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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지금, 우리는 전보다 더 마음속에 국가 안보를 삶으로 실천하신 호국 영령들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독자 여러분들께 그런 호국 영령들이 안치되어 계신 국립이천호국원에 대해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 국립이천호국원 소개판


▲ 호국원 배치도


국립이천호국원은 국립영천호국원과 국립임실호국원에 이어 준공된 곳으로, 호국영령의 위훈과 명예를 선양하는 상징적 추모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국립이천호국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령이 영면하여 계시는 곳으로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노성로 260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며 유아, 노약자, 장애인을 위한 유모차와 휠체어가 마련되어 있으니 관리사무소에 문의하시면 이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80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어 보다 편리하게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 국립이천호국원 건립돌판


▲ 현충관 전경 (출처: 국립이천호국원 홈페이지)


국립이천호국원은 묘역과 각종 시설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안장 관련 시설물인 현충관, 임시봉안관, 참배 및 추모시설인 현충탑과 현충문, 조형 및 휴게시설인 홍살문, 호국인 쉼터, 충용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충관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령을 안장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는 곳으로, 1층은 합동안장식 및 개별 안장의식을 거행하는 강당(행사가 없는 날에는 교육용 영화 상영)으로 2층은 안보 전시관으로서 광복직후 역사와 6.25전쟁, 베트남 전쟁 등 호국 안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조형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현충문 전경


▲ 현충탑


▲ 현충탑 주변 조형물


현충탑은 참전용사들의 영혼과 영원을 상징하는 구를 두 손이 떠받쳐 승화시키는 구조로, 후손들이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탑 좌우에 배치된 국군 동상이 그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 홍살문 (출처: 국립이천호국원)


▲ 충용탑의 모습


▲ 헌시비의 모습


호국원 내에는 홍살문, 호국인 쉼터, 충용탑 등 조형물 및 휴게시설이 있어 내방객들의 편의 및 볼거리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나라사랑 솟대, 헌시비(헌시가 적힌 돌판) 등 각종 호국관련 조형물들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국립이천호국원에는 국민들을 위한 다양한 국가안보 관련 교육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생 및 군인, 보훈, 참전단체를 대상으로 사전에 전화 신청 및 현장접수를 통해 약 1시간에서 2시간이 소요되는 참관 교육을 무료로 받으실 수 있으며 평일 오전 10시 ~ 오후 5시 사이에는 현충관에서 약 50분 길이의 호국영화를 시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 국립이천호국원에 설치된 하늘나라 우체통


호국 안보 전시관에 있는 전쟁역사실과 한국전쟁실에서는 우리 민족의 전쟁사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만약 참배를 위해 방문하실 예정이라면, 한번 들러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뿐만 아니라, 국립이천호국원 홈페이지(http://www.icnc.go.kr/)에서는 방문이 어려운 국민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자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 나라사랑 솟대 모습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이끌었던 맥아더 장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기는 역사를 이끌어간다”. 당신을 희생하며 나라를 지켜낸 호국 영령의 용기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이 되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 그리고 나라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 참고자료

국립이천호국원 http://www.icn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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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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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개전 3일 만에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으나 북한군은 포항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조금 더 후퇴하면 부산이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 속, 국군과 북한군은 포항의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됩니다.


밀려오는 적의 공격, 국군은 포항을 탈환하기 위해 형산강을 두고 역전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를 펼쳤는데요. 이것이 바로, 형산강 도하 작전입니다.


# 형산강 도하 작전이 일어나기까지


▲ 적군을 향해 총탄을 겨누고 있는 국군 (출처: 타임트리 블로그)


1950년 8월 초, 동부전선의 청송지역으로 진출했던 북한군 12사단이 경주 방어의 요충지였던 기계 지역을 점령하게 됩니다. 낙동강 방어선이 흔들리자 적군은 8월 11일에 포항일대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국군 3사단은 고립되고, 경주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북한군은 포항 일대를 점령한 뒤, 쉬지 않고 경주 일대로 진출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였던 형산강 도하 작전을 서두르게 되는데요. 이에 북한군 5사단, 12사단, 그리고 유격부대인 766부대를 작전에 투입시킵니다. 북한군 제766부대는 영덕에서 기계-안강 일대를 향해 서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동해안에서는 제5사단이 영덕에서 해안지대를 따라 계속 남진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의 움직임에 국군 제3사단은 적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영덕 지역에서 남쪽 10km 지점인 장사동 일대로 전진하여 북한군 제5사단과 맞서게 됩니다. 


