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25일은 대한민국 무장투쟁사의 가장 빛나는 승리, 청산리 대첩과 봉오동전투에서 맹활약한 홍범도 장군이 순국한 날입니다. 대한독립군을 편성, 총사령관으로서 맹활약했던 무장투쟁의 전설 홍범도 장군을 추모하고 그의 삶에 대한 학술적 접근을 위한 추모식 및 학술회의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는 구남신 서울북부보훈지청장과 강정호 대한민국 해군 홍범도함 함장 등 130여 명이 참여하였습니다. 총 2부로 나뉘어 1부는 추모식을, 2부에는 학술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제1부. 백두산 호랑이, 날으는 홍범도 장군을 추모합니다.
1부는 홍범도 장군의 추모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개회선언과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이종찬 기념사업회 이사장의 기념사가 이어졌습니다.

이종찬 이사장은 그동안 조명하지 못했던 홍범도 장군의 러시아에서의 활동과 자유시 참변, 1937년 강제 이주 이후 카자흐스탄에서의 정착과 역할, 그리고 서거 이후의 평가와 추모 사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검토하는 이번 학술회의의 의의를 밝혔습니다. 또한, “독립운동의 최고 영웅으로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정착하는 우리 동포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기여를 했는지 조명하길 바란다.” 며 이번 학술회의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했습니다.

이어진 추모사에서 구남신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 평생을 숱한 무장투쟁에 헌신한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애국선열들의 위국 정신을 이어받아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나라사랑 정신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에게 보내는 추모 편지 낭독에서 강정호 대한민국 해군 홍범도함 함장은 무장투쟁의 선구자로 그 중심에 있었던 삶과 업적에 대해 되새겼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펼친 홍범도 장군의 삶과 업적을 거울삼아 국토방위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임을 약속하였습니다.
제2부. 러시아 동포사회에서의 홍범도 장군의 역할

2부는 ‘러시아 동포사회에서의 홍범도 장군의 역할’이라는 대주제와 그 아래, 4개의 소주제로 학술회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효승 기념사업회 국장의 사회로, 윤상원 전북대학교 교수, 홍웅호 동국대학교 교수, 최영근 카자흐스탄 공훈 문화인, 맹고군 중국 흑룡강성 밀산시 전 부시장이 발표에 참여했습니다.



제1주제 러시아 적군 활동과 자유시 사변 (발표자 : 윤상원 전북대학교 교수)
제2주제 강제 이주와 카자흐스탄에서의 정착생활 홍범도 장군의 말년은 쓸쓸했다? (발표자 : 홍웅호 동국대학교 교수)
제3주제 러시아 동포사회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인식과 추모사업(발표자 : 최영근 극작가, 카자흐스탄 공훈 문화인)
포문을 연 첫 주제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최대 비극, 자유시 사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자유시 사변에서 홍범도 장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히는 것이 발표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제2주제는 고려인의 강제 이주와 홍범도 장군의 카자흐스탄 정착생활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홍범도 장군의 말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말년에 그는 고려극장 수위로 일하며 쓸쓸히 죽었다고 다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웅호 교수는 이는 우리의 시각을 사실로 규정하는 바람에 잘못 알려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고려인들이 생활고를 겪었고, 수위로서 일하고, 거기에 따라붙는 지원이 생계유지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됐겠지만, 이곳에서의 수위는 생각보다 훌륭하고 존경받는 직책이었다는 것입니다. 홍웅호 교수는 고려극장은 많은 고려인이 모이는 한인 극장이었고, 홍범도 장군은 고려인 사회의 큰어른으로서 당당하고도 기개가 넘치는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런 오해는 대한민국에서 ‘수위’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대우가 낮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평소 건물을 관리하는 ‘수위’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과 시각에 대해 반성해야 할 일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러시아 동포사회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인식과 추모 사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최영근 작가는 고려인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전우들의 회고록, 연극, 문학작품을 소개했습니다. 또한, 서거 이후 지속되었던 추모사업과 묘역 정비 사업에 대한 현황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려인 후예 대다수가 홍범도 장군을 모르는 현실에 대해서 말하며 그 원인에는 고려인 청년의 민족의식의 부재에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보훈처 기자단으로서 보훈의 중요성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진행된 토론과 질의응답 시간도 강의 시간처럼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평소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 무장 독립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러시아 동포 사회에서의 전설이자 리더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홍범도 장군에 대한 학술회의는 기존에 역사 책에서 보던 홍범도 장군을 러시아 동포사회의 큰할아버지라는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3주제에서 언급됐던 고려인 후예 대다수가 홍범도 장군을 모르는 현실은 비단 러시아 동포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청년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이 땅을 위해 목숨 바친 모든 영웅들이 잊히지 않도록 훈남훈녀 기자단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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