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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터 여러분! 즐거운 성탄절 보내셨나요?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전 세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성탄절을 맞아 1951년 12월 25일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해드리겠습니다.

 

1951년 12월 25일 한반도에는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로 인해 캐럴 대신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크리스마스와 전투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단어가 조합된 이 단어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1951년 12월 25일에 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강원도 양구군 1090고지에 갑자기 400여발의 포탄이 집중 투하된 것을 시작으로 펼쳐진 전투의 별명입니다.

 

당시 휴전선 설정문제로 진통을 겪던 국군과 북한군 측은 1951년 11월 27일부터 30일간의 조건부 잠정 군사분계선 설정에 합의했는데요. 하지만, 30일을 채 채우기 전인 1951년의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에 중공군이 조건부 군사 분계선 설정 합의를 무시하고 기습을 개시했습니다. 당시 중공군 주저항선의 핵심진지인 무명고지를 한국군이 장악하고 있었는데요. 중공군이 이를 빼앗기 위해 예상치 못한 공격을 개시한 것인데요.

 

1951년 크리스마스 당일부터 28일까지 중공군 제 204사단과 국군 제 7사단은 현재 크리스마스 고지라는 별칭이 부여된 무명고지에서 끝나지 않을 혈투를 펼쳤습니다.
 
겨울을 맞아 하얀 눈으로 뒤덮였던 고지는 국군과 중공군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고, 성탄절의 축복이 대신 사방에서 총성과 포성,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흘간의 전투에서 우리국군은 중공군 사살 172명, 포로 5명, 무기와 장비 획득 등의 전과를 거뒀으나 우리군 또한 22명이 전사하고 21명의 실종자, 10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같은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는 다른 지역의 고지 쟁탈전과 더불어 우리군이 당시의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는지 말해주는 전투인데요.

 

우리가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크리스마스를 맞아,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를 떠올리며 의미를 되새겨 보고 지금도 전선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국군장병 여러분께 감사의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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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2어디요

    2015.04.30 0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번 이딴 포스팅 쳐해도 씨발럼의 미필 및 여성들은 느끼는 거 하나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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