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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8일(목)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입니다.

 

국가보훈처는 올해로 37주년을 맞는 이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5월 18일(목) 오전 10시 국립 5·18민주묘지(광주시 북구 소재)에서 거행합니다.


"5·18정신 계승,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출처: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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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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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광주천과 중외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무등산부터 흐르는 물줄기로 이루어진 광주천은 광주의 중심부를 흐르며, 광주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 곳입니다. 


아주 옛날부터 광주천은 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곳이자 생계터전이었습니다. 천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향교, 서당, 마을의 모습을 갖추면서 광주 시민들의 삶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500년 전부터 광주천 주변에는 큰 장과 작은 장으로 나누어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옛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옛 광주천은 수백 미터에 달하는 넓은 강폭이었습니다.



광주천에는 40여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그 중 부동교는 작지만 가장 의미 있는 다리입니다. 바로 1919년 3월 10일, 광주시민들이 작은 장날에 모여 기미 3·1독립만세 운동을 벌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3·1운동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온 국민들이 하나 되어 독립만세를 외쳤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 SNS도 없었던 시절에 광주까지 독립만세운동이 빠르게 확산되었던 이유는 바로, 장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터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었죠. 광주의 3·1운동은 3월 8일 큰 장날을 기하여 전개할 계획이었으나 준비와 연락관계로 3월 10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숭일고, 수피아여고 학생들이 광주천을 타고 내려왔고, 광주시민들은 서문통(현 광주우체국 앞길에서 황금동 가는길)으로, 농업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은 북문통(현 우체국 옆 충장로 2가에서 충장로 파출소까지)을 거쳐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독립을 향한 의지에는 나이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수 천명의 광주시민과 어린 학생들은 일본헌병들의 휘두르는 칼에 맞서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를 외쳐대며 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날의 광주 시민들의 독립만세운동을 기억하고, 민족의 얼을 삼고자 광주광역시에서 1986년 11월 28일. 광주의 중외공원에 광주3·1독립운동기념탑을 건립하였습니다. 그 당시 참여했던 수많은 광주 시민들과 학생들의 모습이 탑의 조각에 새겨질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각에 새겨진 인물의 표정을 보면서 그분들이 그토록 바랬던 조국독립의 의지와 나라사랑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자 숭일고, 수피아여고 학생들은 선언문과 태극기 등을 나누어 주었고, 만세시위 주도자들은 큰 태극기를 높이 들고 시위 군중을 이끌었습니다. 시위행렬은 서문통을 지나 현 광주우체국 앞을 돌아 충장로로 내려가서 충장로파출소 앞에서 금남로로 들어섰습니다. 시위행렬이 우체국 앞에 이르렀을 때 일본군 무장 기마 헌병대가 출동하여 100여명을 체포하였습니다.


일제의 계속되는 압박에도, 광주시민들과 학생들의 만세시위는 다음날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숭일고와 농업학교 학생들이 선두가 되어 300여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광주 시내를 돌았습니다. 13일에는 약 1천명의 광주의 시민 군중이모여 만세 시위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광주천의 부동교와 광주3·1독립운동기념탑을 다녀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동교는 광주의 3·1운동뿐만 아니라 광주학생운동, 5·18민주화운동 등 광주의 역사를 함께한 곳인데 안내판도 없이 정부와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우리조국을 되찾기 위해 피땀 흘리신 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저부터 관심을 갖고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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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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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벌써 5월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요. 5월은 화목한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셨나요? 영화 속에 담긴 가슴아픈 모습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영화입니다. 저는 지난 5월 18일 제3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취재하기 위해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기념식에는 유족 분들과 학생들, 일반 시민들이 많이 참석해주셨습니다. 기념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이후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과 5·18민주화운동 희생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이어졌습니다.

 

 

 

▲ 광주 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 모습 

 

 

저는 이곳에서 광주시 교육청 학생의회에서 시 의원들과 함께 기념식에 참석한 성덕고 3학년 박주원 군과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김다원 양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 성덕고 3학년 박주원 군과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김다원 양

 

 

 

Q. 어떻게 기념식에 참석하게 되었나요?


A.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계승 방안이 학생 의회에서 결의되어 기념식에 의원분들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Q. 5·18민주화운동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A. 5·18민주화운동은 군사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에요.   5·18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해요.

