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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강을 품고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대한민국 서울이 있는 건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목숨 걸고 지켜낸 분들 덕분인데요. 지난 9월 23일 제67주년 서울수복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또한 서울시청 앞에선 서울수복 사진전과 참전용사 40인을 기리는 전시회도 볼 수 있었습니다.

 

▲ 서울수복 사진전을 보고 있는 시민

 

행사에 앞서 군악대 모듬북 공연, 군가메들리, 의장대 공연이 있었습니다. 의장대의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면서 적의 공격을 빈틈없이 막아내는 국군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행사는 참전국기, 참전용사 입장, 태극기 게양 퍼포먼스, 기념사와 축사 및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태극기 게양 퍼포먼스였는데요, 태극기를 든 두명의 전문배우가 서울도서관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순간 승리의 나팔소리와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소리가 서울 도시 한복판에 울렸습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6.25전쟁 당시 꼭 서울을 되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던 참전용사들의 간절함이 온몸에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태극기 게양 퍼포먼스

 

행사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가안보와 나라발전을 위해 헌신해 오신 전우 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최근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에 맞서 우리는 안보 위기시 적시에 서울을 지키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며 감사와 다짐의 축사를 밝혀주었습니다.

 

▲ 서울수복기념행사

 

1950년 9월 28일은 6.25전쟁 발발 이후 빼앗겼던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을 되찾은 역사적인 날인데요. 서울을 수복하며 전쟁 발발 이후 약 3달 동안 북한군의 탄압 아래 고통받고 있던 서울시민에게 자유를 되찾게 하였으며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작전입니다. 한미 해병대와 유엔군은 ‘서울을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필사즉생의 각오로 전투에 임해 마침내 수도를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행사 중 맨 앞자리에 앉아 계셨던 참전용사 분을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분은 전쟁 당시 해병대 제1연대 상륙돌격 소대장이었다고 하는데요. 9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울수복행사를 기념하러 와주셨습니다.

 

▲ 이서근 참전용사


Q. 자기소개와 참전했던 전투를 알려주세요.
A. 이름은 이서근이고 1대대 1중대 소대장으로 28살에 참전하였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해병대입니다. 미군과 같이 전투에 참여했고 우리의 최종목표는 서울이었습니다. 그래서 1950년 9월 15일 인천에 상륙했고, 인천에서부터 서울까지 오는 데 12일이 걸렸습니다. 9월 27일 서울에 입성했고 동기인 박정모 소위가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서 서울탈환작전이 끝났습니다.

 

Q. 전쟁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무엇이었나요?
A. 우리는 서울을 탈환하고 서대문형무소 근처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추석 때였는데 다들 굶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래도 명절을 지낸다고 젊은 아낙들이 부침개를 부쳐서 하나씩 손에 쥐어주는데 그 순간 고향과 가족 생각도 나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날 먹었던 부침개가 지금껏 먹었던 음식 중 제일 맛있었습니다.

 

 

참전용사 분을 인터뷰하며 67년 전 서울수복작전에 대해 막힘없이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며,  그 당시 우리 국군 참전용사 분들이 얼마나 서울을 되찾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 바쳐 헌신한 참전용사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이 사수한 우리나라와 서울을 이제 우리가 지켜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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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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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 나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나라, 조국에 대한 애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합니다. 67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 조국의 평화와 안위를 위해 싸운 이들은 우리나라에 거주 중이었던 국민과 유엔군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재일동포 청년들 또한 조국을 위해 함께 싸우기로 합니다. 오늘은 해외국민 최초로 조국을 돕기 위해 참전을 결행한 재일학도의용군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조국이 짓밟히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67년 전 모두가 잠든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6.25전쟁, 이 당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은 한반도에 살고 있던 국민들뿐만 아니라 타국에 거주 중이던 동포들에게도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이에 일본에 거주 중이던 재일동포들 또한 놀람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적군을 향해 총탄을 겨누고 있는 국군 (출처: 타임트리 블로그)


