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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64년 전, 625전쟁 중이었던 1951년에는 교착상태에서 아군에게 유리한 고

지를 점령하는 소규모 전투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195193일은 817일 한국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피의능선고지탈환전투가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출처: AP Image

 

 

 

피로 물든 능선

 

한반도 전역이 전쟁의 상흔으로 물든 19518월경, 양구의 방산면과 동면 일원에서는 능선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발발합니다. 전투가 종료되던 93일에 이르기까지 당시 국군과 미군은 1개 연대 규모인 2,700, 북한군은 1개 사단 규모 이상인 1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출처: AP Image

 

 

 

한반도는 산지가 많은 지형입니다. 그래서 전투 중에 유엔군의 막강한 화력 지원을 받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 국군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고지 쟁탈전을 취재하던 외국 종군기자들은 전투가 발생했던 능선을 피의 능선이라고 불렀습니다. 수많은 사상자로 인해 비가 내리면 능선이 핏빛으로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피의 능선이라는 별명에서도 고지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참 무서운 이름입니다. 2000년대 이후에 시작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에서는 아직도 전사자 유해가 많이 발굴되고 있다고 합니다.

 

 

 

 

공군의 폭격으로 고지가 2M가 깎인 능선

 

 

 

출처: AP Image

 

대부분의 고지 쟁탈전은 적이 점령한 고지를 미군이 공군과 함포사격으로 폭격하고 이후 육군이 고지를 공격 점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3만 발의 포탄이 피의 능선에 포격되었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수많은 폭격으로 원래 985고지였지만 2M가 깎였다고 전해져옵니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치열했던 전투현장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후 1953727일 휴전협정이 완료되기 이전까지도 고지를 탈환하는 전투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고지쟁탈전은 주로 휴전선 부근에서 진행되었기에 아직 그곳에 많은 전사자들이 묻혀있다고 합니다.

 

 

 

출처: AP Image

 

국군과 유엔군은 93일 피의 능선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북한군과 중공군을 양구 해안분지 북쪽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미국의 역사학자 페렌바크는 피의 능선 전투에 대해 이 보잘것없는 둥근 언덕 세 개(피의 능선)를 차지하려 4,000명이 넘는 아군병사가 목숨을 바쳤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젊은 아군병사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있는데요. 당시 그들이 양구를 지켜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피의 능선이라는 말 만큼이나 치열했던 고지전투를 꼭 기억해주세요.

 

 

 

 

 

 

               

Posted by 대한민국 훈남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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