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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이번 기사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에 대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임병래 중위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쟁의 판세를 바꿀 수 있었는데요,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발판이 됐던 X-RAY 작전


▲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의 함대 (출처 : 국가기록원)


19508, 인천상륙작전 실시가 결정되기 전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정보수집을 위해 미군 투입을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지리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미군을 투입하는 것은 무리라 판단해 국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해군 정보국장인 함명수 소령은 정보수집 임무를 지시했고 임병래 중위를 포함해 사병 6, 민간인 7명으로 특수공작대가 조직됐습니다. 이들은 818일 새벽에 부산항을 출발해 6일 후 인천 앞 영흥도에 도착했습니다. 역사적인 X-RAY 작전의 시작이었습니다.


특수공작대는 영흥도에 본부를 차리고 인천에 잠입해 서울, 수원에서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첩보대원들은 경인 지방의 북한군 병력 배치 상황과 규모, 상륙지점의 지형, 암벽의 높이, 기뢰 수송 사항, 인천 해안포대의 위치, 인천 시내의 주둔병력의 규모와 활동내용 등 북한군의 상세한 정보를 수집해 유엔군에 전달했습니다.

또 월미도에 침투해 북한군 장교 2명을 납치하여 북한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성과도 올렸습니다. 특수공작대가 입수한 정보를 전달받은 유엔군은 마침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행하기로 합니다.


성공적인 작전 후 14일까지 모두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안타깝게도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철수 중 북한군 1개 대대의 기습을 받았고 수적 열세에 몰립니다. 부대원들을 탈출시킨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적에게 잡히면 군사 기밀이 유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숨은 영웅들이었던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의 장렬한 최후였습니다. 두 영웅의 희생이 있었기에 작전은 성공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전세가 뒤집혀 우리나라의 국토를 수호할 수 있었습니다.


# 영원히 기억될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


▲ 임병래 중위 동상 (출처 :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임병래 중위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났습니다. 1941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해 1950420일 대한민국 해군 중위로 임관했습니다. 임병래 중위는 해군본부 정보국 특수공작대 창설 당시부터 창설 요원으로 활약한 인재였고, 인천상륙작전 직전 수행한 영흥도 첩보전 조장을 역임했습니다. 영흥도 첩보작전 수행 후 철수하던 과정에서 적의 기습을 받아 장렬히 전사할 때까지 북한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해 연합군과 우리 국군에게 제공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 홍시욱 하사의 동상 (출처 :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홍시욱 하사는 1929년에 출생해, 1948년 6월 1일 대한민국 해군 신병 제10기로 입대했습니다. 홍시욱 하사는 복무 중 전쟁이 발발하자 해군 본부의 정보국 특수공작대의 조(하사)로서 임병래 중위와 함께 영흥도 첩보 작전에 투입됩니다.

홍시욱 하사는 특수공작대원들과 함께 인천에 잠입해 성공적인 첩보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1950년 9월 14일, 임병래 중위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정부는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의 전공을 기리어 1951년 충무무공훈장, 1954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미국 정부는 1953년 7월 6일, 은성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두 분의 유해는 1975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 대한민국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부활한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


▲ 대한민국 해군의 유도탄고속함 10번함 '임병래함' (출처 : 방위사업청 홈페이지)


살신보국(殺身報國)의 정신으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고 전사한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부활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201393일 유도탄고속함 10번 함인 임병래함을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인도받았습니다

이어 2014년 10월 4일에는 유도탄고속함 11번함인 '홍시욱함'이 해군에 인도되었습니다. 450t급의 임병래함과 홍시욱함은 해군의 낡은 고속정을 대체하는 유도탄고속함으로 연안 방어, 초계 임무를 수행합니다. 함대함유도탄 및 76MM 함포 등의 무장을 탑재한 전투력이 우수한 함정입니다.


68년 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임무를 수행하고 장렬히 산화한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는 함정으로 부활하며 영원히 대한민국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인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 우리가 기억하고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호국영령입니다.


* 참고사이트

방위사업청 홈페이지 

(http://www.dapa.go.kr/user/boardList.action?command=view&page=1&boardId=I_626&boardSeq=11950&id=dapa_kr_040200000000)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8512&cid=46628&categoryId=46628)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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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9일(금), 경기도 파주 임진강에서 2018년 새해의 문을 활짝 여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6.25참전 캐나다 참전용사가 함께하는 ‘2018 임진클래식*(Imjin Classic)’ 아이스하키 재현 행사와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이었습니다. 


