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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자유롭게 우리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와,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하나의 투표를 할 수 있는 선거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는 바로, 과거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1960년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선거로 인해 4월, ‘4.19혁명’이 일어났습니다. 3월 15일의 정ㆍ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은 장기 집권 체제를 연장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공개적으로 투표하게 하고,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등 유례없는 부정선거를 자행하였습니다. 이에 많은 시민들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일어났는데요. 3월 15일의 1차 창원(구 마산)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마산상고생 김주열 군의 시신이 창원(구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됩니다.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신의 모습에 분노가 터져 나왔고,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시민들과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4천여 명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 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평화적인 시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귀가하던 중 경찰과 모의한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습격으로 많은 학생들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인 4월 19일, 총 궐기하게 됩니다.


자유당 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시위를 진압했지만 결국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시민대표와의 면담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겠다”고 하야를 발표하면서 4.19혁명은 자유를 염원하던 시민들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 국립 4.19 민주묘지 입구


이 4.19 혁명 희생자들을 기리고,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4.19 정신을 일깨워주는 국립 4.19 민주묘지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일원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기존 지하철 4호선인 수유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찾아가기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2일 우이신설선 개통으로 인해 4.19민주묘지역이 생김으로써 국립4.19 민주묘지를 방문하기에 훨씬 수월해졌는데요. 우이신설선을 이용하여 제가 직접 찾아가 보았습니다.

저는 4호선인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환승해 직접 국립 4.19 민주묘지까지 이동했습니다.


▲ 성신여대역에서 우이신설선을 탑승 후,

북한산 우이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먼저 지난 2일 개통된 서울시 첫 경전철 우이신설선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동대문구 신설동까지 총 11.4km에 4.19민주묘지역을 포함한 13개 역이 놓여 있습니다. 이 중에서 환승이 가능한 구간은 신설동역과 보문역, 성신여대입구역입니다.


기존에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아가려면, 수유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15~20분 정도 갔어야 했는데요. 우이신설선을 타고 4.19민주묘지역에 하차하면, 걸어서 채 5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 4.19 민주묘지역 2번 출구


역의 2번 출구로 올라온 다음, 바로 보이는 4.19 민주묘지 입구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바로 민주묘지가 보입니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는 수유역을 통해 왔었는데, 우이신설선으로 오니 정말 편했습니다. 특히 고령의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버스를 타기 힘드실 텐데, 경전철이 있어 훨씬 수월하게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서울 시내에 있는 국립 4.19 민주묘지


국립 4.19 민주묘지 입구에는 국가보훈처의 소식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는데요. 국립 4.19 민주묘지의 새로운 소식과 함께 9월의 독립운동가 ‘고운기’ 선생에 대한 이야기, 9월의 전쟁영웅 김용식 일등병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있었습니다.


▲ 국립 4.19 민주묘지 입구에 있는 안내게시판


다음으로 사월 학생운동 기념탑을 찾았는데요. 4.19혁명 당시 벌어졌던 전국의 수많은 시위에는 시민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참여했습니다. 아래는 사월 학생 혁명 기념탑 하단에 있는 추모문구입니다.


▲ 사월 학생 혁명 기념탑 가는 길


▲ 사월 학생 혁명 기념탑


 一九六0년, 四월 十九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 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 학생 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 제단에 피를 뿌린 一八六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四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四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 기념탑 아래에 있는 문구.


이 문구를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는데요. 4.19혁명으로 인해 우리가 이렇게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국립 4.19민주묘지를 돌아봤습니다.


우이신설선 개통. 많은 시민들이 국립 4.19민주묘지를 편안하게 찾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아 그 당시 사람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 민주, 정의의 소중함을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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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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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여러분! 4월에 진행될 보훈행사를 소개드립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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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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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여러분!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뜻깊은 달입니다. 모두가 거리로 나와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외친 3·1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난 달이고, 부정과 독재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민주 의거의 물결이 시작된 달이기도 합니다. 민주화운동의 효시가 된 3월의 민주의거에 대해 소개하고,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3·8민주의거는 1960년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맞서 대전지역에서 일어난 학생의거입니다. 정권교체를 소망했던 국민의 뜻에도 불구하고, 장기집권을 꾀한 자유당 정권은 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하는 등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항거한 3·8민주의거는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었습니다. 3월 8일 오후에 대전고교 학생들 천여 명이 시내로 나가 시위에 참여하였고, 곧 경찰에 의해 연행 및 감금되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3월 10일, 대전상고 학생 육백여명의 가두시위가 이어졌으며, 경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격한 충돌이 있었습니다. 이는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마음에 불을 붙여, 3·15마산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3·8의거 당시 대전 학생들과 이를 진압하는 경찰들 (출처: 3·8의거 기념사업회)


한편,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자유당의 부정선거지령을 폭로하는 등 맞섰으며 전국 시민들에게 부정선거 거부운동 참가를 호소했습니다. 3월 15일, 야당 측의 포기와 다름없는 상황에서 개표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자유당의 터무니없는 압승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공개투표와 완장부대 활용, 표 바꿔치기 등 각종 부정행위와 조작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당일 저녁 마산 시민들이 남녀노소 집결하여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시작하게 됩니다.


▲3·15 마산의거 당시 시위에 나선 시민들과 제지하는 경찰 

(출처: 3·15마산의거 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기획관리실 이종률 부장은 “부정선거에 맞선 이전의 시위가 학생시위였던 것에 반해 3·15의거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일어난 것”이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전보다 커진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는 등 무력을 행사하였고, 이로써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는데요. 시위 이후 실종되었던 김주열 군의 시체가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었고, 분개한 시민들은 계속해서 항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이종률 부장은 이에 대해 “정치 차원을 넘어 인권과 평화를 위협한 사건”이라 설명하였습니다. 시민들의 분노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기획관리실 이종률 부장 (출처: 윤희원 기자)


3월에 일어났던 이러한 민주화 운동의 물결은 자유·민주·정의를 지키기 위해 새겨야 할 숭고한 역사입니다. 저는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는 민주화 운동의 전개과정과 각종 사건들을 기념 및 계승하는 기념개정사업, 관련 사료를 수집 및 분류하고 디지털라이징하는 아카이브사업 등을 중심으로 그 뜻과 정신이 바르게 계승되도록 하는 기관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입구와 내부 (출처: 윤희원 기자)


기념사업회에 방문하여 만난 이종률 부장은 ‘국민’과 ‘시민’의 차이에 대하여 “민주주의에 대해 자각하고, 법치주의에 대해 이해하며, 권리와 의무를 알고 참여하는 것이 시민”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3월의 민주화 운동은 침묵을 깨고,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 역사입니다. 이러한 물결은 결코 한 시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계승하여 이어져야 합니다. 봄을 알리는 3월이 과거 누군가에게는 어느 때보다 추운 현실에 맞서 뜨겁게 우짖었음을 기억하고, 3·15 정신인 자유·민주·정의를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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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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