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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한반도 주변의 정세는 '풍전등화'였습니다. 대한제국 침략을 노골화하던 일제는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킵니다. 또 정미7조약으로 불리는 한일신협약을 체결해 차관정치를 실시하죠. 2년 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데 이어 내정까지 내준 대한제국은 사실상 껍데기만 있는 국가로 전락하게 됩니다. 일제가 보낸 조선 통감이 우리나라의 내정을 장악하고 뒤흔들었던 거지요.

 

일제는 이어 대한제국의 재정이 궁핍하다는 이유로 군대를 해산하는데요. 이에 불복한 우리 군인들은 일제에 항거해 정미의병을 일으켜 대항합니다. 시위대장 박승환의 자결을 기점으로 시위대와 진위대가 전국에서 일어났는데요. 특히 강원 원주에서 일어난 원주 진위대는 최초로 일제와 첫 전투를 벌이죠. 시위대는 고종황제가 광무개혁 때 신설한 군대로 황제와 수도를 지키는 군대이고, 진위대는 지방질서 유지와 국경 및 변경 수비를 목적으로 지방에 주둔한 군대였습니다.

 

<훈터>가 오늘 소개할 분은 원주 진위대를 이끌고 일제에 항거했던 ‘민긍호 의병장’입니다.

 

 

 

▲  민긍호 의병장의 모습 (출처 : 네이버 캐스트)


민긍호 의병장은 1865년 아버지 민치봉과 어머니 원주 원씨의 외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인품이 강직하고 공사가 분명하여 부하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통솔 능력이 탁월하였습니다.

 

33세라는 늦은 나이에 원주진위대 고성분견대에 입대하여 1901년 특무정교로 승진하여 원주 진위대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근무 중에 일제가 군대해산을 명하자 1907년 8월 5일 300여 병사를 집합시킨 후 의병봉기를 선언하고 봉기에 반대하는 6명의 장교를 체포한 다음 민간의병을 가담시켜 대오를 편성하였습니다.

 

민긍호의병부대는 인근의 의병부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강원도, 경기도 일대에서 약 100여 회의 전투를 치루었습니다. 여주전투, 홍천전투, 제천전투, 죽전전투, 장호원전투, 이천부근 전투, 이포전투, 충주읍전투, 이천북방고지 전투, 산지동전투, 남정자부근 전투, 홍천읍전투, 낭천읍전투, 사정리전투, 장호원전투, 원주문막전투, 주천전투, 봉복사전투, 사탄전투, 구포전투, 몰운치전투 등이 1907년 8월∼9월 활동기간 중 치룬 전투들입니다.


민긍호의병부대는 1907년 겨울 허위의병부대 · 이인영의병부대 · 이강년의병부대와 함께 13도창의대진소의 중요구성원으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관동창의대장이었던 민의병장의 의병활동은 현재도 강원도에 신화적인 이야기로 구전되어 오고 있을 정도로 눈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일제의 주목을 받았고 회유의 손길도 끊이지 않았으며 일본군의 집요한 추격을 받게 됩니다. 1908년 2월 27일 민의병장이 직접 지휘하는 의병부대는 원주의 강림 박달치 부근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우연히 마주쳐 치열한 전투 끝에 이를 격퇴하였고 우회하여 등자치 아래 궐덕리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일본군 충주수비대와 경찰대에게 탐지되었습니다.

 

그리하여 2월 28일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대가 사자산과 구룡산을 우회한 뒤, 다음날 민의병장이 주둔하고 있던 궐덕리를 동·남 양방면에서 포위 공격하여 왔습니다. 이에 민긍호의병부대 일부는 궐덕리의 서방고지에 올라가 반격하고, 나머지는 촌락 주위의 벽을 은폐 엄폐물로 삼아 완강하게 대항하였습니다. 하지만 상호 교전이 길어지자 의병부대는 탄환이 고갈되어 결국 일본군에게 촌락을 점령당하였고 민의병장 또한 적에게 피체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나머지 병사들은 일단 후퇴하였다가 그날 밤 민의병장을 구출하기 위하여 다시 일본군 숙영지를 공격하였습니다. 이 때 의병부대 병사들은 “우리 대장 민씨는 있는 곳에서 소리 지르라”고 외쳐대면서 사생결단의 탈환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이에 다급해진 일본군은 악랄하게 민의병장을 그 자리에서 사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일제의 군대해산 조치에 반대하여 1907년 8월 5일 봉기한 민의병장은 항일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회복의 길을 개척하다가 1908년 2월 29일 일본군에 의해 피살, 순국하시게 됩니다.

