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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천만 관광지로 자리 잡은 전주 한옥마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지금의 아름다운 한옥마을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우리 선열들의 값진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과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 알고 계시나요?

이번 기사에서는 한옥마을 속 숨겨진 우리 선열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려 합니다. 


한옥마을이 품고 있는 고즈넉한 문학의 향기! 가람 이병기


▲ 한옥마을의 전통 숙박업소로도 사랑받고 있는 양사재


양사재는 서당 공부를 마친 유생이 본격적으로 진사 시험을 준비하던 곳입니다. 세월이 흘러 진사 시험을 공부하던 유생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곳엔 우리 민족 문학 부흥에 앞장섰던 가람 이병기 선생의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 가람 이병기 선생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가람 이병기 선생은 술과 난초, 매화를 사랑하는 문인이자 평생을 우리 국문학에 힘써온 학자입니다. 1920년대에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조선어문연구회, 시조회를 창립해 고유한 민족 문학의 한 장르인 시조의 발전에 노력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진단학회 창립의 발기인이 되어 국학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간의 옥고를 치르며 잔혹한 고문을 겪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국문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대학에 재직할 당시 양사재에서 머물렀는데 그가 있던 방을 지금은 가람 다실이라 부릅니다. 양사재에서 하루 머무르며 전통 한옥체험도 즐기고, 가람 선생의 향기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향교를 지켜낸 선비정신! 고재 이병은 선생


▲남안재의 모습


양사재를 지나 전주 교육의 중심 향교. 우리 선조들의 교육현장을 보고 뒷길로 나오면 정갈하게 기와가 올려진 돌담길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골목골목 구경을 하다 보면 소박하지만 예스러운 멋을 품은 장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고재 이병은 선생이 심성을 수양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남안재’입니다. 남안재는 고재 이병은 선생이 완주 지역에서 강학을 했던 장소로, 고재 선생이 전주 향교로 오면서 이곳을 통째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남안재는 일제강점기, 항일 의지를 도모하고 무리 민족의식을 보존하는 장소였습니다.


▲ 남안재 뒤편에 있는 남양사


고재 이병은 선생은 호남 삼재 중 하나로, 강인한 선비 정신을 가지고 일관된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정신이 투철하여 단발령을 거부하고 일제에 맞서 적극 항거했습니다. 고재 선생은 조희제 선생의 염재야록에 발문을 쓰기도 했는데요, 이 때문에 임실 경찰서에 구속되는 고초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선생은 광복 이후 전주 향교의 재건에 앞장섰습니다. 고재 선생이 일생을 보내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남안재에는 현재 후손들이 거주하며 고재 선생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편엔 고재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남양사가 세워져있습니다. 향교 뒤편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보니 고재 선생이 전주 향교를 굽어보며 지켜주고 있는 듯합니다.


한벽당을 지켜낸 기개와 강직함! ‘금재 최병심 선생’


▲ 한벽당의 모습


한옥마을의 대표 관광명소 중 한 곳인 한벽당. 이곳은 예로부터 전주의 멋과 풍류를 상징하는 장소로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였습니다. 또한, 이곳에 올라 바라보는 전주천의 경치가 뛰어나 ‘한벽청연’이라 불리며 전주 8경 중 하나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일제는 이곳에 전라선 철로 개설을 구실로 한벽당을 헐어 민족정기를 끊으려 했는데요. 이때, 일제 만행에 맞서 한벽당을 지켜내고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선 선비가 있습니다. 바로 호남 삼재라 불리며 한옥마을에서 활동했던 금재 최병심 선생입니다. 


▲ 금재 최병심 선생 초상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선생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의병활동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민족의식을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해 옥류정사를 세워 꾸준히 후학을 양성해, 전주 지역 항일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20년엔 조희제 선생이 일제의 야만스러운 행위를 담은 책 ‘염재야록’의 서문을 썼다는 이유로 일경에 잡혀갔지만 오히려 단식으로 항거하기도 했습니다.


▲ 금재 최병심 선생 묘소


금재 선생이 살던 고택은 전통문화센터가 되었고, 염수당도 사라졌지만, 선생이 지켜낸 한벽당은 여전히 전주의 풍류를 상징하며 위풍당당히 서있습니다. 그리고 선생을 기리는 사당과 묘소는 오늘도 한옥마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묘소 앞,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금재 선생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봅니다.


▲ 남양사에서 내려다 본 한옥마을의 모습


이처럼 한옥마을 구석구석에는 이곳을 사랑했던 우리 조상들의 혼과 얼이 가득합니다.

아름다운 한옥의 모습 속에 담긴 숭고한 이야기와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이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는데요.

완연한 봄날, 바쁜 일상과 밀려오는 나른함에 지쳤다면 고즈넉한 한옥마을을 거닐며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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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인천 수봉공원에는 다양한 현충시설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수봉공원을 찾아가 인천지구 전적비,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를 방문하였습니다.

 

기념비들이 있는 수봉공원은 인천지하철 1호선 도화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수봉공원 입구에서 5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인천지구 전적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 인천 수봉공원에 있는 인천지구 전적비


가까이에서 본 조각상의 모습은 굉장히 역동적이었습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당시 마산-왜관-포항을 연결하는 낙동강 방어선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펼쳐 성공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고, 북진의 발판을 마련하였죠.

