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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0.26사태 이후 신군부 세력은 12.12 사태를 계기로 사실상 정국을 장악하였고, 집권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당성이 취약한 신군부의 일련의 조치들에 국민들은 크게 반발하며, 대규모 시위를 통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습니다.

이에 신군부 세력은 전국의 모든 행정, 입법, 사법을 사실상 자신들이 통제하기 위해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선포하였습니다.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그러자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비상계엄령 확대 조치에 반대하며 거세게 항거했는데, 계엄군은 무자비한 진압으로 학생들의 요구를 억누르려 했습니다.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학생들의 시위와 항의를 계엄군은 강경하게 폭력으로 진압합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합세해 시위는 차량시위 등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자 21일, 계엄군은 자위권 발동이라는 명분으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총격을 감행하여, 이로 인해 수많은 시민들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었습니다.


▲국립 5.18 민주묘지


“고등학생들은 모두 지금 밖으로 나가라! 우리는 여기에 끝까지 남아 죽음으로써 광주를 지켜 낼 것이지만 너희는 반드시 살아나가서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진압적전을 실시하면서, 5.18 민주화 운동은 그 막을 내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마주하고자 2018년 5월 18일에 저는 광주로 향했습니다. 5월 18일, 그날의 기억에 하늘도 함께 슬퍼하는지 광주의 하늘은 계속해서 비를 뿌렸습니다. 518번 버스를 타고 찾아간 국립 5.18 민주묘지에는 5.18 그날을 기억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진행한 전옥주씨가 방송을 재현하고 있다.

(출처: KTV)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우리 형제, 자매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집에서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도청으로 나오셔서 우리 형제, 자매들을 살려주십쇼.”


기념식은 5.18 당시 가두방송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한 전옥주씨의 절절한 외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며 5.18 그날의 이야기를 담은, 마치 영화와도 같은 기념식이 막을 올렸습니다.


▲ 이낙연 국무총리가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 및 분향을 하고 있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각 부처의 장관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5.18 희생자의 유가족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광주의 영령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을 약속하며 헌화와 분향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기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80년 5월, 광주는 광주다웠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5월 15일을 기해 서울의 대학생 시위는 수그러들었지만 광주는 오히려 일어났다.”며 “군 병력을 투입해 진압에 나섰던 신군부를 상대로 무릎 꿇지 않는 곳,  배고픈 시위자에게 주먹밥을 나누었고, 피 흘린 시위자를 위해 헌혈했던 곳, 그 곳이 광주.”라며 민주화를 향한 5월 그날의 광주정신에 깊은 경의를 표했습니다.


▲기념공연 씨네라마 ‘영원한 소년’이 공연되고 있다.


“가족을 잃은 고통은요. 생각보다 크답니다.”


 이후에는 ‘영원한 소년’이 기념공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라진 아들 ‘창현이’를 정신없이 찾아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사랑하는 아들을, 딸을 잃은 모든 부모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창현군의 아버지 이귀복님의 모습을 보며, 5.18 희생영령 유가족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故 이창현군의 아버지 이귀복님


 공연 이후 이 극의 실제 주인공인 故 이창현군의 아버지, 이귀복님이 단상에 올랐습니다.

8살이었던 아들 창현군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굽은 어깨와 수십 년간 아들을 찾아다닌 사연은 보는 이들을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신군부 세력이 비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얼마나 많은 시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는지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故 찰스 헌틀리 목사의 아내 마사 헌틀리 여사가 남편을 향한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이번 기념식에는 당시 목격자였던 故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의 아내인 마사 헌틀리 여사가 함께 했습니다.

광주기독병원 원목으로 재직했던 찰스 헌틀리 목사는 당시의 참상을 기록하여 해외에 알려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데 큰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찰스 헌틀리 목사는 생전에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기념식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광주 양림 선교동산에 헌틀리 목사의 유골 일부가 안장되었습니다.

이날 기념식에서 마사 헌틀리 여사는 먼저 떠난 찰스 헌틀리 목사께 쓰는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광주에서 살았던 11년 동안 광주를 사랑했고 배움을 얻었고

경탄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5.18 민주화 운동 후에 그 마음들은 더욱더 커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보,

우리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광주는 이제 정의의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우리는 광주를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한편 이 날 기념식에는 내빈과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주셨는데요. 저는 식장에 방문한 고등학생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영암남구고등학교 2학년 고등학생들입니다.

 

Q. 이 기념식에 참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어요?

A. 학교 역사동아리에서 5.18에 관심 있는 친구들 위주로 기념식 참석 신청을 받았고, 선발되어 왔습니다.

 

Q. 평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라던가. 알고 있던 사실들이 있었나요?

A. 학교 교과서나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민주화를 위해 많은 분들이 싸우셨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영암남구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Q. 그렇다면 이 기념식에 와서 직접 그날의 기억을 만나보니 어떤 점을 느꼈나요?

