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5,590,388
  • Today | 386
  • Yesterday | 2,289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인천 수봉공원에는 다양한 현충시설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수봉공원을 찾아가 인천지구 전적비,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를 방문하였습니다.

 

기념비들이 있는 수봉공원은 인천지하철 1호선 도화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수봉공원 입구에서 5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인천지구 전적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 인천 수봉공원에 있는 인천지구 전적비


가까이에서 본 조각상의 모습은 굉장히 역동적이었습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당시 마산-왜관-포항을 연결하는 낙동강 방어선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펼쳐 성공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고, 북진의 발판을 마련하였죠.

 

이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1980년 9월 15일, 옛 격전지를 굽어보는 이곳 수봉공원에 전적비를 건립하였고, 2017년 10월 11일 인천시 6.25참전유공자를 기리기 위해 명비를 건립한 것입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천지구 전적비 옆에 나란히 있던 유엔 참전 기념탑이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힘을 합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함께 이것을 기념하는 의미인 것으로 보입니다.


▲ 인천지구 전적비 옆에 있던 유엔 참전 기념탑


인천지구 전적비를 지나 산책로를 걷는 도중, 재일학도의용군참전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탑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던 재일동포의 자녀와 유학생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병역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고 합니다.

 

그 중 동경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동포와 유학생들은 유엔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는데요, 이처럼 바다를 건너 달려온 재일학도의용군의 고귀한 뜻을 영원히 기리고자 이 탑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일학도의용군참전비를 지나 마지막으로 제가 방문한 곳은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입니다.


▲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는 조국과 민족의 자유 수호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던 무공수훈자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의 건립취지문


특히 비석에 쓰여 있는 ‘이곳은 조국과 민족의 자유 수호를 위해 멸공 전선에서 함께 한 전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터전이다.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전시 또는 그에 따르는 비상사태 아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수훈자들의 애국애족 불꽃정신은 자자손손, 남으리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실제 전투에 참여하셨던 분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무공수훈자 명각비도 볼 수 있었는데요. 


▲ 무공수훈자 명각비


비석에 빼곡이 쓰여진 이름을 보니 이 분들의 애국심을 좀 더 무겁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세 곳의 현충시설 외에도 인천 수봉공원에는 현충탑, 자유 수호의 탑 등의 현충시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인천에 살며 수봉공원을 많이 방문했지만, 이러한 현충시설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쳤던 게 사실입니다.

 

인천은 6.25전쟁 중 전세를 뒤집은 계기였던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곳이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현충시설이 많습니다.

제가 이번 취재를 하며 느낀 것은 주변에 있는 현충시설에 관심을 두고, 방문하는 것이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 헌신한 분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http://mfis.mpva.go.kr/)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어떤 현충시설이 있는지 찾아보고,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참고사이트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http://mfis.mpva.go.kr/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한때 국군은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했으나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대반격으로 압록강까지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고,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막아내고 다시 북진해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1951년 7월 10일부터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이 열렸고, 군사 분계선 설정 문제를 비롯하여 휴전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협정, 전쟁 포로, 양측 관계 정부에 대한 건의 문제 등 4개 의제를 토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회담은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했고 장기간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에는 전선이 소강 상태를 유지했으며, 회담이 결렬 또는 지연될 경우에는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회담 천막과 전장 사이를 오가는 지루한 상황이 2년여 동안 지속된 것이죠.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전까지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피의 능선 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고지 전투, 펀치볼 전투, 고양대 전투, 백마고지 전투, 저격 능선 전투, 금성 전투 등 수많은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죠. 중요한 고지를 놓고 하루에도 몇 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 속에서 엄청난 인명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 백마고지 기념관 입구에 있는 돌로 만든 표지판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5사단 열쇠전망대. 민통선 이북지역이라 사전에 신청과 승인을 거쳐 들어가야 했는데요. 여기에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 5사단 열쇠전망대 전경


충현탑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덕산리에 있던 탑을 열쇠전망대로 옮겨온 것인데요. 6.25전쟁 중 대광리 북방고지 탈환을 위해 ‘아더 지 투르도’ 소장이 지휘한 장병들은 중공군 주력부대를 섬멸, 격퇴합니다. 따라서 대광리 북방고지의 방어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었죠.


이들 장병의 공적을 찬양하며 자유 평화를 위해 산화한 참전용사와 우리 국군장병의 영령 893위를 추모하기 위해 충현탑을 건립했습니다. 충현탑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 발견되었으며 2000년대 초반, 열쇠전망대로 옮겨 관리하고 있습니다.


▲ 열쇠전망대에 있는 충현탑


다음으로 백마고지 기념관에 방문해 보았습니다.


