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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유엔기를 앞세워 한국에 지상군을 파견한 나라입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까지만 해도 필리핀은 독립한 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았었는데요. 후크의 반란으로 국내정정이 매우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필리핀은 이러한 가운데서도 유엔의 결의를 적극 받아들여 한국에 지상군을 파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필리핀에서 5개 대대 7천여 명의 장병이 파견되었고, 필리핀군은 1950년부터 1955년까지 한국에서 복무했습니다.



 ▲ 필리핀의 첫 원정군 제10대대 전투단 부산항 도착



필리핀 대대는 전선에 투입되어 많은 격전을 치렀는데요. 그 중에서도 중공군을 기습한지 "18분"만에 1명의 피해도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했던 라모스돌격대의 "에리에전초 기습" 에 대한 활약상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에리에(Eerie)전초 기습(1952.5.18~20)


1952년 4월 29일 오후9시, 필리핀대대는 갈화골 지역의 제1대대와 교대하여 중공군 제29군 예하 T-bone능선에 있는 적 전초와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갈화골 개활지에는 T형의 능선 남단에 1개 소대 정도 수용이 가능한 183고지(Eerie)가 섬으로 붙어있고, 그 북쪽 500m지점에 알세날(Arsenal), 200고지, 191고지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5월로 접어들어 녹음이 우거지면서 적의 야간활동은 현저히 증가하였는데요. 반면에 화력과 기동력이 우세한 유엔군은 주간에 보전포협동공격(보병과 탱크 그리고 포병의 합동 작전)으로 적 벙커와 방어구조물을 파괴하고 복귀하는 활동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에리에(Eerie)고지는 원래 아군의 전초기지였는데요. 그 해 3월 23일 중공군의 공격 이후부터 무인지대가 되었고, 중공군이 그곳에 진출하여 벙커를 구축하여 고정 진지화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곳을 둘러싸고 아군과 중공군 간에 9회의 걸친 교전이 있었는데요. 5월 18일부터 21일 사이에 에리에, 알세날, 191고지의 중공군 전초와 9회에 걸친 교전이 있었고, 그 중 6회는 백병전이었습니다.



▲ 에리에전초 기습 (1952. 5. 18 ~ 20)




중공군과의 교전, 그리고 습격


 5월 18일 오전 9시15분, 필리핀정찰대가 에리에 외곽을 경계하던 중공군 8명과 충돌하면서 첫 교전이 일어났습니다. 이 교전에서 구경 50mm 중기관총 사수인 롤단(Demetrio Roldan)일병이 적 1명을 사살하고 다른 2명에 부상을 입히고 1명을 사로잡는 수훈을 세웠습니다. 같은 날 오후, 메스토로(Maestro) 중위가 이끄는 1개 소대가 동 고지에 기습공격을 가했고, 중공군1개 소대를 완전히 소탕하였습니다.


 19일에도 대대는 2회에 걸친 기습공격으로 중공군 23명을 사살하였고, 전차, 지원포병, 근접항공지원으로 20명 이상의 적도 추가로 살상하였습니다. 

 21일 아침에도 기습이 감행되었는데요. 수색중대 제2소대장 라모스 소위(Fidel V. Ramos)가 지휘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에리에고지를 탈취한 다음, 벙커를 파괴하고 가능하면 적병을 사로잡아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찰대는 미군 공병 폭파병과 포병 관측반을 포함한 장교 3명과 사병 4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에리에고지 남쪽은 아군 전차 및 포병에 의해 모든 벙커가 파괴되었지만, 북쪽은 반월형으로 8개의 벙커가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증강된 중공군 1개 소대가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5월 21일 새벽4시경, 라모스소대는 공격개시선(공격목표 가까이에서 계획된 시간에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기 위하여 설정한 선)을 통과하였습니다. 대원들은 포복으로 800m의 거리를 2시간이나 걸려서 돌격대기지점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무릎 깊이의 물이 흐르는 2m 폭의 관개수로에 엎드려 일출을 기다렸습니다. 

 오전 7시경, 예정대로 전차, 포병, 전투기까지 동원된 준비사격(돌격에 앞서 먼저 화력으로 적을 제압하기 위하여 하는 사격)이 개시되었습니다. 그 공격준비사격을 틈타 정찰대는 정상 바로 밑에 철조망 있는 곳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오전 7시10분, 팔리스 하사의 척후조는 우측능선접근로, 드라페자 중사의 소총조는 좌측능선접근로를 따라 정상을 향해 돌격하였죠.