일본 언론 또한 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한국의 6.25전쟁 상황에 대해 크게 보도하였습니다. 그 보도 속에서는 화력과 병력의 열세에 놓인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며 힘겨운 전투를 계속해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재일동포들은 하루하루를 불안과 초조 속에서 보냈습니다. 유엔의 병력과 의료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요.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구축하여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재일동포 청년들은 조국을 돕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하던 중, 참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출정 전 모습

(출처: 호국선열들의 제주길따라 역사탐방 블로그)


“아침 8시 NHK 뉴스를 통해서 나는 공산군이 남침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뉴스를 접하자마자 나는 바로 한국학생동맹사무실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1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우리들은 뉴스로 들려오는 전황을 종합해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재일학도의용군 양태근 씨 회고록 중에서


재일동포 학생들의 조직인 한국학생동맹과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에 모인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참전을 결정하였고, 그 굳은 결의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에 제출하였습니다. 민단에서는 6월 30일, 전국 청년학도 지원병 파견과 구호물자 및 위문품 보내기 운동 전개 등의 결의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이후 8월 15일, 민단 중앙본부는 자원병지도본부를 설치하여 지원서를 접수받기 시작했는데요.


재일학도의용군으로 6.25전쟁 참전을 희망했던 재일동포 청년들은 18세부터 45세까지 다양했습니다. 모두가 조국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모였던 것인데요.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었음에도 도쿄에서만 약 120여 명, 오사카에서는 80여 명, 나라, 고베, 교토 등에서 약 1,000 여명의 지원서가 접수되었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구국의 일념 하나로 현해탄을 건너다!


▲ 군 장비 지급받는 학도병 

(출처: 패션, 역사, 군사의 아침안개 블로그)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선발된 총 642명의 재일동포들은 미 제7사단에 소속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투입되었던 전투는 6.25전쟁의 반전 역사를 쓴 인천상륙작전이었는데요. 미 7사단 소속으로 맥아더장군의 진두지휘 하에 투입된 재일학도의용군은 후방지원 업무를 중심으로 투입되어 적군과 싸웠습니다.


▲ 인천상륙작전에 투입 중인 국군의 모습

(출처: 스마트한 순대 블로그)


이후 재일학도의용군은 모자, 가슴, 팔에 재일학도의용군이라 기록한 천을 두른 채 원산 상륙작전, 갑산 혜산진 탈환 작전, 백마고지 전투 등 한반도 일대 각지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들은 단일 부대가 아닌 수십, 수백 명의 단위로 나뉘어 각기 다른 부대에 배속되어 전투에 임했는데요. 


당시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계급과 군번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재일학도의용군은 미군에게 단일부대를 구성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이에 임시편성으로 재일학도의용군 단일부대인 3.1독립보병대대가 창설되었습니다.


▲ 학도병의 모습 (출처: 스마트한 순대 블로그)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급격하게 악화되어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3.1독립보병대대에게도 해산 명령이 떨어지게 됩니다. 재일학도의용군 청년들은 이를 격렬히 거부했으나, 결국 해산되고 말았고 이후 국군에 편입하여 조국의 안위를 위해 힘을 쏟는 등의 노력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또한 미군에 배속되었던 청년들은 교육을 받은 후 군의 간부가 되어 나라를 지켰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의 참전 의의


재일학도의용군의 6.25전쟁 참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해외에 체류 중인 자국민 중 조국의 전쟁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참전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스스로 조국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 싸울 수 있는 마음을 먹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6.25전쟁 당시 재일동포 청년 학생들에게는 군 복무의 의무가 없었지만 그들은 구국의 일념 하나로 현해탄을 건너 한국으로 왔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출정 전 기념식 사진 (출처: 오늘도 감사함으로 블로그)


재일학도의용군의 6.25전쟁 참전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의 이스라엘의 해외동포 참전 사례보다 무려 17년이나 앞서는 것으로,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문 사례입니다. 재일학도의용군은 학업과 가족을 뒤로하고, 타국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터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 재일학도의용군참전기념비 (출처: 현충시설정보 서비스)


