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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19

- 피와 눈물로 한반도를 물들였던 1919년 그 시대를 돌아보다.





1919년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을 쌓은 역사적인 해입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1919년을 아이구아이구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약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그 나라를 지켜보겠다고 발버둥 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잔인하게 목숨을 빼앗기고 억압당했으며, 한반도가 피와 눈물로 물들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2013년 한해를 마무리하며 오늘날을 있게 해준 그 시대로 들어가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할 대표적인 사건들을 정리해봅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승하



▲ 고종황제의 국장


칼날 위에 선 조선의 임금 고종이 하루아침에 급작스럽게 승하했습니다.

자연스럽지 못한 고종의 죽음은 많은 의혹을 가지기에 충분 했습니다.

명성왕후의 시해에 이어 고종의 강제 폐위와 고종 독살의혹까지..

백성들은 고종의 승하로 분노했고 그 분노는 독립을 위한 원동력으로 쓰이게 됩니다.



1919년 2월 1일 최초의 독립선언



대한독립선언서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일제에 맞선 우리 민족 최초의 독립선언인 대한독립선언은 일명 ‘무오독립선언’이라고도 하는데요. 1919년 2월 1일 중국 동북부 길림성에서 조소앙, 신채호 선생 등 만주와 러시아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지도자 39명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맞추어 조국독립을 요구한 최초의 독립선언입니다.

 대한독립선언은 한민족 독립의 당위성과 “육탄혈전”의 무력적 대일항전을 전 세계에 선포한 것으로써 2·8독립선언, 3·1독립선언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독립선언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으며, 3·1독립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등 항일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919년 3·1독립운동의 시작



▲ 3·1운동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일제의 폭압적인 지배가 계속되자 독립 운동가들은 비밀조직을 결성하여 항일 운동을 준비하게 됩니다. 세계정세를 주시하며 ‘그 날’을 준비하던 그들은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과 평양 등 6개 도시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합니다. 자발적인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각 지방과 각 계층으로 시위운동이 확산됩니다. 

3·1운동은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에서 약속한 바와 같이,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개하였지만, 일제는 총검으로 무차별 살육을 감행하여 헤아릴 수 없는 살상과 피해를 남겼습니다. 많은 희생을 낳았던 3·1운동은 민족의식 및 정치의식이 기반이 되어 점차 민주주의 의식으로 성장하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의식변화는 일제의 무자비한 무단통치가 문화통치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9년 4월11일 국호 ‘대한민국' 제정 / 4월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부 (출처: 위키백과)



3·1운동 직후 임시정부수립이 당면과제로 부각되자 국내외 독립지사 29명이 1919년 4월 10일 밤 중국 상하이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모임의 이름을 임시의정원으로 정하고 다음날인 11일 역사적이고도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로 나라의 국호를 결정한 것입니다. 

"대한이란 말은 조선왕조 말엽 잠깐 쓰다가 망한 이름이니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 며 여운형이 반대하고 나서자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며 신석우가 맞받아쳤습니다.

결국 표결에 부쳐져서 '대한민국'이 정식 국호로 채택됩니다. 이어 4월 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선포됐습니다.



1919년 8월 21일 임시정부의 상해판 독립신문 창간


▲ 독립신문 상해판 (사진:문화재청)



상해판 독립신문은 상하이에 망명 중인 독립지사들이 임시정부의 활동과 이념을 전파하고 독립운동 소식을 국내외에 알렸던 신문입니다. 신문의 제호는 ‘獨立’에서 ‘獨立新聞’으로, 마지막 ‘독립신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독립신문은 주 3회 발행을 원칙으로 했고, 상하이에 한글 활자가 없어 성경에서 한글을 오려내 자모를 만들 만큼 제작환경이 열악했지만 일제를 통렬하게 비판할 때는 지면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으로 189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였습니다. 



1919년 9월 2일 강우규 의사, 조선총독에 폭탄


▲ 독립운동가 왈우 강우규 의사의 동상 (출처: 국가보훈처 훈터 블로그)



독립운동가 강우규(姜宇奎 : 1855~1920.11.29)는 평남 덕천출생으로 30세 때 함남 홍원으로 이사하여, 한의술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여 장로가 되었고, 학교를 설립하여 청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쳤습니다. 을사조약 체결로 국운이 기울어짐을 보고 만주로 떠나 지린성 라오허현에 정착하여 신흥촌을 건설하고 광동중학을 세우는 등 교육사업에 진력하였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박은식, 김치보 등과 상의하여 65세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돌아가 거사할 것을 자원하여, 제3대 총독으로 한국에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를 살해하고자 영국제 폭탄을 가지고 서울에 잠입하였습니다.


강우규는 1919년 9월 2일, 내외 정세와 총독의 동정을 살피던 중, 하세가와의 후임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한다는 것을 알고, 사이토 내한 당일 남대문역에서(현재의 서울역)조선 총독으로 신임된 사이토 총독을 폭살하기 위해 사이토가 탄 마차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비록 총독이 살해되진 않았으나 사이토를 호위하던 일본인 경찰을 비롯하여 37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한 강우규는 장익규, 임승화 등의 집에 피신하다가, 9월 17일 일본의 앞잡이 김태석에게 체포되어 총독부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최종 판결에서 총독 암살미수혐의와 민간인 사상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아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법정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고 합니다.




1919년 11월 9일 의열단 창단


독립 의열단원들의 출감 후 기념촬영



 김원봉을 중심으로 한 항일 무장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은 구축왜노, 광복조국, 계급타파, 평균지권 등을 최고 이상으로 삼았으며 천하의 정의의 일을 맹렬히 실행하고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을 희생할 것 등 10개조를 공약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암살대상으로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부수뇌, 대만총독, 매국노, 친일파 거두, 적의 밀정 등을 지목하고, 파괴대상으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일제의 중요기관 등을 설정하였습니다.


의열단은 창단 직후부터 대대적인 암살과 파괴할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1920년 3월 곽재기의 밀양폭탄반입의거, 9월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투척의거, 12월 최수봉의 밀양경찰서폭탄추척의거, 1921년 9월 김익상의 조선총독부폭탄투척의거, 1922년 3월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의 다나까 육군대장저격의거, 1923년 1월 김상옥의 종로 경찰서 폭탄투척의거, 1926년 12월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및 식산은행 폭탄투척 등이 있습니다.

의열단의 이름은 신화적 존재였는데요. 일제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며 자신의 보장받지 않은 내일을 보내던 의열단에 소속된 젊은이들은 당시 가히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의열단은 독립운동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1919년, 피와 눈물이 마르지 않은 그 시대를 살면서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희망의 한줄기인 조국의 독립은 그들이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칼과 총을 든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일제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 싸운 이들의 애환과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그들이 우리의 조상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를 만들어 준 자랑스러운 주역들임에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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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덕호

    2014.11.15 14: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울시가전의 용장 김상옥의사" 가 KBS TV제작국 요청으로
    "1: 1000의 독립전쟁"으로 제목이 바뀌어 11월17일 순국선열의 날 행사전
    오전 10시 방영됨을 알려 드리며. 제블로그에서 예고 동영상을 볼수 있으며
    김상옥의사님이 하신 일을 한분이라도 더알려지게 널리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http://blog.naver.com/56dhyoon/22017925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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