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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고지를 사수하라! 

크리스마스 고지, 이름 뒤에 숨겨진 가슴 아픈 이야기”


오늘 소개해 드릴 4월의 6‧25전쟁 호국영웅은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전방의 1090고지, 일명 ‘크리스마스 고지’의 경계진지의 점령 방어 전투 중 혈전에 혈전을 거듭하다 안타깝게 중대원들과 함께 전사한 이순호 육군 소령입니다. 


▲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 (출처: 전쟁기념관)


이순호 소령은 1928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개성 송도중학교를 졸업한 후, 6‧25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27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1952년 10월 제7사단 3연대 9중대장으로 이순호 (당시) 대위는 사단 방어의 요충지,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전방 ‘크리스마스 고지’의 경계진지를 탈취, 방어하고 있었는데요.


‘크리스마스 고지’는 195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로부터 4일 동안 치열한 혈전에 혈전을 거듭하면서 붙게 된 이름인데요. 이 고지는 7사단이 사수하고 있던 전선 중 최북단에 위치한 돌출진지로서 적의 저항선인 어은산에 이르는 통로상의 요지였습니다.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알아보기 ▶http://mpva.tistory.com/1541)




1952년 10월 13일, 크리스마스 고지를 점령하고 남쪽 100m 지점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이순호 대위의 9중대는 중공군 제204사단의 기습 공격을 받았습니다. 2개 중대 규모로 증강된 중공군은 어떻게든 이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해 300여 발의 공격준비 사격을 집중한 후 9중대를 포위하고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 고지 점령 후 진지 구축 모습 (출처: 국방부 국사편찬연구소)


수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은 결국 중대 정면 일부를 돌파하고 중대 배후의 감제고지를 점령하였는데요. 이순호 대위는 중대의 후미마저 차단당하자, 분산된 병력을 수습해 반격에 나섰습니다.


이순호 대위는 일부 병력과 함께 직접 수류탄을 투척하였고, 10여명을 사살하며 적을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대위는 대퇴부에 총상을 입게 되었는데요. 대원들의 후송 제안도 거부한 채 의식을 잃어가는 중에도 무려 3상자의 수류탄을 투척하며 혈전을 벌였습니다.


이 전투는 약 2시간 30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중대원 모두 수류탄을 던지고 총검을 휘두르며 한 치 물러섬 없이 투혼을 불사르던 중, 이순호 대위가 이번에는 흉부에 적의 총탄을 맞아 전사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제11중대는 역습을 감행하여 적을 섬멸하였고, 마침내 고지를 사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고지전 전투 후 (출처: 전쟁기념관)


정부는 전사한 이순호 대위의 전공을 기려 1952년 12월 30일, 육군 소령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하는 한편,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 양구 전쟁기념관 (출처: 한국관광공사)


부상당한 상태에서도 적의 총탄과 포화를 무릅쓰고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던 이순호 소령을 비롯한 9중대원들의 숭고한 희생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고지라는 아름다운 이름 뒤에 숨어 있던 가슴 뭉클한 이야기,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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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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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광

    2017.08.17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 /MBC 보도내용)
    https://youtu.be/yLJXF_BRzKw 12,600여명의 절규를 들어보세요~
    KBS 시청자 칼럼 보도내용 2017.4.24

    https://youtu.be/V9U_WEbtU_8
    MBC 시사매거진2580 2017.6.25

    2017.08.15. 16:30


제 64회 보훈퀴즈의 신 참여에 감사드리며 상품은 12월 말 이내에 발송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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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지키리라! 아버님, 

이 딸이 당신의 유지를 받듭니다."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포항 형산강전투에서 북한군 6명을 사살하고, 적군의 포로가 되어도 극적으로 탈출하여 임무를 수행하며 묵묵히 전장을 지켰던 ‘오금손 대위’가 선정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외동딸이자 광복군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


1931년 2월 20일 북경, 오금손 대위는 독립운동가 오수암 선생의 외동딸로 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 되지도 전에 양친을 잃고 중국인 가정에서 자라났는데요, 1943년에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일찍부터 항일투쟁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토록 꿈꾸던 해방 이후, 오금손 대위는 조국으로 돌아와 개성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여 개성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순간도 잠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였고 오금손 대위는 다시 한 번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진 입대를 선택합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초, 포항 형산강지구 전투에서 오금손 대위가 부상자들을 돌보던 중 북한군이 병원을 기습했습니다. 광복군 시절 사격과 전투훈련을 철저하게 받았던 오금손 대위는 북한군 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려 2계급 특진, 대위로 진급하게 됩니다. 


또한 금화와 철원 중간지점에 있는 케이(K)고지 전투 중에서는 전우들과 함께 북한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는데요. 끝이 없는 고문과 회유가 이어졌지만, 오금손 대위는 절대 굴하지 않은 채 탈출할 기회만을 엿보다 북한군이 교전에 빠진 순간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부대에 복귀하여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탈출 과정에서 오른쪽 다리에 관통상, 허리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게 되어 후유증이 심해져 안타깝게도 군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74세로 타계할 때까지 ‘백골할머니’라는 별명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는 안보 전도사로서 활동하다 지난 2004년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들었습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전쟁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국가 안보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오금손 대위! 늘 조국만을 생각했던 그 마음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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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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