* 아주 특별한 아이스하키 경기, ‘임진클래식(Imjin Classic)’

: 6·25 당시 한국에 파병된 캐나다 참전용사들이

임진강을 경기장 삼아 개최한 친선 아이스하키 경기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고향을 그리워하며 하키스틱을 잡았던 캐나다 참전용사들. 그리고 60여 년이 지난 2018년, 그들이 친선 아이스하키 경기를 펼쳤던 바로 그 임진강 부근에서 당시 경기의 재현 행사가 펼쳐졌습니다.

훈터 독자 여러분에게 그 현장의 감동을 전해드리기 위해 저, 훈터지기가 직접 임진강을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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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6.25참전 캐나다 참전용사(가족)을 초청하였습니다.

사진은 1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하여 참배한 뒤 환영 오찬에 참석한 캐나다 참전용사들.


국가보훈처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주한 캐나다 대사관과 함께 ‘임진클래식’ 아이스하키 재현행사 및 성화 봉송을 위해 6.25참전 캐나다 참전용사(가족) 6명을 초청하였습니다. 


지난 1월 17일(수) 입국한 이들은 다음 날인 18일(목),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하여 참배 및 헌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임진클래식 행사 당일인 1월 19일(금) 오전, 행사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진 캐나다 참전용사들은 이번 임진클래식 행사에 참여하게 된 소감과 6.25전쟁 당시에 아이스하키 경기를 열게 된 사연들을 나누었습니다.


▲ 클로드 샤를랭씨(왼쪽), 데니스 무어씨(가운데), 존 비숍씨(오른쪽)


성화 봉송 주자로 참가하는 참전용사 클로드 샤를랭(Claude Charland)씨는 

“전쟁 후 60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매우 강력한 회복력으로 국가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서 통일을 이루어내기를 바랍니다. 다시 찾은 한국에서 성화 봉송을 맡게 되어 영광스럽고, 감격스럽습니다.”

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 임진클래식 재현 행사가 열리기 전날인 1월 18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헌화 및 참배 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클로드 샤를랭 씨.


이어서 그는 "(1952년) 당시 경기를 할 때 장비는 14인용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하고 싶어하는 인원은 18명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오전, 오후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했는데, 오후팀은 장비가 따뜻해서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라는 추억을 이야기했습니다.


▲ 1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헌화 및 참배했던 데니스 무어 씨.


참전용사 데니스 무어(Dennis Moore, 87세)씨는

“(6.25전쟁) 당시 국방장관이 하키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는 믿지 못했습니다. 장비를 보내줄 테니 하키를 하라고 얘기했을 때에도 못 믿었습니다. 그러나 1951년 12월 말, 저는 PPCLI팀으로 뛸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령관님이 하키 경기를 하러 지프에 타라고 말했을 때는 정말 감격했습니다.

당시 임진강에서 얼음을 처음 밟았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전해주었습니다. 


또한, 에릭 월시 주한 캐나다대사는 “<2018 임진클래식>은 6.25참전 캐나다 참전용사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는 행사”라며 “오늘의 대한민국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한 캐나다 군인들을 기억하며 동시에 전세계 운동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스포츠 축제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한다.”고 말했습니다.


▲ 임진클래식 개막식에서는 육군 제1보병사단장이 캐나다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주한 캐나다 대사가 아이스하키 유니폼을 선물하는 깜짝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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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클로드 샤를랭씨는 1951년 캐나다 보병 장교로 입대하여 왕립 22연대(Vandoos) 소속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클로드 샤를랭씨 외에도 이광재 전 경기도지사, 고재윤 참전용사, 주한캐나다대사가 주자로 참여했습니다. 


# 다시 재현된 ‘임진클래식’


▲ 1952년 당시 임진클래식 현장(출처 : 캐나다 국가기록청)


본격적으로 시작된 캐나다 vs. 한국의 임진클래식 아이스하키 경기!


이번 아이스하키 경기의 하이라이트인 퍽 드롭(Puck Drop, 시구) 행사에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참석하여 행사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 2018 임진클래식의 퍽 드롭(Puck Drop, 시구)을 하고 있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1952년 임진클래식 당시 퍽 드롭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 국가보훈처, 캐나다 국가기록청)


# 캐나다 vs. 한국 참가팀


2018 임진클래식은 참가팀 구성도 특별했습니다. 캐나다 팀은 6.25전쟁 당시 임진클래식의 두 주역인 육군 프린세스 패트리샤 경보병연대(PPCLI)와 왕립 22연대(Vandoos)의 현역 군인들로 구성된 합동 팀이 출전했습니다. 