백마고지 기념관 안으로 걸어가면, 백마고지 전투 전사자비가 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 당시 장렬하게 산화한 국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전사자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기념관으로 올라갔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 전사자비


백마고지 기념관은 동편과 서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편에서는 백마고지 전투 당시 제9사단장이었고, 제15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종오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 백마고지 기념관에 있는 백마 한 마리


동편과 서편에는 동판이 있습니다. 이 동판들은 백마고지 전투 당시에 소모됐던 탄피를 녹여 제작되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약 27만 5천여 발의 탄피가 나왔다고 할 만큼 치열했던 전투였습니다. 기념관 한쪽에서는 중공군이 사용했던 장비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 탄피를 녹여 만든 동판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백마고지 기념탑. 기념탑 앞에 서서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 바친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백마고지 기념탑


열쇠전망대에 있는 충현탑과 백마고지 기념관을 다녀와서, 6.25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전쟁 당시 목숨 걸고 우리 국토를 수호한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생활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늘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이제 무더운 여름이 다 가고 선선해져 야외활동하기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혹시 여러분은 남산의 끝자락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61년 뒤인 1970년 10월 26일, 조선신궁이 있었던 남산에 건립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기념관이 노후되고 또 협소해짐에 따라, 2004년 (사)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국가보훈처에서는 2010년 10월 26일 새 기념관을 개관하였습니다.


▲ 안중근의사기념관 전경


기념관은 2011년 국가보훈처의 현충시설로 지정되었으며, 서울시교육청의 현장학습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과의 교류 협정을 체결하여 안의사의 뜻을 기리는데 서로 협력함을 널리 알렸으며, 2015년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의 업무협약 체결 이후 「울림, 안중근을 만나다」, 「동포에게 고함」과 같은 특별전을 개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안 의사의 숭고한 뜻을 널리 알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습니다.


▲ 기념관 제 3전시실의 전경


현재 기념관은 지하 2층부터 지상 2층까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하 2층에는 지난 3월에 안중근 의사 107주기 추모식이 열렸던 대강당이 있습니다. 지하 1층부터 제 1전시실이, 1층에는 제 2전시실, 그리고 2층에는 제 3전시실과 추모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 1전시실은 을사늑약 체결 전후의 안중근 의사의 활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항일운동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중국 산둥, 상하이 등지를 시찰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6년경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등 조국과 민족을 되살리기 위한 활발한 교육활동을 펼쳤습니다. 또한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조직하는 등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제 2전시실은 안중근 의사의 해외활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07년 연해주로 망명을 떠난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 한인사회의 결속과 환난 구제를 위해 동의회를 조직,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의병투쟁으로 구국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안의사는 1908년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09년 초, 11명의 동지들과 일심단결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단지동맹을 맺었습니다.


제 3전시실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얼빈 의거 이후 법정에서 안의사는 하얼빈 의거가 한국 독립전쟁의 한 부분이며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행한 것이므로 만국공법에 의해 처리해 줄 것을 주장하였으나, 일본 법정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언도합니다. 5개월 동안 뤼순감옥에서 안의사는 자서전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합니다. 또한 옥중유필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안의사는 일제의 방해로 『동양평화론』의 집필을 마치지 못했고 동년 3월 26일, 31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는 한국 독립운동의 방향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던 안의사의 의거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이번 기사에서는 기념관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안중근 아카데미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안중근 아카데미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사상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안중근의사의 생애, 활동과 평화사상에 대하여 논합니다. 제 13기 안중근 아카데미의 경우, 지난 9월 5일 개강하였고 12월 19일까지 총 15주에 걸쳐 매주 화요일에 진행되는데요. 강의와 토의, 국외 안중근의사 사적지답사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세부일정 및 교육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안중근 아카데미 교육일정


기념관은 안중근 아카데미에서 전 교육과정 80% 이상을 수료한 참가자에게 안중근의사기념관장 명의의 수료증을 수여하고, 일정기준 이상의 교육 수료자에 대해서는 안중근홍보대사로 위촉하여 학교 및 단체 등에서 안중근 의사 홍보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 안중근 아카데미 소식 자세히 보기 

http://www.greatkorean.org/bbs/board.php?bo_table=seminar


▲ 안중근의사기념관 전경


선선해진 가을,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하셔서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게 하는 기틀을 만들어주신 안중근 의사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 참고자료

안중근의사기념관 http://www.ahnjunggeun.or.kr/

안중근 아카데미 http://www.greatkorean.org/bbs/board.php?bo_table=seminar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테고리
카테고리 (4291)
알림-터[소식&공지사항] (342)
국가보훈처 소식 (274)
보훈행사일정 (65)
정책-터[보훈정책] (646)
훈훈한 보훈 정책 (417)
인포그래픽 (66)
카드뉴스 (68)
정책브리핑 (94)
궁금-터[호국보훈이야.. (948)
이달의 독립운동가 (100)
이달의 6·25전쟁 호.. (77)
독립 이야기 (392)
국가 수호 이야기 (136)
민주 이야기 (33)
웹툰 (209)
훈훈-터[온라인기자단] (1866)
훈남훈녀 온라인기자단 (1859)
얻을-터[이벤트&이야기] (479)
훈터 이벤트 (342)
보훈 퀴즈의 신 (135)
금주의 인기 포스트
평창 동계올림픽 계기 네덜란드 참전용사 재방한 퀴즈 이벤트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
설 연휴 기간, 국립묘지 안장 및 보훈병원 이용 안내
네덜란드 참전용사,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대한민국과 다시 만나다
국가보훈처 동영상
청년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