 

Q. 다른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요즘 청소년들의 역사 의식 문제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요. 청소년들이 이런 자리에 직접 와서 많은 것을 느끼고 갔으면 해요. 그리고 광주에서 있었던 사건인 만큼, 광주 시민들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대성여자중학교 최선미, 이아영, 김도연 학생을 만나보았습니다. 

 

 

 

▲ 인터뷰에 응해준 대성여자중학교 최선미, 이아영, 김도연 학생

 

 

 

 

Q. 학생들이 다같이 모여 이렇게 기념식에 참가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은데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어떻게 참석한건가요? 


A. 학교에서 다 같이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단체로 신청하여 오게 되었어요.

 

Q. 지금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셨잖아요. 5·18 민주화운동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아시나요?


A. 광주 시민들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 날입니다.

 

Q. 그 분들께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A. 너무 존경하고 감사드린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Q. 광주의 한 시민이자 학생으로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나요? 

 
A. 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기틀을 잡은 광주 시민 분들께 감사하고, 또 그 땅에서 태어난 광주의 시민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광주 시민들이 많이 희생당한 것에 대해서는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제3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끝나고 저는 국립5·18민주묘지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유족분들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 아드님 분의 묘지를 찾으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 분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다가갔는데 할머니께서 아들의 영정 사진을 계속 어루만지고 닦고 계시는 모습에 한동안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는데요. 조심스럽게 여쭈어보니 아드님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어르신 말씀에 의하면, 아무리 말리고 나가지 말라고 해도 밤에 몰래 나가는 아들을 막을 수가 없었고,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후에는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어 매일같이 묘지에 가서 명단을 확인하셨다고 합니다. 몇 달을 도청 옆에 시신을 확인하러 다니다가 아들 분이 영창에 가있다는 전화가 왔고 어머니께서 그곳에 밤낮으로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드님은 그곳에서 쇠약해지셔서 결국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하셨습니다. 

 

국립5·18민주묘지에 묻히신 분들은 모두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고, 아들이고, 또한 사랑하는 남편이었습니다. 이들을 떠나보낸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쓸쓸하고 아플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 [오월, 그 천의 얼굴 천의 사랑] 전시회 입구

 

행사가 끝나고 옆에 있는 5·18추모관에 들렀습니다. 그곳에 전시되어있는 5월 22일에 ‘멈추어진 시계’나 시체를 감싼 비닐, 피로 물든 태극기, 인명 살상용 총탄인 M16 총탄 등을 보며 그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유품들이나, 가족들이 직접 쓴 편지, 당시 촬영된 영상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추모관을 둘러보던 중 읽게 된 ‘그대들이 열어주고 우리가 열어갈 세상’ 이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는데요. 저는 이 문구를 많은 분들이 자신의 희생으로 열어준 아름다운 세상을 이제는 우리가 잘 지키고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5·18 문학상 수상 작품전

 

 전시회 가운데에는 각 날짜마다 광주의 상황을 요약해 놓은 전시물이 있었는데요. 5월 19일 ‘물러설 수 없는 광주’에서는 잔혹한 진입과 시민의 분노가 시작되었습니다. 5월 20일 ‘일어서는 광주’에서는 차량 시위와 함께 시민들의 저항이 일어났지요. 5월 21일은 집단 발포와 시민 무장이 본격화되어 ‘총을 든 광주’가 되었고요. 마지막으로 5월 22일부터 5월 25일은 주먹밥으로 하나 된 광주, 5월 26일은 죽음 앞에 선 광주라는 테마를 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5월 27일에 죽음으로 저항한 광주에서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라는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 어느 덧 3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반드시 같은 역사가 반복될 것입니다. 1980년 광주의 5월이 피워놓은 민주화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계속 타오르게 할 수 있도록,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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