 


민긍호 의병장 기념상과 정미의병 기념비는 강원 원주시 명륜동에 있는데요. 명문 프로농구단인 동부 프로미의 홈구장인 원주 치악체육관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치약체육관 주차장에서 바라본 치악체육관 입구 원주 동부 프로농구단의 홈구장

 

 

치악체육관 주차장에 들어와서 체육관을 등지거나 입구에서 왼쪽을 향하시면

 

 

 

 

이러한 모습이 보입니다. 이곳이 바로 민긍호 의병장 기념비가 있는 곳입니다. 돌계단 우측에 보면 국가보훈처 지정 시설물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 민긍호의병장 기념상 안내문과 기념상으로 향하는 돌계단

 

 

이렇게 계단을 따라 올라 가시면 기념비와 동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 민긍호의병장 기념상과 기념비

 

 

 

▲ 민긍호의병장 기념비

 

이 기념비는 민긍호 의병장과 진위대 장병들을 기리는 원주 정미의병 100주년 기념비입니다. 기념비 뒤편에는 이 기념비가 왜 세워진 것인지 적혀 있습니다.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작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 기념비 주변이 너무 미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기념비 우편에 민긍호 의병장 동상이 우뚝 서있습니다.  

 

 

▲ 민긍호의병장 동상

 

충무공 동상처럼 크고 화려한 모습은 아닙니다만 민긍호 의병장의 기상을 나타내는 역동적인 모습입니다. 동상의 한편에는 민긍호 의병장에 대하여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 민긍호의병장에 대해 자세히 적혀있는 돌비석

 

민긍호 의병장의 묘역은 원주시 봉산동 주택가에 있는데요.

 

 

 

▲ 민긍호의병장의 묘소를 설명해주는 안내문

 

묘소를 설명해주는 안내판은 한글과 영문으로 각기 되어 있었습니다. 민긍호 의병장의 묘는 원래 평원동에 있다가 무실동으로 이전했습니다. 그 후에 1954년 5월 북부지구 경비사령관 권준 장군이 현재의 위치인 봉산동으로로 이장했습니다. 묘의 커다란 돌은 비석입니다. 비석의 앞뒤와 양옆에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 묘소 쪽에서 바라 본 대형비의 모습

 

비석의 위에는 민긍호 의병장의 묘가 있습니다.

 

 

 

 

▲ 민긍호 의병장의 묘

 

8월은 우리가 국권을 잃었고, 되찾았던 달입니다. 하지만 최근 독도 분쟁처럼 일본의 망언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8월에 민긍호 의병장을 비롯한 순국선열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여러분도 키보드 애국자가 아닌 주변의 순국선열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 TIP
민긍호 의병장 기념비와 동상이나 묘역 모두 원주 시내버스가 다니는 노선에 있습니다.
민긍호 의병장 기념비와 동상의 경우 원주시외버스터미널과 원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가깝습니다. 도보로도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승용차를 주차하기 편리합니다.

묘역은 봉산동이 구 시가지에서는 가까우나 터미널 쪽에서는 가는 것이 복잡합니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습니다. 승용차를 가지고 가시는 경우 주차하기 나쁩니다. 오래된 주택가를 지나야합니다. 차를 가지고 올라갈 수 없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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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창교

    2018.02.16 1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봤습니다. 근데 본문에 오타가 있습니다. 치악체육관이 체약체육관으로 나와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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