한국 팀은 한국 아이스하키의 대표 상징인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최초로 합동 팀을 구성하여 출전했습니다.


▲ 2018 임진클래식 경기 현장과 1952년 임진클래식 현장(출처 : 국가보훈처, 캐나다 국가기록청)


양 팀 선수들의 설렘과 긴장감이 경기장 밖에서도 생생하게 느껴졌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기가 이어졌습니다.


# 경기 결과는?


그렇다면 2018 임진클래식의 경기 결과는 어땠을까요?

캐나다 팀이 한국 팀을 5대 1로 꺾고 2018 ‘임진컵’을 손에 들었습니다. 양측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서로를 격려했고,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경기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 경기가 끝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 한국 팀과 캐나다 팀 선수들


6.25전쟁 당시의 아이스하키 경기를 60여 년 만에 재현한 특별한 시간, ‘2018 임진클래식’!

임진클래식 아이스하키 재현 행사와 캐나다 참전용사의 성화 봉송 행사 현장을 보며,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했던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전 세계인의 축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어느덧 17일 정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꿀팁!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좀더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 한 가지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로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었던 참전국들의 올림픽 경기를 열심히 응원하는 것이죠. 참전국의 올림픽 경기 일정은 추후 다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임진클래식 행사와 같이, 평화와 화합의 에너지가 이어져 나가기를 바라며 이번 취재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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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인천 수봉공원에는 다양한 현충시설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수봉공원을 찾아가 인천지구 전적비,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를 방문하였습니다.

 

기념비들이 있는 수봉공원은 인천지하철 1호선 도화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수봉공원 입구에서 5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인천지구 전적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 인천 수봉공원에 있는 인천지구 전적비


가까이에서 본 조각상의 모습은 굉장히 역동적이었습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당시 마산-왜관-포항을 연결하는 낙동강 방어선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펼쳐 성공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고, 북진의 발판을 마련하였죠.

 

이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1980년 9월 15일, 옛 격전지를 굽어보는 이곳 수봉공원에 전적비를 건립하였고, 2017년 10월 11일 인천시 6.25참전유공자를 기리기 위해 명비를 건립한 것입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천지구 전적비 옆에 나란히 있던 유엔 참전 기념탑이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힘을 합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함께 이것을 기념하는 의미인 것으로 보입니다.


▲ 인천지구 전적비 옆에 있던 유엔 참전 기념탑


인천지구 전적비를 지나 산책로를 걷는 도중, 재일학도의용군참전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탑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던 재일동포의 자녀와 유학생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병역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고 합니다.

 

그 중 동경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동포와 유학생들은 유엔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는데요, 이처럼 바다를 건너 달려온 재일학도의용군의 고귀한 뜻을 영원히 기리고자 이 탑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일학도의용군참전비를 지나 마지막으로 제가 방문한 곳은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입니다.


▲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는 조국과 민족의 자유 수호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던 무공수훈자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인천 무공수훈자 공적비의 건립취지문


특히 비석에 쓰여 있는 ‘이곳은 조국과 민족의 자유 수호를 위해 멸공 전선에서 함께 한 전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터전이다.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전시 또는 그에 따르는 비상사태 아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수훈자들의 애국애족 불꽃정신은 자자손손, 남으리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실제 전투에 참여하셨던 분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무공수훈자 명각비도 볼 수 있었는데요. 


▲ 무공수훈자 명각비


비석에 빼곡이 쓰여진 이름을 보니 이 분들의 애국심을 좀 더 무겁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세 곳의 현충시설 외에도 인천 수봉공원에는 현충탑, 자유 수호의 탑 등의 현충시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인천에 살며 수봉공원을 많이 방문했지만, 이러한 현충시설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쳤던 게 사실입니다.

 

인천은 6.25전쟁 중 전세를 뒤집은 계기였던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곳이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현충시설이 많습니다.

제가 이번 취재를 하며 느낀 것은 주변에 있는 현충시설에 관심을 두고, 방문하는 것이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 헌신한 분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http://mfis.mpva.go.kr/)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어떤 현충시설이 있는지 찾아보고,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참고사이트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http://mfis.mpva.go.kr/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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