또한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에서는 1973년 국립묘지에는 ‘재일학도의용군 위령비’를, 1979년에는 최초로 참전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 수봉공원에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탑’을 세워 642명의 재일학도의병의 희생을 알리고 있습니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에서는 매년 조국을 위해 희생, 공헌한 재일학도의용군의 충혼을 기리고 6.25전쟁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는데요. 9월 27일(수) 오전 11시, 인천 수봉공원의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에서 <재일학도의용군 제67주년 6.25참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타국에서 조국의 평화와 안위를 걱정하며 자발적으로 전쟁터로 뛰어든 재일학도의용군의 희생정신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후세에 계승되어야 할 정신적인 자산입니다. 재일학도의용군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 참고

재일학도의용군 나라사랑기념관 www.koreansvjm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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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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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국가보훈처 훈남훈녀 기자단 10기 김도헌입니다.  

제가 이번에 다녀온 곳은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574-116’에 위치한 ‘낙동강승전기념관’입니다. 낙동강승전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조국수호의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승전을 기념하고 당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참전용사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되살림과 동시에,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의 장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하나씩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낙동강승전기념관 전경


위 사진은 낙동강승전기념관의 전경입니다. 앞산공원 내부에 위치하여 맑은 공기와 함께 기념관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기념관은 오전10시부터 오후5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하며,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1층과 2층에 위치한 전시실에서 6.25전쟁의 발발 배경에서부터 개전 초기의 상황을 볼 수 있었는데요.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구축하고 치열한 혈투를 벌여 승리한 후 유엔군과 함께 반격의 발판으로 삼았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당시의 사진과 무기류, 설명 패널, 조형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전시실 입구 모습


1층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입니다. 이곳 입구를 통해 2층 전시실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 1층 전시실 내부


첫 번째로 관람한 내용은 ‘6.25전쟁 배경과 발발’에 관한 내용입니다.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 발발까지 한반도의 정세와 북한군의 남침 배경을 다양한 자료와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1층 전시실 내부


다음으로는 모형도를 통해 낙동강 방어선과 주요 격전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 전투 역사를 볼 수 있는 전투지관


이곳에서는 낙동강의 전투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낙동강 격전지 10곳의 전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8월, 9월 두 차례에 걸쳐 펼쳐졌던 화령장전투/ 안동전투/ 다부동전투/ 창녕·영산전투/ 마산서부반격전/ 기계·포항 쟁탈전/ 함안·마산 9월 공방전/ 영천전투/ 안강·포항전투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낙동강 격전지 재연물을 관람하였습니다. 풍전등화 같았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다부동, 포항 등지에서 혈투를 벌였던 격전지를 디오라마를 통해 재연하고 있습니다. 당시 포항 전투에 참가한 학도병의 편지를 보고 마음이 숙연해졌는데요. 1층 관람을 모두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보았습니다. 


▲ 2층 내부 전시실


2층 전시실에서는 유물을 관람하였습니다. 6.25전쟁당시 국군과 유엔군 및 북한군, 중공군이 사용하던 각종 총기류와 전투장비들이 실물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 기록들과 훈장 수여증서 같은 소중한 자료 외에 국군이 입었던 전투복과 군예복 등도 볼 수 있었습니다. 


▲ 2층 추모실


이후 저는 추모실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곳은 6.25전쟁에서 조국수호를 위해 산화한 호국전사자들의 넋을 기리는 곳입니다. 땅과 하늘, 그리고 바다에서 조국을 지켰던 영웅들을 사진으로 만나 볼 수 있으며, 수백 개의 군번줄로 표현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추모실에서 경건하고 바른 자세로 조국수호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이분들의 조국수호 정신을 잊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기리며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전관 내부


마지막으로 ‘비전관’으로 가 보았습니다. 6.25전쟁 이후 분단된 폐허의 땅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1953년 7월에 체결된 정전협정 이후 대한민국은 지금도 달리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켰던 모든 분들 덕분에 지금 대한민국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의 관람을 마치고 계단을 타고 내려오던 중 ‘좋은 전쟁이란 없고 나쁜 평화 또한 없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 하나로 6.25전쟁에서 용감히 싸워주셨던 분들 덕분에 지금의 평화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지만, 이 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이번 기사를 마치겠습니다.


* 참고자료

낙동강승전기념관 홈페이지 http://www.nakdongwa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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