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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5월 중순, 백재덕 일등중사의 부대는 중부전선의 금성·김화지역 주저항선에서 치열한 고지쟁탈전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백재덕 일등중사의 부대가 지키던 ‘샛별고지’는 강원도 금성 서남쪽 약 5.8Km에 위치한 완만한 경사(표고 470m)의 이름없는 산입니다. 주위의 넓은 계곡과 함께 개활지가 넓게 형성돼 있어 적이 수월하게 기동할 수 있고 피아간 포격의 목표가 되어 접근이 곤란한 전술적 요충지였습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수도사단 기갑연대 10중대 3소대 3분대장으로서, 이틀 뒤인 17일부로 사단예비인 제1연대와 주저항선 방어임무를 교대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이 중부전선의 요충지를 사수해야만 했습니다. 10중대는 1952년 10월 지형능선전투에서 적 2개 대대의 공격을 백병전으로 막아낼 정도로 훈련이 잘 되어 있었고 정찰 및 수색활동에도 경험이 많았습니다.


(* 백병전 : 적과 근접해 있어 사격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육박하여 칼·창·총검 등으로 싸우는 전투.

‘육박전’이라고도 함.)



한편, 아군의 방어 정면에는 중공군의 제67군 199사단 예하 제569연대의 2개 대대 병력이 아군진지에 대한 수색공격을 감행하며 아군의 화력, 병력배치 상황을 파악하며 지형정찰 및 포로 획득을 도모하며 샛별고지 점령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 백재덕 이등상사 초상


새벽 1시, 적은 약 5천여발의 포탄을 샛별고지에 퍼부어 아군진지를 교란시킨 후 아군의 전면과 전초진지 전체로 대규모 인해전술을 펼치며 접근해 왔습니다. 아군은 적을 향해 60mm 박격포와 4.2인치 박격포, 105mm 야포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적의 공격은 집요했습니다. 제10중대 진지 일대에서 수류탄을 주고받는 사투가 벌여졌고 수적으로 우세한 적에게 진지 침입을 허락하고 맙니다. 이에 아군은 대대화력의 병력과 포격을 요청하여 반격에 나서는데요. 마침내 뺏긴 진지를 수복하였고, 도주하는 적들을 소탕하는데 성공합니다.



▲ 중공군의 야간 로켓포 공격(출처: 전쟁기념관)


5월 15일 밤, 백재덕 일등중사가 지휘하는 3분대는 매복조로 차출됩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중대 진지 앞에서 진목동 일대를 살피고 있던 중 수상한 적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긴급히 조명탄을 발사합니다. 그가 본 건 진지를 향해 은밀히 접근하고 있는 중공군 3개 중대. 백재덕 일등중사는 “여기서 적을 꺾지 못하면 중대의 주진지가 위태로워진다. 전 분대원은 나와 같이 이곳에서 뼈를 묻자”며 분대원들을 독려합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침착하게 적의 접근을 기다렸다가 수류탄을 투척하고, 중공군 제1파 15~16명이 진내로 돌입하자 과감한 백병전으로 적을 격퇴시켰습니다. 



▲ 중공군의 인해전술(출처: 전쟁기념관)



이어 중공군 제2파가 다시금 공격해오자 적을 가까운 거리까지 유인하여 사살하였고, 중공군 제3파가 다시 진내로 진입하자 분대원 6명과 함께 적 10여명을 치열한 백병전 끝에 총검으로 무찔렀습니다. 이 전투로 분대원 6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백재덕 일등중사는 몸을 사리지 않고 10여명의 적을 사살한 용맹한 군인정신과 진지를 고수한 전공을 인정받아 1954년 이등상사로 1계급 특진하였고, 태극무공훈장 및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샛별고지전투의 승리는 우리군이 중부전선에서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를 무사히 확보해 전선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샛별전투의 주인공인 백재덕 이등상사의 용맹함과 리더십, 살신성인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샛별고지 전투,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6·25전쟁의 한 조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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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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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남침을 계획하던 북한군의 눈에 들어온 옹진반도. 그들은 남침에 앞서 군사력을 과시하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취약한 지형상태를 지닌 옹진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1949년 5월,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게 됩니다. 결국, 아군은 옹진반도의 요충지인 까치봉을 빼앗기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때 까치봉을 구할 영웅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장복 중사. 1930년 4월 충남 아산군 둔포면에서 출생한 이장복 중사는 1949년 자원입대하여 제1사단 13연대 2대대 소속으로 옹진반도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수차례에 걸친 까치봉 재탈환 노력이 있었지만, 작전은 거듭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이장복 중사가 소속된 제13연대 2대대가 출동하여 치열한 사투를 벌였고, 드디어 6월 22일에 까치봉 탈환에 성공합니다.