척후조의 활약


팔리스 하사는 자동소총수, 소총수, 수류탄 투척수 등 3명을 대동하고 정상 우측에 있는 교통호(인원과 물자를 보호하고 사격과 연락을 보다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면에 길고 좁게 파놓은 호)를 따라 제1번 벙커 10m까지 진출, M지점의 자동소총을 배치하고 분대원들을 횡대로 산개시켜 고지 북쪽으로 전 화력을 집중하였습니다. 이때서야 기습 받은 사실을 알게 된 중공군은 M지점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지만,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수류탄이 폭발하자 제2번 벙커에서 적 2명이 뛰어 나왔고, 이를 본 소총수가 사살하였습니다.

이때 팔리스 하사는 제2번 벙커로 달려가 총안구(총이나 포를 쏘기 위해 만들어놓은 구멍)에 사격을 하는 사이, 병사가 호 입구에 수류탄을 넣었습니다. 폭음과 함께 제2번 벙커는 흙먼지에 휩싸였고, 그 안에는 4명이 죽어 있었습니다.


제3번 벙커에서 수류탄이 날아오기 시작하자 라모스 소위는 팔리스 하사를 지원했습니다. 수류탄 투척수가 제3번 벙커 호 입구에 수류탄을 넣었습니다. 폭음이 울리고 라모스 소위가 그 안을 확인하려 하자, 적 2명이 소총을 난사하며 튀어나왔지만, 라모스 소위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겨 그들을 사살했습니다. 제3번 벙커까지 휩쓸고 나니 척후조의 수류탄은 남아있지 않았는데요. 그 이후부터는 에리에고지 전방 알세날전초와 연결되는 부분으로부터 적의 자동화기 사격이 시작되었죠.



소총조의 활약


한편, 드레페자 중사의 소총조도 에리에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적은 팔리스 하사의 조와 격전에 휘말려 소총조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였습니다. 이틈에 소총조는 제8번 벙커에 접근하여 N지점에 자동소총을 배치하고, 나머지 분대원들은 에리에 중앙부의 F지점에 나머지 자동소총을 배치하였습니다. 이때 제4번 벙커에서 적 4명이 뛰쳐나오면서 수류탄을 투척해왔습니다. 드레페자 중사는 이를 제일 먼저 발견하여 사격하였고, 분대원들도 가세하여 적 3명을 사살하였습니다. 다른 벙커에서도 적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수류탄을 투척하여 4명을 더 사살하였습니다.

적은 알세날고지로 도주하였고 에리에고지 500m 북쪽에 있는 191고지로부터 기관총탄이 난사되었습니다. 드라페자 중사는 폭파병들에게 제4번부터 8번까지 컹커를 서둘러 폭파하도록 하고, 전 대원에게 좌측방 191고지 상의 적 화기진지에 사격을 집중하는 한편, 포병지원사격을 요청하여 벙커 폭파를 엄호하였습니다.



저격조의 활약


양 돌격대가 에리에 정상에 도달하자, 디존 소위의 저격조는 척후조와 소총조가 적군에게 노출되어있는 에리에고지의 좌측방을 엄호하였습니다. 각 저격수들은 191고지 상에서 적이 사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이를 저격하였습니다.




라모스 돌격대 임무 완수


에리에고지를 기습한지 18분 만인 7시 28분에 적의 박격포탄이 낙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의 수정탄이 고지 정상에 떨어지기 직전인 7시 30분, 라모스 소위는 철수명령을 내렸습니다. 대원들은 고지에서 뒹굴다시피 산록 아래로 철수하였고, 우리의 지원전차가 적의 추격을 차단하기 위해 에리에고지 정상에 연막탄을 발사했습니다.



▲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고 있는 필리핀군 제20대대 전투단



그 결과, 라모스 돌격대의 기습작전은 기습한지 18분만에 1명의 피해도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순간을 다투는 작전 수행을 위해 신속한 동작, 계획한대로 이루어진 이동, 빈틈없는 사격과 기동, 적을 압도하는 용기 등은 훌륭한 성과를 냈습니다. 벙커 1개당 적 5~6명이 활동할 수 있는 벙커 7개를 완파하였고, 적 사살11명, 부상 10명, 호안에 유기된 시체를 합쳐 최소 70여명을 살상했습니다.
그 후 제20대대는 귀국 직전 1952년 6월 11일 부산에서 에리에 고지의 전공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 수상했습니다.

숨막히는 전투의 일부분을 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라모스 돌격대가 에리에 전초를 습격하여, 벙커 7개를 완파하고 중공군 70여명을 살상한 시간은 오직 18분에 불과했습니다. 정말 일분 일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었을 텐데요. 이러한 필리핀군의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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