A. 사실 책으로 볼 때는 먼 이야기 같아서 잘 와 닿지 않았는데요, 실제로 와서 이 이야기들을 접하다보니 ‘아…아직 얼마 되지 않은 가까운, 잊어서는 안 될 역사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는 5.18이 멀지 않은, 아직도 그 아픔이 치유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역사임을 깨달았습니다.

기념식 진행 전 방문한 묘역에서 저는 많은 유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유가족 분들이 통곡하고, 망연자실해하고, 낯선 사람들을 붙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5.18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끝으로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막을 내렸습니다. 기념식이 끝난 후 저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곳에서 5.18을 겪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그분들은 저에게 사뭇 담담하게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셨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5.18 당시 광주의 모든 시민들이 바로 ‘영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지만, 당시 그분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제가 자유롭고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대한민국에 살게 된 것은 불의와 맞서 싸웠던 이분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감사하는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이후 어느덧 38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5.18 민주화 운동에서 보았던 민주주의를 향해 온몸을 던진 광주 시민들의 정신을 기려야 합니다. 또 그토록 어렵게 쟁취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앞으로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합니다.


1980년 5월, 슬프고 찬란했던 그 날의 광주를 잊지 말고 기억합시다. 



*참고자료

국가기록원

ktv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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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오랜 염원과 노력으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이 땅에 자리 잡기까지 1980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땅에 민주화라는 꽃을 피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광주가 있었습니다.


광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5.18 민주화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는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그들의 희생은 우리에게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광주가 아닌 전주에서도 민주주의를 향해 목소리를 드높이다 스러져간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전주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산화한 이세종 열사에 대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전주의 5.18 희생자 이세종 열사



▲전북대학교 제1학생회관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북대학교에는 공수부대원이 들이닥쳤습니다.

당시 이세종 열사는 '호남대학 총연합회(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대학 연합)'의 연락책임자로서, 전북대학교 제1학생회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군인들의 표적이 됐고, 건물 옥상으로 쫓겨 올라갔다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습니다.


▲ 이세종 열사의 초상. 이세종 열사 가족 일동이라고 표시된 꽃이 눈에 띈다.


전북대학교 농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세종 열사의 나이는 불과 20대 초반, 아직 채 피어나지도 못한 나이였습니다. 당시 이세종 열사의 사인은 단순 추락사인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온몸에는 구타로 인한 상흔이 분명히 남아있었습니다.


열사의 유해는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치되었다가 1997년 5월 이후에 국립 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습니다. 이세종 열사는 1998년 10월, 광주 민주화 관련 보상심의회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사망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이세종 광장의 추모비


1995년, 이세종 열사는 전북대학교 명예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이세종 열사가 목숨을 잃었던 전북대학교의 곳곳에는 열사를 기리기 위한 기념물들이 있습니다. 전북대학교 박물관 (역사관)에는 이세종 열사의 수험표와 사망 진단서가 있고, 제1학생회관 아래에는 열사가 산화한 자리에 그의 희생을 기리는 비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푸른 녹음이 아름다운 광장. 전북대학교의 ‘이세종 광장’에는 이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비가 있습니다.

1985년 세워진 추모비는 광장의 한가운데에서 열사의 넋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 이세종 열사 추모식


▲궂은 날씨에도 약 5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2018년 5월 17일 오후 5시,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이세종 광장에 전북대학교 재학생들, 5.18민주유공자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추모식은 이세종 열사의 약력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추모사를 하는 이석영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이석영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는 당시 겪었던 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목격담을 들려주며 올바른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박진 전북대학교 총학생회장은 이세종 선배님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열사의 삶을 추모했습니다. 이후 간단한 문화 공연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행사가 마무리됐습니다.


▲전북대학교 제1학생회관 아래 비석


1980년 5월 18일 새벽

이세종 열사가 계엄군에 의해 산화한 자리


우리 모두의 발걸음으로 다져져

열사의 뜻이 간직되길 소망합니다.


추모식이 끝나고, 학생회관으로 향했습니다. 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세종 열사의 비석을 보면서 그의 5월 18일을 생각했습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바랐던 그의 순수한 영혼은 여전히 전북대학교에 남아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민주화라는 아름다운 꽃은 결코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시민들의 염원이 모이고 모여, 그리고 숭고한 희생을 통해 일궈낸 것입니다. 이번 추모식을 통해 그 숭고한 희생자 중 한 분인 이세종 열사를 마주할 수 있어서, 그리고 그가 전주에 피워낸 5.18의 정신을 알 수 있어서 저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보훈은 과거의 헌신에 대한 감사이자 미래에 대한 약속입니다. 저는 추모식에서 ‘이세종 선배’가 가르쳐준 5.18 정신을 배워 앞으로 역사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겠다는 전북대학교 학생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통해 이세종 열사의 희생에 대한 기억과 보훈이 단순히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길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해 피 흘린 민주영령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언젠가 전북대학교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세종 광장을 찾아 감사함을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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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8일(목)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입니다.

 

국가보훈처는 올해로 37주년을 맞는 이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5월 18일(목) 오전 10시 국립 5·18민주묘지(광주시 북구 소재)에서 거행합니다.


"5·18정신 계승,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출처: 5·18기념재단)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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