▲ 치열했던 6.25 전쟁의 모습 (출처: 나라사랑배움터)


하지만 까치봉을 탈환했다고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까치봉 후방의 유리한 지형에는 적의 박격포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까치봉은 적에게 언제 뺏길지 모르는 풍전등화의 상황이었습니다. 즉, 적의 박격포 진지가 있는 한 까치봉을 온전하게 점령했다고 볼 수 없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단. 바로 적의 박격포 진지를 기습 파괴하기 위해 결사 대원을 선발하게 되고, 이장복 중사는 결사대에 자원하여 6월 23일 새벽, 5명의 결사 대원과 수류탄을 무장한 채 적진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윽고 이장복 중사는 5명의 결사 대원과 적의 박격포 진지를 파괴했고, 본인은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됩니다.


결사대의 예상치 못한 기습에 북한군은 진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퇴각하던 북한군을 놓치지 않고 아군이 총공세를 가하여 적 200명을 살상했고, 기관총과 다발총 35정을 노획하여 북한군의 야욕을 저지했습니다.


이 엄청난 승전보는 국군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 주었는데요. 그 중심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이장복 중사가 있었습니다.


▲ 화랑무공훈장 (출처: 대한민국 상훈)


대한민국 정부는 故 이장복 중사의 공적을 기려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장복 중사. 그와 같은 호국 영웅들이 있어 우리가 이토록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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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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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과 싸웠던 것은 국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경찰들 역시 그 누구보다 앞장 서서 우리나라의 국민들을 수호하였는데요, 특히 ‘지리산의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북한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경찰도 있었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2016년 10월의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강삼수 경찰 경위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끝까지 지리산을 지켜낼 것입니다.”


강삼수 경위는 1923년 2월 20일에 태어나 1948년 4월, 산청경찰서의 순경으로 채용되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강삼수 경위는 경찰관으로서 주민들과 지리산을 지켜내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끝없이 남침을 계속해가던 북한군은 1950년 9월 15일에 시행된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수복으로 인해 남쪽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오갈 데도 없던 그들은 지리산에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며 자신들의 목숨을 이어가려 했지만 그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지리산은 강삼수 경위가 지켜내고 있던 지역 중 하나였기 때문이죠. 


강삼수 경위는 이 무렵 사찰유격대장으로 임명되어 지리산에 숨어있는 북한군 무장세력과 빨치산을 소탕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는데요, 특히 산청경찰서 사찰유격대장에 재직 중이던 1951년 11월에는 국수봉에 북한군이 집결 중이라는 제보를 받고, 새벽 1시 경에 퇴로에 매복조를 배치한 뒤 기습하여 23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10명 내외의 적은 인원의 부대였지만, 주변 산세의 지형, 기물과 지리를 철저히 활용한 강삼수 경위와 부대원들은 북한 정예군 출신을 비롯한 셀 수 없는 적과의 전투에서도 계속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강삼수 경위와 부대는 ‘지리산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북한군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대상으로 자리잡았죠.


강삼수 경위와 그의 부대는 전쟁 중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총 62회의 크고 작은 전투에 임하게 되었고, 필승의 신화를 이어갔는데요, 국군의 정예병력 못지않은 그들의 놀라운 전공은 지리산이라는 지역 자체가 안정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산청서 출신 호국영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삼수 회의실’

이미지 출처 : 산청경찰서


이러한 공헌을 인정 받은 강삼수 경위는 화랑무공훈장, 방위포장 등 41회에 걸쳐 훈포장을 수상했고, 산청경찰서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강삼수 회의실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강삼수 경위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아실 수 있겠죠? 10월의 6•25전쟁 호국영웅 강삼수 경위, ‘지리산 귀신’으로 불렸던 그의 이름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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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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