국군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8월 11일 새벽 4시경, 북한병력의 일부가 침입함에 따라 포항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은 포항 탈환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3개 독립부대를 투입하여 북한군이 더 이상 진출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작전을 모색하게 됩니다.


# 포항을 되찾기 위한 형산강 도하 작전


▲ 전투에 투입중인 국군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이슈 블로그)


형산강 도하 작전은 포항을 탈환하기 위해 1950년 8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지속된 형산강 방어 전투에서 시행되었던 작전입니다. 당시 형산강 남쪽으로 영일군과 구룡반도가 위치해 있었고, 만약 북한군이 인근의 영일 비행장을 차지하게 된다면 우리 공군의 출격이 저지당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형산강 북쪽으로는 강을 건너 공격하는 국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군의 김일성 직속 충견전대, 그리고 5사단 10연대 11연대의 기관총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남쪽으로는 북한군을 막기 위한 국군의 방어선이 형성되어 있었는데요. 그야말로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치상황이 이어졌습니다. 

 

▲ 6.25전쟁 당시 적진으로 향하는 모습 

(출처: 칼칼의 밀리터리와 모형 그리고 풍경 블로그)


▲ 연제근 이등상사 (출처: 예.아-YEAH-그 환한 빛 블로그)


국군 제3사단 22연대 1대대의 분대장이었던 연제근 이등상사는 특공대를 결성하여 1950년 9월 17일, 12명의 돌격대원을 이끌고 포항을 탈환하기 위한 형산강 도하 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연제근 이등상사와 특공대원들은 수류탄을 몸에 매달고 물이 불어서 가슴 높이까지 오는 물살을 헤치며 형산강의 도하 작전을 실시했습니다. 북한군의 무차별적인 사격이 이어졌지만, 연제근 이등상사와 대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수중포복까지 감행하며 한발 한발 전진하였습니다. 도하 도중, 연제근 이등상사는 북한군의 사격으로 어깨가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게 되는데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전진하여 수류탄 3발로 적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한 뒤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 형산강 도하작전의 영웅 연제근 상사 특공대상 (출처: 현충시설정보 서비스)


북한군은 막아냈지만, 안타깝게도 연제근 이등상사를 포함한 9명의 특공대원들은 적탄에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했던 형산강 도하 작전은 국군 22연대가 형산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했으며, 나아가 포항을 수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요. 이후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뛰어든 국군 장병들의 나라를 위한 헌신으로, 현재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9월의 초입에서, 포항의 형산강을 건너 우리나라를 지켜낸 호국영령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들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 참고자료

형산강 도하작전의 영웅들, 불꽃처럼 타오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Ynfp4KK9Q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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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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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수

    2017.09.15 0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해 된 간수의 유족은 보복하지 않나요?


 “함께 싸웠던 사랑하는 부하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장군 묘역이 아닌 전우들과 함께 묻힌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영웅인, 초대 주월 채명신 한국군사령관을 만나보겠습니다. 국군 장성이 사병 묘역에 안장된 것은 채명신 장군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묘역 아래 곱게 자란 연한 보랏빛 구절초는 더 진한 향기를 품는 듯 했습니다. 채명신 장군의 이름 앞에 가득한 무궁화는 왠지 서럽게 느껴졌습니다.


▲ 채명신 장군의 묘


채명신 장군은 1926년 황해도 곡산에서 항일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47년 월남해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5기로 입학했습니다. 1949년 육사를 졸업한 뒤 이듬해 6.25전쟁에는 소위로 참전해 육군 5사단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쳤는데요. 1965년 8월~1969년 4월까지 초대 주월 한국군사령관과 맹호부대장을 맡아 4년 동안 베트남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100명의 적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지시하는 등 덕망있는 장군으로 존경받았다고 합니다.


▲ 채명신 장군의 비석


채 장군의 비석 뒤에도 많은 이들의 묘비가 있었는데요.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

마치 이 문구가 양팔을 벌려 그들을 껴안은 듯합니다.



▲ 국립서울현충원 전경


나라를 위해 희생ㆍ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계신 국립서울현충원. 제가 방문했던 날의 하늘은 더없이 높고 맑았지만, 수많은 묘비 앞에 서니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선선해지는 요즘, 나들이처럼 왔다가 여기 잠들어 계신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배워갔으면 합니다.


*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60102&cid=43667&categoryId=4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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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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