폭살을 추진한 계획이 드러나 박열 의사와 가네코 여사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 달 만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지만, 가네코 여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형무소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 후 박열 의사는 해방 후인 19451027일 석방되었으며, 이는 독립운동가 중 최장기 복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광복 이후 고국으로 돌아왔고, 1974117일 평양에서 사망했습니다. 이후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젊은 박열선생의 모습 (박열의사기념관 홈페이지)


반평생을 독립운동에 전념하며 222개월이라는 옥고를 치르고, 광복 이후에는 재일한국인을 위한 활동에 매진했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그를 추모합니다.

 

참고자료 : 박열의사기념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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