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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1947년 6월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부산에 주둔하던 제5연대에 배속된 김만술 대위는 1948년 ‘여순 10.19사건’ 진압작전과 태백산맥 등지에서 준동하던 공비토벌작전에 기관총 사수로 참여하였으며 6.25전쟁이 발발한 후 평양 탈환작전을 비롯한 주요 전투에 참전하여 탁월한 지휘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53년 7월 15일 특무상사에서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되어 제1사단 제11연대 소대장으로 부임하였습니다. 부임 당일 소대원 35명과 함께 베티고지를 지키고 있던 2소대장 김만술 소위는 야음을 이용해 인해전술로 공격해오던 중공군 제1군 예하 제1사단의 2개 대대 규모의 적을 맞아 수차례의 공방전을 벌이면서 13시간 동안 치열한 혈전을 전개하여 적350여명을 사살하는 혁혁한 전공을 거두었습니다. 김만술 대위는 1954년 태극무공훈장과 미국십자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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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31일 해군 중령으로 임관한 박옥규 제독은, 군 입대 전에도 해원양성소의 조선인 최초의 졸업생으로서, ‘최고의 선장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진정한 해운인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이후 해군본부 작전국장, 미국 함정 인수단장, 해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역임하였습니다. 6·25전쟁 발발 이후 1952년 해군본부 인사국장에 이어 해군 작전참모부장으로 발령된 그는 1953년 해군 소장으로 진급하는 한편 6월에는 해군의 수장인 총참모장에 임명되어 195410월말까지 휴전에 따른 전쟁의 마무리와 해군발전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적의 해상봉쇄를 위시한 상륙작전과 군수물자 수송, 적진 포격 등 한 치의 차질 없는 전시임무 수행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워 박 제독은 태극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이어 미 동성훈장을 수여하는 영예를 차지합니다.


1971128일 타계한 박옥규 제독을 추모하기 위해 해군과 거문도 유지 등 건립추진위원회에서 198311, 그의 고향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송덕비가 세워졌습니다. 또한 201036, 박옥규 제독은 해기사 명예의 전당 선정위원회에 의해 <명예 해기사 전당 헌정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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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5월 중순, 백재덕 일등중사의 부대는 중부전선의 금성·김화지역 주저항선에서 치열한 고지쟁탈전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백재덕 일등중사의 부대가 지키던 ‘샛별고지’는 강원도 금성 서남쪽 약 5.8Km에 위치한 완만한 경사(표고 470m)의 이름없는 산입니다. 주위의 넓은 계곡과 함께 개활지가 넓게 형성돼 있어 적이 수월하게 기동할 수 있고 피아간 포격의 목표가 되어 접근이 곤란한 전술적 요충지였습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수도사단 기갑연대 10중대 3소대 3분대장으로서, 이틀 뒤인 17일부로 사단예비인 제1연대와 주저항선 방어임무를 교대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이 중부전선의 요충지를 사수해야만 했습니다. 10중대는 1952년 10월 지형능선전투에서 적 2개 대대의 공격을 백병전으로 막아낼 정도로 훈련이 잘 되어 있었고 정찰 및 수색활동에도 경험이 많았습니다.


(* 백병전 : 적과 근접해 있어 사격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육박하여 칼·창·총검 등으로 싸우는 전투.

‘육박전’이라고도 함.)



한편, 아군의 방어 정면에는 중공군의 제67군 199사단 예하 제569연대의 2개 대대 병력이 아군진지에 대한 수색공격을 감행하며 아군의 화력, 병력배치 상황을 파악하며 지형정찰 및 포로 획득을 도모하며 샛별고지 점령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 백재덕 이등상사 초상


새벽 1시, 적은 약 5천여발의 포탄을 샛별고지에 퍼부어 아군진지를 교란시킨 후 아군의 전면과 전초진지 전체로 대규모 인해전술을 펼치며 접근해 왔습니다. 아군은 적을 향해 60mm 박격포와 4.2인치 박격포, 105mm 야포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적의 공격은 집요했습니다. 제10중대 진지 일대에서 수류탄을 주고받는 사투가 벌여졌고 수적으로 우세한 적에게 진지 침입을 허락하고 맙니다. 이에 아군은 대대화력의 병력과 포격을 요청하여 반격에 나서는데요. 마침내 뺏긴 진지를 수복하였고, 도주하는 적들을 소탕하는데 성공합니다.



▲ 중공군의 야간 로켓포 공격(출처: 전쟁기념관)


5월 15일 밤, 백재덕 일등중사가 지휘하는 3분대는 매복조로 차출됩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중대 진지 앞에서 진목동 일대를 살피고 있던 중 수상한 적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긴급히 조명탄을 발사합니다. 그가 본 건 진지를 향해 은밀히 접근하고 있는 중공군 3개 중대. 백재덕 일등중사는 “여기서 적을 꺾지 못하면 중대의 주진지가 위태로워진다. 전 분대원은 나와 같이 이곳에서 뼈를 묻자”며 분대원들을 독려합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침착하게 적의 접근을 기다렸다가 수류탄을 투척하고, 중공군 제1파 15~16명이 진내로 돌입하자 과감한 백병전으로 적을 격퇴시켰습니다. 



▲ 중공군의 인해전술(출처: 전쟁기념관)



이어 중공군 제2파가 다시금 공격해오자 적을 가까운 거리까지 유인하여 사살하였고, 중공군 제3파가 다시 진내로 진입하자 분대원 6명과 함께 적 10여명을 치열한 백병전 끝에 총검으로 무찔렀습니다. 이 전투로 분대원 6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몸을 사리지 않고 10여명의 적을 사살한 용맹한 군인정신과 진지를 고수한 전공을 인정받아 1954년 이등상사로 1계급 특진하였고, 태극무공훈장 및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샛별고지전투의 승리는 우리군이 중부전선에서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를 무사히 확보해 전선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샛별전투의 주인공인 백재덕 이등상사의 용맹함과 리더십, 살신성인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샛별고지 전투,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6·25전쟁의 한 조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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