 

이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1980년 9월 15일, 옛 격전지를 굽어보는 이곳 수봉공원에 전적비를 건립하였고, 2017년 10월 11일 인천시 6.25참전유공자를 기리기 위해 명비를 건립한 것입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천지구 전적비 옆에 나란히 있던 유엔 참전 기념탑이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힘을 합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함께 이것을 기념하는 의미인 것으로 보입니다.


▲ 인천지구 전적비 옆에 있던 유엔 참전 기념탑


인천지구 전적비를 지나 산책로를 걷는 도중, 재일학도의용군참전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탑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던 재일동포의 자녀와 유학생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병역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고 합니다.

 

그 중 동경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동포와 유학생들은 유엔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는데요, 이처럼 바다를 건너 달려온 재일학도의용군의 고귀한 뜻을 영원히 기리고자 이 탑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일학도의용군참전비를 지나 마지막으로 제가 방문한 곳은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입니다.


▲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는 조국과 민족의 자유 수호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던 무공수훈자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의 건립취지문


특히 비석에 쓰여 있는 ‘이곳은 조국과 민족의 자유 수호를 위해 멸공 전선에서 함께 한 전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터전이다.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전시 또는 그에 따르는 비상사태 아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수훈자들의 애국애족 불꽃정신은 자자손손, 남으리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실제 전투에 참여하셨던 분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무공수훈자 명각비도 볼 수 있었는데요. 


▲ 무공수훈자 명각비


비석에 빼곡이 쓰여진 이름을 보니 이 분들의 애국심을 좀 더 무겁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세 곳의 현충시설 외에도 인천 수봉공원에는 현충탑, 자유 수호의 탑 등의 현충시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인천에 살며 수봉공원을 많이 방문했지만, 이러한 현충시설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쳤던 게 사실입니다.

 

인천은 6.25전쟁 중 전세를 뒤집은 계기였던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곳이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현충시설이 많습니다.

제가 이번 취재를 하며 느낀 것은 주변에 있는 현충시설에 관심을 두고, 방문하는 것이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 헌신한 분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http://mfis.mpva.go.kr/)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어떤 현충시설이 있는지 찾아보고,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참고사이트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http://mfis.mpva.go.kr/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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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한때 국군은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했으나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대반격으로 압록강까지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고,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막아내고 다시 북진해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1951년 7월 10일부터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이 열렸고, 군사 분계선 설정 문제를 비롯하여 휴전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협정, 전쟁 포로, 양측 관계 정부에 대한 건의 문제 등 4개 의제를 토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회담은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했고 장기간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에는 전선이 소강 상태를 유지했으며, 회담이 결렬 또는 지연될 경우에는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회담 천막과 전장 사이를 오가는 지루한 상황이 2년여 동안 지속된 것이죠.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전까지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피의 능선 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고지 전투, 펀치볼 전투, 고양대 전투, 백마고지 전투, 저격 능선 전투, 금성 전투 등 수많은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죠. 중요한 고지를 놓고 하루에도 몇 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 속에서 엄청난 인명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 백마고지 기념관 입구에 있는 돌로 만든 표지판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5사단 열쇠전망대. 민통선 이북지역이라 사전에 신청과 승인을 거쳐 들어가야 했는데요. 여기에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 5사단 열쇠전망대 전경


충현탑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덕산리에 있던 탑을 열쇠전망대로 옮겨온 것인데요. 6.25전쟁 중 대광리 북방고지 탈환을 위해 ‘아더 지 투르도’ 소장이 지휘한 장병들은 중공군 주력부대를 섬멸, 격퇴합니다. 따라서 대광리 북방고지의 방어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었죠.


이들 장병의 공적을 찬양하며 자유 평화를 위해 산화한 참전용사와 우리 국군장병의 영령 893위를 추모하기 위해 충현탑을 건립했습니다. 충현탑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 발견되었으며 2000년대 초반, 열쇠전망대로 옮겨 관리하고 있습니다.


▲ 열쇠전망대에 있는 충현탑


다음으로 백마고지 기념관에 방문해 보았습니다.


백마고지 기념관 안으로 걸어가면, 백마고지 전투 전사자비가 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 당시 장렬하게 산화한 국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전사자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기념관으로 올라갔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 전사자비


백마고지 기념관은 동편과 서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편에서는 백마고지 전투 당시 제9사단장이었고, 제15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종오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 백마고지 기념관에 있는 백마 한 마리


동편과 서편에는 동판이 있습니다. 이 동판들은 백마고지 전투 당시에 소모됐던 탄피를 녹여 제작되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약 27만 5천여 발의 탄피가 나왔다고 할 만큼 치열했던 전투였습니다. 기념관 한쪽에서는 중공군이 사용했던 장비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 탄피를 녹여 만든 동판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백마고지 기념탑. 기념탑 앞에 서서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 바친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백마고지 기념탑


열쇠전망대에 있는 충현탑과 백마고지 기념관을 다녀와서, 6.25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전쟁 당시 목숨 걸고 우리 국토를 수호한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생활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늘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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